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393
진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변화는 방금 전 한제와 함께 들어온 그 제자가 일으킨 파문에 숨겨진 상태였다.
한제는 천천히 산 쪽으로 향했다. 이동하는 동안 그는 적지 않은 대혼문 제자들을 볼 수 있었지만 그들은 한제의 존재를 조금도 감지하지 못했다.
한제는 매우 신중하게 이동과 정지를 반복하면서 점점 깊숙한 곳 붉은 산봉우리로 향했다. 그 산봉우리에 가까워질수록 지화 주맥의 기운은 더욱 짙어졌다.
하늘 저쪽 끄트머리에서 세 갈래 빛이 휙 하고 날아들었다. 두 여인과 한 사내로 그들은 곧장 붉은 산봉우리로 향했다.
한제는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저런 빛들은 여기까지 오는 동안도 수도 없이 봐왔기 때문이다.
한데 바로 그때, 돌연 붉은 산봉우리 안에서 한 줄기 신식이 콰쾅 하고 일어나 산 아래쪽으로 빠르게 뻗어왔다.
찰나의 순간 산의 절반 이상을 뒤덮은 신식은 매우 강력했다. 그 기세로 미루어 보통 수련자의 것은 아니었다. 아홉 차례의 현겁을 뛰어넘고 진정한 공겁기 초기에 이른 강자의 신식임이 분명했다.
그 신식은 약간 음산하기도 해, 일정 수준 이상에 이른 자만이 그 신식을 느낄 수 있었다. 한제는 그 신식의 존재를 감지한 순간 그것이 여자 수련자의 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너무나 갑작스레 뻗쳐온 신식이라 하마터면 그 신식에 발각될 뻔했다. 하지만 신중하고 조심스레 경계해오고 있던 그는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그 속도는 신식이 뻗쳐온 속도와 거의 같았다.
그러나 신식은 부채꼴로 펼쳐진 채 붉은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확산되어갔다. 이번에는 피했지만 금방 다시 발각될 수 있었다. 게다가 그 신식이 뻗쳐온 순간 대혼문을 에워싼 진이 즉각 파문을 일으키며 봉쇄되기 시작했다.
‘설마 발각된 건가!’
갑작스런 변화에 한제는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신식은 달려들고 있었다.
‘위험하다!’
빠르게 뒤로 물러났지만 더 이상 도망칠 공간이 없었던 한제는 신식에 뒤덮이려는 순간 좀 전에 본 세 갈래 빛을 향해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세 사람 중 한 사내의 체내로 재빨리 파고들었다.
한제가 셋 중 이 사내를 선택한 것은 그 수준 때문이었다. 게다가 뻗쳐오고 있는 신식은 여인의 것이었는데 이 정도 수준에 이른 여인이라면 성격이 고고하고 오만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남자 제자의 체내까지 샅샅이 파고들지는 않을 터였다. 신식을 통한 탐색은 상대를 홀딱 벗겨놓고 구석구석 살피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연기 형태의 한제가 사내의 체내로 파고든 순간, 신식은 쉭 하고 사내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강력한 신식은 멈출 생각이 없는 듯 한참 떨어진 곳까지 완전히 감싼 후에야 서서히 흩어져 사라졌다. 대혼문을 에워싼 진의 봉쇄도 풀리면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갔다.
‘나를 발견하지는 못했어! 대혼문에는 이렇게 불시에 신식을 통해 경계를 하는 모양이군.’
사내의 체내로 들어온 한제는 금제로 휩싸인 회오리로 응집됐다.
“얼른 따라오지 않고 멍하니 뭐하고 서 있어? 사저께 제때 해혼과(解魂果)를 드리지 않으면 우리 모두 된통 혼날 거라고!”
사내의 곁에 있던 한 여자 수련자가 호통치듯 말했다.
사내는 흠칫 놀라며 얼른 예, 예 하고 답한 뒤 두 여인과 함께 붉은 산봉우리로 향했다.
한제는 사내의 체내로부터 곧장 빠져나오려 했으나, 퍼뜩 떠오른 생각에 그대로 사내의 체내에 남았다.
방금 전 강력한 신식이 한 번 훑었기 때문인지 세 사람은 어떤 검사도 받지 않은 채 순조롭게 붉은 산봉우리 근처에 이를 수 있었다.
“조금 더 빨리 움직여야겠어. 염란 선조를 찾아뵙고 다른 봉우리들에도 가야 하니까. 시간이 지체돼서는 안 돼. 송영, 우리는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전해 드리고 쫓아와.”
