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38
노인을 비롯한 열 명의 수련자에게 가져온 법보들과 최고급 영석, 혼원구수권(混元驅獸圈)이 든 세 개의 저물대가 동시에 반짝거렸으나, 이는 한제가 공간의 균열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사라졌다. 마치 무형의 힘에 의해 저지당한 것 같았다.
한제는 그들이 절대 이 물건들을 그냥 주지는 않았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간접적으로 자신들이 통제할 수 있게 조치를 취해두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한제는 이것들을 얻은 후부터 줄곧 신중하게 굴었다. 균열 안의 신식을 끊어놓는 그 공백의 구역을 도피 수단으로 삼을 생각이었다.
한제의 몸이 그 균열의 공간 안으로 진입한 순간, 노인의 얼굴이 굳었다. 신식이 가로막혔음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 무렵, 탁삼의 입가에 걸린 비웃음은 한층 더 짙어졌다. 그는 뭔가를 중얼거리며 오른손 검지로 허공을 그었다. 순간 붉은색 빛을 발하는 원이 나타나더니 사방으로 확산됐다.
그의 오른손은 멈추지 않고 연이어 여러 개의 원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원들은 멀리까지 뻗어나갔다.
그를 감싸고 있던 불규칙한 도형이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노인은 한제에 대해서는 신경도 쓰지 못하고 불규칙한 도형을 유지하는 데 집중했다.
바다 생물 위에 서 있던, 마름모형 동공을 가진 남자는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이마를 두드렸다. 그러자 그의 몸이 둘로 나뉘었다.
그중 하나는 하늘로 솟구쳐 올라 열 명의 수련자들이 구성하고 있는 불규칙적인 도형에 닿았다. 그 순간, 두 손으로 결인을 하며 주문을 중얼거리자 그는 도형 안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그는 도형 안에서 눈을 번득이며 손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환영으로 만들어진 창 하나가 그의 손에 나타났다. 이 창의 외형도 발산하는 위압감도 탁삼의 것과 똑같았다.
환영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만 다를 뿐이었다. 그 남자는 곧장 그 창을 쥐고 탁삼이 있는 쪽으로 달려들었다.
불규칙한 도형 밖에는 그의 다른 분신이 떠 있었다. 그가 두 손으로 끊임없이 결인을 그리자 그 하나하나는 보라색 번개 공이 되어 그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점점 더 많아져가는 공 안에서는 번개가 번득이며 파괴적인 기운을 풍겼다.
그는 끊임없이 결인을 긋고 있었지만 마름모형 동공은 바다 생물의 수많은 비늘 중 어느 하나를 세밀하게 살피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아주 짧은 순간, 한제가 공간의 균열 안으로 사라진 그 찰나에 일어났다.
노인이 몸을 돌려 불규칙한 도형을 유지하는 데 정신을 쏟고 있던 그때, 바다 생물이 진을 이루고 있는 곳 밖에서 갑자기 균열 하나가 나타났다. 그리고 인영 하나가 빠른 속도로 튀어나왔다.
노인은 분노한 표정으로 불규칙한 도형을 유지하는 한편 오른손을 들어 검지로 허공을 그었다. 한데 노인은 공간의 균열을 가리키려던 순간, 표정이 살짝 변했다. 균열 안에서는 자신의 영혼과 연결된 법보의 느낌이 조금도 감지되지 않았다.
한편, 마름모형 동공을 가진 그 남자는 그런 점이야 어쨌건 신경도 쓰지 않고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곁에 있던 번개 공의 절반이 갑자기 튀어 올라 공간 균열 안에서 나온 인영에게로 돌진했다.
한데 그 인영은 한층 속도를 올리더니, 오히려 그 번개 공들 쪽으로 돌진했다. 그 속도가 너무도 빨라 순식간에 번개 공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쾅 소리가 이어진 후 인영이 흩어지더니 손바닥만 한 요괴로 변했다. 그 요괴 역시 번개 공의 이어진 공격에 흔적도 없이 흩어져 사라져버렸다.
