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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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둑한 세상 속. 안개에 뒤덮인 하늘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안개는 꿈틀거리며 끊임없이 움직였다. 구름 아래도 안개로 뒤덮여 있었는데 그 안에서 울려 퍼지는 포효는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또한 이곳에는 공중에 크기가 서로 다른 대(臺)들이 있었는데 시체가 놓인 것도 있었다. 온몸의 피와 살, 정수까지 무언가에게 빨아 먹힌 듯 바싹 마른 상태였다.
한제는 그중 하나의 대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다가 쓰게 웃었다. 이곳은 그에게 익숙한, 당시 그가 도고의 유산을 물려받았던 오래된 무덤이었기 때문이다.
“이럴 줄 알았지. 이곳은 칠채선존이 엽막을 묻은 곳이야. 그가 아무 이유 없이 이런 곳을 만들었을 리가 없지. 이 오래된 무덤은 원래 동부계 오화팔문의 네 번째 장소였던 거야. 그러니 탁삼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도 당연하지.”
한제는 대의 가장자리에 서서 저 아래 안개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당시 이 안개 아래로 몇 개의 층이 있었음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당시 이곳에서 나갈 결심을 하게 만든 무시무시한 기운도 있었다.
한제는 엽막의 유산을 전승받았을 때 이 오래된 무덤에서 가장 아래층의 심장을 느끼기도 했다. 그것은 틀림없는 엽막의 심장이었다.
“엽막의 유산 중 왼쪽 눈 외에 남은 건 심장뿐이지.”
이미 엽막의 유산 대부분을 차지한 한제는 엽막의 육신은 이미 무너져 내렸음을 그전에 잘린 두 팔만 온전히 남아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가 이곳의 가장 아래층에 있는 엽막의 심장을 손에 넣는다면 소재를 알 수 없는 왼쪽 눈만 빼면 엽막의 유산을 거의 다 차지한 것과 같다.
만약 엽막의 심장을 흡수한다면 왼쪽 눈이 없더라도 고신의 반점은 물론 고마의 반점도 아홉 개로 늘어날지도 모른다. 그럼 그는 9성급 고신이 될 뿐만 아니라 도고의 힘 역시 더욱 강해질 터였다.
“9성급 고신⋯⋯ 만약 내가 몸을 한계치까지 늘린다면 얼마나 커질까?”
한제는 두 눈을 감은 채 이번 선택에 따른 득실을 따져봤다.
한편, 모습을 감춘 채 한제와 같은 대에 있던 현라는 발아래의 안개를 한참 바라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이 엽막 그 아이가 죽은 곳이로군.”
그때, 한제가 감았던 눈을 떴다. 어떤 의지가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나는 평생 죽음을 벗 삼아 지금에 이르렀다. 내가 얻은 것들 대부분은 투쟁과 목숨을 대가로 한 것들이지. 그러니 이번이라고 다를 게 무엇이겠는가!’
게다가 그는 칠채선존 세 번째 주혼의 기억을 통해 가장 아래에서 두 번째 층에 존재하는 무시무시한 기운의 근원에 대해서도 추측할 수 있었다.
“당시 난 다음 층에 발을 들일 엄두도 못 냈지만 이번에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
결정을 내린 한제는 곧장 대 너머의 안개로 걸음을 내딛었다. 그의 몸은 곧장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한제는 마치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하늘을 가르며 내려갔다.
그보다 이곳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없다. 한제는 당시 이 층의 지도를 얻었고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었기에 대를 승급시킬 필요도 없었다. 그에 버금갈 정도로 이 공간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선강 대륙 천문도의 성녀이자 여태까지 처녀로 남아 있는 세 번째 선비뿐이었다.
꼭두각시 이사
세 번째 선비는 안개 속에서 혼란스런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네 번째 꽃… 이곳이 원래는⋯⋯?”
그녀 역시 당시 이곳의 지도를 대부분 얻었다.
당시 그녀는 이곳에서 한제를 만났고 그의 도움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평생 혼자 다니는 것을 좋아해 사람들과 별다른 교류가 없던 그녀는 당시 칠채선존의 협박에 그의 비가 되었다. 자신의 종파를 위해서였다.
