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394
반산로는 산봉우리 아래의 가장 큰 동굴 안으로 들어가는데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았다. 목적지로 향하는 길 곳곳에 좌선하는 수련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반산로의 존재를 느끼자마자 신식을 거두었다.
그녀들은 감히 외부인이 스승의 코앞인 이곳까지 들어올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반산로는 이 산봉우리 염맥봉(炎脈峰)의 핵심 제자로 지위가 굉장히 높았다. 또한 그녀의 언니는 공공연하게 스승의 후계자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러니 다른 제자들은 반산로를 감히 함부로 건드릴 엄두도 내지 못했고 덕분에 반산로는 동굴 가장 깊은 곳, 폐쇄된 석실에도 쉽게 들어올 수 있었다.
붉은색을 띤 석실의 문에서는 뜨거운 열기가 발산되고 있었다. 보통 수련자라면 이곳에 접근하자마자 체내의 피가 타오르는 듯한 느낌에 감히 그 안에서 폐관수련을 할 엄두도 내지 못할 터였다.
이 석실은 지화의 주맥을 파내 만든 공간이었다. 그러니 그 안에서 좌선을 하는 것은 지화의 주맥 안에서 좌선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곳에서 화염의 본원만 수련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화 주맥의 의지 아래 물의 본원을 제외한 다른 본원들도 수련할 수 있었다. 화염의 의지를 압력으로 삼으면 그 압력 때문에 수련의 효과가 훨씬 큰 것이다.
이런 이유로 염맥봉에서도 가장 요지(要地)인 이곳에는 오직 핵심 제자만 출입이 가능했다.
반산로가 이 모든 것을 설명했을 무렵, 둘은 석실 앞에 도착했다. 그러자 반산로는 오른손을 살짝 휘둘렀고 붉은 대문이 열리면서 한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틈이 생겨났다.
한데 그 순간, 그 너머에서 낮은 포효가 터져 나왔다. 뒤이어 불바다 한 줄기가 뿜어져 나오더니 한 마리 화룡이 되어 반산로를 집어삼킬 듯 달려들었다.
반산로는 눈을 번득이며 화룡이 달려든 순간 기이한 목소리로 외쳤다.
“작(斫)!”
그러자 화룡은 몸을 바르르 떨면서 무너져 내려 불씨가 되어 사방으로 튀었다. 그러는 동안 반산로는 망설임 없이 문틈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들어서자 석실의 문은 다시 천천히 닫혔다.
★ ★ ★
반산로와 한제가 들어선 석실에서 화룡이 튀어나온 순간, 이 산봉우리 가장 꼭대기의 동굴에서 하얀 도포를 입은 채 가부좌를 틀고 있던 서른 살가량의 젊은 부인이 두 눈을 번쩍 떴다.
슬쩍 보는 것만으로도 뭇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할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초승달 같은 눈썹과 봉황의 그것 같은 두 눈, 이마에서 반짝이는 다섯 개의 별 장식까지, 그야말로 매혹적이었다.
여인은 덤덤한 눈으로 전방을 훑으며 신식으로 산봉우리 아래의 석실 쪽으로 뻗어갔다. 하지만 그녀는 도중에 신식을 회수했다.
“반산로가 돌아온 뒤로 그곳에서 폐관수련을 하는 것은 처음이군. 잘된 일이야. 고민과 번뇌를 잊을 수 있을 테니까.”
그녀는 반산로의 스승이었다.
그런 그녀의 맞은편에는 반산로와 매우 닮았지만 조금 더 차가워 보이는 여인이 있었다. 한제에게도 익숙한 그녀는 반산몽이었다.
속눈썹을 파르르 떨던 그녀는 두 눈을 뜨더니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고 다시 눈을 감고 좌선하기 시작했다.
★ ★ ★
산봉우리 아래 석실. 뜨거운 열기가 훅 끼쳐오면서 반산로의 이마에서는 땀이 솟았다. 사실 열기보다는 석실 사방의 의지가 더 문제였다.
강력한 의지는 한 줄기 압력이 되어 석실에 들어선 이들의 온몸을 뒤덮었다. 일단은 가부좌를 틀고 좌선하면서 그 압력에 익숙해져야 했다.
“나는 석실 안 깊은 곳까지 들어갈 수는 없어. 그곳에 발을 들이지 않은 지 오래됐거든. 그러니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네.”
반산로가 말을 마치자 그녀의 옷소매에서 한 줄기 연기가 흘러나왔고 곧 한제로 변해 한쪽에 섰다.
