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358
피를 왈칵 토해내는 운일봉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비틀거리며 몇 걸음 물러났다. 한제를 향한 그의 눈에는 두려움이 묻어났다. 이광의 활을 보았을 때 느꼈던 두려움에 결코 뒤지지 않을 만큼 짙은 두려움이었다.
“어떤가? 이번에는 정정당당한가?”
운일봉이 물러나자 벌어졌던 균열은 흩어져 사라졌다. 그 안에서, 한제는 운일봉의 맹세의 피를 움켜쥐며 물었다.
운일봉은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한제의 손에 쥐어져 있던 피는 눈부신 붉은 빛을 발하면서 천천히 그의 손안에서 사라졌다.
운일봉은 맹세를 무르려고 수작을 부리는 대신 패배를 깨끗이 인정했다. 그는 알지 못했지만 이 선택이 그의 목숨을 살렸다. 만약 조금이라도 허튼 수작을 부렸다면 한제는 가차 없이 운일봉을 죽였을 것이다.
그 무렵, 한제는 저 멀리서 세 개의 익숙한 인영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적절한 시기에 왔군. 저자의 힘을 빌려 저들을 떠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저 멀리 산봉우리 주위의 안개가 요동치기 시작하다가 거대한 머리의 허상이 나타나더니 광기 어린 고함을 내질렀다.
한제는 온몸을 고신의 기운으로 뒤덮은 채 1천 척 이상 물러났다. 좀 전의 전투를 보며 심신이 바짝 졸아들었던 당산도 재빨리 뒤를 따랐다.
그때, 저 먼 곳의 허공이 왜곡되더니 흐릿한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운일봉, 저자를 죽여!”
한제는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면서 한 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어 붉은 검을 소환해 곧장 흐릿한 인영을 향해 내던졌다.
흐릿한 인영 앞에 아침 해가 떠올라 무궁무진한 햇빛을 발산하며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붉은 검을 튕겨냈다.
인영의 주인은 다름 아닌 장존이었다.
그가 나타난 순간, 운일봉은 단약 몇 알을 삼키더니 몸을 훌쩍 날려 다시 팔도참신혼을 소환했다. 여덟 개의 허상은 한데 이어져 한 자루 거대한 칼을 형성하더니 장존을 향해 돌진했다.
당산 또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결인을 그린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운일봉과 한제 근처에 일곱 개의 금색 문이 나타났다.
“방어용 신통술이군!”
한제의 눈이 가늘어졌다.
신통술은 대부분 공격용이었다. 방어용도 있기는 하지만 대개는 스스로를 지키는 용도지 다른 이들을 지키는 데 쓰이지는 않았다.
한제로서는 다른 사람을 위해 쓰이는 방어용 신통술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당산이 속한 선강 대륙의 천도문은 아주 작은 종파로 9종 13문에 들지 못했다. 그럼에도 매우 유명했는데 바로 천도문의 신통술 대부분이 다른 사람을 위해 쓸 수 있는 방어용 신통술이었기 때문이다.
장존이 나타난 순간 갖가지 신통술이 그에게 퍼부어졌다.
장존은 매우 신중한 사람이었다. 그는 당시 칠채도인의 힘을 빌려 묘음도존 등을 구했을 때 묘음도존에게서 오래된 무덤에 관한 몇 가지 비밀을 들은 바 있었다. 그가 이렇게 빨리 이곳에 이를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두 번째 꽃에서의 전투 당시 오로지 한제에게 집중하고 있던 그는 이제 한제에게는 더 이상 이광의 화살을 쏠 힘이 없으리라 확신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한제의 성격상 절대로 칠채도인을 놓아주지도 전가 노인이 칠채도인을 쫓아가게 두지도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한제가 중상을 입은 것까지 두 눈으로 확인한 상태였다. 이에 장존은 지금이 한제를 죽여 원한을 풀고 세 번째 주혼을 손에 넣기에 가장 좋은 기회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전가 노인이 칠채도인을 추격하는 틈에 이곳까지 쫓아온 것이다.
그는 세 번째 선비가 자신보다 먼저 이곳에 이르렀을 수 있겠다고 예측했지만 운일봉에 대해서는 예상하지 못했다.
어쨌든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반긴 것은 신통술이었다. 허나 그 신통술은 그가 소환한 아침 해의 힘과 충돌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한데 세 걸음을 뒤로 물러난 후 주위를 살핀 장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 무렵, 운일봉은 여덟 자루의 칼로 장존을 공격해왔다. 한제에게 패했지만 후회는 없었다. 그리고 약속대로 동부계 중심부에서는 한제의 명령에 군말 없이 복종하기로 했다.
