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384
하지만 광인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흠⋯⋯.”
황포 사내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뒤로 거대한 태양의 허상이 나타나 대전을 뒤덮더니 바깥쪽으로 뻗어 나갔다. 멀리서 보면 이 황궁의 하늘에 금색 태양 하나가 떠올라 무궁무진한 빛을 발산하고 있음을 똑똑히 볼 수 있을 터였다.
“연도비, 일어나라!”
중년 사내는 다시 손을 광인의 가슴팍에 얹었다. 금빛 선력이 또 한 번 광인의 체내로 밀려들었다.
이번에는 머리로 돌진한 선력은 눈 깜짝할 사이 광인의 머리 부분에서 막혀 있던 경맥과 혈관을 모두 뚫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아주 오랫동안 축적되어 있던 탁한 기운이 그대로 흩어져 사라졌다.
“⋯⋯형님.”
서서히 혈색이 돌아온 광인은 두 눈을 번쩍 뜨더니 기쁨과 놀라움이 섞인 탄성을 내질렀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피를 토하고는 다시 의식을 잃었다.
황포 사내의 구겨졌던 미간은 천천히 풀렸고 그의 뒤로 나타났던 태양의 허상도 천천히 사라졌다.
“연도비를 편히 쉬게 하라. 저 여인도 함께 쉴 수 있게 하도록!”
엄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대전에서 두 갈래의 금색 기운이 피어오르더니 두 여인으로 변했다. 여인들은 황포 사내에게 허리를 숙여 절을 한 뒤 혼수상태에 빠진 광인과 여인을 데리고 대전을 빠져 나갔다.
“실종되었던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렇게 중상을 입었단 말인가. 게다가 혈맥의 힘도 한층 줄어들었어. 깨어나면 제대로 물어봐야겠군.”
사내는 다시 용상에 앉아 두 눈을 감고 고민에 빠져들었다.
강력한 자양강장제
한제는 가부좌를 튼 채 호흡을 가다듬으며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불바다를 일으켰다. 타오르는 불바다에 휩싸인 한제 뒤로 거대한 주작이 어렴풋이 나타나 주위를 맴돌았다. 그러자 불바다는 더욱 격렬하게 타올랐다.
선강 대륙에 이른 후로 줄곧 등에 짊어지고 있었던 피천관은 새로 만든 체내의 저물공간에 거두어둔 상태였다.
한제가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자 주위를 감싼 화염은 곧장 왜곡되기 시작하더니 일곱 갈래로 나뉘었다. 그리고 그렇게 형성된 일곱 마리의 화룡은 곧장 한제의 왼쪽 눈으로 달려들었다.
찰나의 순간 그 화염을 흡수한 왼쪽 눈동자에 화염 형태의 낙인이 번득였다. 깜빡거리는 낙인은 아무런 불빛도 없이 어두운 동굴 안에서 매우 도드라졌다.
“내 화염의 본원은 이미 응고됐어. 동부계에 있을 때보다 더 짙어졌지. 하지만 선강 대륙 천우주의 지화와는 아무래도 맞지 않아. 두 화염 사이에는 반드시 주종 관계가 성립되어야 해. 그러지 않으면 같은 화염의 본원을 가진 자와 맞설 때 불리해질 거야.”
한제가 선강 대륙에 온 지도 벌써 한 달이 훨씬 지났다. 그동안 그는 점차 더 많은 것들을 알아갔다.
동부계에서 화염의 본원은 세상 모든 화염을 통제할 수 있었다. 한제는 화염의 제왕처럼 화염의 본원이 소모될 것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호흡만으로도 빠르게 화염의 본원을 보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강 대륙에서는 달랐다. 화염의 본원 역시 이곳에서는 외부의 존재였다. 때문에 화염의 힘을 보충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따랐다. 수준이 높지 않은 상대에게는 그다지 문제될 게 없지만 강자와의 싸움에서는 치명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창룡종에서 그가 지화맥의 혼을 뽑아낸 것도 겉으로 보기에는 어땠는지 몰라도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사실 창룡종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지화맥의 혼을 뽑아낼 필요까지는 없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한 것은 이곳의 지화가 자신의 화염의 본원과 얼마나 맞지 않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한데 그 둘 사이의 거부 반응은 매우 강했다. 그것을 억지로 통제해 창룡종에서 빠져나온 뒤로 한제는 지화의 혼에 거의 흡수당할 뻔했다. 가까스로 진압에 성공하자 지화맥의 혼은 땅속으로 녹아들어 사라졌다.
“이곳 지화의 저항력이 너무 강해. 선강 대륙의 화염이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나도 굳이 인정받으려 들지는 않겠다. 대신 진압하고 융합해 스스로를 강하게 만들면 그만이야!”
