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386
나흘 뒤.
콰르릉!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한 마리 화룡이 천천히 흩어져 사라졌으며, 거대한 주작이 지면을 뚫고 나와 내달렸다.
그리고 반 시진 뒤, 멍한 얼굴의 두청이 그곳에 이르렀다.
“…열여섯 개.”
두청은 이제 그 이한제라는 자가 지화맥의 혼으로 이루어진 존재는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 ★ ★
이틀 뒤, 천우주 북부. 수많은 산이 긴 산맥을 이룬 채 뻗어 있었지만 그 산들에 식물이라고는 하나도 없었고 온통 검은 민둥산뿐이었다. 지면 역시 바짝 말라 있었다.
매우 외져 찾아오는 자도 거의 없는 곳이었다. 때문에 이곳은 항상 적막했지만 지금은 우렁찬 포효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크오오오!”
화룡의 포효였다.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달리 이 화룡의 포효는 실체를 갖춘 듯 온 세상을 진동하게 해 한제뿐만 아니라 생명체라면 누구나 들을 수 있었다. 실체로 응결될 만큼 강력한 혼이 내는 진정한 소리였기 때문이었다.
이 화룡은 한제가 처음으로 흡수에 실패한 지화맥의 혼이기도 했다. 거대한 주작이 산맥 안쪽에서 춤을 추듯 날아오르자 그 머리에 선 한제는 고개를 홱 돌렸다.
그의 뒤로 산과 땅이 요동치면서 대지 곳곳이 대대적으로 꺼져버렸다. 심지어 산봉우리 역시 터져버리면서 머리통만 해도 수십만 척에 달하는 거대한 화룡이 거칠게 포효하며 튀어나왔다.
이 화룡은 분명한 지화맥의 혼이었지만 너무나 실체에 가까웠다. 이곳의 지화맥이 보통의 지화맥을 훨씬 능가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 지화맥은 지맥이 아니라 자맥(子脈)이로구나!”
한제의 두 눈이 반짝였다. 일찍이 이곳을 훑어보았을 때부터 짐작은 하고 있던 그는 혼의 모습을 확인하자 확신할 수 있었다.
지화맥의 주맥 하나에서는 수많은 지맥이 뻗어 나와 나무의 가지처럼 줄기와 연결되어 있었다.
하지만 자맥은 달랐다. 어쩌면 한참 전에는 주맥과 연결되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결국 분리되어 나온, 독립된 존재였다. 이런 자맥은 주맥의 자식과도 같아 강약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다.
“천우주에 이런 자맥이 몇 개나 있을지 모르겠군. 많지는 않을 거야. 자맥 하나를 흡수하는 건 수많은 지맥을 한꺼번에 흡수하는 것과 같다.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한제를 태운 주작은 울부짖으며 하늘을 선회하다가 곧장 몸을 돌려 포효하고 있는 화룡에게로 달려들었다.
이곳의 화룡은 매우 거칠었다. 흘러넘칠 듯한 화염이 녀석의 온몸에서 발산되어 순식간에 하늘을 뒤덮었다. 반경 수만 리까지 퍼져 나간 화염은 이미 한제와 주작까지 뒤덮은 상태였다.
두청의 충격
화염으로 봉쇄된 사방에서는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호흡할 수 있는 기운을 모조리 불사름과 동시에 시야마저 왜곡시킨 화염 때문에 공간은 매우 흐릿했다. 오직 거대한 화룡만이 잔인하고 포악한 눈빛을 번득이며 한제와 주작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 자맥의 혼은 매우 컸고 공현기 중기 수준에 이르러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제를 물러나게 하지는 못했다. 한제는 결인을 그린 오른손으로 화룡을 가리켰다.
“열여섯 개 지화 지맥의 혼이여, 이한제의 이름으로 명한다. 나와라!”
한제의 말이 떨어진 순간 자맥의 혼을 향해 달려드는 주작 주위로 열여섯 마리의 화룡이 나타났다. 이 화룡들은 포효를 내지르며 주작을 둘러싼 채로 자맥의 혼을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저 멀리 하늘에서 긴 빛이 날아들었다. 마침내 한제를 따라잡은 두청이었다.
그는 반경 수만 리를 뒤덮은 화염을 보았고 그 안에서 울려 퍼지는 우렁찬 용의 포효를 들었다. 그 순간, 그는 몸을 바르르 떨었고 소년이었던 그의 얼굴과 몸에 한 줄기 균열이 나타났다. 어스름한 빛이 흐르는 균열 안으로 보라색 목각 인형이 보였다.