이때 그의 주위로는 일곱 개의 금색 문이 따뜻한 기운으로 그의 몸을 자양해주고 있었다. 심지어 몸 상태 역시 약간 회복됐고 방어 효과가 매우 뛰어나 방금 전 장존의 저항으로 인한 충격도 적지 않게 막아주었다.
당산은 한제와 운일봉을 위해 일곱 개의 금색 문을 소환한 뒤 오른손으로 결인을 그려 아홉 자루의 금색 비검을 소환했다. 이 비검들은 서로 교차해 검진을 형성하더니 쉭 소리와 함께 장존에게 달려들었다.
운일봉의 팔도참신혼은 그 위력이 어마어마했다. 여덟 자루의 검이 달려든 순간 장존은 소매를 휘둘러 일곱 색채의 빛을 소환했다. 빛은 그의 전방에서 운일봉을 향해 길게 뻗어나갔다.
콰쾅!
짧지만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미 한제와의 싸움으로 부상을 입은 데다가 주위를 에워싸고 있던 일곱 개의 금색 문마저 무너져 내린 순간, 운일봉은 피를 토했다. 그러면서도 이를 악물고 낮게 기합을 넣었다.
꽈르릉!
우렁찬 소리와 함께 일곱 색채의 빛과 뒤얽히면서 여덟 자루의 칼 중 일곱 자루가 소멸했지만 마지막 한 자루만은 장존에게 달려들었다.
장존은 우뚝 멈춰 서더니 우렁찬 굉음과 함께 뒤로 세 걸음을 물러나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그 순간, 당산이 소환한 아홉 자루의 금색 비검이 짙은 혈맥의 선기를 품은 채 날아들었다.
“흥!”
장존은 비릿하게 웃으며 엄지와 검지를 붙여 원을 그린 두 손을 당산 쪽으로 쭉 뻗었다.
두 손으로 그려진 원에서는 매우 짙은 금색 빛이 쏟아져 나와 셀 수 없이 많은 검이 되었다.
이 검들은 당산의 아홉 자루 비검과 뒤얽혔다. 당산의 비검들은 순식간에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그러고도 남은 금빛이 당산에게로 뻗어 나갔다.
그 순간, 당산의 손목에서 금색 구슬 팔찌가 빠르게 번득였다. 이어서 그녀 앞의 금색 문 일곱 개가 밝은 빛을 번득이면서 금빛에 대항했다.
“아앗!”
하지만 당산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콰쾅 소리와 함께 피를 토하며 뒤로 물러나야 했다.
“몸 상태도 온전치 못한 주제에 이 장존을 기습하려 들다니!”
장존은 차게 내뱉으며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그 순간, 한제가 두 손으로 허공을 움켜쥐더니 확 찢었다. 시천술에 콰쾅 소리와 함께 그의 앞에 균열이 나타나 장존을 향해 뻗어 나갔다.
“헛!”
눈 깜짝할 사이 달려든 균열에 장존의 표정이 진중해졌다. 부상당한 운일봉과 당산은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았으나 한제의 신통술은 무시할 수 없었다. 특히 시천술에서 느껴지는 무시무시한 위력에 눈동자가 바짝 졸아들 정도였다.
현라의 공격
장존은 두 손으로 그린 원을 곧장 한제 쪽으로 뻗으며 몇 차례의 현겁을 통과한 수준을 모조리 폭발시켰다.
“장멸삼도(掌滅三道)! 첫 번째, 멸영도(滅靈道)!”
장존의 낮은 외침에 그의 두 손으로 그려진 원이 다시 금빛을 발산했다. 이 금빛은 셀 수 없이 많은 검이 돼 한제의 시천술에 대항했다.
“두 번째, 멸귀도(滅鬼道)!”
장존의 도포가 불룩 부풀어 올랐다. 마치 둥근 태양이 된 것 같은 그의 몸에서 태초 규칙의 힘이 뿜어져 나오면서 그는 마치 선신이 된 것처럼 보였다.
“세 번째, 멸신도(滅神道)!”
장존은 혀끝을 깨물어 금색 피를 뿜어냈다. 이 피는 허상의 거대한 금색 인장이 됐고 빠른 속도로 전진하는 동안 점점 커져 곧장 한제의 시천술로 인해 벌어진 균열로 달려들었다.
콰쾅!
장존의 손이 그린 원에서 뿜어져 나온 무궁무진한 금빛이 균열을 일으킨 시천술과 부딪친 순간 왜곡되면서 파괴돼 흩어졌고 이어서 태초의 힘을 품은 태양이 다시 균열을 때렸다. 동시에 허상의 금색 인장 역시 날아들었다.
온 세상이 어두워지는가 싶더니 한제의 시천술이 파괴됐다. 허나 장존의 태양 역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오직 금색 인장만이 한제의 상공에서 아래로 내리 떨어졌다.
