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396
그 빛 덩어리가 체내에 진입한 순간, 한제의 신식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뒤흔들렸다. 일반인이 된 것처럼, 분노의 파도에 휩쓸리는 조각배처럼.
동시에 강력한 의지 한 줄기가 한제의 신식을 파괴하고 그 몸을 차지하려 들었다. 화룡의 의지였다. 자신의 몸을 포기하고 한 덩어리 화염이 된 그것은 한제의 화염 본원이 응집해낸 인간의 몸을 강탈하려 했다. 그 육신을 의지의 전승체로 삼으려는 것이었다.
강력한 의지는 거대한 손이 되어 한제의 신식을 으스러뜨리려 했다. 저항심을 품은 그것은 불굴의 의지를 번득였다.
한제는 흐릿한 빛을 보고 그 열기를 느꼈다. 그 빛과 열기의 결합은 이 세상의 불이 됐다. 그리고 그 불 속의 의지는 모든 것을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태워버렸고 광기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저항심을 품은 채 활활 타올랐다. 한제의 신식을 태워버리고 그의 모든 것을 재로 불살라 버릴 심산이었다.
“나 이한제가 깨달은 화염의 본원은 주작의 화염이 아닌 촛불의 불이었다.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버텨내는 그런 불! 바람이 불면 촛불은 금방이라도 꺼질 듯 작아지지만 마구 휘청거리고 흔들리며 반항한다. 나 이한제가 깨달은 것은 바로 그런 촛불의 의지다! 이는 지금껏 살아온 내 저항의 의지이기도 하다! 네가 그런 나의 의지를 파괴할 수 있을 것 같은가?”
한제의 화염 본원이 돌연 두 눈을 번쩍 떴고 두 눈에 담긴 화염을 이글거리며 포효를 내질렀다. 그러자 그의 체내에서 신식이 화룡의 의지 아래 몸부림을 치며 불굴의 의지를 드러냈다. 마치 흔들리는 촛불처럼.
★ ★ ★
한참 멀리 떨어져 있던 여인은 한제 화염 본원의 포효에 표정이 급변하더니 곧장 돌진했다. 한제의 본체도 눈을 번득이며 몸을 날렸다.
젊은 부인이 한제의 본체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전속력을 내자 그녀보다 수준이 낮은 한제로서는 상대를 저지할 수 없었지만 그에게는 정신술이 있었다. 한제는 가장 정확하고 절묘한 순간에 정신술을 발휘해 최대의 효과를 보기 위해 기회를 살폈다.
젊은 여인과 한제의 본체는 순식간에 화염의 본원이 있는 곳과 가까워져 이제 신식으로 명확히 살필 수 있을 정도였다.
“저, 저것은 본원의 진신 아닌가! 이곳에서 지화맥을 이용해 본원을 응집하고 있었구나!”
한제의 화염 본원을 본 여인은 찬 숨을 헉 하고 들이마시며 몸을 바르르 떨었다. 소매 안에 숨겨진 오른손 역시 무의식적으로 떨렸고 심신도 진동했다. 대천존의 법보를 봤을 때보다도 큰 충격이었다.
대혼문의 선조 청우 진인에게도 진신을 갖춘 본원이 있기에 여인은 본원을 진신으로 응집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 일인지 잘 알았다. 자신 역시 본원을 진신으로 응집하려 시도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청우 진인 외의 누구에게서도 보지 못한 본원 진신을 봤으니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저자가 위험을 무릅쓰고 주맥 깊은 곳까지 파고든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군.’
창백해진 여인의 두 눈이 서늘하게 번득였다. 그녀는 본원의 진신이 응집되면 이곳의 지화 주맥은 사라질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주맥이 사라지는 것을 두고 볼 수도 없었고 상대에 대한 질투 때문이기도 했다.
여인은 한 움큼 피를 뱉어내 열 배나 빨라진 속도로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한 줄기 연기 같은 잔영이 되어 한제의 화염 본원이 있는 곳으로 질주한 것이다.
