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37
“탁삼, 주인이 묵류분신술(墨流分神術)을 수련할 때 갈라져 나온 사악한 생각인 너를 내가 어찌 잊겠느냐. 당시 만약 네가 주인의 수련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던 그때 난리를 피우지 않았다면 주인도 절대 실패하지 않았을 것이고 오랜 세월을 허비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탁삼은 차게 코웃음을 쳤다.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냐? 오만한 서사가 분에 넘치는 신통술을 수련한 탓이지. 또한 그러지 않았다면 어찌 사악한 생각을 낳을 수 있었겠는가? 그가 나를 신식으로부터 분리해낸 그 순간, 그는 이미 날 포기했다. 하지만 난 오히려 그에게 고맙다. 그러지 않았다면 그가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나까지도 소멸했을 테니까!”
그 생물은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며 말했다.
“주인은 죽기 전에 내게 기억의 유산을 지키게 했다. 내 허락이 없는 한 그 누구도 유산에 손을 댈 수 없어.”
“힘의 유산은 이미 내 손에 있다. 이제 기억의 유산만 남았어. 서사의 기억은 사실 필요 없다. 그가 알고 있는 것은 나 역시 다 알고 있으니까. 빌어먹을 유산 전승의 제한만 없었어도 이런 귀찮은 일 따위는 할 필요 없었을 테고 그 망할 곳에서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갇혀 있을 필요도 없었을 텐데!”
탁삼은 포효하며 손에 쥐고 있던 긴 창을 앞으로 휘둘렀다.
휘이이이잉.
그 순간 검은 회오리바람이 피어올라 점점 더 커지더니 거친 소리를 내며 바다 생물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무렵, 한제는 마음속에서 의혹이 피어올랐다.
‘저 생물은 자신이 기억의 유산을 보호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전에 천마산인이 통로를 뚫어 몰래 기억의 유산 일부를 훔쳤을 때에는 왜 별다른 위험이 없었을까?’
게다가 한제 자신이 기억의 유산을 빼앗았을 때 역시 어떤 저항도 느껴지지 않았다.
한제는 고개를 숙여 사해를 내려다보았다. 의혹은 더욱 커졌다.
미간을 살짝 구긴 그는 아무 기색도 드러내지 않고 속으로만 기억의 유산으로 익혀둔 고신결을 재촉했다. 전승받은 기억에 따르면 기억의 유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신식의 바다 안에서 그것을 마음속으로 운용하기만 해도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고 했다.
몸의 길이가 십만 척에 달하는 그 생물은 냉랭한 시선으로 탁삼을 주시했다. 그 생물은 회오리바람이 근접해오던 순간 머리를 앞으로 맹렬히 빼며 그 회오리바람에 달려들었다.
그 회오리바람은 곧장 붕괴되었다.
한제의 신식은 기억의 유산을 불러냈다. 하지만 기억의 유산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한제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기억의 유산이 효과가 없는 것으로 보아 이곳은 신식의 바다가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이전에 들인 노력은 모두 헛수고가 되고 만다.
하지만 뭔가 심상치 않았다. 기억의 유산에 기록된 것처럼 당시 서사가 신식을 둘로 나누어 혈해와 사해를 만든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고 이곳은 분명 신식의 사해였다. 한데 어째서 기억의 유산은 이곳에서 아무런 효과도 내지 못하는 것일까?
한제는 한동안 조용히 사방을 살폈다. 그러던 중 그 거대한 생물의 등에 달린 비늘 한 조각에 시선이 닿은 순간, 한제의 심장이 쿵쾅댔다.
기억의 유산을 불러냈을 때, 그 비늘로부터 미약한 감응을 느꼈다. 그 감응은 미약했지만 분명 기억의 유산을 진동하게 했다. 분명 그 비늘에 뭔가 있는 것이다.
한제는 손은 그대로 둔 채 검지만 살짝 흔들었다. 순간 얇은 균열이 나타났다. 이 동작은 너무도 작고 비밀스러웠고 균열은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졌기에 누구의 시선도 끌지 않았다.
한제는 조금 마음이 놓였다. 이 균열이 생겨났다는 것은 이곳에서 기억의 유산 특유의 독특한 이동 방식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신식으로 저물대를 훑어본 한제의 얼굴에 냉소가 피어올랐다. 그는 매우 많은 저물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중 열 명의 수련자와 영혼으로 연결되어 있는 법보들과 혼원구수권(魂元驅獸圈), 그리고 스무 개의 최고급 영석이 들어 있는 저물대에는 항상 경계심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한제는 열 명의 수련자가 그것들을 자신에게 넘겨준 점이 마음에 걸렸다. 그가 이것저것 요구한 것은 상대들의 의중을 떠보기 위한 것이었다.
