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413
나침반은 녹색 빛으로 빽빽하게 차 있을 뿐 하얀 빛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그 위로는 여전히 물결 같은 파문이 퍼져 나가고 있었다.
눈을 번득이던 여인은 왼손으로 빠르게 결인을 그려 소환한 문양을 계속해서 나침반에 찍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가까이 다가온 백면 청년은 나침반을 들여다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운공 대사형이 있으니 문제없을 거요.”
여인은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운공 대사형은 이미 행동에 나섰어요. 곧 단해는 사라질 테고 그러면 우리는 전설 속에서나 듣던 선단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직접 확인할 수 있겠지요.”
여인은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내다보았다.
이때, 몰래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은 한제는 단서를 파악하고는 심장이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한데 바로 그때, 돌연 단해 안에서 격렬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집채만 한 파도가 마구 몰아치기 시작했다. 뒤이어 곳곳에서 아홉 개의 거대한 소용돌이가 나타나 회전하면서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산했다.
“대사형께서 시작하셨군요!”
여인은 나침반에서 눈을 떼더니 기대감 어린 눈으로 저 멀리 해수면 쪽을 바라보았다.
그와 동시에 세 개의 깃발 근처 해저로부터 십여 명의 수련자 무리가 튀어나와 여인이 있는 곳으로 돌진했다. 여인의 명에 따라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온 녹마위였다.
하지만 여인을 비롯한 녹마위 수련자들은 이들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저렇게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는 녹마위 무리는 매우 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제는 달랐다. 금제 속에 숨어 있던 그는 두 눈을 번득이며 한 줄기 연기가 되어 그중 한 수련자의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이 수련자는 잠시 멈칫했고 두 눈을 어스름하게 번득였지만 이내 덤덤하게 대열을 따라 빠른 속도로 세 개의 깃발과 여인을 향해 다가갔다.
한데 그때였다. 나침반이 돌연 바르르 진동했다. 이는 분명한 경고였다.
흠칫 놀란 여인은 곧장 나침반을 들여다보았지만 이미 진동은 사라진 후였다.
“왜 그러시오?”
여인의 표정이 변하자 백면 청년이 물었다.
“뭔가 이상해요. 방금 분명 나침반이 경고를 했어요. 분명 외부의 수련자가 단해에 들어온 거예요!”
여인의 표정은 매우 진지해졌다.
“그러고 보니 그 이한제라는 자가 은닉했을 때 나는 찾아내지 못했소. 조 도우, 내게 힘을 좀 빌려주시오. 나침반을 역전시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해야겠소!”
백면 청년은 말을 마치자마자 오른손을 여인의 등에 얹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두 눈을 기이하게 번득인 여인은 스승으로부터 배운 대로 결인을 그린 왼손으로 나침반을 연타했다.
그때, 좀 전에 임무를 마치고 복귀한 녹색 도포 차림의 수련자 20여 명이 다가오고 있었으나 여인도 백면 청년도 쓰지조차 않았다. 그리고 이 수련자 중 한 명의 눈빛에는 한 줄기 살기가 보일 듯 말 듯 번득였다.
나침반은 여인이 끊임없이 그려대는 결인 아래 곧장 흐릿해졌고 그 안에서는 시간이 거꾸로 흐르며 방금 전의 상황을 드러냈다. 한제가 틈을 타 한 수련자의 귓속으로 파고들어 심신을 탈취한 바로 그 상황이었다.
이 무렵, 한제가 심신을 탈취한 수련자와 여인 사이의 거리는 1만 척도 채 되지 않았다. 이 수련자는 두 눈을 번득이다가 돌연 한 걸음 앞으로 내딛더니 다른 수련자들을 그대로 앞질렀다.
주위의 의아한 눈빛이 집중된 순간, 그는 어느새 무리의 선두에 선 수련자 바로 뒤에 이르러 있었다.
선두의 수련자는 세 번째 단계에 이른 중년 사내로 공열기 초기 수준이었다. 그는 뭔가를 느낀 듯 막 고개를 돌리려 했으나, 어디선가 나타난 한 줄기 연기가 두 눈으로 파고들었다.
‘흡!’
