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360
‘둘!’
속으로 숫자를 센 한제는 힘껏 외쳤다.
“몽도!”
융합된 몽도와 귀면기의 환술은 장존의 미간으로 스며들더니 혼과 융합됐다. 그리고 몽도를 이용해 장존의 기억 속으로 들어간 한제는 그 혼과의 연계를 생성했다.
뒤이어 그는 장존의 기억을 바꾸려는 시도는 하지 않고 결인을 그린 왼손으로 저 멀리 검은 기운으로 뒤덮인 산봉우리를 가리켰다.
“이 혼을 제련해 이사의 몸에 녹여 넣을 것이다!”
한제는 자신이 장존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장존을 죽일 칼은 빌릴 수 있었다. 그 칼이 바로 이사였다.
‘셋!’
그 순간, 검은 기운으로 뒤덮인 산봉우리에서 안개가 뭉게뭉게 피어올랐고 그 안에서는 하늘을 뒤흔들 듯 요란한 포효가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장존의 혼은 빠른 속도로 체내에서 흩어져 사라지더니 삼켜졌다.
장존의 몸은 격렬한 경련을 일으켰고 찢어질 듯한 비명을 내지르면서 몸을 마구 뒤틀었다.
그때, 그의 몸을 속박하고 있던 네 개의 봉인이 그대로 흩어져 사라졌고 남몽도존과 운일봉, 당산, 탁삼이 주위를 감싼 남색 빛 안에서 나타났다.
“끄아아아!”
찢어질 듯한 비명을 내지르며 몸부림을 친 끝에 남몽도존의 봉인에서 벗어난 장존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쥔 채 뒤로 물러났다. 그의 비명은 주위 사람들의 심신을 파고들면서 강력한 진동을 일으켰다.
이 순간에도 장존의 혼은 빠르게 흩어져 사라져갔다.
이 광경에 남몽도존 등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큭!”
한제는 피를 울컥 토하며 1천 척 정도 물러나더니 머리를 감싸 쥔 채 비명을 지르고 있는 장존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이 냉혹하게 번득였다.
한편, 허공에 떠 있는 장존의 두 눈에는 핏발이 잔뜩 서 있었다. 극심한 고통에 몸부림치던 그는 광기 어린 눈으로 한제를 노려보며 달려들었다.
“널 죽이겠다. 무슨 일이 있어도 죽이고야 말 것이야!”
이성이 흐려진 그의 머릿속에 남은 유일한 생각은 한제를 죽여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이사의 혼, 난 네게 충분한 혼을 바쳤다. 그러니 모습을 드러내라!”
질주하듯 뒤로 물러나며 한제는 입가의 피를 훔쳐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외치며 장존이 달려든 순간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바로 그때, 저 멀리 산봉우리가 돌연 무너져 내렸고 검은 안개가 피어올라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달려든 안개는 눈 깜짝할 사이 한제의 사방을 감쌌고 심지어 돌진해오던 장존까지 휘감았다.
너무나 짙어 들여다볼 수조차 없는 검은 안개 안에서는 두 존재의 포효가 울려 퍼졌다. 하나는 무궁무진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장존이었다. 다른 포효에는 하늘을 뒤덮을 듯 짙은 살기가 어려 있었다.
“크아아아!”
포효는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안개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갈수록 날카로워지고 있는 장존의 포효만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잠시 후, 안개가 격렬하게 꿈틀거리더니 장존의 몸이 튕겨 나왔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땅에 처박힌 장존은 두 눈을 감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어서 꿈틀거리던 안개가 서서히 응집되기 시작하더니 그 안에 선 한제의 모습이 드러났다.
안개는 한제의 체내가 아닌 그 오른편에 응집되고 있었는데 바닥에 꿇어앉은 흐릿한 인영의 형태였다. 잠시 후 모든 안개가 인영 체내로 완전히 응집되면서 또렷해졌다.
그 인영을 확인한 순간, 당산은 얼굴이 창백하게 변하더니 뒷걸음질을 쳤다. 운일봉 역시 찬 숨을 들이마셨다. 그들만큼 격한 반응은 아니었지만 남몽도존과 탁삼 역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검은색에 가까운 보랏빛의 난쟁이였다. 벌거벗은 채 꿇어앉은 그의 머리에 털은 한 오라기도 없었고 온몸은 장작처럼 비쩍 말라 있었다. 죽 비어져 나온 혀는 길이가 7척에 달해 바닥에 닿을 듯 달랑거렸고 두 눈은 사방의 모든 빛을 흡수할 것처럼 까만색이었다. 게다가 온몸에서는 짙은 살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황천에서 기어 나온 악귀 같은 이 꼭두각시는 꿇어앉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위압감이 느껴질 정도로 흉측하고 무시무시했다. 적막한 가운데 오직 이 악귀 같은 난쟁이만이 들릴 듯 말 듯 숨을 몰아쉬었다.
