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378
흡혈마수의 변화에 놀란 한제는 멈칫거리다가 녀석의 몸에 손을 얹었다. 그러나 손에는 아무런 감촉도 느껴지지 않았다.
흡혈마수는 행복해 보이기까지 했다. 주인 곁에 있으니 만족하는 모양이었다.
흡혈마수의 흐릿한 몸에 오른손을 얹은 한제는 신식을 녀석과 융합시켰다. 그러자 자신이 떠나간 후 흡혈마수가 겪었던 일들이 머릿속에 하나하나 떠올랐다.
수혼술을 통해 강제로 기억을 여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기억을 전송받은 것으로 이런 방식은 상대에게 아무런 해도 미치지 않았다. 두 사람은 2천여 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해온 사이였기 때문이다.
한제는 흡혈마수가 광기에 휩싸인 채 여러 차례의 탈변을 진행하는 것을 자신을 찾기 위해 아홉 마리의 동료를 흡수하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았다.
십만 갈래로 갈라져 허공을 샅샅이 뒤진 끝에 잠든 것인지 죽은 것인지도 모를 자신을 찾아낸 것도 보았다.
뿐만 아니라 시체가 된 자신의 모습에 절망에 빠진 채 절규하던 흡혈마수가 자신과 모완을 데리고 이곳에 이르는 것도 이후의 일도 모두 확인했다.
기쁨에 겨운 얼굴로 자신의 몸에 주둥이를 계속해서 비벼대는 흡혈마수를 보던 한제는 감동한 듯 녀석의 몸을 몇 번 토닥여 주었다.
“네가 고생이 많았구나. 고맙다.”
주인의 손길과 부드러운 눈빛, 자신의 고생을 치하하는 말에 흡혈마수는 더욱 기쁜 듯 몸 안팎으로 파문이 일렁였다.
흡혈마수는 당시 한제가 일반인으로 살 때도 둘이 따로 떨어져 있었을 때도 이곳 허공에서도 그 충성심에 흔들림이 없었다. 녀석은 한제를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바칠 것이다.
한제 역시 녀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이 흡혈마수는 오래 전부터 그에게 가족과도 같은 존재였다.
한제의 시선이 다시 돌 껍데기에 닿았다.
‘흡혈마수의 기억에 따르면 이건 녀석의 선조들이 태어난 땅인 것 같은데⋯⋯. 저 돌 껍데기는 대체 뭘까?’
한제는 돌 껍데기 근처로 다가간 한제는 그것을 살짝 만져보려 했다. 하지만 그의 손은 강력한 힘에 튕겨 나왔다. 돌 껍데기는 한제의 접촉은커녕 접근조차 허용치 않으려는 듯했다. 여러 방향에서 시도를 해봤지만 마찬가지였다.
고민하던 한제는 돌 껍데기 안의 분신을 조종하려는 생각은 포기했다. 동시에 그는 이것이 어쩌면 자신에게는 어마어마한 기회와 행운이 될 수 있겠다고 직감했다.
어떻게 생겨난 건지는 몰라도 돌 껍데기 안의 분신은 지금 지금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언제고 밖으로 나온다면 분명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터였다.
그 힘은 바로 선강 대륙의 법칙이었다. 돌 껍데기 안에 나타난 분신은 흡혈마수의 선조와 마찬가지로 선강 대륙의 법칙으로 이루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장 이 돌 껍데기를 둘러싼 막을 억지로 뚫는 것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터였다.
한제는 자신이 오랜 잠 혹은 죽음에서 깨어난 것과 체내의 모든 힘이 회복된 것이 돌 껍데기 안에 나타난 분신과 연관되어 있음을 직감했다. 그 분신과의 연계를 이용한다면 분신이 성장함에 따라 본체 역시 강해질 터였다. 명확히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기이한 일이기는 했다.
한제는 생각에 잠겼다. 그는 동부계 안에서 금제에 접촉했을 때 풍수지리에 관련된 오래된 옥패를 본 적이 있었다. 그는 지금 그가 겪고 있는 상황이 그것과 굉장히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풍수지리에서는 매장지를 중요하게 봤어. 그렇다면 이 돌 껍데기를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무덤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이 안에 분신을 만들어낸 건 그 분신을 이 안에 묻어놓은 것과 다르지 않아. 그렇다면 나는 분신의 성장을 통해 본체를 천천히 자양할 수 있어.’
고민하던 한제는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일반인 황제들은 풍수지리상 명당 중에서도 용맥(龍脈)이라 불리는 곳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지. 만약 조상을 그곳에 묻으면 후손은 대대로 명예롭고 풍족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내가 내 분신을 이곳에 묻어놓는다면 후에 내게 어떤 행운이 찾아올까?’
눈을 번득이던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렸다. 흡혈마수가 환호하며 곧장 한제의 뒤를 따르더니 그를 등에 태운 채 빠른 속도로 돌진했다.