또한 번개 공들이 터진 순간 검은색 회오리바람 네 개가 균열 안에서 쏟아져 나왔다. 휘휘 소리를 내는 회오리바람 안으로 한 인영이 보일 듯 말 듯 했다.
마름모형 동공의 남자는 의아한 눈으로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다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보기에 혼잡한 신식을 이용해 그들을 현혹시키기 위한 장치일 뿐, 그 회오리바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가 오른손을 휘두르자 번개 공의 일부가 다시 날아갔다. 이번에 그 번개 공들은 회오리바람을 피해 움직였다. 그것들의 목표는 공간의 균열이었다.
노인 역시 같은 생각인지 오른손을 휘둘러 균열을 가리켰다. 둘의 방해를 받지 않게 된 네 개의 회오리바람은 빠른 속도로 바다 생물을 향해 돌진해 눈 깜짝할 사이에 그 곁에 이르렀다.
그 무렵, 번개 공은 공간의 균열에 이미 닿아 있었다. 공간의 균열은 연이은 여러 차례의 폭발음과 함께 천천히 작아지더니 결국에는 사라져버렸다.
마름모형 동공의 남자는 흠칫 놀라는가 싶더니 두 손을 빠르게 휘둘렀다. 그러자 모든 번개 공들이 네 개의 회오리바람을 향해 돌진했다. 그와 동시에 탁삼과 전투를 하고 있던 그의 분신 역시 몸을 훌쩍 날려 그 회오리바람 쪽으로 향했다.
그때 층층의 포위 한가운데서 회오리바람을 주시하던 탁삼의 눈이 번득였다. 그는 자신을 향해 창을 든 채 돌진하고 있는 분신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웃으며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그의 몸이 펑 소리와 함께 한 뭉치의 피 안개로 변했다. 그 피 안개는 나타나자마자 곧장 흩어져 수천 갈래의 핏줄기가 되더니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그를 에워싸고 있던 불규칙한 도형이 깨져버리더니 거대한 폭풍이 되어 바깥쪽으로 퍼져나갔다.
펑! 콰, 콰, 콰쾅!
이 불규칙한 도형을 유지하고 있던 열 명의 수련자는 겁에 질렸다. 핏줄기는 그중 폭풍에 직격으로 공격을 당한 타목을 포함한 여섯 사람의 체내로 침투해 그들의 몸을 한 바퀴 돌면서 내장을 완전히 파괴한 후 그들의 정수리를 통해 빠져나왔다.
그 순간, 여섯 명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과 함께 푹 쓰러져 사해로 빠져버렸고 커다란 물보라가 일었다.
회오리바람을 추격하던 남자는 어쩔 수 없이 멈춰서고 말았다. 지금 그에게는 한제를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가 두 팔을 벌리자 회오리바람을 추격하던 번개 공들이 돌아와 핏줄기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그의 분신 역시 몸을 훌쩍 날리며 손에 든 창을 던졌다. 그 창은 한 마리의 검은 용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진 핏줄기들을 흡수했다.
폭풍으로부터 요행히 살아남은 노인을 포함한 네 사람의 얼굴에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탁삼에게 이런 수법이 있을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수천 갈래의 핏줄기는 번개 공과 검은 용의 공격 아래 갑자기 한데로 모여들더니 열 명의 탁삼으로 변했다. 그들의 위치는 각기 달랐는데 그중 한 명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곧장 네 개의 회오리바람이 있는 곳으로 빠르게 내달렸다.