중년 사내는 몸을 바르르 떨었고 눈빛이 번득이다가 곧 본래 상태로 돌아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한편, 나침반을 들여다보던 여인은 몸을 바르르 떨었다. 방금 나침반이 또다시 격렬하게 진동한 것이다.
그녀가 막 상황을 파악하려던 순간, 선두의 중년 사내가 돌연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여인에게 달려들었다.
“임무 수행 중에 바닷물에서 검은 액체를 한 방울 발견했는데 이게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중년 사내는 거친 목소리로 외치며 수천 척을 그대로 뛰어넘었다. 가부좌를 틀고 있던 주위의 수련자들이 하나둘 눈을 떠 그를 바라보았다.
이 중년 사내는 검은 액체 한 방울을 앞으로 내던졌다. 검은 액체는 모습을 드러낸 순간 짙은 본원의 기운을 발산했다.
중년 사내의 목소리에 고개를 든 여인의 눈에 그 검은 액체가 들어온 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바짝 졸아들었다.
“만정화오액!”
여인은 충격을 받은 목소리로 외쳤다.
그때, 한제에게 통제되던 중년 사내가 또다시 수천 척을 뛰어넘었고 이제 여인과의 거리는 1천 척도 채 되지 않았다.
한데 그 순간, 세 개의 거대한 깃발에서 돌연 파문이 일어나 퍼져 나갔다. 쉭 소리가 울려 퍼졌고 여인의 손에 들린 나침반에서는 안개가 된 한제가 한 수련자의 귓속으로 파고들던 좀 전의 장면이 재현됐다.
“멈춰라!”
여인은 심신이 바르르 진동하는 것을 느끼며 날카롭게 외쳤고 뒤로 물러나려 했다. 곁에 있던 백면 청년 역시 경악한 모습이었다.
“본원, 해산!”
여인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터져 나온 순간, 한제에게 통제되던 중년 사내는 낮은 고함을 내지르며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동시에 그 안에서 튀어나온 한 줄 연기에서 한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때, 한제가 내던졌던 만정화오액이 돌연 폭발했다.
퍼펑!
맑은 물에 떨어진 먹물처럼, 검은 액체는 사방을 빠르게 뒤덮더니 눈 깜짝할 사이 반경 1만 척 범위를 온통 검게 물들였다.
“끄아악!”
“으윽!”
주변에 가부좌를 틀고 있던 수백 명의 수련자는 비참한 절규를 내지르며 급속도로 썩어 들어갔고 순식간에 검은 물로 녹아내렸다. 한제 뒤를 따르던 십여 명의 수련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와 동시에 한제의 옆에서 우렁찬 포효가 터져 나왔다. 한쪽 팔을 잃은 이사의 포효였다.
녀석은 나타나자마자 세 개의 깃발이 있는 쪽을 향해 돌진했고 동시에 거대한 깃발 하나가 뚝 부러졌다.
이사는 나머지 두 개의 깃발을 향해 돌진했다.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한제는 앞으로 한 걸음 나서더니 순식간에 1천 척의 거리를 좁혔고 여인과 백면 청년은 뒤로 물러나려 했다.
“이한제!”
상대의 정체를 알아차린 청년은 두려움 어린 목소리로 외쳤고 여인은 물러나면서 왼손으로 나침반을 누르려 했다. 한제의 등장을 모두에게 알리려는 것이었다.
그때, 한제가 오른손을 들어올려 두 사람을 가리켰다.
“정!”
그 한 마디에 보이지 않는 가느다란 실들이 온 세상을 채웠고 여인과 청년의 몸을 옭아맸다. 이에 두 사람은 우뚝 멈춰 버릴 수밖에 없었다.
백면 청년의 얼굴에는 겁에 질린 표정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여인의 왼손은 나침반으로부터 1촌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이른 채 멈춰 있었다.
한제는 곧장 달려들어 여인의 손에서 나침반을 낚아챔과 동시에 망설임 없이 왼손으로 그녀의 미간을 두드렸다.
콰쾅!
여인의 육신은 순식간에 피 안개로 무너져 내렸고 원신도 붕괴했다.
