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392
게다가 한제의 몸에서는 서늘한 한기가 발산되는 듯했다. 이 한기는 창룡종의 기운과 부딪쳤다가 천천히 흩어져 사라졌지만 두청은 서늘한 바람이 불어닥치는 것을 느꼈다.
이 순간, 두청에게 한제는 전보다 훨씬 더 두려운 존재가 되었다.
“별것 아니네. 종파 제자들 대부분이 돌아왔어. 적지 않은 지화의 지맥과 자맥을 찾아왔더군. 지맥의 혼을 봉인해서 가져온 제자도 있네.”
두청은 애써 충격을 억누르며 다급히 답했다.
한제는 그런 두청을 슥 훑어보았다. 두청은 무의식적으로 한제의 눈길을 피했다.
“동굴로 가져오게.”
그 말을 남긴 한제는 한 걸음 나서더니 한 줄기 빛이 되어 동굴로 돌아갔다.
그제야 두청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는 한제의 뒷모습을 보며 또다시 의문을 품었다.
‘아냐, 말도 안 돼. 세상과 융합하지는 못했을 거야. 그게 가능하다면 지금도 저렇게 날아갈 게 아니라 휙 하고 사라졌겠지. 방금 전 저자의 기운이 감쪽같이 사라졌던 건 순간이동을 했기 때문일 거야. 계속 실패했으니 체면이 서지 않아서 이렇게라도 속이려는 게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두청은 이내 안정을 되찾았고 방금 전 지레 놀라 허둥댄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두청은 고개를 젓더니 소매를 휘둘러 자리를 떠나려 했다. 한데 그 순간, 그의 몸이 격하게 떨렸다. 두 눈은 한제가 방금까지 있던 곳에 못 박혀 있었다. 심신은 충격으로 진동했다.
두청은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이내 뒷산 동굴 쪽으로 향하는 그의 눈에는 공포와 더불어 복잡한 감정이 어려 있었다.
그로부터 멀지 않은 곳, 방금 전 한제가 서 있던 곳에는 푸른색 눈이 약간 쌓여 있었다. 햇빛 아래 반짝이는 빛을 발하던 그것은 천천히 녹아내리고 있었다.
천우주에서 이런 푸른색 눈을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서쪽 끝 천산(天山)뿐이었다. 그러나 천산은 두청이 전속력으로 수개월은 날아야 닿을 수 있을 만큼 먼 곳이다.
“천산의 눈⋯⋯ 저, 저자는⋯⋯ 천재야!”
두청은 그 자리에서 한참을 서 있다가 중얼거렸다.
그가 이 말을 내뱉은 순간, 한제에 대해 지난 7개월 동안 품어왔던 경멸은 연기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한제에 대한 두려움이 피어올랐다. 수준과는 무관한, 미지에서 기인하는 두려움이었다.
뒷산 동굴 안. 한제는 옷을 툭툭 두드려 한기를 털어내고는 가부좌를 틀었다.
분신이 깨어난 순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한 줄기 깨달음을 느낀 그는 심신을 통해 아주 멀리 떨어진 곳의 분신을 불러내 자신의 몸에 덧씌웠다. 동시에 한제를 괴롭히던 막이 느슨해졌다. 마치 선강 대륙의 법칙이 말끔히 사라진 것 같았다.
그 순간, 온갖 깨달음이 마음속에서 피어올랐다. 그러나 이 깨달음들은 자세히 들여다보려 하면 흐릿해졌다. 아직 분신이 성장 중이기 때문일 터였다. 분신이 완전히 성장하고 나면 선강 대륙의 법칙과 관련한 모든 것을 남김없이 알게 될 것이다.
막이 사라짐과 동시에 강력한 압력에는 줄기줄기 균열이 생겨났다. 덕분에 한제의 신식은 어렵지 않게 그 틈으로 파고들 수 있었다. 그러자 그의 몸 역시 사라지면서 세상에 녹아들었고 동부계에서 축지성촌을 발휘했을 때와 같은 느낌을 되찾을 수 있었다.
딱히 원하는 목적지는 없었기 때문에 그저 발 닿는 대로 움직인 그는 찰나의 순간 천우주의 천산에 이르렀다. 하늘에서는 푸른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창룡종으로 돌아오자 두청의 뒷모습이 보였다.
천산에 다녀오는 데 걸린 시간은 1각도 채 되지 않았다.
“분신이 성장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엄청난 도움이 되다니. 시간이 조금 더 주어진다면 내 분신은 가장 강력한 몸이 되겠어!”
한제가 중얼거렸다.
