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357
한제가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잠시 후, 저 멀리서 금빛이 번득이더니 거대한 금색 문이 나타났다. 문 뒤에는 세 번째 선비가 가부좌를 틀고 있었는데 얼굴은 창백했고 입가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
그녀는 두려움에 떨며 전방의 산봉우리를 바라보았다.
‘오래된 무덤 아래층에 이토록 무시무시한 존재가 있을 줄이야.’
이를 악물고 일어선 세 번째 선비는 크게 외쳤다.
“이한제, 네가 이곳에 있다는 걸 안다! 악의는 없다! 내 수준과 신통술이라면 네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니 얼른 모습을 드러내라!”
사방은 고요했다. 오직 저 멀리 산봉우리의 안개가 꿈틀거리며 먹먹한 소리를 울릴 뿐이었다.
세 번째 선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안색이 약간 어두워진 선비는 고개를 저으며 금빛 문을 통제해 뒤로 물러났다. 다른 곳에서 한제를 찾아볼 생각이었다.
한데 바로 그때, 돌연 산봉우리를 뒤덮은 안개가 꿈틀거리면서 다시 거대한 머리가 나타나 우렁찬 포효를 내질렀다.
“크와아아!”
순간 하늘과 땅의 기색이 변하면서 보이지 않는 파문들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대지가 진동하고 하늘이 뒤틀리는 사이 세 번째 선비는 재빨리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고 혀끝을 깨물어 금색 문에 피를 뿜었다.
콰르릉!
문에서 밝은 금빛이 발산되면서 우렁찬 포효에 대항했으나 이내 문은 무너져 내렸고 세 번째 선비는 황급히 후퇴하면서 두 손으로 다시 결인을 그렸다. 금빛이 번득이더니 그녀 앞에 네 개의 금색 문이 나타났다.
쾅! 쾅!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네 개의 문은 차례로 파괴됐으나 그 사이에 시간을 번 세 번째 선비는 어느새 1만 척 이상 물러나 있었다.
한데 그녀가 그곳에서 다시 신통술을 발휘해 고함에 저항하려는 순간,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로 나를 찾는가?”
이어서 여인 앞에 한제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는 오른손을 뒤로 휘둘러 고함의 위력을 막아냈다. 이미 선비의 방어로 고함의 위력이 한층 약해졌기에 한제로서는 충분히 견뎌낼 수 있었다.
“이한제!”
세 번째 선비는 흠칫 놀람과 동시에 기쁨이 밀려들었지만 얼른 그 감정을 숨겼다.
“네, 네가 이전에 이곳 오래된 무덤에서 나갈 수 있도록 나를 도와주지 않았느냐. 그러니 이번에는 내가 너를⋯⋯.”
“필요 없다. 이곳은 위험해. 그러니 곧장 떠나라.”
한제는 싸늘한 눈으로 여인을 힐끗 보더니 곧장 돌아섰다. 제물로 삼을 수준 높은 수련자를 찾기 위해서였다.
“나, 난 너를 도울 수 있다!”
세 번째 선비는 입술을 깨물며 오른손을 들었다. 그 손목에는 금색 구슬을 엮어 만든 팔찌가 걸려 있었다. 구슬에서는 부드러운 빛이 발산됐다.
“이건 내 스승님께서 주신 것이다. 일곱 개의 금색 문을 만들어낼 수 있지. 네가 저 산봉우리 안으로 들어가려면 이것의 도움이 필요할 거다!”
한제는 돌아서더니 세 번째 선비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여인의 눈에서 한제는 진심과 집착을 읽어낼 수 있었다.
이에 그의 표정이 약간 누그러졌다. 눈치 빠른 그는 지금 여인이 자신을 진심으로 도우려 한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예전에 이 여인과 이 오래된 무덤에서 만났던 때를 떠올리며 잠시 침묵하던 한제의 시선이 그녀의 팔찌에 닿았다.
“뭘 바라는 거지?”
