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353
한편, 칠채도인은 세 번째 화살이 날아들자 결인을 그린 두 손을 휘두르며 광기 어린 눈빛을 번득였다. 평생 이렇게까지 심한 부상을 당해본 적이 없다는 것도 화가 났지만 그 상대가 자신보다 한참 수준이 낮은 자라는 사실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분한 것은 자신이 장존을 통해 한제에게 보낸 이광의 화살에 당했다는 사실이었다.
‘본래 이한제 저자로 하여금 저 활을 통해 연도비를 유인하고 전가 노인과 갈등을 빚게 하려던 계획이었건만…’
자신의 계획이 틀어진 것으로도 부족해 자승자박이 된 셈이니 더욱 원통했다. 이에 분개한 그는 무슨 수를 써서든 반드시 한제를 죽일 생각이었다.
그가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자 아홉 개의 태양이 눈부시게 번득이면서 세 번째 화살을 향해 달려들었다.
콰쾅! 쾅! 퍼펑!
요란한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지면서 아홉 개의 태양은 차례로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세 번째 화살도 무너져 내릴 조짐을 보였다.
아홉 개의 태양이 폭발하면서 파멸적인 힘이 뿜어져 나왔다. 이 강력한 기세에 비교적 가까이 있던 청룡 장군은 온몸이 무너져 내려 그대로 죽음을 맞았고 이 잔계 역시 흩어지기 시작했다.
허나 끝이 아니었다. 아홉 개의 태양에서 발산된 파멸적인 힘은 칠채도인이 가진 모든 힘이었다. 그 강력한 힘 아래 나머지 잔계들 역시 속속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도 도망쳐!”
현무 장군은 체면도 생각지 않고 짧게 외치더니 주작 장군과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장존도 창백한 얼굴로 긴 빛을 그리며 도망쳤다.
멀찍이 떨어져 있던 세 번째 비와 남몽도존, 오행성 귀일종 사람들 또한 표정이 급변해 다급히 달아났다.
퍽!
이 파멸적인 힘의 중심에 있는 칠채도인의 가슴팍이 폭발했다. 세 번째 화살과 아홉 개의 태양이 충돌하면서 일어난 충격은 그에게도 영향을 미쳤고 몸 상태가 더욱 악화된 것이다.
“쿨럭! 이 파멸적인 힘 아래, 가까이 있던 네가 겨우 그 수준으로 어떻게 대항해내겠느냐!”
그는 피를 토하면서도 비릿하게 웃었다.
그의 말대로 한제는 이 충격의 근원과 무척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리고 이 파멸적인 충격은 고신의 육신으로도 버텨낼 수 없었다. 이대로라면 그 충격에 스치는 것만으로도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소멸할 터였다.
하지만 애초에 이곳에 덫을 설치하고 적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만큼 그는 퇴로 역시 준비해둔 상태였다. 최악의 경우 이런 어마어마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음을 예측한 것이다.
파멸적인 충격에 뒤덮이기 직전, 그는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린 후 허공을 움켜쥐었다.
‘이거 미안하게 됐군.’
한제는 그 와중에도 피식 웃었다.
순간 강렬한 금빛이 피어오르더니 더러운 장삼을 입은 채 쿨쿨 잠든 광인이 나타났다. 한제는 두 손으로 광인을 붙잡아 방패로 삼았다. 완전한 선인의 불멸체인 광인은 우주가 무너져 내린다고 해도 끄떡없을 터였다.
동림종(東臨宗)
광인은 한제의 손에 붙잡힌 어깨가 불편한지 몇 차례 뒤척였을 뿐, 깨지도 않고 또다시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았다.
바로 그때, 파멸적인 기세가 광인을 휩쓸었다. 광인의 온몸에서는 금빛이 발산됐고 그는 이 어마어마한 충격에 격렬하게 휘청거리면서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때, 광인이 돌연 몽롱하게 두 눈을 떴다. 그는 아직 잠이 덜 깬 탓에 잠시 멍한 눈으로 두리번거리다가 저 앞의 칠채도인을 발견하고는 버럭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누구냐! 누가 감히 이 몸의 단잠을 방해한단 말이냐! 오만방자한 녀석! 당장 형님께 이를 것이다!”
광인은 칠채도인을 향해 삿대질까지 해가며 포효하면서도 자신의 어깨를 붙잡고 뒤에 숨은 한제에 대해서는 의식조차 하지 못했다. 덕분에 한제는 강력한 충격을 피할 수 있었다.
“버르장머리 없는 것들! 감히 나를 건드려? 이, 이⋯⋯ 이…”
광인은 호통을 치다 말고 다시 눈을 감더니 코를 골면서 졸기 시작했다.
‘방금 그게 잠꼬대였단 말인가?’
한제는 이 와중에도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날 지경이었다.