나머지 아홉 개의 분신은 각각 멸신모와 그믐달 모양의 칼을 든 두 개의 분신이 내린 지휘에 따라 마름모형 동공을 가진 남자와 살아남은 네 명의 수련자에게 달려들었다. 눈 깜짝할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회오리바람을 뒤쫓던 분신이 손을 휘두르자 붉은색 빛이 그 손에서 번쩍이며 뻗어 나왔다. 네 개의 회오리바람이 모여들어 하나로 응집되더니 곧장 붕괴했고 그것을 이루고 있던 무수히 많은 작은 요괴의 신식은 사방으로 확산됐다. 그중 몇몇의 신식은 이미 그 바다 생물에게 이르러 있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회오리바람을 뒤쫓던 탁삼의 분신은 흠칫 놀라는가 싶더니 냉소를 지으며 두 손을 연이어 허공에 대고 두드렸다. 한 번 두드릴 때마다 작은 요괴의 신식들은 흩어져 사라졌다.
한데 바로 그때, 이미 바다 생물 앞에 도달한 작은 요괴들의 신식이 모여들어 요사스러운 빛을 발하더니 굉장히 빠른 속도로 폭발했다. 이 자폭은 연쇄적으로 이어져, 사방을 흘러넘칠 듯한 영력으로 가득 채웠다.
이 자폭이 시작된 순간, 바다 생물의 바로 옆에 한 줄기 공간의 균열이 나타났다. 뒤이어 하나의 그림자가 빠른 속도로 빠져나와 어디론가 향했다. 바로 한제였다.
다만 지금 그는 실체가 아니라 일종의 환영 상태로 비늘을 향해 달려들고 있는 것은 그의 몸을 떠난 신식이었다.
그가 나타난 순간, 탁삼의 분신과 전투를 하면서도 이쪽으로 접근하고 있던 마름모형 동공의 남자가 경련을 일으켰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한제의 신식을 노려봤다. 그 신식으로부터 기억의 유산의 기운이 느껴졌다.
진정한 전승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공간의 균열로 들어가기 전 저물대에 있던 법보들이 빛을 발하며 파괴적인 기운을 풍겼을 때, 한제는 경각심을 높였다. 그런 상황에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다시 달려들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에 그는 기억의 유산을 이용해 몸을 공간의 균열에 숨겨놓고 신식을 단절시키는 그 공간 안에서 법보들을 한참이나 자세히 살폈다. 그리고 그 법보들이 천천히 어두워지면서 파괴적인 기운 역시 천천히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한시름 놓았다.
그는 다시 공간의 균열을 열고 우선 작은 요괴에 자신의 모습을 덧씌워 시험 삼아 내보내 보았다. 노인과 마름모형 동공의 남자는 역시 한제 자신을 노리고 있었다.
바다 생물로부터 솟아 나온 그 남자가 탁삼에 필적할 만한 실력을 가진 것을 봤으니 감히 그에게 달려들 수는 없었다.
한참 고민하던 한제는 공간의 균열에 숨은 상태로 약간의 신식을 심어둔 네 개의 회오리바람을 내보냈다. 이들을 통해 탁삼 등을 관찰한 그는 탁삼이 기이한 신통술을 펼치는 것을 보고 자신의 결정이 옳았음을 알았다.
만약 노인의 말대로 봉인을 하려고 했다가 일이 잘못됐다면 자신 역시 탁삼의 손에 죽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탁삼은 곧이어 몇 개의 분신을 만들어냈고 그중 하나는 분명 자신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한제는 그들이 손을 쓰기 전에 회오리바람을 붕괴시켰고 그 안에 포함되어 있던 수많은 작은 요괴들을 사방으로 퍼뜨렸다.
이렇게 해서 그의 신식은 작은 요괴 몇 마리 안에만 남게 됐고 덕분에 발각될 가능성은 훨씬 줄었다.
한제는 자신이 경거망동하지 않는 이상 발각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발각될 경우에 대해서도 준비해둔 상태였다. 만약 상대가 자신의 신식을 발견하더라도 기껏해야 약간의 신식만 잃고 말 것이다.