한제는 이내 시선을 거두며 물었다.
“바라는 건 없다. 네가 나를 도왔으니 나도 너를 도우려는 것뿐.”
세 번째 선비의 답에 한제는 다소 기이한 표정으로 잠깐 고민하더니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그 일은 별것 아니었다. 그러니 신경 쓸 필요 없다.”
“네가 나를 도왔으니 나도 너를 도와야겠어!”
세 번째 선비는 고집스런 목소리로 말하며 진지한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얼굴에서 그녀만의 고유한 매력이 풍겼다.
“허나 난 지금 저 산봉우리에 들어갈 생각이 없는데…”
한제가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세 번째 선비는 흠칫 놀랐다. 허나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더 이상은 말이 없었다.
“네 진짜 이름이 뭐지?”
저 멀리 하늘을 바라보던 한제의 눈에 서늘한 빛이 스쳐갔다.
“당산⋯⋯.”
세 번째 선비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일곱 개의 금색 문을 전부 열고 잠깐 뒤로 물러나 있어!”
한제의 시선은 여전히 저 먼 하늘을 향해 있었으나 목소리는 싸늘하게 변한 상태였다.
당산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녀 역시 수준 높은 수련자인 만큼 무언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정정당당하게
한제의 말에 따르기로 한 당산이 오른손을 휘두르자 금빛이 번득이면서 그녀의 주위를 빙 두르듯 일곱 개의 금색 문이 나타났다.
그때 저 멀리 하늘에서 한 줄기 긴 빛이 나타나 순식간에 돌진해왔다. 그 빛에는 거대한 돌로 이루어진 대가 하나 있었는데 그 위에는 청의를 입은 청년이 서 있었다.
한제와 청년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와 동시에 두 사람의 심신에서는 콰쾅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치 서로의 시선으로 강력한 신통술을 이용한 공격을 주고받은 모양새였다.
한제는 꼼짝하지 않은 채 차게 웃었다. 반면 청의의 청년은 약간 휘청거리며 반 발짝 정도 뒤로 물러났다. 한제를 향한 그의 눈에는 전의가 가득했다.
“이한제! 마침내 따라잡았다! 이 운일봉, 오행성에서의 싸움은 납득할 수 없다! 이광의 활 같은 술수 없이 나와 정정당당하게 싸워보겠는가!”
긴 빛이 흩어져 사라지고 모습을 드러낸 대 위에 선 운일봉은 바람에 옷자락을 휘날리며 한제를 바라보았다.
“만약 나를 이긴다면 이 동부계 중심부에서는 네 명령을 따르겠다!”
한 걸음에 대에서 내려온 운일봉은 1천 척 앞에 이르렀다. 그의 눈에 당산은 들어오지도 않는 듯했다.
한제는 서늘한 눈으로 운일봉을 바라보았다. 마침 수준 높은 수련자 하나를 죽여 제물로 바칠 생각이었던 그에게는 잘된 일이었다. 허나 상대의 수준에는 한계가 있어 그만으로는 꼭두각시 이사를 부리기에 부족할 것 같았다.
한제는 운일봉에게서 조금의 위협도 느끼지 않았다. 오행성에는 오행진을 뚫고 들어가느라 부상을 입은 상태로도 상대와 비등비등했다. 당시와 달리 지금 한제는 몸 상태도 멀쩡했고 엽막의 왼팔까지 손에 넣어 시천술을 완성한 상태였다.
자신을 꺾는다면 모든 명령에 따르겠다는 제안에 한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로는 무슨 말을 못 하겠는가?”
한제가 싸늘하게 내뱉자 운일봉은 곧장 오른손으로 미간을 두드려 맹세의 피를 소환해 튕겨 보냈다.
한제가 그 피를 자세히 살피고 있으려니 운일봉이 손을 뻗어 한 자루 칼을 소환해 크게 휘둘렀다.
콰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검광이 하늘을 갈라버릴 듯한 기세로 한제에게로 달려들었다.