한제 역시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사방에서 달려드는 뜨거운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입을 쩍 벌려 숨을 깊이 들이마셔 그 열기를 모조리 빨아들였다. 그는 이 열기가 화염의 본원을 자양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과연 주맥이로군. 숨을 한 번 들이마셨을 뿐인데 열 개가 넘는 지맥을 흡수한 것과 같은 효과를 내다니!’
한제의 눈이 번득였다. 그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런 공간이었다.
이곳은 네모 반듯한 공간이 아니었고 엄밀히 말해 석실도 아니었다. 긴 띠 형태의 공간으로 사방의 벽은 붉었고 깊은 곳일수록 더욱 붉었다.
“10척마다 한 단계씩 높아지지. 이곳의 길이는 총 370척이야. 원하는 곳을 선택해 좌선하면 돼.”
이미 땀으로 옷이 흠뻑 젖은 채 문가에 가부좌를 튼 반산로가 말했다.
“난 이곳에서 꽤 오래 머물 거야. 자네는 사흘 뒤에 떠나게. 그래야 혹시 무슨 변고가 일어나더라도 자네에게 큰 영향이 미치지 않을 테니까.”
말을 마친 한제는 반산로에게 포권을 하고는 곧장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단번에 2백 척 이상을 이동하자 짙은 화염의 힘이 사방에서 달려들었지만 그 힘들은 순식간에 한제에게 남김없이 흡수됐다.
한제는 더 나아가 입구에서 370척 떨어진, 동굴의 가장 깊은 곳에 가부좌를 틀더니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그러더니 망설임 없이 두 손으로 땅바닥을 꾹 눌렀다.
지금 그는 지화 주맥 안에 들어가 그 의지와 화염 본원의 힘을 흡수하고 있는 셈이었다. 수많은 강자가 득실대는 대혼문에서 이런 짓을 한다는 것은 호랑이의 아가리 안에 손을 집어넣어 이빨을 뽑으려는 것과 다름없었다.
반산로는 멀리서 한제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붉은 벽에서 발산된 뜨거운 열기에 왜곡돼 시야가 점점 흐려지자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두 눈을 감고 좌선하기 시작했다.
한편, 한제가 지면에 두 손을 댄 순간, 줄기줄기 화염 본원의 힘이 손을 타고 체내로 흘러들었다. 이에 따라 한제의 몸은 점차 화염으로 뒤덮여갔다.
순식간에 사흘이 지났다. 이 무렵, 지화의 주맥에 완전히 녹아든 한제의 기운은 사라져서 찾아내기가 힘들 정도였다.
한제는 신식을 천천히 석실 너머, 주맥 깊은 곳을 향해 뻗었다. 그의 몸은 화염의 본원으로 포화 상태가 되어 있어 지금으로서는 화염의 본원을 흡수해봐야 그 본원을 진신으로 응집할 수 없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지화 주맥의 의지였다. 오직 그 의지를 흡수해야만 천우주 지화의 주인이 되고 화염 본원을 진신으로 응집시킬 수 있을 터였다.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한다!’
주맥으로 파고든 한제의 신식은 화염의 본원이 됐다. 이 본원이 발산한 화염의 힘과 의지는 어마어마했다.
한제는 신식을 통해 이곳의 주맥이 끝도 없이 길게 뻗어 대지 깊은 곳에 거대한 화룡처럼 똬리를 튼 것을 확인했다.
이 화룡은 아주 오래된 기운을 발하고 있었고 지능은 없었다. 그저 강력한 의지뿐이었는데 어찌나 짙은지 한제를 끊임없이 압박해왔다.
두 눈을 번득이며 차게 웃던 한제의 화염 본원은 달려드는 화염의 의지를 화염을 발산하며 곧장 집어삼키려 들었다. 그 의지를 삼켜 자신의 의지를 자양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는 사이 지화의 주맥은 돌연 바르르 진동했고 뒤이어 훨씬 강력한 지화의 의지가 당장이라도 으스러뜨릴 듯한 기세로 한제의 온몸을 뒤덮었다.
하지만 의지에 뒤덮인 것은 한제의 육신이 아니라 화염의 본원이었다.
화염의 본원은 달려든 의지를 마구 집어삼켰다. 그러자 머리가 점차 변하기 시작해 아래턱은 순식간에 인간의 턱 형태를 갖추었다.
이 변화에 한제는 정신을 번쩍 차렸다.
‘그 의지를 따라 지화맥의 혼의 머리를 찾아. 그것을 흡수하면 화염의 본원을 완전한 진신으로 응집할 수 있어!’
시간이 많지 않음을 알고 있는 한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이 거대한 주맥을 따라 더욱 깊은 곳으로 향했다.