뒤이어 한제가 소매를 휘두르자 이 피 안개는 광풍처럼 달려들어 백면 청년을 뒤덮었다. 그 순간, 한제의 소매 안쪽에서 번득이며 나타난 붉은 검이 청년의 머리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콰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이사가 두 번째, 세 번째 깃발도 쓰러뜨렸다.
반경 1만 척을 뒤덮은 검은 액체는 응집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 한 방울로 뭉쳤고 한제는 입을 벌려 그것을 삼켰다.
모든 상황이 마무리된 상태였다. 수백 명의 수련자가 모두 목숨을 잃었고 여인과 백면 청년 역시 숨을 거두었으며, 위풍당당하게 서 있던 세 개의 깃발 역시 전부 꺾여 있었다.
다소 무리를 한 한제의 얼굴은 약간 창백했으나, 그는 곧장 이사를 거두고는 해저를 향해 몸을 날려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바닷속을 가로지르며 한제는 나침반에 신식을 주입했다. 동시에 두 눈에 핏발이 선 채로 금제의 본원 역시 나침반에 집어넣어 그 안에 찍혀 있던 신식을 지우고 온전한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힘든 일이었겠지만 금제의 본원을 가진 한제로서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이 나침반을 소유한다는 것은 단해 위에 드리운 금제의 진을 장악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한제는 바닷속을 질주하는 동안 나침반을 자세히 살폈다.
단해 안에 존재하는 녹색 빛은 다섯 개뿐으로 그중 하나가 유달리 눈에 띄었다. 나머지 빛들은 해수면 위에 집중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운공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 중에 바닷속에 있어서는 안 되는 모양이었다.
가장 밝게 빛나는 녹색 빛을 응시하던 한제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운공, 다음은 너다!”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단해의 금제에 녹아들어 사라졌고 이내 단해의 중앙 해역에 나타났다.
한제는 사방의 바닷물이 급속도로 회전하는 것을 느꼈다. 콰르릉 하는 먹먹한 소리와 함께 회전하는 바닷물에 그도 휩쓸릴 것만 같았다.
나침반을 확인한 한제는 운공과의 거리가 멀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사방을 회전하고 있는 바닷물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3천만 도혼을 사용하지 않아도 될지 모르겠군.”
잠시 고민하던 한제는 앞으로 나아가던 것을 멈추고 해저로 몸을 가라앉혀 숨어들었다.
한편, 단해 전역에서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하늘에 닿을 듯 거친 파도가 몰아치고 있었다.
하나의 거대한 소용돌이와 이를 중심으로 팔방에 자리한 여덟 개의 소용돌이는 매우 거칠고 빠르게 회전했다. 심지어 갈수록 빨라지고 있었다.
팔방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바닷물은 거세게 일어나 중앙의 소용돌이를 중심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아홉 번째 소용돌이 깊은 곳에는 가부좌를 튼 운공이 있었다. 약간 창백해진 그는 두 손으로 끊임없이 결인을 그렸다.
“단해는 어느 선단이 떨어져 내려 폭발해 만들어졌다는 전설이 있지. 허나 사실 이곳에 떨어진 것은 완전한 선단이 아니라 선단 반 개였을 뿐이다!”
운공은 눈을 번득이며 손을 쳐들어 앞으로 뻗더니 꽉 움켜쥐었다.
“단해, 응집!”
콰쾅!
거대한 소리와 함께 주위의 바닷물이 더욱 빠르게 회전하면서 응집하기 시작했고 바닷물은 선기를 풍기기 시작했다.
지금 단해는 마치 하나의 분지와 같았다. 그리고 그 분지의 중심에는 거대한 바닷물 소용돌이가 회전하고 있었으며, 그 상공에는 녹마주 수련자 수만 명이 빽빽하게 모여 있었다. 이들은 하나 같이 진지한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들은 운공이 반 개의 선단을 응집해 천우주의 장벽을 깨부수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소용돌이 아래 숨은 한제도 기다리고 있었다. 운공이 선단을 응집해 혼란이 일어날 그 순간을.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다. 그동안 운공은 선단을 응집하는 데만 집중했고 다른 수만 명의 녹마주 수련자 역시 모든 정신을 운공에게만 집중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도 단해에 천우주 수련자가 남아 있으리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지 않았다. 게다가 단해를 뒤덮은 금제의 존재는 그들을 더욱 방심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