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395
반산로는 몸을 홱 틀어 서늘한 눈으로 자신의 언니를 노려보았다. 동부계에서 반산몽이 한제를 조종해 자신까지 위험에 빠뜨리려 했던 것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때의 그 일로 그녀는 두려움과 분노를 느꼈지만 동시에 명확한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반산몽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에는 대혼문 강자들의 기운이 곳곳에서 솟구쳐 올라 산봉우리를 완전히 뒤덮었다.
이 산은 대혼문의 주요 산봉우리 마흔아홉 개 중 하나에 불과했다. 비록 모든 주요 산봉우리마다 공겁기 초기의 수련자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대혼문의 강력함을 짐작하기에는 충분했다.
한편, 주맥 깊은 곳에 자리한 한제의 육신은 화염에 휩싸인 채 빠른 속도로 파고들었고 강력한 살기로 이글거리는 젊은 부인이 그를 바짝 뒤쫓고 있었다.
하지만 주맥 안은 한제 화염 본원의 의지로 휩싸여 있었기에 그는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점점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반면 젊은 부인은 약간의 방해를 받고 있는 까닭에 전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그 차이로 인해 두 사람의 간격은 줄어들지 않았다.
지화 주맥 가장 깊은 곳, 용의 머리로 파고든 한제 화염의 본원은 가부좌를 튼 채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며 화룡의 의지를 흡수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화룡의 머릿속에서 한제의 화염 본원의 얼굴은 이제 아래턱 위로 두 입술까지 생겨나 있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한제의 화염 본원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크오오오!”
분노에 찬 포효를 내지르던 화룡은 끊임없이 몸을 뒤틀면서 고통에 신음했다. 녀석은 죽음을 직감한 듯 점점 격렬하게 몸을 뒤틀었고 강력한 파동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이에 대혼문의 높이 솟은 붉은 산봉우리에서 무너져 내린 돌조각이 마구 비산했다. 한 줄기 불바다도 폭발하듯 뿜어져 나와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설마 누군가가 주맥에 몰래 파고든 것은 아니겠지?”
곳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터져 나왔고 대혼문 제자들이 모여들었다.
이 무렵, 젊은 부인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아름다운 얼굴에 서리가 앉은 듯 안색이 어두워진 그녀는 달아나고 있는 한제를 노려보면서 오른손으로 결인을 그려 청동 거울을 소환했다.
“고경도문(古鏡道紋), 그림자로 변해 저자를 죽여라!”
여인이 오른손을 크게 휘두르자 오래된 거울은 밝은 빛을 번득이며 분노에 찬 포효를 내질렀다. 동시에 거울에서는 대량의 검은 연기가 발산되더니 거대한 귀신 얼굴로 변했다.
“끼야아아!”
귀신 얼굴은 요란하게 흐느끼며 어마어마한 속도로 한제를 추격했고 순식간에 3백 척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이르렀다.
둘로 나뉜 한제의 심신 중 하나는 화염의 본원에서 화룡의 의지를 삼키고 있었고 나머지 하나는 그의 몸에 남아 육신을 통제하고 있었다. 귀신 얼굴이 3백 척 안으로 들어선 순간, 한제는 몸을 홱 틀며 서늘한 눈빛을 번득였다.
‘대혼문의 귀신 얼굴 신통술⋯⋯.’
그러더니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오른발을 크게 내딛었다. 그러자 발아래에 파문이 일어났고 그 순간 그의 모습은 파문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거의 동시에 귀신 얼굴은 방금까지 한제가 있던 곳을 휩쓸었다.
콰쾅!
우렁찬 소리가 대지 깊은 곳으로부터 울려 퍼졌고 긴 빛을 그리며 날아든 젊은 부인은 우뚝 멈춰 섰다. 그녀의 얼굴은 더없이 싸늘했다.
“이건⋯⋯?”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고개를 홱 쳐들었다. 한참 깊은 곳에서 다시 나타난 한제의 존재를 느낀 것이다.
“주맥 안에서 순간이동을 할 수 있다니, 만만한 녀석은 아니로군.”
여인은 화염의 의지로 가득한 주맥 안에서는 순간이동이 불가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 만큼 한제가 순간이동으로 없어진 모습에 놀라기는 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방금 전까지는 순간이동을 하지 않았다. 이곳에서 순간이동을 하려면 선력 소모가 크기 때문이었겠지. 몇 번이나 더 순간이동을 할 수 있는지 보자!”
젊은 부인은 차게 코웃음을 치며 손을 휘둘렀다. 순간 귀신 얼굴이 낮게 포효하며 그녀를 휘감더니 다시 질주했다.