두 눈을 서늘하게 번득이던 한제는 차게 코웃음을 치며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원신을 왼쪽 눈에 녹여 넣어 화염으로 이루어진 주작으로 만들었다. 이 주작은 한제의 왼쪽 눈에서 순식간에 튀어나왔다.
한제 원신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는 주작은 동굴 안을 열기로 채우다가 지면을 뚫고 들어갔다.
천우주 전역에 널리 퍼져 있는 줄기줄기 지화의 맥은 모든 산봉우리 아래에서 이글거리고 있었다. 이에 한제의 원신은 땅속으로 파고들자마자 작열하는 듯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주작이 된 그가 아래로 질주하는 사이 그의 몸에서 발산되는 열기가 지화에 대항했다.
땅속으로 진입한 것은 그의 원신이었기 때문에 지금 그는 육신을 통해 보고 느낄 수 있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을 보고 느꼈다. 예컨대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라고는 불꽃뿐이었다. 마치 화염으로 이루어진 세계 같았다.
그렇게 깊은 곳으로 파고들자 저 멀리서 무언가가 포효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소리였지만 원신은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전방에서 훅 끼쳐오는 열기가 더욱 짙어졌다. 마치 모든 법보를 녹이고 생명과 원신을 불사를 듯한 열기였다.
한제의 두 눈에는 그 포효에 도전하려는 듯한 의지가 어렸다. 두 종류의 서로 다른 화염은 마주치자마자 충돌할 것이 분명했다.
포효가 들려오자 주작이 된 한제 역시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냈다. 주작명(朱雀鳴)은 화염으로 이루어진 땅속 세상에서 예리한 검처럼 퍼져 나가며 방금 전 포효가 울린 곳을 향해 달려들었다.
엄청난 속도로 땅속을 파고든 한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포효의 근원지에 다다랐다.
포효의 근원은 길이가 수십만 척에 달할 듯한 화룡이었다. 녀석은 온몸으로 붉은 빛과 함께 포악한 기운을 발산했다. 똬리를 튼 화룡은 거대한 눈으로 주작이 된 한제를 뚫어져라 응시하다가 우렁찬 포효를 내질렀다.
“크오오오!”
땅속 깊은 곳에서 한 마리 용과 한 마리 주작이 대치하며 서로를 집어삼키려 들었다. 충격적인 광경이었지만 신식으로는 확인할 수 있어도 눈으로는 바로 앞에 있다 해도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이곳에서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얼마나 길게 뻗어 있는지 짐작도 안 될 만큼 거대한 화염광맥뿐이었다. 어마어마한 열기를 발산하는 붉은 광맥은 땅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었다. 그리고 이 거대한 광맥이 바로 방금 포효한 화룡이었다. 말하자면 이 화룡은 이곳 지화맥의 혼이었다.
마찬가지로 이곳을 육안으로 살폈을 때 한제의 주작은 이 지화와는 다른 종류의 화염으로만 보일 것이었다.
두 화염은 공존할 수 없었다. 반드시 하나가 다른 하나를 융합해야만 했다.
포효하던 화룡이 몸을 날렸다. 이글거리는 불바다가 바깥쪽으로 퍼져 나가며 주작이 된 한제를 휩쓴 순간, 화룡은 주작을 집어삼키려는 듯 입을 쩍 벌린 채 달려들었다.
주작이 된 한제는 눈을 번득였으나 물러나지는 않았다. 저 화룡은 주맥도 아닌 작은 지맥의 혼에 불과하다. 한제가 물러날 이유는 없었다.
“캬오오오!”
날카로운 소리를 내지르며 달려든 주작은 화룡의 거대한 입을 뚫고 들어갔다.
“이 세상 모든 불은 이 이한제의 명에 따르고 이 이한제를 주인으로 모셔야 한다! 선강 대륙의 화염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한제의 신식이 화염을 타고 땅속 깊은 곳에서 울려 퍼졌다.
주작을 삼킨 화룡은 고통스러운 듯 몸을 뒤틀었다. 녀석의 체내에서 발산되던 화염은 천천히 눈을 감은 주작의 허상으로 변해갔고 이윽고 화룡을 완전히 뒤덮을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해진 주작은 점차 또렷해져갔다.
그러는 와중에도 녀석은 끊임없이 화룡의 체내에서 발산된 화염을 흡수하며 몸집을 불렸다. 이에 따라 화룡의 포효는 점점 허약해졌으나, 그럼에도 계속해서 몸부림을 쳤다.
콰르릉!
한제의 육신이 있는 산이 진동했다. 요동치던 지면에는 줄기줄기 거대한 균열이 나타났고 그 사이로 지화가 분출되어 모든 것을 불살랐다.