그때, 한제의 화염 본원이 내지른 강력한 의지를 품은 포효에 그의 체내로 파고든 화룡의 의지는 무너져 내렸다. 그 붕괴로 인해 화염의 본원이 가진 의지가 주도권을 차지했고 화룡의 마지막 광기는 완전히 와해됐다.
한제가 화룡에게 남아 있던 대량의 의지를 흡수한 순간, 머릿속에서 콰쾅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한제의 신식은 사방으로 확산됐고 한제는 지화 주맥 밖, 천우주 대지 깊은 곳으로부터 찢어질 듯한 포효가 들릴 듯 말 듯 울려 퍼지는 것을 어렴풋이 듣게 됐다.
그 포효가 심신으로 전달됐을 때, 한제는 남아 있던 화룡의 의지를 모두 흡수한 상태였다. 그 어렴풋한 포효는 머릿속에서 마치 어마어마한 천둥이 내리치는 듯한 충격과 환각을 일으켰다.
순간적으로 이지러졌다가 또렷해진 한제의 시야에는 우주가 펼쳐져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우주에 한제는 혼으로만 존재했다.
그는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도 알지 못했다.
한데 혼란에 빠져 있던 그의 귀에 돌연 저 멀리서 우렁찬 포효가 들려왔다. 이에 그쪽으로 돌아선 순간 한제의 두 눈동자가 바짝 졸아들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한 마리 소였다.
온 우주를 얼려버릴 듯 서늘하고 차가운 얼음으로 뒤덮인 이 거대한 소는 하늘을 향해 포효하고 있었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기운이 소의 체내에서 발산되어 온 세상을 뒤덮으며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한제 역시 얼어붙은 듯했고 심지어 생각도 느려지기 시작했다. 이렇게까지 강력한 흉수는 난생처음이었다. 이 흉수가 발산하는 기운에는 현라라도 당황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천우!”
한제의 머릿속에 순간 천우주의 이름과 관련된 전설이 떠올랐다.
두청의 말에 따르면 선조가 죽인 천우의 몸이 하나의 주가 되어 천우주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했다. 그때부터 일반인들이 태어나고 수련자들도 이주해 들어와 종파를 세운 이 주는 그로부터 수천 년이 흐름에 따라 선족의 72개 주 중 하나가 된 것이다.
한제의 심신이 마구 진동했다. 그 전설이 떠오른 순간 온 우주를 서늘한 기운으로 채운 천우 위쪽에서 금빛이 번득였다. 온 우주를 채울 듯 밝은 금빛 안에서는 황포를 입고 황관을 쓴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그 인영이 나타나자 우주가 바르르 흔들렸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선력 때문이다. 이 선력은 천우의 몸에서 발산되는 서늘한 기운에 대항하면서 요란한 소리를 울렸다.
“선조!”
황포를 입은 그 사람의 정체가 무엇인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설마 화룡의 의지를 흡수함으로써 그 옛날 선조가 천우를 봉인하던 당시의 광경을 보게 된 것인가! 한데 천우는 화 속성을 띠고 있다고 했건만 어째서 저렇게 서늘한 기운을 발산하는 거지?”
한제가 떨리는 심신을 안은 채 중얼거렸다.
황포를 입은 사람의 등장에 천우는 다시 포효했다. 그런 녀석의 몸에서 피어오른 서늘한 기운에 쩌적 소리와 함께 주위가 빠르게 얼어붙었다.
이 어마어마한 힘에 한제는 자신은 물론이고 칠채선존도 대항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다. 현라도 전력을 다해야만 저 무시무시한 천우에 맞설 수 있으리라.
천우의 몸에서 피어오른 기운으로 인해 우주가 얼어붙기 시작한 그때, 선조가 손가락 하나로 아래쪽을 가리켰다. 동시에 그의 위엄 있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팔극 선도 극화도(極火道)!”