한제의 육신은 끊임없이 질주했고 젊은 부인을 감싼 귀신 얼굴에 따라잡힐 때마다 순간이동을 통해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그때마다 화룡의 머리와 화염의 본원과는 다른 쪽으로 방향을 살짝 틀었다. 아주 약간의 차이였지만 계속 나아갈수록 거리는 멀어질 터였다. 육신을 미끼로 화염의 본원이 방해 없이 화룡의 의지를 흡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제 화염의 본원은 코까지 생겨난 상태였다.
화룡은 몸을 마구 뒤틀며 저항하려 했으나 흡수를 막지는 못했다. 이는 수준과는 무관했다. 화염과 화염 사이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맥은 이 싸움에서 한제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곧 화염 본원의 번득이는 두 눈도 점차 주작의 눈에서 인간의 눈으로 바뀌어갔다. 서늘한 눈동자에는 활활 타오르는 화염이 떠 있었다.
화룡의 거대한 몸은 몸부림을 칠 때마다 격렬한 파동을 일으켰고 대지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바르르 진동했다.
화염의 본원은 머지않아 이마까지 생겨나 이제 주작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코와 두 눈, 그리고 이마까지 완전히 갖춰진 순간, 화염의 본원 체내에서는 어마어마한 의지가 뿜어져 나왔다.
갓 태어난 듯한 이 의지는 그러나 화룡의 의지를 흡수하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멀리서 보면 화염의 본원은 이제 온전한 인간이 된 것 같았다. 다만 이마 윗부분과 머리카락은 여전히 주작의 형태였다.
“이제 머리카락만 남았어! 내 본원은 곧 완전히 응집된다!”
한데 그때, 화룡이 일으킨 어마어마한 파문에 저 멀리서 한제의 육신을 뒤쫓던 젊은 부인이 우뚝 멈춰 섰다. 검은 연기로 이루어진 귀신 얼굴 안에서 나타난 그녀는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실수다! 저자의 분신은 더 깊은 곳에 있어! 본체로 나를 유인했구나!”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그녀는 더욱 짙어진 살기를 번득이며 지화 주맥의 깊은 곳으로 향했다. 이에 한제의 육신 또한 방향을 틀었다.
화염의 본원 역시 이 상황을 알고 있었으나 전혀 당황한 기색 없이 씩 웃었다. 본체를 통해 이미 충분한 시간을 벌어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젊은 부인의 기민한 반응에도 한제는 냉소했다.
이때, 이곳의 주맥은 두 개의 의지로 가득했다. 하는 주맥의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화염 본원의 것이었다.
“이제 내 차례군!”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몸을 훌쩍 날렸고 발밑에서 일어난 파문과 함께 삽시간에 사라졌다.
젊은 부인은 귀신 얼굴에 휩싸인 채 빠른 속도로 나아갔으나 돌연 무언가를 느낀 듯 갑자기 옆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 순간 한 줄기 붉은 빛이 그녀를 스쳐 지나가더니 귀신 얼굴을 관통한 후 콰쾅 소리와 함께 주맥에 떨어졌다. 붉은 검이었다.
하늘을 뒤덮을 듯 짙은 살기가 발산되는 이 검에는 도고 일맥의 기운도 담겨져 있었다.
한데 붉은 검을 본 순간 여인의 얼굴은 급격히 구겨졌다.
“도고 칠검 중 하나인 혈살검(血煞劍)! 너는 수련자가 아니었구나!”
그녀가 몸을 홱 돌리자 붉은 검은 휙 하고 날아들었고 동시에 허공에 파문이 일더니 한제가 걸어 나왔다.
“혈살검이라⋯⋯.”
한제의 눈이 번득였다. 엽막의 유산을 얻기는 했으나 왼쪽 눈이 빠져 있는 까닭에 기억은 온전치 못했다. 붉은 검의 내력에 대해서도 엽막이 도고 황존으로부터 받은 것이라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 구체적인 것은 모르는 상태였다.
한제는 조용히 오른손으로 상공을 가리켰다. 그러자 일곱 색채의 빛이 주맥에서 휙 하고 튀어나오더니 그의 앞에 이르러 칠채창으로 응집됐다.
이 창은 곧장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여인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흥! 정녕 목숨이 아깝지 않은 게냐?”
여인은 차게 코웃음을 치며 오른손을 휘둘렀다. 순간 그녀의 몸을 감싼 귀신 얼굴이 우렁찬 포효와 함께 튀어나가 칠채창을 집어삼키려 했다.
쾅!
충돌과 동시에 칠채창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튕겨나와 한제에게로 돌아갔다.
여인은 살기 가득한 눈으로 몸을 날려 귀신 얼굴과 함께 달려들었다.
