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408
이 넓은 바다의 다른 한쪽. 녹마주 근처인 이곳에는 세 개의 거대한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세 깃발 아래로는 수천 명에 달하는 수련자가 서 있었는데 모두 말없이 냉랭한 눈으로 전방을 바라보았다.
이들 중앙에는 하얀 도포를 입은 세 명의 수련자가 있었다. 두 명의 사내와 한 명의 여인으로 모두 서른 전후로 보였다.
셋 중 매우 아름다운 여인이 고개를 숙여 손에 든 손바닥만 한 나침반을 들여다보았다.
“전 도우, 조 도우. 벌써 7일이 지났소. 서두르지 않으면 선조들의 명을 완수하지 못할 게요.”
세 사람 중 얼굴이 옥처럼 하얀 청년이 해수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길어봐야 나흘 안에 끝나네. 그때면 단해 안에서는 천우주 녀석들의 흔적도 찾기 힘들 걸세. 안 그런가 조 도우?”
전 사형이라 불린 다른 사내가 말했다. 외모는 평범했으나 두 눈이 악독하게 번득이는 사내였다.
“단해는 우리 녹마주에서 천우주로 들어가는 입구와도 같은 곳이에요. 강자들이 적지 않지요. 뚫고 들어가는 게 쉽지는 않아요. 허나 전 사형 말씀대로 길어봐야 나흘이면 충분할 거예요.”
여인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들더니 왼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이 단해의 나침반을 좀 보세요.”
여인의 손에 들려 있던 나침반이 어스름한 빛을 발산했고 그 안에서 단해의 윤곽이 그려진 지도가 천천히 나타났다.
지도 안에서는 수천 개의 녹색 빛이 반짝이며 이동했다. 수많은 하얀 빛도 있었는데 하나하나가 마치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롭게 흔들렸다. 세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도 수백 개의 하얀 빛이 녹색 빛에 삼켜지면서 사라져갔다.
하얀 빛은 크기가 서로 달랐는데 그중 세 개는 유달리 크고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하게 빛났다.
“단해 내 천우주 수련자 중 가장 강한 세 명이에요. 이미 공겁기 중기에 이르렀죠. 하지만 선조께서는 녹마 사자를 보냈으니 걱정할 건 없어요.”
하얀 빛 중에는 그 셋보다는 약간 작지만 다른 것들보다는 훨씬 큰 빛도 아홉 개 있었다. 이들은 녹색 빛에 둘러싸인 것으로 보아 격렬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듯했다.
“이 아홉 명도 수준이 낮지는 않아요. 일고여덟 번의 현겁을 통과한 이들이지요. 바로 이들이 바로 우리 셋의 목표예요. 이들만 제거하면 단해 안의 나머지 천우주 떨거지들은 나흘도 버티기 힘들 거예요.”
여인은 작게 웃으며 왼손을 가볍게 휘둘렀다. 그러자 그녀의 손에서 한 방울의 검은 액체가 나타났다. 수정처럼 반짝이면서 기이하고도 어스름한 빛을 발산하는 액체에서는 짙고 순수한 물의 본원의 기운도 풍겼다.
“이 독마종(毒魔宗)의 보물 만정화오액(萬淨化汚液) 앞에서 저들은 살아날 방법이 없지요.”
여인은 고개를 들어 두 청년을 바라보았다.
“우리 세 종파가 힘을 합친 이상 일이 틀어질 리는 없을 거요. 천우주에서는 눈치채지도 못하겠지. 세 선조께서 이미 신통술을 발휘해 누구도 이곳의 상황을 파악할 수 없게 해두었으니 말이오. 허나 그렇다 해도 방심은 금물. 어서 계획대로 저들을 죽이고 단해를 제련해 반 개의 선단으로 만들어 천우주의 보이지 않는 장벽을 폭파시킵시다.”
백면(白面) 청년이 빙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나 세 사람은 나침반 지도 속 한쪽의 평범해 보이는 하얀 빛 하나가 꼼짝도 않고 제자리에 있음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 빛의 주인인 한제 옆으로 녹색 빛이 수시로 지나쳐 갔지만 그들은 하얀 빛의 존재를 감지하지 못한 듯했다.
바다 깊은 곳에 가부좌를 튼 한제의 몸은 이미 바닷물과 융합되어 있었다. 그는 체내로 들어오는 바닷물을 끊임없이 응집해 물의 본원으로 압축해갔다. 하지만 바닷물에서 물의 본원을 압축해내기란 쉽지 않았다. 모든 바닷물을 한 방울로 응집해낸다면 모를까.
