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416
“잔천봉(殘天峰)의 제자 이 장로님을 뵙습니다!”
그가 이동하는 동안 마주친 종파 제자들은 하나같이 우뚝 멈추고 인사를 한 후에야 하던 일을 이어갔다.
한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청천봉 근처에 이른 뒤 산봉우리를 향해 포권을 했다.
“청우 진인을 뵈러 왔습니다!”
청천봉은 이전과 달라져 있었다. 지금 이 산봉우리는 푸른색 옅은 안개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한제의 목소리가 울리자 안개는 꾸물거리면서 작은 틈을 내어주었다.
“들어오게!”
청우 진인의 허가가 떨어지자 한제는 망설임 없이 곧장 그 틈으로 몸을 날렸다. 그가 들어서자마자 안개의 틈은 사라져 버렸다.
청우 진인은 청천봉 꼭대기의 바위 위에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멀리 떨어진 곳을 향해 있었고 손바닥에서는 원신과 같은 작은 사람이 그를 향해 꿇어앉아 머리를 찧고 있었다.
한제는 말없이 그 작은 사람을 바라보았다.
“옥패는 받았네. 큰 공을 세웠더군!”
청우 진인은 감았던 두 눈을 뜨더니 한제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녹마주는 이전에도 몇 차례나 우리 천우주를 침략하려 들었지. 허나 이렇게 과격하게 나선 것은 처음일세. 단해를 제련하는 방법까지 찾아내다니⋯⋯. 쉽게 마무리 될 일은 아니야.
녹마주에는 3대 종파가 있고 그 선조들은 녹마주의 최강자들이지. 허나 괜찮네. 그들 각각의 수준은 나와 비슷하지만 나 혼자서도 그들 중 두 사람은 처리할 수 있어!”
청우 진인은 한제가 묻기도 전에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혼연도로 예측한 결과가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런 청우 진인 맞은편에 가부좌를 튼 한제는 한참이나 상대를 바라보다 불쑥 입을 열었다.
“장혼각 9층에 숨겨진 다중환술이 필요합니다!”
청우 진인은 눈을 가늘게 떴다. 장혼각 9층의 다중환술은 대혼문 최강의 술법이었다. 한제에게 넘긴다 해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으나, 1대 선조는 한제가 3백 년 후에야 장혼각 9층에 이를 수 있으리라 예측했다.
“장혼각에는 10층이 있네.”
고민하던 청우 진인이 불쑥 입을 열었다.
한제는 덤덤한 표정을 유지했지만 두 눈동자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살짝 수축했다.
“10층에는 나도 들어가 본 적이 없지. 그곳에 발을 들인 선조도 초대 선조뿐일세. 그곳은 그분이 입적하신 곳이기도 하지.”
청우 진인은 또다시 생각에 잠긴 듯 입을 다물었다.
한제 역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청우 진인이 이런 말을 꺼낸 목적을 알 수 없었다.
2각이 흐르고 나서야 청우 진인은 저 멀리 떨어진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의 공로는 인정하나 다중환술을 내주기에는 부족하네.”
한제는 예상했다는 듯 옥패를 하나 소환해 청우 진인에게 건넸다.
“이 공로까지 더해진다면 되겠습니까?”
청우 진인은 잠시 한제를 바라보다가 옥패를 받아 신식으로 살폈다. 그 순간, 청우 진인은 흠칫 놀라더니 다시 한번 옥패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완전히 살핀 그는 기이한 눈빛으로 한제를 바라보았다.
그의 수준으로는 이 옥패 안의 내용이 사실임을 알 수 있었다. 지난 몇 주 동안 세상의 변화에 대해 예측한 바와 미리 심어둔 첩자들의 보고까지 통틀어 청우 진인은 단해에서 있었던 일들을 파악하는 데 성공했다.
그 내용과 옥패의 내용은 대부분 부합했고 현재 한제에게 부상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점이 그 진실성을 뒷받침했다.
“좋군! 크하하하!”
청우 진인은 옥패를 쥔 채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가 왼손을 휘두르자 한 줄기 강력한 힘이 한제의 체내로 녹아들었다. 한제는 체내에서 울리는 펑, 펑 소리와 함께 자신의 부상이 순식간에 완벽하게 치유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 큰 공을 세웠군! 우리 대혼문에서는 공을 세운 자에게는 반드시 그에 합당한 상을 내리지. 장혼각 9층의 다중환술을 가질 수 있도록 허락한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네.”
