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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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우주, 단해 근처의 산맥. 수많은 산봉우리가 무너져 내려 하늘은 어두웠고 모래 폭풍 때문에 음산했다. 하늘에서는 원혼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심신을 떨리게 했다.
이곳을 뒤덮은 안개 속, 반 정도 무너져 내린 산봉우리 위. 한제는 가부좌를 튼 채 부상을 치료하는 데 전념하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말라붙은 암적색 혈흔이 남아 있었다. 치료를 하는 동안 뱉어낸 피였다.
예상은 했지만 선단의 폭발로 인한 힘은 무시무시해 축지성촌을 발휘했음에도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 더구나 단 한 번 휩쓸린 것만으로도 한제는 뼈가 갈라지고 살이 무너져 내렸으며 원신 일부가 파괴됐다.
이곳에 이르러 가까스로 그 위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나마 고신의 육신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사흘째 되는 날 해 질 무렵에야 한제는 숨을 깊게 들이마신 후 눈을 떴다. 모래 폭풍 때문에 숨 쉬는 것도 쉽지 않았다.
순간 한제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해 질 무렵이었지만 안개 때문에 해도 달도 보이지 않았다.
“운공은 아마도 분신이었겠지만 분신의 죽음이 본체에 큰 영향을 미칠 터. 게다가 이것까지 손에 넣었으니, 부상을 입기는 했으나 만족한다.”
고개를 숙인 한제의 창백한 얼굴에 약간의 핏기가 돌았다. 그의 손에는 어스름한 빛을 반짝이는 나침반이 나타났다.
무척 오래되어 보이는 나침반에 단해의 지도는 이미 사라진 상태였고 대신 지금 한제가 있는 이 지역 지도가 나타나 있었다. 허나 그 위에는 아무런 빛도 번득이지 않았다.
“현묘한 금제였다. 융합할 수만 있다면 내 금제의 본원은 분명 강력해지겠지. 허나 아직 금제로서의 가치도 있으니 당장 융합할 필요는 없어.”
한제가 더 멀리 피신하지 않고 여기서 회복하기로 한 이유도 그 금제와 관련이 있었다. 그는 이곳에 금제를 배치했는데 단해를 뒤덮었던 그것보다 훨씬 작았지만 위력은 더욱 강력해 누구라도 나갈 수는 있어도 들어올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8할가량 회복했으니 움직일 때가 됐다. 물의 본원도 완성되었으니 대혼문으로 돌아갈 시간이야. 내가 보낸 옥패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겠지만 그토록 큰 폭발이 있었으니 분명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이들이 있을 거야.”
생각에 잠겨 있던 한제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새로운 옥패가 소환됐다. 그 안에는 한제가 단해로 다시 돌아가 벌인 일들과 단해의 폭발, 그로 인한 충격이 사방으로 퍼져 나간 장면 등이 모두 담겨 있었다.
어느 종파에서든 공로를 세우는 것은 법보나 단약, 공법을 얻는 데 중요한 조건임을 한제는 잘 알고 있었다. 또한 그 공로는 말로 설명하기보다는 옥패에 기록해두어야 진위 여부를 더욱 분명히 알릴 수 있다.
잠시 고민하던 한제는 자신이 나침반을 얻은 장면은 지웠다. 선단의 응집을 막은 장면만으로도 충분했다.
“이 정도면 청우 선조에게 대혼문 장혼각의 아홉 번째 층에 있는 다중환술을 얻게 해달라고 부탁할 수 있겠지!”
한제는 옥패와 나침반을 거두고는 금제를 제거한 뒤 천우주로 향했다.
그렇게 10만 척 정도 이동하던 한제는 이내 발아래 일어난 파문과 함께 사라졌다가 단해로부터 한참 멀리 떨어진 천우주 내륙에 나타났다.
그는 쉬지 않고 나아가 보름 후에는 대혼문에 가까워졌다. 이는 축지성촌 덕이었다. 비행만으로는 수개월이 걸릴 거리였다.
천우주의 깊은 곳답게 단해의 붕괴로 인한 영향을 받지 않은 듯 비취색 산맥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천우주는 매우 넓어 단해의 폭발로 영향을 받은 곳은 일부일 뿐이었다.
한제는 빠르게 날아가는 흡혈마수 위에 앉아 틈틈이 치료에 힘썼고 이제 9할 가량 회복한 상태였다.
다시 축지성촌을 발휘할 수 있을 때까지 힘을 비축하며 흡혈마수 위에 앉아 있던 한제는 돌연 두 눈을 가늘게 뜬 채 전방을 바라보았다.
몇 갈래의 어스름한 빛이 번득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빛 안에는 검은 종이학들이 있었다.
이 종이학들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어찌나 빠른지 눈 깜짝할 사이 자취를 감추기도 했다.