“이제는 대혼문으로 가서 지화의 주맥을 흡수할 시간이로군. 그전에 일단 나머지 지맥과 자맥들을 흡수해 화염의 본원이 얼마나 더 응집되는지 확인해봐야겠지.”
한제는 본원을 진신으로 응집하는 과정은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머리를 응집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화염의 본원이 아니라 화염의 의지가 필요했다.
반 시진 뒤, 두청은 제자들이 가져온 지화맥의 혼과 완성된 천우주의 지도를 가지고 왔다. 지도에는 지화의 지맥과 자맥이 있는 장소가 표시되어 있었다.
한제는 사양하지 않고 지화맥의 혼을 전부 받아 흡수했다. 그 안에 담긴 의지는 많지 않아 그의 화염의 본원을 응집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지만 지도가 담긴 옥패는 무척 유용했다.
옥패를 챙긴 한제는 두청에게 작별을 고했다.
두청은 한제가 하려는 일을 나아가 그 일에 자신이 참여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실을 어디에 보고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자신도 한제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떠나기 직전 한제와 눈을 마주친 순간 두청은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눈빛이었지만 두청은 어마어마한 위협을 느꼈다.
“두 도우의 도움은 잊지 않겠네. 언제고 기회가 되면 꼭 보답하지.”
한제가 떠난 뒤에도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 두청의 귀에 맴돌았다.
★ ★ ★
콰쾅! 쾅! 콰르릉!
곳곳에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지화맥이 무너져 내렸고 활활 타오르는 화염의 파동이 천우주를 휩쓸었다. 심지어 세상을 채운 기운마저도 뜨겁게 타올랐다. 한제가 창룡종을 떠난 지 이레째 되는 날이었다.
이런 상황은 곧 천우주 여러 종파의 주의를 끌었고 그들은 제자와 장로까지 파견해 조사했지만 아무런 단서도 발견하지 못했다. 조사를 해봐야 무너진 지맥과 자맥이 있던 곳에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폐허뿐이었다.
보름 뒤, 검은 안개로 휩싸인 천우주의 어느 산봉우리. 오래 전 칠도종이 자리를 잡았던 그곳에서 걸어 나온 한제의 얼굴에서 슬픔이 느껴졌다.
그는 이곳에서 동부계의 기운을 그리고 몇 해나 자신을 기다렸을 현라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검은 안개 밖으로 나온 한제는 고개를 돌려 산봉우리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이내 그곳을 떠나갔다.
“사도환, 청수 사형, 이천매… 환생한 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한제의 뒷모습에서는 쓸쓸함과 고독함이 느껴졌다.
다음 날, 천우주 서쪽 끝, 푸른 눈송이가 떨어져 내리는 대혼문 구역 천산의 꼭대기. 백의백발의 청년이 떨어지는 눈발 너머, 천우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청년의 눈에는 저 멀리 여러 개의 산 중 가장 깊은 곳에 우뚝 선 붉은 봉우리가 들어왔다.
“대혼문⋯⋯.”
청년은 작게 뇌까리더니 두 눈을 번득였다.
★ ★ ★
대혼문은 여러 산 사이, 구름을 뚫을 듯 높이 솟은 산봉우리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붉은 빛을 발하는 산봉우리는 멀리서 보면 마치 화염에 타오르고 있는 것 같았고 그 주위로는 파문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 파문에는 영혼에서 기인하는 듯한 힘이 한 줄기 어려 있었는데 수없이 많은 혼이 울부짖는 듯 소리 없는 비명이 어렴풋이 울려 퍼졌다.
한제는 푸른 눈을 맞으며 꼼짝도 않고 천산에 서서 말없이 대혼문을 바라보았다.
그냥 보기에는 그리 멀지 않아 보여도 실제로는 날아가더라도 며칠이 걸릴 거리였다.
가까워 보이는 것은 천산이 매우 높은 데다가 대혼문에서 발산되는 파문에 시각을 흐리는 기운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한참 뒤, 한제는 눈을 감고 신식을 펼쳤다. 이내 그는 대혼문 산 아래로 뻗은 천우주의 지화 주맥을 느낄 수 있었다.
수많은 지맥을 뻗은 지화맥 주맥은 천우주의 땅속 깊은 곳에 박혀 있었다. 게다가 그 주맥에는 어마어마한 화염의 의지가 깃들어 있어 누구의 침범도 허용하지 않았다. 대혼문 산봉우리에서만 절반 정도 약해진 기색을 보일 뿐이었다.
또한 대혼문의 산봉우리 아래 주맥은 지면 위로 드러나 있었다. 대혼문이 자리를 잡은 곳은 산봉우리가 아니라 지면에 드러난 지화의 주맥으로 이루어진 봉우리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할 터였다.