선강 대륙에도 그녀의 친구는 많지 않았다. 천문도에서도 대부분의 시간을 그저 수련에만 몰두했을 뿐이다. 동부계에서 지내는 와중에도 성격 탓에 다른 선비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홀로 돌아다녔다.
말하자면 한제는 평생 처음으로 그녀를 도와준 사람이었다. 세 번째 선비는 그런 한제를 떠올릴 때마다 혼란스럽고 복잡해졌다.
‘그는 나를 도와줬어. 그러니 보답을 해야 해.’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지만 상념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난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스승님은 아직 살아계실까? 동생은… 나보다 뛰어났던 내 동생은⋯⋯?’
세 번째 선비는 그리움에 빠져 들었다.
한편, 한제가 오래된 무덤에 발을 들인 순간, 당시 한제가 도고의 유산을 물려받았던 대전 위에서는 탁삼 혹은 서사가 두 눈을 번쩍 떴다.
한제는 안개를 가르며 빠른 속도로 떨어지는 와중에도 신중하게 신식을 펼쳐 사방을 살폈다.
안개 속에는 기이한 것들이 많았고 그중에는 여러 마리의 흉수도 있었다. 한제는 속도를 조절해가며 근처의 흉수 무리들을 피해 가면서 가장 아래에서 두 번째 층으로 향했다.
그 층에는 무시무시한 기운이 있었다. 당시 한제는 그 기운에 겁을 먹고 달아나야 했다. 하지만 지금의 한제는 여러 실마리를 통해 그 기운이 세 번째 주혼이 기억하는 칠채선존 최강의 필살기일 거라고 믿었다.
꼭두각시 이사!
동부계 중심에 들어온 이래 누군가를 죽일 때마다 한제는 칠채선존 세 번째 주혼이 기억하는 방법을 이용해 상대의 혼을 제물로 삼았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그와 꼭두각시 이사는 줄기줄기 연계를 더하게 됐다.
적지 않은 사람을 죽이면서 한제는 그 기이한 연계를 통해 저 아래의 무시무시한 기운의 근원이 이사일 것이라고 8할 정도 확신할 수 있었다. 세 번째 주혼의 기억 덕분에 꼭두각시 이사에 대해 충분히 추측할 수 있었다.
“오래된 무덤은 본디 칠채선존이 꼭두각시 이사를 자양하기 위해 만든 공간일 거야. 평생을 바쳐 만들어낸 그것을 엽막의 죽음으로 완성시키려 했겠지.”
앞으로 갈수록 안개는 점점 옅어졌다. 한제는 기억을 쫓아 아래층으로 향하는 입구를 향해 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개가 완전히 사라져 시야가 또렷해졌을 때 그는 저 아래 검은 대지를 볼 수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대지에는 검은 수초 같은 식물이 가득했다. 이 식물들은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줄기줄기 검은 기운을 상공으로 피워올렸다. 기이한 광경이었다.
이곳은 햇빛이 들지 않았음에도 그 수초 같은 식물이 발하는 어스름한 빛 덕분에 한제는 사방을 똑똑히 살필 수 있었다.
적막한 곳이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대지를 뒤덮은 식물을 훑어보던 한제의 경계심이 더욱 커졌다. 오래된 무덤이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았기에 그는 신식으로 사방을 훑으며 신중하게 나아갔다.
당시 얻었던 지도대로라면 아래로 통하는 입구는 멀지 않다.
1각 정도 지났을 때, 전방의 경관이 변하기 시작했다. 10만 척 정도 앞의 대지는 이곳을 가득 메운 수초 같은 식물조차 없이 텅 빈 상태였다. 그 위에는 어스름한 빛을 번득이는 오래된 전송진이 하나 있었다.
얼마나 오래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아직 사용이 가능한 전송진 이었다. 그러나 어스름한 빛을 번득이는 그 진에서는 알 수 없는 위압감이 느껴졌다.
전송진을 바라보던 한제의 눈이 가늘어졌다. 뒤이어 그가 근처에 이르렀을 때, 우렁찬 포효가 진 안에서부터 울려 퍼졌다. 무시무시한 기운을 품은 포효에 한제는 걸음을 우뚝 멈추었다.