어쨌든 작은 요괴들에 나눠 담은 그 신식의 역할은 길 찾기였다. 그는 작은 요괴들의 몸에 의탁한 신식을 통제하여 바다 생물에게 돌진했다.
그중 한 마리의 작은 요괴가 그 특정 비늘에 닿은 순간, 그는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똑똑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부르는 소리였다.
그 부름의 소리를 듣는 순간, 고대 신의 기억의 유산 중 일부가 마치 한제의 몸을 떠나갈 듯이 격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작은 요괴들의 신식을 자폭시키기로 결심했다. 한데 탁삼의 분신이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고 있음에 의아함을 느낀 한제는 이내 상대의 생각을 알아차렸다.
그는 상대의 생각을 역이용하기 위해 상대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 틈을 타 공간의 균열을 열고 신식을 내보내 번개처럼 움직였다.
한제의 예상은 정확했다. 그와 탁삼과의 수준 차이는 굉장했다. 눈앞에 있는 것은 분신 중 하나에 불과했지만 그 분신 역시 한제가 무시할 수 있는 존재는 결코 아니었다.
탁삼의 분신은 속으로 피식 비웃었다. 그는 방금 회오리바람 안에서 한제의 신식을 분명히 느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가 알고 있는 가장 강력한 신통술을 발휘하지도 않았을 터였다.
사실 탁삼은 이 신식의 사해에 들어온 순간 뭔가 이상함을 알아차렸다. 그와 기억의 유산 사이에는 어떤 연계도 없지만 서사로부터 떨어져 나온 사악한 생각인 만큼 그는 이 신식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허나 대체 어디가 이상한지는 명확히 알 수 없었다. 단순한 느낌에 불과했다.
바다 생물의 등장과 수하로 여겼던 수련자들의 배반도 그는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는 줄곧 그 이상한 느낌에만 신경을 썼고 마침내 한제가 공간의 균열에서 나타난 그 순간 모든 것을 알게 됐다.
이에 그는 신통술을 펼쳤으면서도 곧장 한제의 신식을 제거하지 않고 기다렸다. 그 탄혼이 대체 뭘 발견했는지 알고 싶어서였다.
한제는 바다 생물 위에 서 있었다. 그의 몸은 환영인 듯 흐릿했다.
탁삼의 분신은 한제의 발아래 놓인 비늘들을 주시하며 냉소했다. 그는 이제 여태까지 느꼈던 이상함이 그 비늘 때문이었음을 깨달았다. 비록 그중 어느 비늘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는 자신의 분신들이 합체한다면 상황을 명백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제 한제는 더 이상 가치가 없었기에 그는 앞쪽에 두 손을 교차시킨 채 검지와 엄지를 붙여 마름모를 만든 뒤 담담하게 말했다.
“소멸!”
한제는 자신의 신식이 처음으로 비늘에 닿은 순간, 완전한 기억의 유산이 묻혀 있는 곳에는 어떤 육신도 닿을 수 없으며 오직 신식만이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기억을 떠올렸다.
그 사실 덕분에 한제는 과감하게 신식을 몸 밖으로 빼냈다. 만약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진정한 기억의 유산이 있는 곳에 들어가는 최초의 사람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만약 정말 그렇게 된다면 완전한 기억의 유산을 손에 넣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리라.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한제는 가슴이 뛰었다.
그는 탁삼의 분신이 날린 공격도 피하지 않았다. 그의 신식은 마치 구름처럼 사방으로 퍼졌다. 그 중앙에서는 ‘고신결’이라는 황금빛 글자가 번쩍였다.
탁삼의 분신은 처음으로 놀란 표정을 드러냈다. 분신끼리의 감응을 통해 전투를 벌이고 있던 다른 분신들도 모두 이쪽을 바라보았다.
금빛으로 번쩍이는 세 개의 글자를 멍하니 바라보던 분신의 몸이 덜덜 떨렸다. 그와 동시에 그 아홉 개의 분신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일제히 한제가 있는 곳으로 내달렸다.