한데 그가 나타나 호통을 치는 동안 사방은 엄청난 혼란에 휩싸였다.
이미 중상을 입은 칠채도인은 광인, 연도비를 보자마자 기겁하며 우뚝 멈춰 섰다. 멀쩡한 상태에서도 당하기 힘든 연도비가 나타나다니, 당장 도망쳐도 살아남는다는 보장이 없는 상황 아닌가!
그는 중상을 입은 몸을 이끌고 재빨리 물러났다.
한편, 저 멀리 귀신 얼굴 형태의 안개에 휩싸여 있던 전가 노인은 진즉 눈을 뜬 상태였지만 안개 밖으로 나오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나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일찍이 도망치기 시작했던 장존이었다. 광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 순간 그는 몸을 바르르 떨었고 하마터면 그대로 추락할 뻔했다.
“주… 주인님!”
다급하게 달아나던 현무 장군과 주작 장군도 몸을 홱 돌려 경악한 얼굴로 광인을 바라보았다.
“연도비!”
세 번째 선비의 얼굴 역시 창백하게 변한 상태였다.
오행성 귀일종 수련자들 또한 경련을 일으켰다. 특히 마씨 노인의 눈빛은 두려움으로 크게 흔들렸다.
“저, 저자가 어찌 이곳에…?”
당시 연도비가 이곳으로 오게 된 연유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던 그는 뜬금없이 나타난 연도비의 존재에 심신이 격하게 요동쳤다.
한편, 아홉 마리의 목어에게 다가가 다섯 번째 목어를 거두고 있던 현라 대천존도 흠칫 놀라더니 광인을 바라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연도비? 허! 연도진의 동생이 이곳에 와 있었군.”
★ ★ ★
광인을 방패로 삼은 덕에 한제는 파멸적인 충격의 절반 정도를 흘려보낼 수 있었고 그 정도는 도고의 유산을 받은 그로서 견뎌낼 만했다.
광인이 다시금 쿨쿨 코를 골며 잠든 순간, 한제는 뒤로 질주하듯 물러나 저 멀리 아홉 마리의 목어가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한데 눈 깜짝할 사이 광인을 끌고 그곳에 이른 순간, 한제의 눈동자가 바짝 졸아들었다.
‘다섯 마리가 사라졌다!’
그러나 이유를 따져볼 틈은 없었다. 그는 곧장 소매를 휘둘러 세 마리의 목어를 거두었고 마지막 한 마리까지 거두려 했다. 한데 그때, 눈앞에서 그 마지막 목어가 사라져버렸다.
한제는 머리가 저릿해지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번쩍 들어 사라진 목어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허나 그곳은 텅 비어 있었고 3백 개의 잔계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만이 다가올 뿐이었다.
모습을 감춘 현라는 놀란 와중에도 신중함을 유지하는 한제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물론 그 목어는 현라가 거둔 것이었다.
그때 한제의 눈빛이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살짝 번득였다. 그는 목어의 비밀을 하나 알고 있었다. 칠채선존이 잔계에서 목어를 기르면서 알게 된 그 비밀은 세 번째 주혼을 통해 한제에게도 전해진 상태였다.
‘암수 한 쌍의 목어가 함께 있으면 둘 사이에 연계가 형성된다. 한쪽이 죽지 않는 이상, 심지어 저물공간에 있어도 그 연계는 사라지지 않지.’
이 사실을 떠올린 한제는 즉시 몸을 돌려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그 순간, 진즉 정신을 차렸음에도 귀신 얼굴 형태의 안개에서 나오지 않고 있던 전가 노인이 몸을 훌쩍 날렸다.
안개로부터 나온 그에게는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었다. 한제를 쫓아가 세 번째 주혼을 손에 넣느냐, 아니면 중상을 입은 칠채도인을 쫓아가 그와 융합하느냐.
허나 세 번째 주혼이 없는 이상 이 융합은 완전하지는 못한 것으로 엄밀히 말해 융합이라 할 수는 없었다. 수준에도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대신 세 번째 주혼을 두고 다툴 자가 사라진다는 의미가 있다.
두 가지 모두 전가 노인에게는 충분히 매혹적이었다.
‘이한제가 이광의 활을 몇 번이나 더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저자를 쫓는 건 너무 위험하다. 그랬다가는 부상을 당할 수도 있고 그 사이에 칠채도인이 회복하기라도 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아. 허나 그렇다고 한제를 이렇게 놓치기도 싫고…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둘 모두를 붙잡아둬야 하나?’
짧지만 깊은 고민이 이어지던 순간, 한제의 거친 목소리가 무너져 내리고 있는 3백 개의 잔계에 울려 퍼졌다.
“이봐, 전가 늙은 이! 내가 활을 몇 번이나 더 쏠 수 있을지 궁금하지 않은가?”