포효가 울려 퍼지자 해초 같은 식물들이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대지도 격렬하게 진동했다. 마치 파도가 치는 것 같았다.
한참 뒤에야 포효는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한제는 창백한 얼굴로 진 밖에서 한참이나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이내 결심한 듯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번 위험은 그리 크지 않을 거야. 오히려 큰 기회가 될 가능성이 크지. 꼭두각시 이사라⋯⋯.”
한제는 일단 결정을 내린 일에 대해서는 머뭇거리지 않았다.
곧장 앞으로 나아간 그는 이내 오래된 전송진 안에 들어섰다.
콰쾅!
그 순간 거대한 소리와 함께 진의 빛이 더욱 강해지더니 상공의 안개와 반경 수만 리가 어스름한 빛으로 뒤덮였다.
한편, 안개 속에서 빠르게 돌진하고 있던 세 번째 선비는 자신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없었다. 대략의 추측으로 더듬어 나가던 그녀는 이내 저 멀리 안개 안으로 비치는 어스름한 빛에 우뚝 멈춰 섰다.
그녀는 고민 끝에 방향을 바꾸어 그 빛을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2각 정도 지났을 때, 세 번째 선비는 오래된 전송진을 발견했다. 그녀는 그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이내 이를 악물고 그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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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무덤의 가장 밑에서 두 번째 층, 위층과는 달리 이곳은 안개가 매우 희박했다.
한제는 피 같은 붉은 빛으로 채워진 그곳을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사방의 안개에서는 수시로 찢어질 듯한 비명과 고함이 흘러나왔고 이따금 쌍쌍의 붉은 눈이 나타나 한제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한제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고신의 기운에 감히 모습을 드러내지는 못했다.
‘당시의 내가 아니다. 신중하게 행동하면 위험에 빠질 일은 없어!’
앞으로 더 나아가다 보니 사방의 안개가 꿈틀대기 시작했고 동시에 바로 귓가에서 울리는 듯한 낮은 고함이 터져 나왔다. 그러자 사방이 진동했고 이 층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처럼 격렬하게 뒤흔들렸다.
한제는 우뚝 멈춰 섰다. 한 줄기 강력한 힘이 전방에서 달려들면서 한제를 뒤로 1천 척가량 밀어냈고 우렁찬 고함은 흩어져 사라졌다.
한제의 창백한 얼굴에서 두 눈이 번득였다. 방금 들려온 고함은 그의 심신을 진동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부상까지 입힐 뻔했다.
“매우 강한 기운이야. 정말 꼭두각시 이사라면 그리고 내가 그것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한제는 잠시 고민하더니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한데 방금 전 고함이 터져 나왔던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던 한제의 눈에 산이 하나 들어왔다. 높지 않은 산은 붉은 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근처에 이른 한제가 시선을 돌린 순간, 산을 뒤덮은 붉은 안개가 꿈틀거리며 거대한 머리를 형성했다. 흐릿해 생김새는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머리카락은 한 올도 없었다.
거대한 머리는 입을 쩍 벌리더니 우렁찬 고함을 내질렀다.
한제와 산의 거리는 수십만 척에 달했지만 고함의 위력은 그 거리를 뛰어넘고도 전혀 줄지 않았다.
한제는 결인을 그린 두 손을 휘두르면서 체내의 본원과 도고의 힘으로 온몸을 감싸 그 힘에 대항했다.
고함에 휩쓸린 한제의 몸에서는 펑, 펑 소리가 울려 퍼졌고 본원으로 이루어진 방어막은 곧장 흩어졌다.
창백한 얼굴로 1만 척이나 밀려난 한제의 입에서 피가 흘렀다.
그제야 고함은 흩어져 사라졌고 안개로 이루어진 머리는 녹아내리듯 다시 붉은 안개가 돼 산을 에워쌌다.
“저자는 이사야!”
심신의 연계를 통해 한제는 상대의 정체를 확신할 수 있었다.
“적지 않은 사람을 죽였음에도 아직 부족하군. 저것을 조종하려면 수준 높은 수련자를 죽여야겠어!”
생각에 잠긴 채 산봉우리를 바라보던 한제가 돌연 고개를 번쩍 들더니, 먼 곳을 내다보고는 흠칫 놀라며 곧장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