그중 한 마리는 한제의 정신술에 걸려 수백 척 앞에 멈춰 섰다. 한제는 소매를 휘둘러 종이학을 끌어당긴 후 손에 쥐고는 신식을 주입했다. 그 순간, 심신으로 엄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녹마주가 단해를 파괴하고 천우주의 장벽을 무너뜨렸다. 그들의 대군이 곧 도착할 것이다. 대혼문과 귀일종은 혼일령(魂一令)을 내려라. 모든 종파는 종파를 봉쇄하고 천우칠혈(天牛七穴)로 속히 모이도록 하라!”
한제가 놓아주자 종이학은 어스름한 빛을 번득이며 다시 날아가더니 금세 시야에서 사라졌다.
한제는 깊은 고민에 잠겨 있다가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온갖 생각들을 떨쳐내고는 다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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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해에서의 폭발 이후 20일이 되던 어느 날, 선발대를 이룬 녹마주 공겁기 수련자 수십이 단해 허무 안으로 날아들었다. 그들의 임무는 천우주 내 세 번째 단계 수련자들을 처리하는 것이었다. 한 달 뒤에는 7만 대군이 도착할 예정이었다.
이들의 뒤로는 강력한 검기를 가진 무시무시한 검영이 따라오고 있었다. 긴 머리를 어깨 위로 늘어뜨린 청의의 청년이 오래된 금색 검 위에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무척 수려하고 요사스러운 그의 얼굴은 덤덤했지만 약간 창백했다.
저 멀리 천우주 쪽을 바라보던 청년의 두 눈이 냉혹하게 번득였다.
‘내 분신을 파괴해 수준을 공겁기 초기로 떨어뜨리다니, 이 원한은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그가 타고 있는 금검(金劍)에서는 존귀한 기운이 발산됐고 그 검 뒤로는 황포 금갑을 입은 거구의 인영이 어렴풋이 나타나 있었다. 이 인영에서도 오랜 세월이 느껴졌다. 범상치 않은 검이 분명했다.
한제는 어스름한 빛을 발하는 종이학을 본 순간 들었던 기이한 느낌을 잊을 수가 없었다.
녹마주도 천우주도 모두 선족에 속해 있다. 두 주의 종파는 이전부터 서로를 향해 칼날을 겨누었을지 모른다. 허나 이토록 격렬하고 과격하게 쳐들어오려는 상황을 보며 한제는 다른 추측이 떠올랐다.
‘내 추측이 틀렸으면 좋겠는데… 만약 내 추측이 맞는다면 죽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선족이 느끼는 나의 존재감은 적어질 터. 만약 저들의 목적이 내 추측대로라면 소름 끼치는 상황이다. 녹마주도 그렇고 천우주도 그렇고 어쩌면⋯⋯.’
한제는 또다시 생각에 잠겼다. 그는 대혼문에게서 받은 세 개의 선물과 자신이 올 것을 예측했던 대혼문의 선조를 떠올렸다.
그 모든 것에는 어마어마한 목적이 숨겨져 있을 것이고 그 목적은 대혼문에게도 녹마주에게도 매우 중요할 터였다. 녹마주가 이전과 달리 이토록 과격하고 대대적인 공격을 한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대혼문의 선조는 천우주로 이주해오자마자 만물의 변화를 예측한 것이겠지. 아주 오랫동안 계획해온 비밀을 위해서!’
한제는 손바닥을 뻗어 소인(小人)을 소환했다. 하지만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 한참 동안 아무런 예측도 진행하지 않다가 결국 소인을 다시 거두었다.
‘미래를 미리 알게 된다 한들 뭘 어쩌겠는가? 게다가 내 도술로는 제대로 예측해낼 수도 없어. 대혼문 선조는 내게 세 개의 선물을 남겼다. 그중 하나는 그의 예측이었지. 그가 그런 선물을 남긴 것은 어쩌면 내가 이런 추측을 하리라는 것까지 내다보았기 때문인지 몰라. 그에 대한 답을 미리 준비해둔 거지.’
한제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면서도 그 선물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앞으로 다가올 일을 예측할 필요는 없다. 여러 단서와 흔적을 통해 추측할 수 있고 그중 진짜 답을 찾을 때까지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한제는 그런 일에 자신이 있었다.
‘아니면 그냥 멀리 떠나버릴 수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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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뒤, 한제는 대혼문에 도착했다. 그가 나타나자 여러 갈래의 빛이 날아들었다.
한제는 대혼문이 전체적으로 흐릿하고 왜곡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왜곡 속에서 놀라울 정도의 살기가 발산됐다. 다만 이 살기는 대혼문 보호진의 일부, 그를 노리고 발산된 것은 아니었다.