목각 인형이 된 그의 체내에서는 한 줄기 화염이 발산되어 확산되더니 주위를 맴돌았다. 하지만 목각 인형은 그 화염에도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이 화염은 두청이 가진 화염의 본원으로 그의 통제를 벗어나 제멋대로 나타난 것은 지화 자맥의 혼인 화룡의 포효는 천우주의 화염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보통의 지맥이라면 모를까, 주맥과 큰 차이가 없는 자맥은 그만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리고 두청은 천우주의 화염이 인정한 본원을 가진 수련자였다.
표정이 급변한 두청의 시선이 저 멀리 화염 속으로 어렴풋이 드러난 주작에게 닿았다. 주작은 열여섯 마리의 화룡으로 휩싸인 채 자맥의 혼을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또한 그 주작의 머리에는 백발 사내가 서 있었다. 그의 하얀 옷은 붉은 화염 속에서도 눈에 확연히 들어왔고 그 뒷모습만 보았을 뿐인데도 어마어마한 위엄을 느낄 수 있었다.
“그자다!”
두청의 눈이 반짝였다.
“이곳의 지화는 보통의 지화가 아니야! 저자라도 이번에는 쉽지 않을 터! 저자를 죽이기에는 지금이 적기다!”
두청은 결단을 내린 듯 몸을 훌쩍 날려 화염을 향해 달려들었다.
한편, 화염 속의 한제 역시 두청의 존재를 감지하고 있었다. 특히 상대가 목각 인형으로 바뀐 순간부터 그 기운을 더욱 똑똑히 느꼈다.
허나 어차피 머지않아 두청에게 따라잡힐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한제는 당황하기는커녕 심지어 달려드는 두청에게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는 그저 열여섯 마리 화룡에 휩싸인 주작에 올라탄 채 지화 자맥의 혼을 흡수하는 데 주력했다.
지화 자맥의 혼과 먼저 충돌한 것은 열여섯 마리의 화룡이었다.
콰쾅!
충돌이 일어난 순간, 요란한 소리와 함께 주작 머리 위에 선 한제가 결인을 그린 오른손을 앞쪽으로 뻗었다. 그러자 열여섯 마리 화룡은 곧장 표효하며 사슬처럼 지화 자맥의 혼을 옭아맸다.
“크오오오!”
지화 자맥의 혼은 몸부림치며 우렁찬 포효를 내질렀다.
그때, 한제를 태운 주작이 날카롭게 울부짖으며 몸을 날렸다. 그러더니 눈 깜짝할 사이 그 거대한 몸으로 자맥의 혼을 뒤덮고 삼키기 시작했다.
두청은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에 마치 물 흐르는 듯 자연스러운 한제의 공격을 거의 넋을 놓고 지켜보았다.
그러는 동안 지화 자맥의 혼은 몸을 마구 뒤틀며 끊임없이 포효했다. 거칠게 일그러진 녀석의 얼굴에는 고통이 가득했다. 그 와중에도 주작의 모습은 점차 또렷해졌고 그 머리 위에는 한제가 꼿꼿하게 서 있었다.
한제는 열여섯 마리 화룡으로 이루어진 사슬을 향해 왼손을 뻗었다. 멀리서 보면 꼭 그가 그 사슬을 단단히 움켜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글거리는 화염 속, 한제는 화염의 제왕 같았고 그의 발을 받치고 있는 용은 굴복하여 그의 왕좌가 된 것 같았다.
“크아아아!”
온 세상을 뒤흔들 듯 요란한 용의 포효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제야 정신을 차린 두청은 화염 속 한제를 향해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두청이 가까이 다가온 순간, 한제가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그의 발아래 굴복한 거대한 화룡 역시 한제의 손에 쥐어진 사슬 때문에 고개를 들어 포효했다. 그 격렬하고도 우렁찬 소리는 화염의 파문을 일으켜 사방으로 퍼뜨렸다.
그와 동시에 무궁무진한 화염의 힘이 한제가 쥔 열여섯 개의 사슬에서 뿜어져 나와 그의 체내로 스며들었다. 또한 그의 발을 받친 화룡의 체내에서는 주작의 울음소리도 터져 나왔다. 주작의 울음소리에 담긴 화염의 힘 역시 자맥의 혼을 타고 한제의 체내로 전해졌다.
그 상태로 한제는 오른손을 들어 올려 가볍게 허공을 후려쳤다. 그 손짓에는 그의 체내에 담긴, 전보다 몇 배는 강력해진 화염의 본원이 응집되어 있었다. 그 위력은 동부계에 있었을 당시 한제가 가지고 있던 일곱 개의 본원을 동시에 발휘했을 때에 비견할 수 있을 정도였다.
콰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주위를 뒤덮었던 불바다가 빠르게 수축하더니 순식간에 응집됐다. 그리고 한제의 체내에서 뿜어져 나온 화염의 힘과 융합해 거대한 손바닥을 형성했다.