균열 사이를 드나든 경험이 많은 한제는 일찍이 기억의 유산 특유의 방식으로 균열을 열었을 때 곧장 그 공간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매우 짧은 공백의 구역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 안은 혼란한 기운으로 가득해 모든 신식의 진입을 저지했다.
시험 삼아 비검을 꺼낸 뒤 신식을 찍어 놓고 그것을 공간의 균열 안에 던져 넣기도 해보았으나, 그 순간 비검과 그 사이의 감응은 끊겼다가 다른 한쪽으로 나온 뒤에야 다시 연결이 됐다.
한제는 잠시 고민했다. 만약 균열의 이런 특수성을 잘 이용할 수 있다면 매우 유용할 것이다.
한참 생각하던 한제는 침착하게 혼원구수권과 최고급 영석, 그리고 열 개의 법보를 세 개의 저물대에 나눠 넣었다.
그때,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타목을 비롯한 열 명의 수련자들이 서로에게 눈짓을 하더니 노인을 위수로 하여 각자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그들의 손에서부터 각각 빛기둥이 하나씩 나타나, 불규칙적인 도형을 이루면서 탁삼을 에워쌌다.
허나 탁삼은 냉랭한 눈빛으로 열 명의 수련자를 한 번 훑어보더니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리 오랜 세월 동안 기다리더니 오늘에서야 기회를 잡았군. 훌륭하다.”
한제와 거래를 한 그 노인은 착 가라앉은 표정으로 말없이 그저 두 손으로 연거푸 결인을 했다. 나머지 아홉 명의 손도 바쁘게, 더 빠르게 움직였다.
불규칙적인 도형은 점점 더 밝아졌고 빠르게 탁삼을 향해 조여들어갔다. 그러나 탁삼은 차게 웃으며 시선을 거두고 십만 척에 달하는 생물을 향해 느릿하게 말했다.
“보아하니 일찍이 결탁을 한 모양이군. 날 다시 봉인하려는 것인가?”
그 생물은 탁삼을 노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널 봉인하고 저들에게 기억의 유산을 똑같이 나누어줄 것이다. 그런 유혹에 어느 누가 설득당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탁삼은 자신을 향해 빠르게 조여드는 빛의 도형은 쳐다보지도 않고 크게 웃기 시작했다. 그가 오른손에 든 창을 휘두르자 공중에서 뭔가가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하늘에서 나타난 검은 용이 그 불규칙적인 도형을 향해 포효하며 달려들었다.
탁삼은 오른손으로 이마를 두드리며 열 명의 수련자 중 우두머리라고 할 수 있는 노인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외쳤다.
“폭발!”
노인의 얼굴이 굳어지는가 싶더니 그의 몸에서 붉은 빛이 번득이면서 혼잡한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이어 노인이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자신의 배를 때리며 중얼거렸다.
“흩어져라!”
순간 그의 몸 안에서 번득이던 붉은 빛이 흩어졌다. 주변에 있던 아홉 명의 수련자들은 더욱 진지한 표정으로 결인을 그려 빛을 만들어냈다. 그 빛은 아홉 개의 길이 되더니 각자의 체내로 이어졌다. 그들의 체내에서는 눈부신 붉은 빛이 번득였고 곧이어 노인이 외쳤다.
“합(合)!”
순간 아홉 명의 체내로 들어간 붉은 빛은 곧장 빠져나와 하나로 합쳐지더니 다시 노인의 체내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는 휘청거리며 검은색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창백해진 그는 탁삼을 바라보며 잔인하게 웃었다.
“탁삼, 난 자네를 죽이기로 결심했네. 내 몸에 심어둔 신식을 파괴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준비를 해뒀지. 그 수법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아!”
이 모든 것은 사실 한 순간에 벌어진 일들이었다.
탁삼은 차게 웃으며 자신의 미간을 두드렸다. 그리고 노인을 제외한 아홉 명을 훑으며 중얼거렸다.
“폭발!”
노인이 눈을 번득이며 외쳤다.
“려봉!”
탁삼은 흠칫 놀랐다. ‘려봉’은 그들이 당시 열한 명이었을 때 자신의 구속을 피해 달아난 단 한 명의 이름이었다.
갑자기 그 거대한 생물에게서 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허나 분명 이전에 그 생물이 냈던 소리와는 달랐다.
바다 생물은 그 큰 입을 쩍 벌리고 혀를 내밀었다. 그 혀에는 혹이 하나 나 있었는데 마치 그 위에 기생하여 살고 있는 것처럼 혓바닥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그 혹이 중간부터 갈라지더니 그 안에서 누군가의 머리가 쑥 빠져나왔다. 그 머리의 주인은 마치 서생처럼 용모가 수려했으나, 눈빛은 유독 요사스러웠다.