왜곡으로 인해 그 안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한제는 대혼문이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폭발을 앞둔 화산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한제에게 달려든 몇 갈래의 빛에도 신중함과 살기가 담겨 있었으나, 이는 그의 정체를 확인하자마자 흩어져 사라졌다. 그러나 신중함과 경계심은 그대로였다.
한제 앞에 이른 일곱 명 중 둘은 장로였고 나머지 다섯은 제자였다.
“이 장로 미안하네!”
그중 한제와 염란의 싸움을 옆에서 관찰했던 장로가 앞으로 나섰다.
“녹마주에서 우리 천우주의 장벽을 부쉈네. 선조는 장로든 제자든 밖에 나갔다 돌아온 모든 이들을 신분을 막론하고 엄밀한 조사하라 명하셨지.”
또 다른 장로 역시 한제에게 포권을 했다. 한제가 단번에 장혼각 8층에 이른 것을 본 터라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듯했다.
다섯 제자 역시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는 한제를 힐끔거렸다. 그들로서 한제를 직접 보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괜찮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응당 그래야지.”
한제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고 그제야 두 장로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로서는 한제와 척을 지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데 뜻밖에도 한제가 흔쾌히 응하자 어쩌면 이 일을 계기로 그와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까지 생겼다.
추측
“그럼 일단 영패를 좀 확인하겠네. 영패에 신식으로 낙인을 찍어 원신을 검증하고 한 방울의 피를 떨어뜨려 육신을 검증할 걸세.”
한 장로의 설명에 한제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허공을 움켜쥐어 이전에 장혼각에서 가져온 신분 영패를 꺼냈다. 뒤이어 두 장로 앞에서 신식을 한 줄기 갈라내 영패에 찍었고 손가락 끝에서 피를 한 방울 떨어뜨린 뒤 영패를 두 장로에게 건넸다.
둘 중 한 명의 장로가 결인을 그린 왼손으로 한제의 영패를 가리켰다. 순간 대혼문의 보호진이 바르르 진동하면서 어마어마한 위압감이 한제를 뒤덮었다. 찰나의 순간 달려든 그 위압감이 한제의 체내를 훑고 지나갔다.
한제는 심신이 진동함과 동시에 이 위압감에서 기이함을 느꼈다. 이 위압감의 역할은 한제의 체내에 남아 있는 원신과 신식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것이 몸을 뒤덮은 순간 자신의 육신과 원신 사이의 긴밀도까지 확인했음을 한제는 알 수 있었다.
한제의 신분을 확인한 위압감은 이내 그에게서 떨어져나가더니 이번에는 영패를 뒤덮었다. 그렇게 이중으로 검증을 하고 나서야 위압감은 서서히 흩어져 사라졌다.
확인이 끝나자 두 장로는 완전히 영패를 한제에게 돌려주었다.
“이 장로 불편을 끼쳐 정말 미안하네. 진을 통과하면 종파로 돌아갈 수 있네. 임무 때문에 더는 배웅할 수 없음을 이해해주길 바라네.”
한제는 자신에게 친절한 사람에게는 똑같이 친절한 편이었기에 빙그레 미소를 짓고는 두 사람에게 포권을 한 뒤 자리를 뜨려 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난 듯 그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혹시 최근 종파 내에 무슨 일이 벌어졌나?”
그 질문에 서로를 마주보던 두 장로 중 한 사람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7일 전, 어느 녹마주 수련자가 대혼문에 몰래 숨어 들려다가 허동덕 장로에게 발각되어 죽임을 당했네. 이 일로 선조께서는 격노하셨고⋯⋯.”
장로는 말을 채 맺지 못한 채 쓴웃음을 지으며 포권을 하더니 떠나갔다.
한제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대혼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압박감은 점점 강력해졌다.
대혼문 안에서는 여러 제자가 긴 빛을 그리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개중에는 거대한 산봉우리를 오가며 거대한 연기 재료를 옮기는 이들이 있었다. 저물공간에 넣을 수 없는 재료인지, 그런 이들이 제법 많았다.
종파 내에서 꽤 큰 약재산(藥材山)에서는 수많은 제자가 약초 채집에 여념이 없었다. 채집한 약재는 연단에 일가견이 있는 장로에게 보내졌다.
그런가 하면 여러 산봉우리에서는 파문이 발산되기도 했다. 한제의 화염산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산봉우리가 그랬다. 장로들이 자신의 수준을 가장 높은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폐관수련에 힘을 쏟고 있는 모양이었다.
주위를 한 번 훑어본 한제는 곧 자신의 산봉우리를 살폈다. 반산몽은 동굴 안에 가부좌를 튼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한제는 화염산으로 돌아가지 않고 청우 선조의 청천봉으로 향했다.
“안녕하십니까, 이 장로님!”
“도요봉(道燎峰)의 제자 이 장로님을 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