아까 호통을 쳤던 여인의 말에 송영이라는 여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답하더니 곧장 붉은 산봉우리로 향했다. 호통을 친 여인과 한제가 파고든 사내는 방향을 틀어 붉은 산봉우리로부터 멀어져갔다.
한제는 연기 상태로 사내의 체내에서 빠져나와 곧장 송영이라는 여인의 옷자락에 달라붙은 채 붉은 산봉우리로 향했다.
나이가 그리 많지는 않아 보이는 송영은 상당히 아름다웠다. 그녀는 긴 빛을 그리며 나아가 곧 붉은 산봉우리에 이르렀다.
산봉우리 앞 허공에 멈춰선 송영 앞으로 보호막인 듯한 흐릿한 빛의 장막이 떠올랐다. 빛의 장막을 마주 보고 선 송영은 붉은 옥패를 소환해 빛의 장막을 꾹 누르려 했다.
그 순간, 그녀의 옷자락에 붙어 있던 한제는 한 줄기 연기를 갈라내 그 옥패에 주입했다. 그리고 재빨리 그 옥패 내의 금제를 연구했다. 쩌적 소리가 옥패 안에서 희미하게 울려 퍼졌고 잠시 후 한제는 신식을 거두었다.
빛의 장막은 한 번 흔들리더니 천천히 물결을 일으켰고 송영은 옥패를 거두고는 그 안으로 들어섰다.
그 순간, 그녀의 옷깃에 붙어 있던 연기 형태의 한제는 재빨리 금제의 본원을 이용해 옥패를 본떠 빛의 장막을 통과했다.
한제는 흥분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빛의 장막 안에는 화염 본원의 힘이 넘쳐났던 것이다. 이곳에서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화염의 본원이 강화될 정도였다.
하지만 이곳에는 공겁기 초기 수준의 여자 수련자도 있었다. 한제로서도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상대였다.
한제는 다시 송영의 옷자락에 숨어들었다.
이곳을 채운 작열하는 힘에 익숙하지 않은 듯 곧장 땀범벅이 된 송영은 붉은 산봉우리의 동굴 하나하나를 찾아갔다. 해혼과라는 선과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덕분에 한제는 이곳에 총 열아홉 개의 동굴이 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송영은 꼭대기의 동굴을 제외한 나머지 동굴마다 들러 해혼과를 전달했다.
동굴마다 느껴지는 흘러넘칠 듯한 생기로 미루어 그 안에는 대혼문 제자가 한 명씩 들어 있을 터였다.
잠시 후, 송영은 마지막 동굴에 이르렀다. 그 동굴 밖에 섰을 때, 그녀는 이미 땀으로 온몸이 흠뻑 젖어 있었다.
“사저, 해혼과를 가져왔습니다.”
송영은 약간 허약해진 목소리로 동굴 안쪽을 향해 공손히 말했다.
“놓고 가.”
동굴 안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한제는 심신이 바르르 진동했다.
‘그녀다!’
한제가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쓰고 있을 때,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송영은 한기를 발산하는 청백색 선과 아홉 개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한제는 재빨리 그중 한 선과의 잎에 스며들었다.
할 일을 마친 송영은 공손히 포권을 하고는 물러갔다.
잠시 후, 동굴의 문이 아주 작은 약간 열렸고 그 틈으로 발산된 강력한 흡입력이 해혼과를 휘감아 동굴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이내 동굴 문은 다시 닫혔다.
선과는 다소 어스름한 동굴 안 한쪽에 놓인 석재 탁자에 올려졌다.
멀지 않은 곳에는 가부좌를 튼 분홍색 옷의 여인이 있었다. 절세미녀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다소 침울한 듯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있었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멍한 상태였다.
선과 잎에 스며든 한제는 분홍 옷의 여인을 바라보며 고민에 빠졌다.
한참 뒤, 분홍 옷의 여인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두 눈을 감았다. 한데 바로 그때, 그녀의 심신에 어떤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반산로.”
그 순간, 분홍 옷의 여인은 두 눈을 번쩍 떴다. 이어서 살짝 떨리는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흐릿한 안개가 허공에 나타나 사방을 휩쓸더니 동굴을 완전히 봉쇄했다.
“이한제! 어디 있느냐!”
반산로는 깊은 숨을 헉 들이마시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진중한 표정이었지만 심신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한제는 반산로의 손짓에 나타난 안개를 바라보았다. 무척 현묘한 안개는 모든 기운을 봉쇄해 밖에서는 그 어떤 기운도 느끼지 못하게 했다.
잠시 후, 한제는 선과의 잎에서 연기로 피어올라 반산로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이군.”