“이광의 활 없이 어떻게 대항할지 두고 보겠다! 으하하하!”
호흡이 약간 거칠어진 장존은 비릿하게 웃으며 한제에게로 돌진했다.
한편, 현라는 멀지 않은 곳에서 덤덤한 얼굴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한제의 여러 수단과 명민함을 그리고 그의 집착과 결단력을 봐온 그는 이미 한제에게 무척 만족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한제가 대체 어떤 수단으로 몇 차례의 현겁을 통과한 수련자의 신통술에 대항할지 궁금했다.
‘연도진의 동생을 소환해 선인의 불멸체로 대항하려나?’
한데 흥미진진하게 상황을 관망하던 현라의 눈빛이 변했다.
한제에게서는 당황한 기색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더없이 침착한 표정으로 세 걸음을 물러났다.
첫 걸음을 물러났을 때, 그와 현라 사이의 거리는 1천 척으로 줄어들었다. 두 번째 걸음에는 3백 척 앞으로 다가오더니 세 번째 걸음을 물러났을 때, 한제는 현라의 바로 근처에 그것도 앞이 아니라 뒤에 서 있었다. 그러더니 곧장 가부좌를 틀었다.
현라가 뒤돌아보았을 때, 한제는 가부좌를 튼 채 현라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친 듯했다.
그 무렵, 하늘에서 내리 떨어지던 금색 인장은 벌써 1백 척 거리에 이르러 있었다. 짙은 위압감에 한제 주위의 지면에는 균열이 일었고 움푹 꺼진 곳도 있었다.
“재미있군.”
현라는 피식 웃더니 마치 파리를 쫓듯 가벼운 손짓으로 금색 인장을 가리켰다. 그러자 금색 인장은 두 사람으로부터 30척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우뚝 멈추더니 꼼짝도 하지 않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금색 인장이 더욱 격렬한 빛을 번득이더니 빠르게 줄어들어 손바닥만 하게 변해서 깃털처럼 팔랑이며 한제 앞에 둥둥 떠올랐다.
인장은 영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웅웅 하고 울렸다.
다시 공격에 나서려던 운일봉과 당산은 이 갑작스러운 변화에 흠칫 놀랐다. 그들에게는 한제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는데 금색 인장이 허공에 멈춰 꼼짝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허나 누구보다도 충격을 받은 것은 장존이었다. 그는 경악하며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도 못했고 심신은 이광의 활을 보았을 때만큼이나 떨려왔다.
“이게 대체 어떻게⋯⋯? 마, 말도 안 돼! 금색 인장은 내 신통술로 만들어진 허상에 불과했는데. 내 신통술로 인해 발휘된 힘이 응집된 것에 불과했는데⋯⋯. 그게 어떻게 실체를 갖춘 법보가…”
장존은 격렬하게 떨었다.
“허상의 신통술을 실체화시키는 능력⋯⋯. 이 능력은⋯⋯?”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장존은 비틀거리며 무의식적으로 몇 걸음이나 물러났다. 그 눈빛만 보더라도 심신이 무너져 내렸음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런 능력은… 오직 주인님의 형님⋯⋯ 선강 대륙의 아홉 개의 태양, 아홉 명의 대천존이나 되어야⋯⋯.”
기겁한 장존의 심신이 요동쳤다.
한편, 운일봉은 장존의 표정이 변하는 것과 한제의 앞에 떠 있는 금색 인장을 보고는 무언가를 떠올린 듯 얼른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를 면밀하게 지켜보고 있던 한제는 운일봉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모두 확인한 상태였다.
운일봉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한제는 추측할 수 있었다. 생각이 깊고 신중한 운일봉의 행동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허나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가부좌를 튼 한제는 오른손을 들어 금색 인장을 받쳐 들었다. 금색 인장이 손에 닿은 순간 얼음장처럼 서늘한 기운이 손바닥을 통해 체내로 전해졌다. 그렇게 몸속을 한 바퀴 돈 기운 덕에 한제와 금색 인장 사이에는 기이한 연계가 형성됐다.
방금 만들어진 이것은 주인 없는 법보였다. 한제는 자신의 수준을 그 안에 녹여 넣어 이 법보의 주인이 됐다.
금색 인장에서는 흘러넘칠 듯한 위엄이 발산됐다. 그 안에 봉인된 장존의 멸신도는 현겁에 이른 그의 수준을 기반으로 발휘된 것이라 장존이 직접 발휘한 신통술에 버금가는 위력을 발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 인장을 만든 사람은 현라였다. 이에 아홉 태양의 힘도 한 줄기 품고 있었다. 즉, 이 인장은 매우 강력하고 귀한 법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