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412
물과 불로 이루어진 두 개의 거대한 손바닥이 서로 가까워진 찰나, 바닷물은 뜨거운 화염에 증발하듯 대량의 수증기를 발산했다.
화염의 본원으로 이루어진 손바닥 역시 수증기에 의해 꺼질 듯했다. 하지만 이 화염과 물은 모두 한제의 본원으로 모두 그에게서 기인한 것이었기에 서로를 파괴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강력해졌다.
사실 한제 자신도 물과 화염의 본원을 동시에 발휘했을 때 이런 효과가 나타날 줄은 예상치 못했다.
바닷물로 이루어진 손바닥이 들끓듯 대량의 수증기를 발산하자 하늘에서 내리 떨어지던 화염 역령인은 약간 흐릿해졌지만 더욱 격렬하게 타올랐다.
순간 표정이 진중해진 운공이 검을 휘둘러 화염 역령인을 공격했으나, 동시에 아래에서 물의 역령인이 달려들었다.
격렬하고 우렁찬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두 역령인은 운공과 그의 검기를 중심에 둔 채 딱 맞물렸다.
콰쾅! 쾅!
요란한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면서 물과 불이 융합된 순간 하나의 본원을 훨씬 능가하는 어마어마한 힘이 발산되었다.
기(氣)의 힘이었다.
기란 매우 얻기 힘든 본원의 힘으로 한 사람이 물과 불의 본원을 동시에 장악하고 응집했을 때 생성되는 또 다른 종류의 본원이었다.
이런 본원은 어떠한 하나의 본원보다 훨씬 더 진귀했다.
그런 기의 본원이 나타난 순간, 물과 화염으로 이루어진 역령인은 동시에 무너져 내렸고 운공의 검기 역시 완전히 붕괴했다. 이로 인해 강력한 충격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빠르게 뒤로 물러난 한제는 그 충격을 이용해 백호를 비롯한 세 사람과 함께 일곱 번째 안개 층을 향해 달려들었다.
운공 역시 휘청거리면서 연달아 몇 걸음 밀려났다. 그러던 그때, 요란한 포효와 함께 꼭두각시 이사가 잔인한 표정으로 운공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 갑작스런 등장과 공격에 운공마저 당황했고 거친 기운이 훅 느껴진 순간 표정이 급변했다. 그는 곧장 혀끝을 깨물어 한 움큼의 피를 뿜어냈다. 이 피는 곧장 붉은 검이 되어 이사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검기는 이사를 강타하여 그의 오른팔을 그대로 잘라냈다.
“끼야아아!”
이사는 끔찍한 비명을 질러대며 뒤로 물러났지만 잘린 그의 팔은 기이하게도 다섯 갈래의 검은 기운으로 변하더니 곧장 운공의 체내로 달려들었다.
“크윽!”
짧은 신음을 내뱉은 운공의 입가로 피가 흘러내렸다. 어마어마한 살기가 어린 다섯 갈래의 검은 기운은 그의 체내를 파괴했지만 그것을 제거하기는 굉장히 어려웠다. 그 검은 기운에는 도고일맥의 힘이 어려 있기 때문이다.
“운공 도우, 더는 배웅해줄 필요 없네.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 게야!”
하늘에서 한제의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뒤로 물러나던 와중 고개를 든 운공은 오른팔을 잃은 꼭두각시 이사가 검은 안개가 되어 한제에게 거두어지는 것을 보았다.
백호와 주작, 현무를 이끌고 핏줄에 휩싸인 채 일곱 번째 층을 뚫고 나간 한제는 콰쾅 소리가 울려 퍼지는 사이 사라져 버렸다.
“후… 후훗! 으하하하핫!”
한제가 떠난 뒤, 운공은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 웃음은 어딘가 음침하게 느껴졌다.
“이번에 천우주에 들어가면 아주 재미있어지겠어. 다음에는 도망칠 수 없다. 너 같은 강자는 반드시 이 운공의 제물이 되어야 해!”
눈을 번득이던 운공은 몸을 돌려 바다 쪽으로 나아갔다. 그의 얼굴은 방금 전 입은 부상으로 인해 약간 창백해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부상을 치료할 때가 아니었다. 단해를 제련해 반 개의 선단으로 만들라는 선조들의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었다.
이때 단해 안의 천우주 수련자는 남김없이 죽은 상태로 이곳은 녹마주의 영역이 된 셈이었다.
★ ★ ★
단해 밖, 천우주. 긴 빛을 그리며 1천 리 정도를 이동한 후에야 멈춰 선 한제는 왈칵 피를 토하더니 몸을 돌렸다. 날카로운 빛이 깃든 그의 눈은 금제로 뒤덮인 단해를 향해 있었다.