그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선조의 손가락에서 한 줄기 푸른 연기가 피어올랐다. 뒤이어 이 연기는 그의 손가락을 아홉 번 맴돌며 아홉 개의 원을 그려냈고 이 원들은 곧장 천우를 향해 돌진했다.
쏘아져 나가는 와중 점점 커진 아홉 개의 원은 눈 깜짝할 사이 거대해져 천우와 충돌했다.
첫 번째 원은 천우가 발산하는 서늘한 힘과 충돌하면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서늘한 힘은 그대로 무너져 내리며 흩어졌다. 두 번째 원이 그 와해된 힘을 관통해 천우의 몸에 떨어졌다. 동시에 나머지 일곱 개도 분분히 천우를 공격했다.
“쿠오오오!”
천우는 몸부림치며 포효했지만 연기로 이루어진 그 원들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었다.
아홉 번째 원까지 떨어진 순간, 천우의 체내에서 발산되던 서늘한 기운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대신 하늘을 뒤덮을 듯 강력한 화염이 이글이글 타오르며 녀석의 몸을 뒤덮었다.
“너는 감히 우리 선족 구역을 침범했다. 난 네 몸을 대지로 만들고 네 원신으로 모든 영혼을 자양할 것이며, 네 뼈로 지맥을 만들 것이다. 또한 네 혼은 너를 평생 이곳 선강 대륙에 머물도록 짓누르게 될 것이야!”
천우가 찢어질 듯한 포효를 내지르는 사이, 녀석의 몸은 쑥 가라앉아 드넓은 대지가 됐다. 그 위로 산들이 솟아올라 수많은 산맥을 형성했고 녀석의 뼈는 지맥이 됐다.
이렇게 대지와 산맥이 형성된 순간, 무궁무진한 화염이 천우의 체내에서 발산돼 줄기줄기 지맥을 지화맥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이 대지의 가장 아래로 천우의 혼이 묻혔다.
녀석은 포효를 내질렀지만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했다.
이 모든 것을 목격한 한제의 시야가 흐려졌다. 시야가 다시 또렷해지기를 기다리는 사이 지화 주맥 안에 자리한 그의 귓가에서는 천우의 포효가 맴도는 듯했다.
이내 시야가 완전히 또렷해졌을 때, 화염 본원의 머리카락은 거의 검게 변한 상태였다. 본원 진신이 완성되어 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바로 그때, 화염 본원의 전방에서 핏빛이 번득이며 달려들었다. 그 붉은 빛 안의 아름다운 여인은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는 본원의 머리카락을 보자 살기 너머로 초조한 기색을 내보이며 손을 들었다. 금방이라도 완전한 인간 형태를 갖출 듯한 본원을 파괴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뒤편 허공에서 파문과 함께 왜곡이 일어나는가 싶더니 한제가 나타났다. 그는 여인이 손을 들어 올리며 신통술을 발휘하려 한 순간, 두 눈을 번득이면서 오른손을 들었다.
“정”
세상과 모든 신통술을 생각과 만물을 멈추는 술법이었다.
무시무시한 분신
정신술이 발휘된 순간, 아름다운 여인의 호리호리한 몸은 그대로 멈춰버렸다. 그녀가 발휘하려 했던 신통술도 중단되어 버렸다.
“우웩!”
한제는 피를 토했다. 온몸에서는 펑, 펑 소리와 함께 피 안개가 터져 나왔다. 여인을 공격하지는 않았다. 틀림없이 상대에게는 방어용 법보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순간이동으로 몸을 날린 한제는 여인 전방의 화염 본원과 합쳐졌다. 그리고 그 순간, 본원의 머리카락이 완전히 검게 변했다. 화염의 본원이 완전한 인간의 형태를 갖추게 됐다는 뜻이었다.
극강의 기운이 한제의 본원에서 뿜어져 나왔다.