한제는 덤덤해 보였지만 사실 심신이 거칠게 진동했다. 안개 속에 있던 그는 이 꼭두각시 이사가 장존과 싸우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한참 뒤에야 떨리는 심신을 억누른 그는 꼭두각시 이사와의 연계가 그리 깊지 않음을 알게 됐다. 상대를 조종하기에는 아직 부족했다. 이사를 완전히 통제하려면 더 많은 수련자를 죽여 그들의 혼을 바쳐야 했다.
‘칠채선존 세 번째 주혼의 기억과는 조금 다르군. 그 기억에 따르면 꼭두각시 이사는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아홉 번의 현겁을 통과한, 공현기 초기 수준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하는데… 물론 지금도 강력하지만 공겁을 완전히 통과한 것 같지는 않다.’
한제는 의혹을 느꼈지만 답을 알 수 없었다.
한편, 저 멀리서 지켜보던 현라는 꼭두각시 이사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단번에 그 정체를 알아차렸다.
“이전부터 저 녀석의 기운이 느껴졌는데 역시 꼭두각시였군. 게다가 두 차례의 변화를 겪었어. 칠채선존, 역시 만만치 않은 자야!”
현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제는 한쪽에 쓰러진 채 정신을 잃은 장존에게로 다가갔다. 악귀 같은 난쟁이 역시 실체와 안개 상태를 오가며 곧장 뒤따랐다.
한제는 복잡한 심정으로 장존을 내려다보다가 한참 뒤에야 그를 저물공간에 거두었다.
“아직 절반의 혼을 가진 너를 죽이지는 않겠다. 광인의 노예였으니 네 생사는 광인이 결정할 것이다.”
오래된 무덤의 유산
장존의 혼 절반을 거두었음에도 한제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슬픔에 가까웠다. 두 번째 단계에 이르렀을 때부터 장존의 이름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계외 태고 성신에서는 몇 차례 상대하기도 했다.
상대는 한 시대의 걸웅이었으나 그의 삶을 돌이켜보면 안타까웠다.
광인의 노예였다가 주인이 실종된 뒤 어쩔 수 없이 칠채도인을 스승으로 모시며 명령을 따라야만 했다.
그리고 지금 그는 혼의 절반을 잃고 나머지 반마저 한제의 저물공간에 거두어졌다. 당시 그가 계외의 강력한 수련자들을 모아 봉존을 죽이고 그 잔혼을 천역주에 집어넣은 것과 마찬가지로 인생은 그렇게 돌고 도는 법. 남을 죽인 사람은 결국 남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되는 법이었다.
한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남몽도존 등에게 다가가 포권을 했다.
“선배님, 정말 감사합니다. 도우들, 고맙네.”
“내 도울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으나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해 돕겠네. 약속하지.”
남몽도존은 ‘약속한다’는 말을 강조했다.
“넌 그때 내게 유산을 넘겨주어 묵류분신술을 성공하게 해주었지. 이번 일은 그에 대한 보답이었다.”
어느새 일반인 크기로 돌아온 서사 혹은 탁삼이 덤덤하게 말했다.
한제는 지금 눈앞에 있는 상대가 서사인지 탁삼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허나 그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지는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운일봉은 쓰게 웃을 뿐 한제의 감사 인사에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졌고 약속대로 한제의 명령을 따른 것뿐이다. 설령 피를 걸고 맹세하지 않았더라도 자신의 말을 번복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그는 그런 사내였다.
“난 네가 이곳에서 나가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오늘 너는 나를 도와 장존을 물리쳤지. 이제 더는 우리 사이에 남은 빚은 없는 거다. 이제 지난 일은 신경 쓰지 마라.”
당산은 한제의 말에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꼭두각시 이사가 있던 산봉우리는 무너져 내려 움푹 파여 있었다. 도고의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는 그곳은 바로 오래된 무덤 가장 아래층으로 통하는 입구였다.
한데 그때, 돌연 하늘 어딘가가 왜곡되더니 몇 갈래의 빛이 쉭 하고 들이닥쳤고 강력한 신식의 힘 역시 밀려들었다.
곧장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본 한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전가 노인이 쫓아 들어온 것이다.