그의 신식 역시 바닷물에 융합된 상태라 단해 곳곳에서 일어나는 살기와 끔찍한 비명을 감지할 수 있었다.
★ ★ ★
또 하루가 지났다.
그동안 한제 위로 녹색 도포의 수련자 무리 수십이 지나쳐 갔지만 그들은 대량의 해초와 산호 사이에서 한제의 존재를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다. 또한 하루 사이에 드넓은 단해의 수심이 1백 척 정도 줄면서 많은 이들의 시선을 끌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살육에 집중하느라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이는 녹마주 근처 해수면 위 거대한 깃발들 아래의 세 사람 역시 마찬가지였다.
“동북쪽 39만 리, 녹마위(綠魔衛) 1개 조 출동!”
아름다운 여인이 나침반을 내려다보며 외치자 근처에 있던 수십 명의 수련자가 몸을 훌쩍 날렸다. 그들은 곧 바닷물에 녹아들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축지성촌을 발휘한 것은 아니었다. 단해의 금제는 녹마주 수련자들을 순간이동시키는 진 역할도 했던 것이다.
“동남쪽 198만 리, 녹마위 5개 조 출동!”
다시 한번 여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이번에는 백여 명의 수련자가 일제히 나서며 사라졌다.
여인은 나침반을 살피며 끊임없이 명령을 내렸고 하얀 빛들은 더욱 빨리 소멸되어갔다.
“전 도우, 조 도우. 두 분도 나서야겠어요. 그 아홉 명 중 넷은 죽고 다섯이 남았어요. 그중 둘은 흩어졌으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만 셋이 한데 모여 있군요. 서로 가까운 사이인 듯하니 어쩌면 협공에 능할지도 몰라요. 그러니 두 도우가 나서주면 좋겠어요.”
나침반 속에서는 비교적 큰 하얀 빛 세 개가 한데 모여 천우주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들 주위로는 녹색 빛들이 수시로 바짝 달라붙었다가 하나하나 꺼져버렸다. 숨을 거뒀다는 의미였다.
백면 청년은 빙긋 웃더니 손을 들어 올리며 부채를 하나 소환했다. 그는 이 부채로 왼손을 탁탁 두드리면서 곁에 있는 전씨 청년을 바라보았다.
“전 도우와 함께 가서 도마종(道魔宗)의 마도법(魔道法)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고 싶군.”
전씨 청년은 악독한 눈빛을 번득이기만 할 뿐 대답 없이 몸을 훌쩍 날리더니 순식간에 진으로 녹아들어 사라졌다.
백면 청년은 웃음을 머금은 채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그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이 떠난 후, 수천 명의 수련자에게 둘러싸인 여인은 미간을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겼다. 무언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상하네. 단해의 수심이 어째서 하루 만에 이토록 줄어버린 거지?”
잠시 고민하던 여인은 이 일을 일단 접어두기로 하고 다시 주위의 수련자들에게 명을 내리기 시작했다. 녹마주 수련자들은 여인의 명에 따라 이제 단해에 얼마 남지 않은 천우주 수련자들을 처리해갔다.
그러는 동안에도 한제는 단해에서 벌어지고 있는 살육에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고 온 정신을 집중해 바닷물을 흡수해갔다. 그의 몸은 끊임없이 바닷물을 빨아들이고 제련해 물의 본원으로 응집하려 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아직 포기하기에는 이르지.”
해초 사이에 가부좌를 튼 한제는 말라붙은 두 눈으로 저 멀리 스쳐 지나가는 녹색 도포의 수련자들을 바라보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고 잠시 후에는 시선을 거두고 다시 눈을 감은 채 호흡을 이어갔다.
돌파
또다시 하루가 흘러갔다. 이 하루 만에 단해의 수심은 8백 척이 넘게 낮아졌다.
이제 바닷속 깊이 잠겨 있던 암초 몇 개가 수면 밖으로 드러나기까지 했다.
이쯤 되자 제아무리 살육에 집중하던 수련자들이라 해도 더 이상 변고를 무시하기 힘들었다.
“이렇게 많은 바닷물이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누군가가 엄청난 신통술을 발휘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단해 곳곳에 퍼져 있던 녹색 도포 차림의 수련자들은 슬슬 놀라기 시작했다.
그때, 한제 근처를 세 개의 인영이 질주하고 있었다. 그중 두 사람은 중상을 입은 것이 분명해 보였지만 나머지 한 사람은 그들을 포기하지 않고 함께 도망치는 중이었다.
“백호, 자네라도 떠나게. 나와 주작은 틀렸어. 우리와 함께하다가는 자네도 힘들어질 게야.”
이 세 사람은 바로 동부계에서 빠져나온 주작, 백호, 그리고 현무 장군이었다.
