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379
게다가 흡혈마수는 출구의 방향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문제없이 출구로 향할 수 있었다.
잔뜩 흥분한 상태인 흡혈마수는 수시로 고개를 돌려 한제를 바라보며 기쁨에 찬 듯 쉭쉭 소리를 냈다. 마치 잃었던 부모를 되찾은 아이처럼 행복해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흡혈마수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선강 대륙의 법칙으로 이루어진 압력은 점점 강해지기 시작했다.
돌 껍데기 안의 분신이 성장하면서 본체를 자양해주고 있긴 했지만 이곳에 오래 머물면 버티기 어려워질 것이 분명했다. 특히 피천관 안의 이모완에 대한 걱정이 컸다. 모완이 아니었더라면 흡혈마수와의 연계를 통해 선강 대륙의 법칙에 어느 정도 적응했을 터였다.
분신과 흡혈마수로부터 적지 않은 도움이 있음에도 선강 대륙의 법칙에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통해 한제는 이곳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곳인지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 오랜 세월, 동부계 수련자들이 선강 대륙에 진입하지 못한 데는 역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군.”
한제가 중얼거렸다.
이미 시간의 흐름을 잊은 그는 이곳에서 자신이 얼마나 오랜 시간을 보냈는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현라와 약속한 10년이 한참 전에 지났으리라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스승님께서도 아마도 도고 일맥으로 돌아가셨겠지. 선강 대륙에 도착하면 그 후의 일은 내 스스로 해내야겠구나.”
한제의 눈에서 굳건한 결의의 빛이 번득였다.
“상관없어. 주작성을 떠나 곤허성역에 진입했을 때도 곤허성역에서 나천성역으로 운해성역으로 넘어갔을 때도 계외 태고 성신에 나갔을 때도 혼자였다. 선강 대륙에서도 해낼 수 있어. 다만 최대한 빨리 수준을 높여야겠지. 동림지에도 꼭 들어가야겠어.”
동림지를 떠올리자 강한 열망에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그는 오화팔문에서 겪었던 일이 현실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본원을 화신으로 만들어낸다면 그는 심지어 공겁기 수련자와도 싸울 수 있을 터였다.
“내겐 선강 대륙에도 친구들이 있다. 환생을 통해 태어난 이들이 몇이나 될지…, 그들이 과연 무사히 환생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사도환은 왕으로 태어 났으려나? 하하! 유금표는 또 거짓말을 하고 다니겠지? 허이국 그 녀석은 어디 가서 맞아죽지나 않았으면 다행이겠고… 청수 선배와 홍접⋯⋯ 그리고 이천매⋯⋯. 모두 무사하겠지?”
한제는 고요한 허공에 있었지만 흡혈마수와 함께인 만큼 외롭지 않았다.
★ ★ ★
또다시 3년이 흘렀다. 그동안 한제는 과거를 떠올렸고 흡혈마수는 전보다 훨씬 느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 무렵에는 출구에 거의 도착해가고 있었다.
이 출구는 흡혈마수의 기억으로 찾아낸 곳일 뿐, 현라가 당시 기다렸던 그곳은 아닐지도 모른다. 어디와 연결되어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지난 3년간 한제는 모든 힘을 피천관에 집중시켰다. 덕분에 모완은 안전하게 잠들어 있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 멀리서 한 줄기 빛이 나타났다. 짙지 않은 이 빛은 곧 가느다란 균열을 드러냈다. 빛이 새어 나오고 있는 균열 너머로 울창한 숲과 산이 보이는 듯했다. 그곳에서는 선강 대륙 특유의 기운도 함께 흘러나왔다.
잔뜩 지쳐 있던 한제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녹초가 되어 있던 흡혈마수 역시 몸부림을 치듯 힘겹게 한제를 태우고 그 균열로 다가가려 했다. 하지만 끝내 녀석은 안개로 흩어져 형태를 잃고 말았다.