쉭 하는 소리와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한제는 고개를 돌려 분신을 슬쩍 보았다. 그는 믿기 힘든 풍수지리설보다는 분신의 성장이 기대됐다.
게다가 자신과 분신 사이의 연계는 매우 또렷해 어지간해서는 끊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언젠가 분신이 완전히 성장하여 저 안에서 나온다면 한제는 자신에게 어마어마한 행운이 따를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흡혈마수의 엄청난 속도에 한제는 점점 출구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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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제로서는 호 형태의 대가 그의 피를 흡수하여 돌 껍데기로 변한 순간 선강 대륙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했지만 이때 선강 대륙에서는 온 세상을 진동시킬 정도로 어마어마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이 급격한 변화에 선강 대륙의 수많은 강자와 각 종파의 종주 및 장로들은 진지한 얼굴로 하늘을 살피며 신식으로 사방을 뒤덮었다.
이 변화는 심지어 아홉 태양의 신경까지 끌었고 이에 드물게도 아홉 대천존은 모두 동시에 모습을 드러냈다.
선조가 탄생할 때 세상에는 삼상(三相)이 나타난다고 했다. 그중 하나가 금빛 하늘과 검은 대지였다. 그리고 고조가 탄생할 때는 구곡(九曲)이 나타나는데 그중 하나는 한 쌍의 은빛 눈동자였다. 일반 수련자는 몰라도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거나 종파 내의 강력한 일맥에 속한 자라면 이런 이야기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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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강 대륙 선족 구역의 중주(中洲) 선명주. 명목상 선족을 통치하고 있는 선황의 수도 상공에 왜곡이 일더니 그 안에서 거대한 회오리가 나타나 사방으로 끝없이 확산됐다.
눈 깜짝할 사이 중주에 속한 서른일곱 개의 주를 모두 뒤덮은 회오리 안에는 하늘이 펼쳐졌다.
하늘에서는 금빛이 번득였는데 기이하게도 그 빛을 받은 대지는 검은색으로 번득였다. 선조가 강림할 때 나타난다는 금빛 하늘과 검은 대지였다.
회오리 안에서 인영이 응집됐다. 허상은 흐릿했지만 금색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높은 관을 썼다는 것만은 어렴풋이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그에게서는 어마어마한 선기가 느껴졌다. 그 허상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심신을 떨리게 하는 이름을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선조!
아주 오랜 세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선조가 나타나자 모든 선족은 흥분을 금치 못했다.
선족 대천존은 하늘을 향해 절을 올렸다.
그 무렵, 고족 구역 서른여섯 개 군의 상공에도 거대한 회오리가 나타났다.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검은 회오리는 선족 구역에 나타난 빛의 회오리와 맞서려는 것처럼 보였다.
뒤이어 회오리 안에서 무시무시하고 포악한 기운이 끊임없이 발산돼 온 세상을 뒤덮었다. 이에 모든 고족은 격앙돼 바닥에 꿇어앉았다.
폐관수련을 하고 있던 현라와 나머지 두 고족에 속한 총 네 명의 대천존도 튀어나와 허공에 섰다. 거대한 회오리를 바라보는 이들의 얼굴에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 드러나 있었다.
하늘을 뒤덮은 회오리 안에서는 선족과 달리 어떤 인영이 나타나지는 않다. 대신 한 쌍의 은빛 눈동자가 나타나 선족 구역을 바라보며 밝은 빛을 번득였다.
선강 대륙 전역이 들끓고 있었다. 이 거대한 대륙 위에 동시에 나타난 아홉 개의 태양은 대지를 뒤덮음과 동시에 모든 존재를 벌벌 떨게 만드는 기운을 발산했다.
한데 더욱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다. 선조와 고조의 허상이 나타난 순간, 선족 구역과 고족 구역 사이의 하늘에서 또 다른 거대한 회오리가 나타난 것이다.
이 회오리의 등장에 선강 대륙은 믿을 수 없는 충격에 빠지게 됐다.
“마, 말도 안 돼! 선조와 고조의 회오리 외에 또 다른 회오리가 나타나다니, 이게 대체 무슨 뜻이지?”
“세 번째로 나타난 회오리 안에 고조와 선조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존재가 있다는 뜻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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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제는 풍수지리설을 믿지 않았다. 수준 높은 수련자인 그는 산을 옮기고 바다를 뒤엎을 수 있으며 하늘을 바꾸고 땅을 뒤흔들 수 있는 사람이었다.
별을 만드는 것도 그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말하자면 풍수지리를 마음대로 통제하고 관장할 수 있는 셈이다.
허나 선강 대륙의 사람들이 큰 충격에 빠진 상황을 설명하는 데 풍수지리보다 적절한 것은 없었다.