그는 그런 눈으로 냉랭하게 탁삼을 바라보며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을 외웠다. 그 주문은 곧장 열 개의 동그란 빛으로 변해 각 수련자의 몸에 내려앉았다. 그러자 탁삼이 그들의 몸에 심어놓은 갈라진 신식이 제거됐다.
변심
탁삼은 혀 밖으로 나와 있는 머리를 노려보며 그늘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그때 그 짐승이 너를 구해준 모양이군.”
그 머리는 입을 씨익 벌리며 한이 서린 눈빛을 번득였다. 그의 목소리에서도 흘러넘치는 한과 원망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시 너에게 속아 서사의 봉인을 풀고 네게 자유를 되찾아준 것은 우리 인생 최대의 실수였다. 오늘, 그 실수를 명확히 바로잡고 기억의 유산도 힘의 유산도 모두 우리가 차지할 것이다.”
탁삼은 손에 쥔 긴 창을 휘두르며 차가운 눈빛을 번득였다. 그의 입가에는 보일 듯 말 듯한 비웃음이 걸려 있었다. 그가 담담하게 말했다.
“자 또 뭔가 준비한 게 있다면 어서 보여 다오.”
말을 마친 그가 곁눈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한제와 멍한 눈으로 그곳을 바라보고 있는 수백 명의 요마들을 훑어보았다.
혀에 딱 달라붙어 있는 머리가 차게 웃었다.
“우리가 무엇을 준비했는지 곧 알게 될 것이다.”
말을 마친 그는 알 수 없는 방식으로 그 거대한 생물과 소통했다. 순간 그 생물은 사해 안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탁삼을 중심점으로 삼아 진을 구축했다. 탁삼이 창으로 만들어낸 검은 용은 그 진에 밀려나 불규칙한 도형에 더 이상 접근하지 못했다.
탁삼은 이렇게 완전히 갇혀 버렸다. 허나 그의 눈빛은 침착했고 입가에는 비웃음이 걸려 있었다.
그는 한 줄기의 보라색 빛을 뱉어냈다. 그 빛은 그믐달 모양의 굽은 칼로 변해 그의 손에 떨어졌다. 오른손에는 창을 왼손에는 칼을 쥐게 된 탁삼은 두 개의 무기를 교차시켰다가 양쪽으로 휘둘렀다.
그러자 그를 에워싸고 있던 불규칙한 도형은 휘청거리더니 금방 흩어질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탁삼은 눈을 번득이며 허공에 대고 두 손을 휘둘렀다. 순간 그의 칼과 창이 진동하더니 두 개의 유성을 만들어냈다. 그 유성은 사방을 둘러싼 불규칙한 도형의 모서리를 공격했다.
이 한 번의 공격에 네 명의 수련자가 피를 토하며 경련을 일으켰다. 그들은 더 이상 버텨내지 못할 듯했다.
이 위기의 순간, 그 밖을 두르고 있던 바다 생물의 몸이 뻣뻣해지더니 그 머리 꼭대기가 빠른 속도로 솟아올랐다. 그리고 온몸이 비늘로 덮인 남자 하나가 튀어나왔다. 그의 동공은 마름모 모양으로 일반 사람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쉭 – 쉭 –
그 사람은 모습을 드러낸 뒤 입으로 쉭쉭 소리를 냈다. 굉장히 날카로운 그 소리는 무형의 예리한 날이 됐고 사방에서 탁삼에게로 날아들었다.
그때, 불규칙한 도형은 한 번 흔들릴 때마다 그들의 힘을 깎아내고 있었다. 노인이 한제를 돌아보며 다급하게 외쳤다.
“도우! 지금이야!”
노인이 손을 쓴 순간부터 침착하게 탁삼을 관찰하고 있던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노인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희색을 띈 노인이 뭔가 말을 하려던 순간, 한제는 갑자기 방향을 틀어 그들을 스쳐지나 빠른 속도로 그 거대한 생물에게로 질주했다.
그는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의 목적은 단 하나, 그 생물의 몸에 붙어 있는 특이한 비늘 한 조각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그는 탁삼을 봉인할 생각은 없었다. 자신에게 그럴 실력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인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는 가슴 앞에 둔 두 손의 검지와 엄지를 붙여 마름모 모양을 만든 뒤 중얼거렸다.
“흡수!”
노인의 말이 막 떨어진 순간, 한제는 오른손을 앞으로 뻗었다. 순간 그의 앞에 공간의 균열이 나타났고 한제는 재빨리 그 안으로 들어갔다.
★ ★ ★
바다 생물 위에 서 있던 남자는 한제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살짝 구겨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말도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