이 모든 것은 수련자의 신통술이 아니라 자연적인 변화로 인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대혼문이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은 정말이지 교묘하고도 현명한 처사라 할 만 했다.
대혼문 안은 생기가 가득했다. 그곳을 슬쩍 훑어본 한제는 끝없이 이어진 여러 산에 적어도 10만 명 이상의 수련자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어찌나 꽁꽁 숨어 있는지 겉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산 곳곳에서 느껴지는 줄기줄기의 강력한 본원의 기운을 통해 한제는 그곳에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들 역시 숨어 있음을 간파했다.
“선강 대륙 대혼문⋯⋯ 과연 강하군. 이 종문만으로도 동부계 정도는 충분히 휩쓸 수 있겠어.”
한제는 덤덤하게 중얼거렸다.
만약 화염의 본원을 응집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절대 저런 종파를 건드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지화의 주맥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또 필요했다.
지난 며칠 동안 제법 많은 지화맥을 흡수한 덕에 한제 체내는 화염의 본원이 포화 상태에 가까워 더는 지맥이나 자맥을 흡수해도 소용없었다.
지화맥의 지맥과 자맥은 수련자에게 있어 단약과 같았다. 많이 섭취하면 효과는 점점 떨어지다가 결국 아무런 효력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지금 한제의 본원에 있어서는 주맥의 의지야말로 최상급 단약인 셈이었다.
눈을 살짝 감은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대혼문으로 향했다.
대혼문
축지성촌을 이용한 한제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보통은 며칠을 날아야 할 거리를 좁혀 몇 시진 만에 대혼문 근처에 이르렀다.
대혼문이 자리를 잡은 산에서 점점 빽빽한 파문이 일어 한제의 진입을 저지하려 했다.
“귀면기를 저물 공간에서 꺼낼 수만 있다면 쉽게 들어갈 수 있었을 텐데 아쉽군.”
우뚝 멈춰 선 한제는 멀지 않은 곳의 여러 산과 그중 유독 눈에 띄는 붉은 산봉우리를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온몸에서 흐르는 기운을 완전히 숨겨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 상태로 가부좌를 틀었다. 그 순간, 그의 몸은 천천히 흐릿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한 줄기 연기로 변해 주위를 맴돌았다.
대혼문과 같은 종파의 금제라면 그 위력은 어마어마할 테니 해당 종파의 제자가 아닌 사람이 건드린다면 즉시 발각될 터였다. 그래서 한제는 대혼문의 제자가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금제가 느슨해지는 순간을 노리기로 했다.
대혼문 제자의 체내에 몰래 녹아드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그 방법에는 단점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대혼문은 그 이름에서부터 드러나듯 혼(魂)에 대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종파였다. 그렇기에 이중 환술 같은 신통술로 이름을 떨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대혼문 제자의 체내에 녹아들어 금제를 관통했다가는 순식간에 정체를 들키게 될 것이 분명했다.
대혼문에 몰래 진입할 기회는 한 번뿐이었다. 한제는 그 기회를 위험한 방법으로 날려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의 수준과 금제에 대한 이해도를 믿기로 했다.
‘내게 필요한 것은 금제의 진에 파문이 이는 찰나의 순간이다.’
한제는 연기가 된 채로 무려 열흘을 기다렸다. 그동안 대혼문을 에워싼 진을 통해 출입한 제자는 1,314명이었고 그때마다 파문이 일었다.
한제는 경거망동하지 않고 끊임없이 진을 관찰했다. 금제에 대한 높은 이해력을 통해 이 진의 허점을 파악할 생각이었다. 게다가 그는 드물게도 금제의 본원까지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시간도 충분했고 인내심은 그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였다.
한제는 1천 번이 훌쩍 넘는 파동을 관찰한 결과 점차 그 파동이 제자들의 신분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또한 대혼문 제자들의 영혼은 불처럼 강력하면서도 쉬이 파동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됐다.
또다시 열흘이 지났을 때, 외출했던 대혼문 제자가 진 근처에 이르러 그 안에 녹아들면서 진입하려 했다.
이에 진에 파문이 일었고 한제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연기로 변한 채 그 제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형태 없는 연기는 찰나의 순간 제자의 옆에 나타났고 그 제자가 파문이 일어난 진에 녹아드는 것과 동시에 그 안으로 뚫고 들어갔다. 그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금제의 본원을 발산해 대혼문 진의 위력을 상쇄하면서 지난 20일 동안 보았던 모든 제자의 모습을 흉내 냈다. 짧은 순간에 수백 번 이상을 둔갑한 것이다.
한제와 함께 진 안으로 들어온 제자는 어떤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멀어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