“자네들은 떠나게. 내게는 해야 할 일이 있어. 여기서는 귀일종이 무척 가까우니 그들에게 이 상황을 알리게. 대혼문에는 내가 알리도록 하지!”
단해를 바라보던 한제는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며 오른손을 휘둘러 대혼문의 소리 전달 옥패를 소환했다. 그 안에 신식을 남긴 한제가 쥐고 있던 옥패를 던지자 옥패는 어스름한 빛을 발하며 엄청난 속도로 튀어나가 사라졌다.
소리 전달 옥패는 수련자보다는 몇 배나 빠르지만 워낙 먼 거리인 만큼 대체 언제쯤 대혼문에 도착하게 될지는 한제도 알 수 없었다.
한편, 소리 전달 옥패를 본 백호와 주작, 현무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것이 대혼문 내부 사람들끼리 사용하는 물건임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이에 그들은 뭔가 궁금한 기색이었으나 결국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난 대혼문의 장로가 됐네.”
한제는 세 사람의 눈빛을 눈치채고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몸조심하게!”
세 사람은 한제에게 포권을 했다.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동부계에서 있었던 일도 이번 일도 그들은 잊지 않았다.
“자네들도 몸조심하게!”
한제는 진심을 담아 세 사람에게 포권을 했다. 그의 시선이 가장 오래 향해 있던 것은 주작이었다.
주작은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세 사람은 귀일종을 향해 질주했다.
세 사람의 모습이 하늘 끄트머리로 사라지자 한제는 그제야 다시 단해를 향해 돌아섰다. 그의 눈에서는 살기가 번득이고 있었다.
“운공이라고 했던가? 네가 부상을 입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지!”
상대의 칼에 오른팔을 잃은 이사의 절규를 한제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게다가 운공의 수준은 굉장히 기이해, 그다지 높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그 검기는 굉장히 강력했다.
한제는 내기를 통해 염란에게서 받은 호리병 안의 3천만 도혼을 떠올렸다. 사용할 수 있는 것은 한 번뿐이지만 그 위력은 상당할 터였다.
한제는 이내 결정을 내린 듯 단해를 향해 돌진했다.
‘운공은 힘겹게 단해를 빠져나간 내가 다시 돌아오지는 않을 거라 생각할 것이다. 지금이 그자를 죽일 적기다. 허나 그러려면 일단 금제의 중추인 나침반을 손에 넣어야 할 터!’
한제는 선강 대륙에 이른 후 처음으로 진정한 살의를 느꼈다.
몸을 훌쩍 날린 한제는 단해 상공에 나타났다. 그의 아래로는 보이지 않는 금제가 있어 그 안에서는 아직 한제의 기운을 알아차릴 수 없을 터였다. 그럼에도 한제는 신중하게 모든 기운을 숨긴 채 마치 유혼처럼 단해 깊은 곳을 향해 질주했다.
몇 걸음 나아가다가 세상에 녹아들어 사라진 그가 다시 나타났을 때는 이미 녹마주 근처의 해역에 이른 상태였다. 그곳 상공에서는 수시로 스쳐 지나가는 녹마주의 수많은 수련자를 볼 수 있었다. 이들의 수준은 서로 달랐지만 대부분은 두 번째 단계였다. 그들은 끊임없이 이동했고 무언가를 경계하듯 신식을 펼쳐 사방을 훑고 있었다.
갈수록 녹마주 수련자의 수가 늘었고 점차 공현기 수준의 강자도 보이기 시작했다.
한제는 속도를 천천히 늦췄고 신중한 눈빛으로 금제를 뚫고 들어갔다. 두 눈에 잔뜩 선 핏발이 그의 온몸을 감싸더니 그가 금제에 진입한 순간 안개로 변했다. 금제의 본원을 통해 단해를 뒤덮은 금제를 흉내 낸 것이다. 이제 당분간은 누군가에게 발각될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됐다.
일곱 번째 층에 녹아든 한제는 조심스레 안개 속을 질주하면서 진의 중추라 할 수 있는 나침반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녹마주 근처에 이르러 있다 보니 상공에서 점점 많은 녹마주 수련자들을 볼 수 있었다. 보통 수십 명이 한 조를 이룬 그들은 하나같이 진중한 얼굴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지금껏 본 것만 해도 수만 명에 달하는군. 이토록 많은 이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면 천우주를 노리고 있는 것이겠지.”