장문과 지문까지 또렷한 이 손바닥은 바로 한제의 오른손이었다. 길이가 수천 척에 달할 듯 거대한 손바닥은 쉭 소리를 내며 스치는 모든 생명을 불사르면서 두청을 향해 돌진했다.
“헛!”
눈동자가 바짝 졸아든 두청은 재빨리 오른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그러자 그의 사방에 왜곡이 일어나 회오리로 바뀌더니 요란한 소리와 함께 회전했다. 회오리 안에서는 나무로 만들어진 거대한 팔 하나가 쑥 빠져나와 한제가 날린 손바닥과 충돌했다.
설명은 장황했지만 찰나의 순간 벌어진 일이었다.
콰쾅!
두 손바닥이 충돌한 순간, 요란한 소리와 함께 어마어마한 충격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한제의 손바닥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지만 동시에 불바다를 형성해 두청이 소환한 나무 팔을 휩싼 채 타올랐다.
“윽!”
두청은 신음을 토하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나더니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한제는 여전히 덤덤한 표정으로 용의 머리에 꼿꼿이 서 있었다. 그러나 거대한 용은 바르르 경련했고 이내 대대적으로 붕괴하기 시작했다. 한제가 두청의 공격에 담긴 위력과 충격을 모조리 지화 자맥 화룡에게 전가했기 때문이었다. 중상을 입었지만 아직 완전히 흡수되지는 않은 지화 자맥 화룡을 두청의 힘을 빌려 공격한 것이다.
“크아아아!”
화룡은 찢어질 듯한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밀려나면서 끊임없이 무너져 내렸고 무너진 부분은 체내 주작의 허상에 흡수됐다.
두청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그 역시 상대가 자신의 힘을 빌려 지화 자맥을 흡수하려 한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그때, 한제의 서늘한 두 눈이 비로소 두청에게로 향했고 두 사람의 시선은 처음으로 맞닿았다.
사실 한제는 이번 공격으로 두청의 수준을 확인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는 상대의 수준이 공겁기 초기가 아니라 아직 현겁을 통과하는 중임을 확신했다. 장존보다는 약간 강했지만 칠채도인이나 전가 노인에 비하면 한참 부족했다.
반면 두청은 한제를 조금도 간파하지 못한 상태였다.
‘기운으로 보자면 아직 공현기는 아니고 공령기 절정에 이르러 있는 듯하군. 한데 그렇다면 방금 공격으로 저자의 몸은 무너졌어야 해. 허나 대부분의 충격을 화룡에게 전가하다니, 저자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안 가는군. 그렇다면 공령기 절정 그 이상일 터. 수준을 숨기고 있는 게로군.’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파악해나갔다.
본래도 신중한 편인 데다가 지금껏 추격해오는 동안 생긴 경계심 때문에 두청은 망설였다.
“넌 누구냐? 어찌 우리 창룡종을 파괴했느냐!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면 용서치 않을 것이다!”
두청은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 제자 하나가 이 이한제를 꼭두각시로 제련하려 했다. 그럼에도 건물 몇 개만 파괴했을 뿐 누구도 죽이지 않았으니 나로서는 은혜를 베푼 셈이다.”
한제는 왼손에 쥐고 있는 열여섯 개의 사슬을 흔들었다. 순간 그의 발아래에서 화룡이 날카롭게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녀석의 몸은 더욱 격하게 무너져 내렸고 그 안에서는 주작의 허상이 더욱 또렷해졌다. 금방이라도 자맥 화룡을 모조리 흡수할 것만 같았다.
이 광경을 목격한 두청의 몸에 왜곡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다시 목각 인형으로 변하려는 모양이었다. 지화 자맥의 혼이 내지르는 비명이 체내 화염의 본원을 마구 뒤흔든 것이다.
“허튼 소리! 창룡종의 제자 수천을 죽여 놓고 누구도 죽이지 않았다고?”
두청은 냉소했으나 눈으로는 한제가 밟고 선 화룡을 살폈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망설임이 다시금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에게 한제는 너무도 비밀스럽고 예측할 수 없는 존재였다. 두청은 그를 쫓는 동안 이미 상대를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잃게 됐다.
한편, 한제는 두청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지화 자맥의 혼을 흡수할 뿐이었다.
“크오오!”
그 순간, 화룡이 또 한 번 격렬하게 포효하자 두청의 온몸에서는 화염이 피어올랐다.
통제를 벗어난 화염의 본원에 놀란 두청은 이윽고 결심했다. 공격에 나서지 않는다면 화염의 본원은 지화의 명령에 따라 자신에게 거부 반응을 일으킬지도 몰랐다.
“왜 대답이 없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