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391
청우 진인에 대해 언급할 때 두청의 얼굴에서 드러난 두려움의 기색을 읽은 한제는 그 이름을 똑똑히 기억하기로 했다.
“나도 나름 강자라 자부하네만 대혼문에서는 외래 장로일 뿐. 선배 중 한 분이 그곳의 장로인데 내가 대혼문의 비호를 받을 수 있는 건 그런 이유들 때문일세. 이 도우, 자네는 대천존의 법보를 가지고 있으니 대혼문은 분명 자네를 극진히 맞이할 게야. 허나 그렇다고는 해도 지화의 주맥을 건드렸다가는⋯⋯.”
두청은 말끝을 흐렸다.
한제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그는 대혼문의 수련자 둘을 알고 있었다.
“대혼문 제자 중 반산로와 반산몽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나?”
한제가 두청을 향해 물었다.
“반산몽!”
두청의 표정이 급변했다.
“반산몽이라는 이름은 들어본 적 있네. 대혼문의 두 천재 중 하나이자 핵심 제자라는 반산몽 말인가? 자네 그녀를 아는가?”
“들어본 적은 있지.”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화제를 바꾸었다.
“귀일종은? 그 종파 역시 천우주에 있을 텐데… 대혼문과 비교하면 어떤가?”
수준이 높은 편은 아닌 강인의 기억에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기에 한제는 두청을 통해 상황을 파악할 생각이었다.
“귀일종도 강력하지. 지금은 아마 대혼문을 조금 능가했을 걸세. 9종 13문의 순위도 변하고 있지. 최근 귀일종에서는 운일봉이라는 수련자가 이름깨나 날리고 있거든. 수준도 높고 타고난 자질도 훌륭하다더군. 현재 천우주에서 늙은이들을 제외하면 그가 아마도 가장 강력할 거야! 만나본 적이 있는데 과연 명불허전이더군.”
두청은 운일봉이 검을 한 번 휘둘러 대혼문의 여러 사람을 해치우는 것을 직접 본 적 있었다.
“한데 재미있는 일이 있었네. 운일봉이 일전에 이런 말을 했지. 고작 2천여 년밖에 수련하지 않았지만 운일봉 자신도 그 앞에서는 감히 검조차 뽑아 들 수 없는, 동주의 4대 천재조차 결코 대적하지 못할 자가 있다더군. 엄청난 파란을 일으킨 말이었지. 벌써 오래 전 이야기로군.”
두청은 자기 말에 빠져 한제의 두 눈이 살짝 번득이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아마도 거짓이겠지. 난 못 믿겠네. 세상에 어떻게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겠나? 어떻게 고작 2천여 년밖에 되지 않은 수련자가 그런 강자가 될 수 있겠어? 실제로 그런 인물이 있다면 진즉 이름을 날렸을 테고 대천존 중 하나의 제자로 거둬졌을⋯⋯.”
그 순간, 두청은 무언가를 퍼뜩 떠올린 휘둥그레진 눈으로 한제를 돌아보았다. 바짝 졸아든 눈동자는 마구 흔들렸다.
“천우주에 화염의 맥이 있다면 부근의 다른 주에는 천둥의 맥을 가진 곳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한제는 자연스럽게 화제를 바꾸었다.
“그⋯⋯ 내 평생 가본 곳이라고는 운도주(雲濤洲)와 강양주(康陽洲), 영신주(寧神洲)뿐이라네. 동주의 절반도 가보지 못한 셈이지. 한데 그중 뇌맥(雷脈)이 있었던 주는 없었어. 그래도 어딘가 있다면 내 알아봐 줄 수는 있네. 어쩌면 대혼문에는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 워낙 큰 문파고 밖에 나가 수련하면서 알게 된 것들을 보고할 테니까.”
두청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선강 대륙은 무궁무진하게 넓은 곳이라 그 안을 한 바퀴 돌아본 이도 많지 않았다. 두청이 나고 자란 천우주를 포함해 그간 방문해본 주가 네 군데뿐인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한제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잠시 후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를 하듯 툭 물었다.
“동림종은 어느 주에 있나?”
“동림종?”
어째서인지 두청은 표정이 살짝 굳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동림종 역시 9종 13문의 하나로 동주의 북쪽 대성주(大聖洲)에 있다네. 그 종파 제자 중 바깥출입을 하는 이는 손에 꼽을 정도라더군.”
이후로도 잠시 대화를 나누던 한제는 이내 피곤한 기색을 살짝 드러냈다. 눈치가 빠른 두청은 얼른 일어나더니 떠나기 직전에 이렇게 맹세했다.
“걱정 말게, 도우. 내 우리 종파 인원을 총동원해서라도 지화의 지맥과 자맥이 있는 곳을 찾아내겠네. 우리가 직접 그 혼을 뽑게 된다면 그대로 도우에게 바치지.”