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분출되던 지화는 2각 만에 사그라들어 땅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땅속 깊은 곳에서는 화룡의 몸부림이 천천히 멎어가다가 결국 완전히 실체화된 주작으로 뒤덮였다. 그때, 주작의 눈빛은 서늘하게 빛났다.
“지화맥의 혼 하나를 흡수한 것만으로 화염의 본원이 이렇게 커지는군!”
불바다가 되어 위로 솟구쳐 오르던 주작은 한제가 가부좌를 튼 동굴에 나타나 그의 왼쪽 눈으로 들어갔다.
원신을 되찾은 한제는 온몸을 바르르 떨며 두 눈을 떴다.
“나한테는 보기 드문 영약이야!”
한제의 두 눈이 기이하게 번득였다.
“지화맥에 변화가 일어났으니 분명 이쪽으로 시선이 몰릴 터. 더는 이곳에 머무를 수 없겠군.”
한제는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소매를 휘둘렀다. 그가 동굴 안에 남겨두었던 모든 금제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한제는 이곳에 자신을 쫓을 수 있는 그 어떤 단서도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특히 자신이 금제에 뛰어나다는 사실도 숨기고 싶었다. 이 낯선 대륙에서는 최대한 비밀을 유지할수록 유리할 수밖에 없다. 이에 한제는 소매를 휘둘러 화염을 일으키더니 동굴 안을 완전히 불태웠다. 이제 그에 관한 흔적은 하나도 남지 않았을 터였다.
뒤처리를 마친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허공에 섰다. 한낮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밝았다.
선강 대륙의 기운을 들이마시던 한제는 어딘가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의 속도는 한층 빨라진 상태였고 온 힘을 다한 덕에 눈 깜짝할 사이 1만 리 이상을 이동할 수 있었다.
★ ★ ★
한제가 떠난 지 사흘 때 되던 날, 길게 이어진 산맥 상공에 줄기줄기 빛이 모여들었다. 그중 선두의 빛 안에는 두청이 있었다.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산봉우리를 내려다보다가 오른손을 들어 아래로 꾹 눌렀다.
콰쾅!
우렁찬 소리와 함께 대지에서는 굵기가 1천 척에 달하는 거대한 나무 팔이 하나 튀어나왔다. 흙을 파헤치고 나온 나무 팔은 화염에 휩싸인 채 산봉우리를 후려쳤다.
콰르릉!
산봉우리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렸고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사흘 전 이곳의 지화가 기이한 변화를 보였다. 이한제라는 그자가 여기 숨어 있었던 거야! 젠장, 이제 와서 그자를 따라잡을 수는 없을 터.’
살기 어린 눈빛을 번득이던 두청은 소매를 휘두르며 명했다.
“당장 흩어져서 탐색해! 천우주 밖으로 나가지는 않았을 게다!”
뒤이어 두청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또다시 숨었다면 찾기가 쉽지는 않을 거야. 대혼문에 도움을 요청해야겠군.’
사실 한제로서는 이들을 피할 생각은 없었다. 만약 그가 정말로 숨으려 했다면 이보다 훨씬 더 먼 곳의 산속에 파고들어 10년은 두문불출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후환도 자연스레 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가 이곳을 떠난 가장 큰 이유는 화염의 본원을 강화할 수 있는 강력한 영약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 ★ ★
한제는 하늘을 가로지르는 한편 신식을 펼쳐 대지에 드리웠다.
“천우주에는 지화맥이 아주 많고 넓게 퍼져 있다. 수천 갈래는 훌쩍 넘을 터. 그것들을 모조리 흡수하고 나아가 중심 줄기까지 흡수한다면 내 화염의 본원은 동림지에 들어갔을 때와 같은 변화를 맞게 될지도 몰라!”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한제는 숨이 약간 가빠졌다.
한제는 지금껏 천우주에 흐르는 지화맥을 흡수하려 했던 사람은 없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대신 화염의 인정을 받고 본원을 깨달아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가 됐을 것이다.
만약 그들이 특정한 수준에 이르고 본원을 강화한다면 화염의 제왕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허나 그런 방식으로는 화염의 제왕이 된다 해도 한제와의 차이가 클 터였다.
한제는 이곳 출신도 아니고 그의 화염의 본원 또한 이곳에서 얻은 깨달음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었다. 또한 그는 지화의 인정을 받은 적도 없다. 그러니 그는 필연적으로 지화의 저항력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늘의 뜻에 순응하느냐 저항하느냐의 차이와도 같았다. 그렇기에 한제는 지화맥의 혼을 흡수하고 화염의 본원을 강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