“내가 막을 테니 가보게나.”
남몽도존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전신에서 남색 빛을 번득였다. 그는 찰나의 순간 어마어마한 전의를 드러내며 체내에서 펑, 펑 소리가 울려 퍼지는 동안 고개를 들더니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마 사숙께서도 충분한 시간을 벌어 자네를 도울 것이네.”
운일봉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량의 단약을 꺼내먹었다. 뒤이어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자 주위로 오행의 빛이 번득이다가 한 벌의 갑옷으로 변했다.
당산은 말없이 손을 휘두르며 일행들 주위에 각각 일곱 개의 금색 문을 둘러주었다. 뒤이어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한제는 이사를 남겨두고 싶었지만 이 꼭두각시는 떨어진 상황에서는 통제할 수 없었다. 그러니 여기 남겨둬 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는 것이다.
한제는 일행들을 향해 허리를 깊이 숙였다. 지금은 긴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었다.
그는 빨리 엽막의 유산을 손에 넣고 이 네 번째 꽃을 떠나 다섯 번째 꽃으로 들어간 뒤 선강 대륙으로 통하는 진짜 문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전가 노인에게 따라잡히기 전에 마무리 지어야 한다. 허나 전가 노인이 벌써 턱밑까지 쫓아온 상황이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신 한제는 결심한 듯 몸을 날려 무너져 내린 산봉우리 아래 구덩이로 돌진했다.
그의 모습이 구덩이 안쪽으로 사라진 순간, 콰쾅 하는 소리와 함께 전가 노인이 나타났다.
일곱 색채의 빛으로 휩싸인 것으로 보아 칠채도인을 삼키는 데 성공한 모양이었다.
체내의 두 영혼은 아직 융합되지 않았음에도 어마어마한 이득을 거머쥐었고 발휘할 수 있는 힘도 훨씬 강해져 있었다.
게다가 그는 칠채도인과 달리 칠채선존의 주혼 중 하나이면서도 자신만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본래 수준이 매우 높았던 전가 노인은 칠채선존의 주혼이 가진 깨달음과 융합된 데다가 칠채도인까지 삼키면서 당시의 칠채선존에 근접한 상태였다.
“이 미물만도 못한 것들! 썩 꺼져라!”
전가 노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땅이 무너지고 하늘이 찢어졌다.
★ ★ ★
오래된 무덤의 가장 아래층. 한제는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 소리는 심신으로 전해졌지만 한제의 심장 소리와 어우러지기는커녕 그의 심장을 교란시켰다. 마치 귓가에서 두 개의 다른 심장이 뛰고 있는 느낌이었다.
한제는 차분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에는 하늘도 대지도 없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굵기가 1천 척에 달하는, 혈관 같은 것들뿐이었다. 사방에 퍼져 있는 이 푸른 혈관들은 심장 박동에 맞춰 꿈틀거렸다.
한제는 신식을 뻗어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이 혈관들과 연결된 거대한 심장을 발견했다. 그 심장이 뛸 때마다 한제의 심장은 무너져 내릴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이 안의 모든 것은 당시 그가 유산을 물려받았던 대전에서 봤던 것과는 달랐지만 느낌은 비슷했다. 그때는 대충 훑어보기만 했을 뿐, 이 안으로 발을 들이지는 않았었다.
한제는 시간이 얼마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남몽도존 등이 전가 노인을 언제까지 붙잡고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기에 언제라도 전가 노인이 들이닥칠 수 있었다. 그렇기에 평소처럼 신중하게 하나하나 살필 틈도 없이 최대한의 속도로 혈관들을 지나치며 나아갔다.
다행히 이곳에는 흉수도 장애물도 거의 없었다. 덕분에 순식간에 어마어마한 거리를 뛰어넘을 수 있었다.
그러나 거대한 심장은 그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기라도 한 듯 점점 빠르고 격하게 뛰었고 그 박동에 어떤 힘이 담긴 것처럼 한제의 심장 박동을 어지럽혔다.
“크윽!”
얼굴이 창백해진 한제는 가슴 한쪽에서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그 통증은 거대한 심장과 가까워질수록 커졌다. 그리고 박동 소리가 마치 하나로 이어진 듯 빨라졌을 때, 한제는 심장을 칼로 도려내는 듯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느꼈다.
검은 안개가 되어 따라오는 꼭두각시 이사는 이런 상황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 듯했다. 긴 혀를 내밀고 있는 녀석의 두 눈은 점점 더 짙은 살기로 물들었고 점점 거친 기색을 내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