두청은 동굴을 떠나자 한제와 약속한 대로 제자들에게 명을 내렸다. 세 장로와 수준 높은 수련자들이 제자들을 이끌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두청은 목각 인형으로 봉인된 벌을 받고 있던 장로 역시 풀어주었다.
“이번에 지화의 지맥과 자맥을 찾는다면 사면해주겠다.”
한제는 홀로 동굴에서 야명주의 빛에 휩싸인 채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깊은 고민에 빠진 듯한 모습이었다.
‘천둥번개의 본원도 진신으로 응집해내야만 해. 동림종 동림지만 믿고 있을 수는 없지. 칠채선존의 기억에 과장된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러려면 천둥번개의 위력이 엄청 많이 필요하겠지. 선강 대륙에 지화맥이 있다면 분명 뇌맥도 있을 터. 허나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화염의 본원을 응집하는 것이다. 대혼문에 다녀와야 할지도 모르겠군.’
한제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대혼문은 거대한 조직이었다.
‘두청이 말하길 대혼문 선조의 수준이 굉장히 높다고 했지. 심지어 본원을 진신으로 응집해냈다고도 했고⋯⋯.’
한제는 미간을 문지르며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 수준은 아직 부족하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만은 아니야.’
한제는 귀일종을 떠올렸다. 현라와 자신의 관계를 알고 있는 마씨 노인이라면 발 벗고 도우려 할 터였다.
하지만 한제는 곧 그 생각을 접었다. 불확실한 요소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어지간해서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거나 위세를 빌리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스스로 해내야만 해. 쉽지는 않겠지만 축지성촌을 쓸 수만 있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야.’
한제는 눈을 감은 채 본원에 대한 생각을 접었고 신식을 펼쳐 축지성촌의 위력을 발휘하는 데 필요한, 이 세상에 녹아드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에게는 그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한제는 신식을 천천히 동굴 밖으로 내보내 주위를 감쌌지만 아무리 시도해봐야 한 줄기만 겨우 녹여낼 수 있을 뿐, 완전히 녹아들 수 없었다.
그러나 한 줄기 신식만으로 나이법을 발휘하기란 불가능했다. 짧은 거리의 순간이동은 가능했으나, 한제가 원하는 것은 그게 아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한 겹의 막이 융합을 저지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 막은 선강 대륙의 법칙이자 형태 없는 압력이었다. 한 사람의 신식으로는 절대 그것을 비집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이곳은 동부계와 달랐다. 동부계에는 이런 막도 압력도 없기 때문에 축지성촌을 깨달은 수련자는 세상에 녹아들어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었다.
‘수준을 높여야만 억지로라도 뚫고 들어갈 수 있겠어.’
며칠 뒤, 몇 차례나 시도해도 결국 성공하지 못한 한제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렇다고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신식은 여전히 창룡종 안에서 변화하면서 끊임없이 압력을 뚫고 들어가려 했다.
시간은 천천히 그러나 착실히 흘러 어느새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한제의 신식이 쉭, 쉭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바람에 남아 있던 창룡종 제자들은 감히 그가 있는 뒷산 동굴 근처로 다가가지도 못했다.
두청은 한제가 신식을 내보냈을 때 가장 먼저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상황을 지켜봤다. 그리고 며칠이나 관찰을 한 끝에야 그는 마침내 한제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신식을 이 세상에 녹여 넣으려고 하는 건가? 세상과 융합해 이동하려는 거겠지. 허나 그건 말도 안 돼! 순간이동이야 가능하지만 저자는 나이법을 발휘하려는 것 같은데… 그건 공겁기 절정에 이른 후 선강 대륙의 법칙을 충분히 파악하고 그 압력에 저항해낼 수 있어야만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야!’
두청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더는 한제의 거동을 관찰하지 않았다.
한 달은 창룡종 제자들이든 장로들이든 한제의 신식으로 뒤덮였던 범위 너머 지화의 지맥과 자맥을 찾아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그들은 점점 더 먼 곳까지 탐색을 이어나갔다.
한제는 시간의 흐름마저 잊은 채 신식을 세상에 융합시키려 했다. 그리고 또다시 3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한제는 몇 차례인지 기억할 수 없을 만큼 시도를 이어갔으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네 달 동안 창룡종 제자들 중 일부는 말라붙지 않은 지화맥을 찾아내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아직도 찾는 중이었다.
한제가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 끊임없이 축치성촌을 연구하는 동안 두청은 한제의 신식이 휘젓고 돌아다니는 상황에 익숙해진 상태였다.
한제는 매일 수백수천 번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점점 불만이 커져만 갔다. 그러나 그런 감정을 절대 밖으로 표출하지 않았기에 속으로 품은 불만만 갈수록 커졌다.