“동부계에서 빠져나와 평화롭게 수련이나 하려고 찾아온 곳에서 이런 험한 꼴을 당하게 될 줄이야. 백호, 현무 말대로 자네라도 가게!”
★ ★ ★
몇 년 전, 선강 대륙에 도착한 세 장군은 이미 칠도종이 사라졌음을 확인하고는 단해를 찾아와 수련에 매진했다. 그 옛날의 위풍당당함은 사라지고 이제 인생 말년에 접어든 그들은 너무도 지쳐 있었다. 때문에 단해 안에서 큰 위세를 떨칠 수 있음에도 그저 조용하고 평안한 삶을 누리고자 했다.
그러나 제아무리 나무가 가만히 있으려 해도 바람이 그렇게 두지 않는 법이다. 세 사람의 평온함은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인해 깨져버렸고 그들은 달아나는 중이었다. 주작과 현무는 중상을 입었고 백호 장군도 가벼운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혼자 가라는 친구들의 말에 백호는 단호하게 말했다.
“다시는 그런 말 말게. 내 어찌 홀로 떠날 수 있겠는가! 우리는 함께 동부계에 들어갔네. 비록 청룡은 죽었으나 우리 셋은 죽을 때까지 함께하기로 약속하지 않았던가? 후계자를 찾아 우리의 모든 것을 물려주기로 하지 않았느냐 말일세! 한데 어찌 나 혼자 살겠다고 떠날 수 있겠는가!”
호통치는 듯한 목소리에 주작과 현무 역시 입을 다물자 백호는 친구들을 이끌고 다시 힘겨운 질주를 시작했다.
부채를 쥔 백면 청년이 이들의 뒤를 쫓았다. 그의 곁에는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는 전씨 청년이 악독한 눈빛을 번득이고 있었다.
전씨 청년은 상대를 턱 끝까지 쫓는 것보다 사냥감을 가지고 노는 맹수처럼 서서히 압박하는 것을 즐기는 중이었다.
다섯 사람이 쫓고 쫓기던 이때, 녹마주 근처 세 개의 깃발 아래 선 여인의 눈빛은 기이하게 번득였다.
‘뭔가 이상해. 하루 만에 수심이 수백 척이나 더 줄었어. 대체 무슨 일이지?’
여인은 말없이 나침반을 들여다보았다. 이때 나침반은 녹색 빛으로 거의 다 가득 차, 하얀 빛은 이제 1천 개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가장 큰 세 개의 빛은 이미 사라졌고 다음으로 컸던 아홉 개의 빛도 이제 세 개만 남아 한데 뭉쳐 이동하고 있었다. 그 뒤를 강렬한 두 개의 녹색 빛이 따르는 중이었다.
나침반을 자세히 살피던 여인은 또다시 미간을 찌푸렸다.
“정말 알 수가 없군. 허나 아무래도 이상해. 좋아, 이틀이 남았지만 서둘러야겠어. 만정화오액을 사용해 빨리 잔당을 소탕해야겠어!”
여인은 이를 악물더니 왼손으로 검은 액체를 한 방울을 소환해 바다로 튕겨 넣었다. 그러자 이 액체는 한 줄기 어스름한 빛을 그리며 바닷물 안으로 사라졌다.
그 순간, 액체가 떨어진 곳을 중심으로 바닷물은 검은색으로 변해갔다. 이 현상은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빠르게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됐어. 이제 단해 안의 모든 생명은 모두 죽음을 맞게 될 터!”
그 무렵, 한제는 어마어마한 양의 바닷물을 흡수했으나 여전히 물의 본원을 응집해내지는 못한 상태였다.
한데 그때, 단해의 해수면 절반 이상이 검게 변했고 그 범위의 천우주 수련자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바르르 떨다가 썩어갔으며, 순식간에 핏물로 녹아내렸다. 원신조차 도망치지 못하고 그대로 흩어져 사라졌다.
반면 녹색 도포의 수련자은 비록 검은 바닷물 안에서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지긴 했어도 다른 피해는 입지 않았다.
나침반을 든 여인은 이런 광경을 볼 수는 없었지만 나침반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나침반 속 단해는 절반이 검게 변한 상태였고 그 안의 하얀 빛은 지워진 듯 사라져 있었다.
“바닷물을 흡수하는 자가 있는 모양인데 지금도 그럴 수 있는지 두고 보자!”
여인은 두 눈을 서늘하게 번득이며 중얼거리더니 나침반 남은 하얀 빛들을 다시 살피기 시작했다.
“어쨌든 단해의 수심이 줄어든 이유는 반드시 찾아내야만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