길혈(吉穴)에 묻힌 자의 후손은 부귀한 삶을 살게 되고 길혈 중에서도 명당에 묻힌 자의 후손은 대대로 평안한 삶을 살게 된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용맥에 묻힌 자의 후손은 명예롭고 풍족한 삶을 살 수 있으며, 용맥 중에서도 명당에 묻힌 자의 후손은 심지어 한 나라를 다스릴 수도 있다고 했다.
한제는 몰랐지만 그의 분신이 생겨난 곳은 선강 대륙이 처음 열렸을 때 선조와 고조가 태어난 곳이었다. 그때는 대의 형태가 아니었지만 말이다.
어찌 됐든 덕분에 한제는 선조, 고조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운명을 갖게 됐다. 이 운명은 겉으로 확연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의 분신이 성장을 이어나가면 미래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 펼쳐지게 될 터였다.
이에 대해서도 한제는 잘 알지 못했다. 그저 짐작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또한 그는 이를 전적으로 믿지도 않았다. 자신의 노력과 끈기를 더 믿기 때문이다. 그저 그는 자신의 분신이 그 안에서 나와 강력한 힘을 발휘할 날을 기대할 뿐이었다.
선강 대륙에 세 번째 회오리가 나타난 순간, 모든 이들은 심신을 바르르 떨었다. 수준과 신분을 막론하고 모두에게 일어난 일이었다. 심지어 아홉 명의 대천존 역시 진지한 얼굴로 세 번째 회오리의 존재를 감지했다.
세 번째 회오리는 방금 막 태어난 듯 아직 불안정했고 곳곳에 왜곡이 일어나 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고조와 선조의 회오리 사이에서도 무너져 내리지 않고 빠르게 그 몸집을 불려 나갔다.
한참 뒤, 드넓은 하늘에 나타난 세 개의 회오리는 동시에 천천히 흩어져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나타나지 않았던 것처럼 선강 대륙 사람들은 그 흔적조차 느낄 수 없었다.
모든 것은 본래대로 돌아왔지만 선강 대륙 사람들이 받은 충격은 깊이 뿌리를 내린 듯 사그라들지 않았다. 어떤 징조 같은 이 사건은 모든 이들의 숨통을 옥죄었고 수많은 추측을 떠올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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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족 구역의 어느 도시. 선강 대륙에 나타났던 세 개의 회오리가 흩어져 사라진 이때, 열 살이 조금 넘은 한 아이가 마치 왕처럼 한 손을 허리에 얹고 다른 손으로는 작은 나무 막대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이 아이를 비롯한 한 무리의 소년은 미간을 찌푸린 두 수련자의 안내에 따라 시험을 치르기 위해 부근의 종파로 이송되고 있었다. 만약 그중 천부적인 자질을 타고난 아이가 있다면 그 종파에 받아들여질 것이다.
‘난 언젠가 왕이 될 거야!’
나무 막대기를 휘두르던 소년이 속으로 외쳤다.
이때 이곳에서 한참 먼 곳에서는 그보다 약간 어린 한 소년이 어디에서 났는지 모를 도포를 입고 있었다.
덕분에 범상치 않은 동자처럼 보이는 이 소년은 어느 큰 가문의 저택 앞에서 미소를 띤 채 자신에게 공손히 절을 하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난 3천 년 동안 수련한 끝에 다시 아이와 같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원래의 수준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아홉 번의 환생이 필요하지. 너희들이 하도 나를 모시고 싶다 하니 찾아왔을 뿐. 앞으로 며칠간은 이곳에 머물면서 도연(道緣)을 맺어야겠다.”
이 아이의 기운은 일반인이라도 느낄 수 있을 정도라 아이가 아니라 수천 년 동안 살아온 노인 같았다. 특히 그 반짝이는 눈에서는 오랜 세월의 흔적이 느껴져 누구라도 그 아이의 말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아이의 몸에서는 음산한 기운도 흐르는 듯했다.
일반인들이 이 기운에 놀라 덜덜 떨면서 공손히 고개를 숙이자 소년은 속으로 호탕하게 웃었다.
‘후후, 난 스스로 사기 능력을 깨우친 사람이라고. 거짓말에서 중요한 건 자신마저 속이는 거지. 지금의 나 역시 내가 환생한 존재라고 믿고 있는 것처럼 말이야! 내게 정말 전생이 있었다면 그때도 천부적인 사기꾼이었을 거야! 그나저나 몇 달 동안 묘지에서 시체와 더불어 산 보람이 있군. 앞으로 당분간은 여기서 지낼 수 있겠어. 그간 곳곳을 돌아다니며 쓴 돈도 다시 벌어들여야 하는데⋯⋯.’
천우주
흡혈마수는 안개가 되어 한제를 꽁꽁 감싼 채 빠르게 돌진했다. 선강 대륙의 법칙은 강력한 흡혈마수의 몸에 막혀 한제에게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