이때, 정신술에서 벗어난 여인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분신과 합체해봐야 별수 없을 것이다!”
여인은 처음 접한 정신술에 크게 놀란 상태였지만 날카롭게 외치며 달려들었다. 그러자 한제는 고개를 번쩍 쳐들며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팔극 선도 극화도!”
그에게 선족의 혈맥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아예 수단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팔극 선도 극화도. 이 술법은 선조가 천우를 해치울 때 사용했던 신통술이었다.
한제가 본원에 남겨두었던 일부의 신식은 환각 속에서 빠져나온 이후에도 여전히 멍한 상태였다. 그리고 이 멍한 상태는 본체와 융합한 뒤에도 이어졌다.
이때 그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은 선조가 발휘했던, 온 세상을 파멸시킬 것처럼 강력한 극화도뿐이었다.
한제가 외친 순간, 그의 뒤로 본원이 허상으로 나타났다. 마치 두 명의 한제가 나란히 서 있는 것처럼 기이한 광경이었다.
화염으로 이루어진 본원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뜨거운 열기를 발산해 사방을 왜곡시켰다. 본원의 체내에는 어마어마한 의지도 깃들어 있었는데 이는 화염의 의지이자 화염의 제왕이었다.
한제가 손을 들어 여인을 가리키자 화염의 본원 역시 같은 행동을 했다. 그와 동시에 한제와 본원의 손가락 끝에서 푸른색의 옅은 기운이 한 줄기 흘러나왔다.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옅은 기운은 흘러나오자마자 한제와 본원의 손가락을 맴돌았다. 그와 동시에 강력한 위압감이 한제와 본원의 몸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 위압감이 확산됨에 따라 여인의 표정이 굳어갔다.
그녀는 체내의 혈맥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음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이 기이한 변화와 함께 체내에서는 펑, 펑 소리도 울려 퍼졌다.
‘이, 이게 뭐야? 도대체 무엇이기에 내 혈맥까지 진동시킨단 말인가!’
눈동자가 바짝 졸아든 여인은 반사적으로 결인을 그렸다. 순간 전신의 3만 6천 개 모공에서 일제히 검은 기운이 피어올랐다. 이 검은 기운은 찰나의 순간 그녀의 온몸을 뒤덮더니 3만 6천 개의 귀신 얼굴로 변해 포효하며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한편, 한제의 오른손 손가락 끝에서 피어오른 푸른 연기가 그의 손가락을 한 바퀴 돈 그때, 동부계와 선강 대륙 사이의 허공 속 한제의 분신이 두 눈을 번쩍 떴다. 그러더니 한제와 마찬가지로 오른손을 들었고 그 손가락 끝에서도 푸른 기운이 흘러나와 그 손가락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같은 시각, 천우주의 지화 주맥 깊은 곳. 한제와 화염 본원의 손가락에서 피어오른 푸른 연기는 선강 대륙 법칙의 힘을 느낀 듯 짙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3만 6천 개의 귀신 얼굴이 달려든 순간, 빠른 속도로 한제의 손가락을 한 바퀴 돌았다.
이에 연기로 이루어진 푸른색 원 하나가 한제의 손가락으로부터 확산되어 귀신 얼굴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동시에 한제 뒤편 본원의 손가락에서도 타오르는 듯한 원이 하나 발산돼 쏘아져 나갔다.
이렇듯 한 가지 신통술로 두 배의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야말로 본원을 진신으로 응집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이고 명확한 강점이었다.
가장 먼저 나아간 한제의 원은 3만 6천 개의 귀신 얼굴과 충돌했다.
콰쾅!
요란한 소리가 땅속 깊은 곳에서부터 수많은 파문이 되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 격렬한 소리가 울려 퍼지는 사이, 3만 6천 개의 귀신 얼굴은 찢어질 듯한 비명을 내지르며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귀신 얼굴들을 관통한 원은 단숨에 여인의 코앞까지 달려들었다.
“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