이에 한제는 안쓰러운 마음에 안개가 된 흡혈마수를 움켜쥐었다. 그러자 흡혈마수는 하나의 문양이 되어 그의 팔에 새겨졌다.
감히 저물공간을 열 엄두는 나지 않았다. 지난번에 열었을 때 저물공간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저물공간이 폭발해 완전히 소멸해 버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다.
지금 한제의 저물공간에는 단약과 법보들뿐만 아니라 광인과 은시(銀尸身) 또한 있었다. 두 사람은 선강 혈맥을 타고난 존재이기에 선강 대륙에 데리고 간다고 해서 별다른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터였다.
흡혈마수를 거둔 한제는 피천관을 짊어진 채 잠시 숨을 고르다가 번득이는 눈으로 균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모든 힘을 발휘해 긴 빛을 그리며 돌진했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속도로 나아가면서도 모완에게 조금의 해도 끼치지 않도록 선강 대륙 법칙의 압력은 오직 육신으로 버텨내는 수밖에 없었다.
균열과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그럴수록 온몸이 마치 불타는 것처럼 극심한 고통이 밀려들었지만 한제는 이를 악물고 견뎌냈다.
“선강 대륙이여, 내가… 이 이한제가 왔다!”
★ ★ ★
천우주. 선강 대륙 동주의 하나인 이곳은 꽤 외진 곳에 있었고 산맥으로 에워싸여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다면 천우주 자체가 거의 산맥으로 이루어져 있을 정도였다.
소문에 의하면 이곳은 선조의 손에 죽은 흉수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심지어 천우주뿐만 아니라 선강 대륙 선족 구역의 일흔두 개 주가 모두 그러하며, 각 주는 하나하나의 거대한 진으로 그 흉수들을 짓누르고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
고족 구역 서른여섯 개 군에도 비슷한 소문이 있었다. 다만 이미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 터라 진위는 알 수 없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이 소문에 따르면 이곳에 이렇게 산맥이 많은 것도 사실은 그 산맥들이 모두 흉수의 뼈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소문들이 사실인지에 대해서는 대천존이나 황족 정도 되어야 알 수 있을 터였다.
이런 천우주에서 가장 유명한 종파라면 단연 귀일종과 대혼문이었다. 이들은 동주 9종 13문에 속해 있었다. 물론 제자의 수도 상당했지만 천우주는 동부계 전체를 수십 개나 합친 것에 달할 정도로 넓기 때문에 두 종파 사람들이 서로 마주치는 일은 흔치 않았다. 이에 따라 두 종파 사이의 갈등이나 마찰도 거의 없었다.
대혼문은 기이한 곳이었다. 이 종파의 공법은 다양한데 그중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영혼과 환각이었다. 그러니 대혼문의 제자인 반산몽이 뛰어난 환술을 사용했던 것도 당연했다. 구중(九重)으로 나뉜 대혼문의 환술을 완벽하게 익히면 그 위력이 상상을 초월한다고 전해진다.
한편 귀일종은 오행술을 중점적으로 수련하고 독특한 갑옷 제작 능력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다.
이 두 종파 아래에는 수많은 작은 종파들이 천우주 곳곳에 분산되어 있었고 일정 기간마다 자신들이 모시는 종파에 공물을 바쳤다.
또한 칠채선존이 설립한 칠도종도 이런 종파의 하나였다. 대혼문의 제자와 혼인을 함으로써 그의 종파는 천우주 내에서 대혼문의 비호를 받았고 그 천부적인 자질 덕분에 대혼문에서는 그를 매우 귀하게 대했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간 천우주에서 가장 두각을 드러내며 유명해진 수련자는 귀일종의 운일봉이었다.
오랜 폐관수련을 마치고 나오면서 강해졌다는 소문이 도는 그는 대혼문의 핵심 제자 여럿에게 도전해 모두 승리했고 심지어 대혼문의 장로마저도 꺾으면서 그 유명세가 점점 높아졌다.