뒤로 물러나던 한제는 어느새 등 뒤에 나타난 회오리로 발을 들이더니 사라지기 직전까지 전가 노인을 서늘한 눈으로 응시했다.
전가 노인과 그의 주위에 나타나 있던 허상 역시 한제를 뚫어져라 응시했지만 경거망동하지는 않았다. 도박을 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한제가 전가 노인이 아닌 칠채도인을 공격 대상으로 택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그가 보기에 칠채선존 신통술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는 칠채도인이야말로 칠채선존의 경지와 본원의 화신인 전가 노인보다 세 번째 주혼에 대한 집착이 훨씬 강했다. 전가 노인 쪽이 훨씬 이성적이었다. 그렇기에 칠채도인은 예측이 힘들지만 전가 노인의 행동과 선택은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한제는 일곱 개의 덫을 설치하면서 바랐던 최상의 결과를 얻었다. 애초에 칠채도인을 죽이기란 힘들 것이라 예상했기에 그저 부상을 입히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렇게 되면 전가 노인은 그 틈을 놓치려 하지 않을 것이고 칠채도인에게 부상을 입힌 자신에게 선뜻 덤벼들지는 못할 터. 말하자면 그는 전가 노인에게 중상을 입은 칠채도인을 선물로 내놓은 셈이었다.
‘전가 늙은이, 어떤가? 그 선물을 받겠는가?’
완벽한 계획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전가 노인을 속일 수 있었다.
한제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잠시 고민하던 전가 노인은 칠채도인이 달아난 쪽으로 고개를 홱 돌리더니 곧장 달려 나갔다.
그 무렵, 장존은 저 멀리서 이 모든 광경을 목격하고는 눈을 반짝였다. 동시에 어떤 실마리를 찾아냈으나 전가 노인에게 말하는 대신 홀로 나름의 계획을 세웠다.
한제가 회오리를 통해 밖으로 나갔을 때, 3백 잔계는 완전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잔계 곳곳이 붕괴함에 따라 노란색의 큰 꽃 위에 맺힌 3백 개의 이슬은 기화돼 사라져갔고 꽃 역시 급속도로 말라갔다.
회오리 안에서 사라졌던 한제는 동부계 중심의 첫 번째 꽃 안에 존재했던 3백 개의 잔계를 떠나 또 다른 세상에 이르렀다.
한제는 창백한 얼굴로 입가의 피를 닦아내고는 잠들어 있는 광인을 거둔 뒤 가부좌를 틀었다.
사방이 어둑한 가운데 저 앞에는 어스름한 빛을 번득이는 꽃 한 송이가 있었다. 그 꽃에서는 마치 얼음처럼 서늘한 기운이 발산됐다. 얼음으로 봉인된 꽃.
‘오화팔문(五花八門)! 칠채선존 동부계 중심의 방어 체계! 3백 개의 잔계가 첫 번째 꽃이고 이 얼음으로 봉인된 세상이 두 번째 꽃이지. 다른 꽃 중 망가지거나 소멸된 것도 있을까?’
‘팔문’은 마지막 꽃에 숨겨진 것으로 이 마지막 꽃을 활성화하는 핵심은 세 번째 주혼의 기억이다.
여덟 개의 문 중 일곱 개는 거짓이고 하나만 진짜였는데 그 진짜 문은 선강 대륙으로 이어져 있다. 그 문이 마지막 꽃에 있는 것은, 그 다섯 번째 꽃은 당시 칠채선존이 남긴 봉인이기 때문이다.
한제는 잠시 망설이다가 곧 결심한 듯 몸을 날리더니 천천히 얼음층 안으로 사라졌다.
“쿨럭!”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치료할 틈도 없이 두 번째 꽃으로 달려든 그는 서늘한 기운으로 뒤덮인 그 안에 나타나자마자 피를 한 움큼 토했다. 이 피는 곧장 얼음 결정으로 얼어붙어 바닥에 떨어졌다.
비틀거리며 몇 걸음 뒤로 물러난 한제는 정신을 차리려 애쓰며 사방을 둘러보다가 크게 놀라고 말았다.
그곳은 온통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다. 대지와 하늘은 물론 심지어 구름까지도. 허공에 떠 있는 대륙들도 거대한 고드름처럼 보였다.
‘여기는 또 어떤 곳일까?’
한제는 신중한 표정으로 신식을 펼쳤다. 세 번째 혼에도 이 꽃에 관한 정보는 없었기에 더욱 신중해야 했다.
수많은 생기가 느껴졌으나 이 생기들은 마치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한데 신식으로 생기들을 살피던 한제는 갑자기 표정이 급변하더니 왼쪽 대지로 고개를 홱 돌렸다. 그곳에서 매우 짙은 고신의 기운이 느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