“그렇게 원한다면 내 직접 죽여주마!”
서늘한 목소리가 지화 주맥에서 울려 퍼졌다.
한제는 뒤로 물러나며 소매를 휘둘러 금색 문양을 소환했다.
“끼야아아!”
현라의 힘이 깃든 금색 문양이 발산한 강력한 기운과 충돌한 순간, 쾅 하는 거대한 소리와 함께 귀신 얼굴은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연기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금색 문양은 이어서 밝은 빛을 번득이면서 곧장 젊은 부인에게로 돌진했다.
이 문양을 본 순간, 여인은 찬 숨을 헉 들이마시며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이때를 틈타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순식간에 주맥 안으로 사라졌다. 그러자 금색 문양 역시 어두워지면서 혈살검과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
“더는 따라오지 마라! 그저 한 가지 신통술을 수련하기 위해 이 지화의 주맥이 필요했을 뿐, 대혼문에 아무런 적의도 없다. 허나 이 이상 나를 방해하려 든다면 용서치 않겠다!”
한제의 목소리가 울리며 심신을 파고들자 여인은 몸을 바르르 떨었다.
방금 금색 문양으로부터 자신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대천존의 기운을 느낀 그녀는 짧은 순간에 많은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선조 팔극
한참 뒤, 여인의 눈에서 서늘한 빛이 다시 번득였다.
“대천존이 하사한 법보가 뭐 어떻단 말인가! 도고 일맥의 혈살검까지 가지고 있다면 저자에게 그 법보를 준 대천존이 누구인지는 자명하지! 고국 대천존은 강력하기는 하나 우리 선족 일에는 관여하지 못한다! 또한, 배후가 누구건 간에 저자는 우리 대혼문의 주맥을 탐했다. 그러니 나로서는 저자를 쫓는 것이 당연한 일! 더욱이 저자를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막으려는 것뿐이니 대천존이라 해도 이런 나를 벌하지는 못할 터.”
결심을 내린 여인은 망설임 없이 다시 주맥 깊은 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여인의 성격은 매우 거친 편으로 지금 정도의 수준을 갖게 된 것 역시 그 성격 덕분이었다. 그런 그녀인 만큼 제아무리 대천존을 등에 업은 자라 해도 쉽게 물러날 수 없었다. 두청과는 비교도 안 되는 의지였다.
지화 주맥으로 파고들면서 본원의 의지를 통해 여인이 자신을 다시 쫓기 시작했다는 것을 파악한 한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공겁기 수준에 이른 이들은 전부 고집이 센 걸까? 좋아, 기회를 줬는데도 물러나지 않겠다면 누가 더 빠른지 똑똑히 보여주지!’
그는 굳은 눈빛으로 몸을 훌쩍 날려 사라졌다.
주맥의 깊은 곳, 화룡의 머릿속. 한제의 화염 본원이 끊임없이 의지를 흡수함에 따라 화룡의 포효와 몸부림은 한층 약해져 있었다. 그리고 이 무렵, 화염 본원의 머리카락은 여전히 주작의 깃털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그 뿌리부터 검게 변하기 시작했다. 머리카락 전체가 검게 변하면 화염의 본원은 완전히 진신을 갖추게 될 터였다.
한제의 본체는 시간을 더 벌기 위해 몇 차례나 젊은 부인을 막아섰다. 하지만 여인은 그런 한제를 무시한 채 전력을 다해 주맥 깊은 곳으로 돌진했다.
몇 시진이 지나자 여인은 화염의 본원이 있는 곳에 점점 가까워졌다.
화룡은 이미 한참 허약해져 포효도 줄어들고 몸부림도 둔해진 상태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일 뿐이었다. 그때, 화룡이 돌연 두 눈을 번득이며 고개를 번쩍 쳐들더니 지금까지 중 가장 격렬한 포효를 내질렀고 잠잠해지는가 싶던 몸도 다시 진동하기 시작했다.
녀석이 포효를 내지르자 밝은 빛을 내던 그 거대한 몸은 이글거리는 화염에 휩싸인 채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했던 몸은 순식간에 10척까지 줄어들었다. 녀석의 의지도 응집되고 압축되더니 주먹만 한 화염 덩어리로 단단히 뭉쳐졌다.
한제의 화염 본원은 화룡의 몸이 수축하는 사이 억지로 그 밖으로 밀려난 상태였다. 그리고 주먹만 한 화염 덩어리는 화룡의 마지막 광기를 품은 채 한제의 화염 본원의 미간을 향해 달려들었다.
쾅!
거대한 소리와 함께 한제의 미간에 박힌 화염 덩어리는 그 안에 녹아들어 화염 본원의 체내로 뚫고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