이에 따라 점차 천우주의 다음 세대 제자 중 첫 손에 꼽히기 시작했다. 심지어 본래부터 동주의 강자였던 네 명의 천재와 하나로 엮어 오악(五岳)이라 칭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운일봉은 자신이 그들과 나란히 엮일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는 그가 스스로를 동주의 네 천재보다 못하다 여긴 겸손함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에게 미치지 못하다는 자신감에서 나온 반응이었다.
10년 전, 운일봉은 귀일종과 대혼문 사이의 시합에서 거의 모든 전투를 휩쓸며 대혼문의 제자 아홉과 장로 셋에게 부상을 입혔다. 이때도 누군가가 오악이라는 칭호를 거론하며 찬사를 금치 못했지만 이에 대한 운일봉이 한마디가 천우주 수련자들의 심신을 진동시켰다.
“나는 누구에게도 윗자리를 양보할 마음이 없다. 상대가 동주의 네 천재라 해도 마찬가지다. 그들과의 승부를 장담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그들과 맞서도 밀리지 않을 자신은 있다. 허나 고작 2천여 년을 살아온 한 수련자에게만큼은⋯⋯ 감히 검조차 뽑아 들 수 없다. 동주의 네 천재 역시 그 앞에서는 감히 스스로를 천재라 칭할 수 없을 것이다. 새로운 세대의 수련자 중 그에게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 말을 들은 모든 이의 머릿속에는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자가 대체 누구이기에 운일봉이 저런 말을 하는 걸까?’
고작 2천여 년의 수련만으로 그 정도의 수준에 이르다니, 그 말이 사실이라면 동주의 네 천재는 분명 그에게 대적하지 못할 것이다.
운일봉의 그 말에 많은 사람이 의아해했지만 마치 대혼문의 제자들은 그 사람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덤덤했다. 그리고 대혼문의 침묵에 다른 종파 수련자들은 온갖 추측을 했다.
심지어 귀일종의 고위층 수련자들은 운일봉이 말한 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가 누구인지는 곧 알게 될 것이다.”
운일봉의 마지막 설명이었다.
그게 벌써 수년 전의 일이었다. 비밀스러운 그 사람에 대한 소문은 잠잠해지기는커녕 입에서 입을 거치면서 더욱 격화돼 천우주 내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그러나 소문의 그자가 누구인지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선강 대륙에는 3만 개 정도의 종파가 있다고 한다. 각 종파는 성격이 서로 달랐다.
그중 창룡종(蒼龍宗)은 천우주의 중급 정도 종파로 곤허성역의 절반 정도 되는 구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름으로 미루어 용과 관련이 있는 종파일 것 같지만 사실 이들이 수련하는 공법은 용과 조금의 관련도 없었다. 창룡종은 꼭두각시의 도움을 받아 각종 신통술을 발휘하는 것이 특기였다.
처음 입문한 제자는 자신의 영혼과 연결된 꼭두각시를 제련해내야만 외출을 허락받을 수 있는데 꼭두각시는 등급에 따라 위력이 달랐다. 그중 가장 좋은 것은 특수한 나무나 기계 장치를 이용해 만든 꼭두각시였지만 흉수가 수련자의 육신을 이용해 만든 꼭두각시도 나쁘지 않았다.
사실 꼭두각시에 관련된 술법은 그리 현묘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대부분 종파 수련자들도 이 분야에 대해 약간은 알고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창룡종의 꼭두각시 술법에는 그들만의 특징이 있었다. 바로 자신의 몸을 꼭두각시로 바꿔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소문에 의하면 창룡종에서 처음으로 공겁기 초기에 이른 태상장로 두청은 목각 인형으로 평소에는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지만 신통술을 발휘하면 나무로 만들어진 그 몸을 똑똑히 볼 수 있다고 했다.