‘저렇게까지 고집을 부리다니. 시간 낭비에 불과한데 말이야. 세상에 녹아드는 게 그렇게 쉬웠다면 누구나 진즉 그리 했겠지. 수준이 아직 부족한데도 끝내 포기하지 않는군. 대천존께서는 대체 어째서 저자를 중히 여기신단 말인가? 내가 보기에는 그저 바보 같건만.’
두청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또다시 세 달이 지났다.
한제가 동굴 안에 틀어박혀 축지성촌을 연구한 지도 벌써 7개월째였다. 그동안 내내 가부좌를 튼 채 같은 시도와 실패만을 반복한 그의 두 눈에는 핏발이 잔뜩 섰고 신식에는 초조함과 짜증이 어려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본 두청은 냉소했다. 그동안 한제의 바보 같은 행태를 지켜보면서 심지어 머리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때 한제의 눈은 한층 더 붉어져 있었다. 일곱 달 동안 조금도 쉬지 않고 신식을 펼친 탓에 그도 슬슬 한계에 달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지금 그는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중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이런 방식을 통해 동부계와 선강 대륙 사이의 허공에 남겨둔 분신을 자극하는 중이었다.
며칠 동안의 시도를 통해 자신의 수준으로는 10년, 백 년이 지나도 선강 대륙의 법칙으로 이루어진 그 압력을 이겨낼 수 없음을 이미 깨달은 터였다.
하지만 그에게는 최후의 수단이 남아 있었다. 지금도 계속해서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는 그의 분신이었다.
그 분신은 선강 대륙의 법칙에서 태어난 존재였다. 심지어 그 자체가 법칙의 일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신식이 이 세상에 융합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바로 그 분신에 달려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한제와 심신으로 연결되어 있는 분신은 잠든 상태라 깨우려면 비정상적인 수단이 필요했다. 그게 한제가 지난 7개월 동안 끊임없이 신식을 뻗어 스스로를 지치게 만든 이유였다. 심지어 원신마저 천천히 말라갈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일곱 번째 달의 어느 날, 돌연 한제의 두 눈이 강렬하게 빛났다.
동부계와 선강 대륙 사이의 어둠뿐인 허공을 표류하던 거대한 돌 껍데기 안. 잠들어 있던 한제의 분신이 몸을 바르르 떨더니 두 눈을 번쩍 떴다.
그 순간, 창룡종에서 냉소하고 있던 두청이 화들짝 놀라며 벌떡 일어났다. 그는 자신의 본 충격적인 광경에 숨을 쉬는 것조차 잊은 상태였다.
“이, 이건 말도 안 돼!”
천산(天山)의 눈
두청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뒷산 동굴 쪽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는 지난 7개월 동안 한제를 휩싸고 있던 신식이 한순간 사라졌음을 느꼈다. 그리고 사라진 신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마치 세상과 하나로 합쳐지기라도 한 것처럼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두청으로는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변화였다. 심지어 냉소하던 중이 아니었던가?
잠시 후에야 정신을 차린 두청은 신식을 뻗으며 몸을 날려 뒷산 동굴로 향했다. 그리고 신식으로 굴을 훑은 순간, 그는 격렬하게 경련을 일으켰다.
“어… 없어⋯⋯.”
그 안에 지난 일곱 달간 가부좌를 틀고 있던 한제가 사라진 상태였다. 두청으로서는 그 사실을 조금도 감지하지 못했건만 마치 증발해버린 듯 자취를 감춘 것이다.
“이, 이럴 수가⋯⋯.”
뒷산 산봉우리에 선 두청은 발아래 푸른 풀들을 내려다본 순간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비빈 두청은 조심스레 다시 신식을 펼쳐 사방을 훑었다. 하지만 몇 번을 살펴도 한제의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다.
“말도 안 돼! 신식이 세상에 녹아들 수는 없어! 그런 일은 없었다고! 오직 공겁기 절정에 이른 수련자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거늘 어떻게…?”
두청은 창백한 얼굴로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나를 찾고 있는 건가?”
덤덤하고 차분한 목소리가 두청의 뒤쪽에서부터 들려왔다.
몸을 바르르 떨며 홱 돌아선 두청의 눈동자가 바짝 졸아들었다. 그의 뒤에는 한제가 더없이 여유로운 얼굴로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뒤쪽으로는 층층의 보일 듯 말 듯한 파문이 일어났다가 곧 사라졌다.
“자 자네⋯⋯.”
두청은 무의식적으로 몇 걸음 물러났다. 이해할 수 없는 등장이었다. 그는 한제의 존재를 전혀 느끼지 못한 상태였다. 만약 한제가 공격하려고 마음먹었더라면 자신은 중상을 입고 말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