주맥의 혼인 용의 머리를 찾아야 했다. 대혼문의 강자가 뭔가 낌새를 채기 전에 일을 마무리하지 않으면 모든 것은 수포로 돌아갈 터였다.
눈 깜짝할 사이 사흘이 지났다.
반산로는 두 눈을 번쩍 떴다. 그러나 한제의 존재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자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석실 밖으로 나갔다.
반산로가 떠난 뒤로는 누구도 이곳에 들어오지 않았고 한제의 존재를 발견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이는 잠깐일 뿐이었다.
이때 한제의 본원은 지하 깊은 곳에서 의지를 흡수하며 어마어마한 속도로 그 근원인 화룡의 머리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젊은 부인의 실수
또다시 사흘이 지났다. 한제도 자신이 얼마나 깊이 들어왔는지 알 수 없는 이때, 그는 드디어 지화 주맥의 혼인 화룡의 머리를 발견했다.
길이만 수십만 척에 달하는 화룡은 매우 노쇠해 보였다. 녀석의 숨결에서는 썩은 냄새가 풍겼다.
한제의 화염 본원은 질주하듯 용의 머리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주맥의 혼은 온몸을 바르르 떨었다.
“크오오오!”
혼의 포효가 지면을 향해 퍼져 나가면서 주맥을 격렬하게 진동시켰다. 이 진동에 대혼문의 산 역시 바르르 떨렸고 바위들이 떨어져 내렸으며, 산봉우리에서부터 짙은 불바다가 확산됐다.
이 갑작스러운 변고에 산봉우리 꼭대기 동굴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던 젊은 부인이 두 눈을 번쩍 떴다. 그녀는 순식간에 신식을 뻗어 온 산봉우리를 뒤덮었고 그 순간 표정이 급변했다.
“겁도 없군!”
이내 몸을 훌쩍 날려 동굴을 나선 그녀는 순간이동으로 산봉우리 아래에 이르렀다. 그녀는 그곳에서 곧장 손을 휘둘러 산봉우리 아래 가장 깊은 곳의 석실 문을 열었다.
쾅!
그 붉은 대문이 열린 순간, 문으로부터 370척 떨어진 곳에 가부좌를 틀고 있던 한제가 화염에 휩싸인 채 지화 주맥을 따라 아래쪽으로 쏘아져 나갔다.
“어딜 감히 도망치려 하느냐!”
젊은 부인의 얼굴에서 살기가 번득였다.
주맥을 품은 이 산봉우리에 있던 공겁기 초기 수준의 여인이 언젠가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릴 것임을 한제 또한 알고 있었기에 대비도 해둔 상태였다.
그 여인이 순간이동으로 이곳에 이르자마자 한제는 체내에 남겨둔 일부 원신이 화염으로 그의 온몸을 감싸더니 대지에 융합해 주맥을 따라 화염의 본원이 있는 곳으로 돌진했다.
한 줄기 화염에 휩싸인 채 질주하면서도 한제는 조금의 작열감도 느끼지 않았다. 화염의 본원이 앞서 화염의 의지를 대량으로 흡수했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화염의 본원과 분리된 상태에서는 이 정도 화염의 힘을 감당하지 못했을 터였다. 그리고 이는 그가 젊은 부인이 이곳에 이른 후에야 대지와 융합한 이유이기도 했다.
지화 주맥이 떨리고 있음을 똑똑히 느낀 그녀는 살기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
“감히 내 앞에서 이런 짓을 벌이다니, 죽여주마!”
여인은 석실 문으로부터 370척 떨어진 곳에 이르자마자 쾅 소리가 나도록 발을 구르면서 대지에 녹아들어 한제를 쫓았다.
두 사람이 쫓고 쫓기는 사이 주맥은 계속해서 진동했고 산봉우리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흔들렸다. 그 안에서 폐관수련을 하고 있던 제자들은 허둥지둥 밖으로 나와 진동하는 염맥봉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들 틈에 섞여 있던 반산로는 속으로 쓰게 웃었다.
‘이한제, 그가 이르는 곳에서는 언제나 엄청난 일이 일어나는군.’
그때, 반산몽 역시 폐관수련을 중단하고 밖으로 나왔다. 한데 그녀는 돌연 자신의 여동생인 반산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네가 외부인을 석실로 들였구나.”
반산몽은 신식으로 동생에게 호통을 쳤다.
“언니라고 해서 멋대로 지껄일 자격은 없어! 동부계에서 그 긴 세월 동안 나를 이용한 것으로도 모자라서 이제는 나를 모함하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