한제는 미소를 지으며 반산로를 바라보았다. 동시에 곁눈으로 동굴을 뒤덮은 흐릿한 안개를 힐끔 살폈다.
반산로는 한참이나 멍하니 한제를 바라보다가 활짝 미소를 지었다.
“정말 오랜만이군. 이곳까지 올 줄이야⋯⋯. 우리 대혼문의 핵심 제자가 폐관수련을 할 때 사용하는 이 안개가 피어 있는 한 스승이라 해도 함부로 이곳을 신식으로 훑지는 못해. 그러니 지금 이곳은 안전하네.”
반산로의 환한 미소가 동굴을 밝히는 듯했다. 그녀는 여전히 한제에게 고마움을 느꼈고 이 감정은 시간이 흐른다고 쉬이 흩어져 사라지지 않을 터였다. 동부계에서의 일들은 그녀 삶의 일부가 된 상태였고 한제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지화의 주맥
한제는 한쪽에 가부좌를 틀었다. 반산로의 설명과 진심이 묻어나는 표정에서 어느 정도 안심했지만 그럼에도 경계심을 늦추지는 않은 상태였다. 만약 반산로가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면 가차 없이 손을 쓸 준비도 되어 있었다.
“아직도 그 경계심은 여전하군. 하지만 좋아. 선강 대륙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래야 하니까.”
반산로는 서운해 하는 기색 없이 미소를 지으며 한제를 바라보았다.
“3년 전 귀일종 운일봉을 만나 자네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 원래대로라면 진즉 선강 대륙에 이르렀어야 할 자네의 소식이 통 없어서 무슨 변고가 생긴 건 아닌가 걱정했지. 한데 오늘 이곳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반산로는 눈을 깜빡이며 살짝 웃었다.
“도중에 일이 좀 있어서 조금 늦었네. 이렇게 보게 되니 반갑군.”
한제도 미소를 지었다. 낯선 곳에서 만나서인지 상대가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다.
이는 반산로도 마찬가지였다. 동부계에서 인생의 절반 이상을 보낸 터라 자신의 종파인 대혼문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지던 차였다.
“말해보게. 대혼문, 그것도 내가 있는 이곳까지 들어온 이유가 있겠지?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최대한 돕겠네.”
다소 침울했던 반산로의 표정에서는 지금 진심에서 우러난 기쁨만이 느껴졌다. 이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낀 한제는 미소를 지으며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수련을 하는 데 이곳의 지화 주맥이 필요하네. 어쩌면 이 주맥에 영향을 미칠지도 몰라.”
생각에 잠겨 있던 반산로가 한참 뒤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지화맥을 수련할 장소로 데려다주지. 지화맥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야. 스승님은 폐관수련 중이시고 수시로 신식을 뻗어 주위를 살피시기는 하지만 폐관수련 중인 제자까지는 조사하지 않으시니 별문제 없을 걸세. 문제는 내 언니야. 그녀도 지금 그 산에 있거든. 다만 언니는 스승님의 중시를 받고 있으니 쉬이 나와서 조사하거나 하지는 않을 거야.”
반산로가 말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자네에게 불이익이 갈지도 몰라.”
예상외의 호의에 당황해하는 한제에게 반산로는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스승님은 언제나 나를 감싸주시지. 나도 내가 어디까지 발을 뻗을 수 있을지 정도는 알아.”
한제는 진중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반산로에게 포권을 했다.
“정말 고맙네!”
“고마워할 것 없네. 고마워해야 할 쪽은 자네가 아니라 나지. 잘못했다가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했을 수도 있었으니까.”
반산로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체해서 좋을 게 없으니 바로 움직이지. 내 몸에 숨게.”
말을 하면서도 반산로는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고개를 끄덕인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한 줄기 연기가 되어 반산로의 옷소매 안으로 스며든 뒤 그녀를 감쌌다. 이런 상태라면 이 여인이 무슨 수작을 부린다 해도 한제는 곧장 알아차릴 수 있을 터였다. 그의 신중함은 사람이나 장소, 상황을 가리지 않았다.
반산로는 옷매무새를 정리했고 달아오른 얼굴이 식은 후 손을 가볍게 휘둘렀다. 동굴을 휘감았던 안개가 흩어져 사라지자 그녀는 동굴 밖으로 나갔고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붉은 산봉우리 아래로 향했다.
이내 그녀는 거대한 동굴에 이르렀다. 지화 주맥에 가장 가까운, 그녀의 스승이 파놓은 이 동굴은 제자들이 폐관수련을 할 때 이용하는 장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