그 순간, 한제는 차게 코웃음을 치며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면서 오른손을 들어 주먹을 쥐었다. 체내에서 펑, 펑 소리가 울려 퍼지는 사이 도고의 힘이 일어나 그의 오른손에 응집됐다.
한제는 가볍게 주먹을 휘둘렀다.
꽈르릉!
하늘과 땅의 기색이 변했고 쉭 소리와 함께 온 세상이 무너져 내릴 듯 왜곡되기 시작했다. 허공을 가른 한제의 주먹에서는 도고의 허상이 나타나 운일봉의 검광을 향해 돌진했다.
카르릉!
요란한 소리에 이어 칼은 산산조각이 나며 부서졌고 한제의 주먹 역시 흩어져 사라졌다.
“크하하하! 그 정도는 되어야지!”
운일봉은 1천 척이나 뒤로 밀려났으나, 길게 웃으며 오른손을 휘둘러 검은 빛을 소환해 검은 안개를 형성하더니 그 안으로 손을 쑥 집어넣었다. 이내 그가 움켜쥔 손을 꺼내자 또 한 자루 칼이 쥐어져 있었다.
검을 재빨리 휘두른 그는 다시 안개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고 순식간에 일곱 자루의 긴 칼을 뽑아내 휘둘렀다. 콰쾅 소리와 함께 거의 하나로 연결된 듯한 일곱 자루의 칼은 강력한 검광을 발산하며 어마어마한 힘을 품은 채 한제에게로 쏘아져 나갔다.
“팔도참신혼(八刀斬身魂)!”
운일봉이 낮게 외치며 몸을 날리자 그의 허상이 일곱 개나 나타나 중첩됐다.
이 허상들은 일제히 앞으로 튀어나오며 각각 한 자루의 칼을 움켜쥐더니 동시에 휘둘렀다.
멀리서 보면 연결된 일곱 자루의 칼과 일곱 개의 허상이 여덟 번째 칼을 이룬 것처럼 보였다.
두 자루는 칼의 자루가 네 자루는 칼의 날이, 한 자루는 칼의 끝을 형성한 듯했다.
왜곡되고 흐릿해진 이 세상, 운일봉의 가장 강한 신통술만 남아 있었다.
여덟 자루의 칼이 날아든 순간에도 한제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대신 그는 두 손으로 허공을 움켜쥐더니 하늘을 확 찢어발겼다.
그 손짓에 허공에는 거대한 두 개의 손이 허상으로 나타났다. 상당히 거칠어 보이는 피부에 어스름한 빛을 번득이는 문양이 수없이 새겨진 이것은 엽막의 손이었다.
한제의 움직임에 따라 이 거대한 허상의 손 역시 허공을 움켜쥐더니 허공을 찢었다.
콰르릉!
우렁찬 소리와 함께 허공에는 균열이 벌어졌다. 하늘과 땅을 이은 듯 거대한 균열에 한제 전방의 세상이 분리된 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균열 안에서는 거칠고 오래된 듯한, 동시에 파멸적인 기운이 흘러나왔다.
콰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그 기운에 부딪힌 여덟 자루의 칼 중 첫 번째 칼과 그 칼을 쥔 운일봉의 허상은 그대로 소멸해버렸다.
뒤이어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칼과 허상 역시 무너져 내렸다.
“정정당당하게 싸우자고? 정 원한다면 그렇게 해주지!”
우렁찬 굉음 속에서도 한제의 서늘한 목소리가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한제는 전방의 세상을 단숨에 찢어버렸다.
콰쾅 하는 소리와 함께 일어난 진동에 운일봉의 다섯 번째 허상과 여섯 번째, 일곱 번째 허상이 붕괴했다.
이어서 무너져 내린 일곱 개의 허상에서 한 줄기씩 발산된 연기는 저 멀리 하늘로 모여들어 운일봉의 본체를 형성했다.
“크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