창룡종은 천우주에서 악명이 높았다. 이들은 온갖 수단을 이용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법보를 빼앗기 위해 남을 죽이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이들이 천우주 안에서 제멋대로 구는데도 다른 종파들이 어쩌지 못하는 이유는 창룡종의 태상장로 두청이 대혼문과 긴밀한 연을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은 강도짓을 할 때 대상을 신중하게 선택하는 편으로 천우주에 발을 들인 다른 주 사람을 주로 노렸다.
이들은 보통 밖으로 나가 각종 정보와 소식을 모아서 종파로 돌아왔다. 그리고 상대하기 어려운 적을 맞닥뜨릴 경우 단체로 공격했다.
동굴로 가지고 오다
창룡종 3세대 제자 중에 강인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교활하고 잔인한 그는 3세대 제자 중에서도 악명이 높아 종파의 중시를 받았다.
게다가 그는 눈썰미도 상당히 좋아 상대를 슬쩍 살피는 것만으로도 건드려서는 안 될 사람을 단박에 간파해내곤 했다.
더욱이 준수한 겉모습만 봐서는 그 음흉한 속내가 드러나지 않아 더욱 위험한 자로 심지어는 창룡종 2세대 제자들도 함부로 그를 건드리지 않았다.
하늘을 가르며 날아가던 강인의 가늘게 뜬 두 눈이 천우주 가장자리로 향했다. 다른 주 사람이 있는지 살피기 위해서였다.
한데 바로 그때, 저 멀리 하늘에서 돌연 기이한 변화가 일어났다. 난데없는 균열 하나가 나타나더니 어스름한 빛을 번득이던 그 안에서 곧 한 사람이 튀어나온 것이다.
관을 하나 짊어지고 있는 이 인영은 순식간에 바닥으로 추락했다. 인영이 사라짐과 동시에 그가 나타난 균열도 사라진 상태였다.
눈 깜짝할 사이 벌어진 이 갑작스러운 변고에 강인은 흠칫 놀라 눈을 비볐다. 헛것을 본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내 그의 두 눈이 흥분으로 어스름하게 번득였다. 그러더니 관을 진 인영이 향한 곳으로 빠르게 몸을 날렸다.
“기이하고 위험한 곳에 보물이 있는 법!”
두청이 창룡종을 세우면서 남긴 말이자 모든 창룡종 제자들이 마음에 새기기도 한 이 말을 떠올린 강인은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 것을 느꼈다.
기이한 물건에는 반드시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고 위험이 있는 곳에 보물이 있기 마련이다.
강인은 최대한의 속도로 움직이면서도 신중하게 법보를 꺼내 몸을 보호했다.
전방에서 먹먹한 콰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좀 전의 인영이 저 멀리 자리한 산봉우리에 떨어져 내리면서 난 소리였다. 그 충격에 산봉우리 절반이 무너져 내리면서 돌 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뭉게뭉게 피어오른 흙먼지가 흩어지자 저 아래 쓰러진 채 꼼짝도 하지 않는 백발의 청년이 보였다.
“아주 강력한 육신이군!”
강인은 두 눈을 탐욕으로 번득이며 조심스레 그쪽으로 접근했다.
일단 주위를 몇 바퀴 돌며 신중하게 살피던 강인은 반 정도 무너져 내린 산봉우리로 천천히 다가갔다. 수백 척 앞에 쓰러져 있는 청년, 한제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서는 숨길 수 없는 흥분과 탐욕이 드러났다.
‘저토록 강력한 육신이라니! 고족 구역에서가 아니면 보기 드문 것 아닌가! 미간에 반점도 없고 고족 특유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면 고국 수련자는 아닌 듯한데 대체 어떻게 저런 강한 육신을 갖게 된 거지?’
강인은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진정시키며 입술을 핥았다. 그는 이것을 하늘이 자신에게 내려준 어마어마한 행운이라 여겼다.
‘생기가 거의 다 바닥나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군. 꼭두각시로 제련하기에 딱 알맞아! 이런 꼭두각시가 있으면 난 창룡종 2세대 제자들을 충분히 능가할 수 있을 터! 어쩌면 선조의 제자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