거의 눈 깜짝할 순간이었다. 마름모형 동공을 가진 남자는 기이한 눈빛을 번득이며 두 개의 분신을 합쳐 탁삼의 분신을 뒤쫓았다. 미친 듯한 웃음을 터뜨리며 그가 외쳤다.
“탁삼, 누구든 주인이 남긴 기억의 유산을 가질 수 있지만 너만은 안 된다. 거기 있는 녀석아, 네 운이 어떤지 보자꾸나!”
그의 마지막 말은 분명 한제를 향한 말이었다. 그는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과감한 결심을 내렸다. 돌이킬 수 없는 대가를 필요로 하는 결정이었다.
그는 오른손을 미간에 대고 다급하게 외쳤다.
“분신을 바치노니, 기억의 유산이여, 돌아라!”
그의 분신이 바르르 떨리더니 손에 들려 있던 환영의 창과 함께 점점이 빛으로 변해 사해의 땅에서 흩어져버리고 말았다.
한제에게서 가장 가까이에 있던 탁삼의 분신이 닿은 순간, 한제의 신식은 확산되던 상태에서 마치 강력한 흡인력이 잡아당긴 것처럼 갑자기 수축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비늘 안으로 사라져버렸다. 또한 남자의 입에서 ‘돌아라’라는 말이 나온 순간, 그 비늘은 펑 하고 쪼개지면서 자취를 감춰버렸다.
펑!
탁삼의 분신은 마름모형 동공의 남자를 향해 분노의 포효를 내질렀다. 열 개로 나뉘었던 분신이 하나로 합쳐졌다. 바람도 없는데 붉은 머리가 흩날렸고 그의 두 눈에서는 타오르는 듯한 분노가 이글이글 거렸다.
“이제 그 녀석이 기억의 유산과 융합하는 데 실패하지 않는 이상 다음 1천 년 동안 탁삼 네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게 됐구나!”
마름모형 동공의 남자가 껄껄 웃었다.
한편 한제는 그의 신식이 그 비늘에 흡수된 직후 안개가 가득한 세상으로 떨어지게 됐다. 이곳에는 하늘도 땅도 없었다. 보이는 곳곳에는 그저 끝없이 뿌연 안개만 가득할 뿐이었다.
부드러운 빛을 발산하는 옅은 푸른색의 얼음 결정이 구름 사이에서 부유하고 있었다. 각각의 크기는 달랐지만 대략 1백 척 정도로 총 94개였다.
신식으로 훑어보던 한제는 그중 다른 것들보다 훨씬 작은 얼음 결정 하나를 발견했다. 한제에게 굉장히 익숙한 그것은 당초 천마산인이 전력을 다해 통로를 연 뒤 얻은 그 얼음 결정이었다.
한제는 눈을 번득였다. 그는 이제야 이 기억의 유산은 하나가 아니라 총 94개의 얼음 조각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게 됐다. 그렇다면 한제가 이전에 흡수했던 그 부분은 이 수많은 얼음 조각 중 하나에 불과한 셈이었다.
한제는 우선 익숙한 그 작은 얼음 결정 쪽으로 움직였다.
그의 신식이 그 얼음 조각에 닿은 순간, 얼음 조각은 빠르게 녹아내리더니 그대로 한제의 신식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풍만한 기억이 끊임없이 한제의 신식 속에서 울렸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울리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고 한제의 신식은 굽이치는 안개처럼 잔잔한 물결을 이루었다.
알아듣기 어려운 주문들과 변화막측한 결인, 조각조각의 기억들이 휘몰아치면서 한제의 신식은 갈래갈래 찢겼다가 재구성됐다.
이런 과정이 몇 차례 반복되면서 참기 어려울 정도로 격렬한 고통이 밀물처럼 한제에게 밀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