한 줄기 안개가 된 한제는 상공을 스쳐 지나가는 여러 무리의 녹마주 수련자들을 바라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서로 다른 세력 간의 잔혹한 대립은 어디에나 있었다. 세상에 정토(淨土)란 없다. 만약 있다면 절대자로 인해 누구도 감히 그에 반하는 마음조차 품을 수 없는 곳일 터였다.
그때, 한제가 돌연 굳은 얼굴로 고개를 홱 쳐들었다. 강력한 한 줄기 파동을 느낀 것이다. 아주 먼 곳에서 천천히 다가오는, 어떤 법보에서 생겨난 파동이었다.
저 멀리서 수백 명의 녹마주 수련자가 나타났다. 그중에는 네 명의 공현기 강자가 누군가를 호위하듯 동서남북 네 방향에 자리해 있었다.
그리고 무리의 정중앙. 길이가 1천 척에 달하는 거대한 북이 하나 있었다.
새카만 북 사방으로 수많은 험상궂은 흉수들이 불룩 튀어나온 채 음산한 기운을 뿜어댔다. 그리고 북 주위로 셀 수 없이 많은 원혼이 맴돌며 소리 없는 포효를 내질렀고 층층이 파문을 일으켜 사방으로 퍼뜨렸다.
그런가 하면 묵직해 보이는 이 북 아래로는 백여 명의 수련자가 온 힘을 다해 떠받친 채 천천히 비행하고 있었다.
이 거대한 북을 본 순간, 한제는 표정이 딱딱하게 굳더니 숨을 죽였다. 저 북 안에 한 명의 수련자가 숨어 있음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거대한 북과 하나로 융합된 그 수련자는 한제가 숨어 있는 곳 근처를 스쳐 지나가는 순간, 한 줄기 신식을 북 밖으로 내보냈다. 이 신식은 주위를 한 번 훑더니 천천히 흩어져 사라졌다.
그들이 멀리 떠난 뒤에도 한제는 멀어져가는 북의 흐릿한 윤곽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수련자와 법보의 결합이라⋯⋯.’
이후, 한제는 그것과 같은 북을 총 여덟 개나 보았다. 또한 거대하기는 매한가지였으나 서로 다른 모양의 다양한 법보도 볼 수 있었다. 그 모든 법보에서는 충격적인 기운이 사방을 뒤덮었다.
‘여기 오래 머물 수는 없겠어. 속전속결로 끝내고 최대한 빨리 떠난다!’
한제는 바짝 긴장했지만 그럴수록 냉정해졌다.
단해를 뒤덮은 금제에 녹아든 한제는 천천히 녹마주 근처의 해역으로 접근했다. 금제의 중추가 있는 곳이었다.
‘저기다!’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안개 속을 질주했고 곧 해수면을 뚫고 솟아오른 세 개의 거대한 깃발을 볼 수 있었다.
세 개의 깃발은 바람에 휘날렸고 그때마다 층층의 파문을 일으켰다.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모습이었다.
그 깃발들 아래,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미간을 찌푸린 채 손에 든 나침반을 살피는 중이었다.
여인 곁에는 낯익은 사람이 있었다. 백면 청년이었다. 손에 부채를 든 그는 깊은 생각에 잠긴 채 아래쪽의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 주위에는 녹색 도포 차림의 수련자 수백 명이 호위무사처럼 꼼짝도 않고 눈을 감은 채 좌선하고 있었다.
허나 누구도 한제가 일곱 번째 안개 층에 숨어든 채 냉랭한 눈으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눈치채지 못했다.
한제의 눈빛은 주로 여인의 손에 들린 나침반에 머물렀다.
‘저 나침반이로군. 저것만 있으면 이렇게 숨어 있을 필요도 없다. 내가 단해에 들어왔음을 아는 유일한 물건이 바로 저 나침반이니까.’
저 나침반만 손에 넣는다면 누구도 자신이 단해에 왔음을 알 수 없게 되고 그래야 운공을 제거한 뒤 안전하게 도망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이 망망한 곳에서 운공을 찾는 데도 저 나침반은 큰 도움이 될 터였다.
허나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이곳의 누구도 빠져나가게 둬서는 안 되고 저 여인이 나의 존재를 밖의 누군가에게 전달할 기회를 줘서도 안 돼.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한다.’
한제는 미간을 찌푸린 채 수백 명의 수련자와 세 개의 거대한 깃발을 바라보았다.
‘저 깃발들도 호신용 법기겠지. 쉽지 않겠군.’
한제는 모든 상황을 고려해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잠복
한편, 나침반을 든 여인의 미간은 전보다 한층 더 구겨졌다.
‘이상하군. 분명 단해 안에 더 이상 천우주 수련자는 남지 않았는데 왜 나침반에서는 파문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이는 분명 진이 이상을 감지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