청우 진인은 형형하게 빛나는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았다. 그는 점점 한제에게 만족했다. 이 정도의 기백과 담력이라니, 과연 대혼문의 초대 선조가 택한 사람다웠다.
“조건이 뭡니까?”
한제는 의기양양해하는 대신 신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녹마주의 공겁기 초기 수련자 열 명, 공겁기 중기 수련자 세 명을 죽이게. 그럼 장혼각 9층은 물론 10층에 발을 들이게 해주겠네. 그 모든 일을 해낸 후에는 대혼문을 떠나도 좋아!”
그 말에 한제는 심신이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그는 분명 능력이 닿는 선에서 최대한 대혼문을 도운 뒤 이 전쟁에서 빠져나갈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동림종을 거쳐 아득히 먼 도고 일맥까지 찾아가야 했으므로 천우주에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게다가 지금의 상황에 대한 추측 때문에 이 전쟁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
청우 진인은 이미 그 사실을 알아차린 듯했다. 그렇기에 억지로 그를 붙잡는 대신 세 가지 조건을 제시한 것이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조건을 들었을 때, 한제는 자신이 받았던 세 가지 선물을 떠올렸다.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한제는 이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혼문의 의도가 무엇이든 어쨌든 한제는 그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한제는 은원이 확실한 사람이었다. 청우 진인이 제시한 세 가지 조건은 그 도움에 대한 보답이 될 터였다. 쉽지는 않겠지만 한제는 해낼 자신도 있었다.
청우 진인은 빙그레 미소를 짓더니 더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오래된 옥패가 한제에게로 날아들었다.
한제가 잡아챈 그 옥패에는 대혼문 극강의 술법인 다중환술이, 심지어 구중환술의 완전한 구결까지 포함된 채 담겨 있었다.
“이 술법을 수련하려면 귀신 얼굴 깃발, 귀범(鬼颿)을 제련해야 하네. 전쟁이 시작될 참이니 제련에 필요한 재료를 모두 주지. 허나 귀범에 필요한 혼은 직접 선택해야 하네. 적합한 혼이 없다면 귀봉(鬼峰)으로 가서 찾아보도록.”
청우 진인은 말을 마치며 허공을 움켜쥐어 한 덩어리의 빛을 소환했고 적지 않은 연기 재료가 담긴 그 빛을 한제에게 건넸다.
그 빛 덩어리를 거둔 한제는 조용히 일어나 청우 진인에게 포권을 한 뒤 자리를 떴다.
“시간이 많지 않네. 7일 뒤, 자네와 장로 몇 명을 천우칠혈 중 한 혈에 보내 지키게 할 걸세!”
청우 진인의 말이 귓가에 울려 퍼졌다.
한제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이동했고 이내 자신의 산봉우리로 돌아갔다. 모든 화염이 꺼진 듯 그저 붉은색만 띠고 있던 산봉우리는 그의 발이 닿은 순간 다시 불바다를 일으키면서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 반산몽은 두 눈을 번쩍 떴다. 허나 그녀는 시간이 지나도 한제가 자신을 찾을 기미조차 보이지 않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사실 한제에게는 반산몽을 살필 여유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동굴로 돌아가 가부좌를 틀더니 청우 진인에게서 받은 빛 덩어리를 꺼내 깨뜨렸다. 그러자 그 안에 담겨 있던 귀범의 재료들이 동굴 안에 둥둥 떠올랐다.
이 재료들은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이었지만 어느 하나 귀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게다가 청우 진인이 직접 준 것인 만큼 품질도 상당했다.
곧이어 한제는 손을 휘둘러 다중환술이 담긴 오래된 옥패를 소환해 그 안에 신식을 주입하더니 술법의 구결을 비롯한 모든 내용을 마음에 새겼다. 그 안에는 귀범을 제련하는 방법도 포함되어 있었다.
옥패의 내용에 따르면 귀범의 품질은 초, 중, 상, 극, 절의 다섯 등급으로 나뉘며 각 등급은 두 종류의 환술에 대응한다고 했다. 대혼문 제자 대부분 초품의 귀범을 가지고 있었고 장로나 되어야 중품의 귀범을 가질 수 있다. 비교적 중요한 산봉우리의 핵심 제자들은 스승으로부터 호신용품으로 하사받기도 했다. 반산몽이 당시 염란으로부터 받았던 귀범도 중품이었다.
중품의 귀범은 매우 강력해 제대로 그 위력을 발휘한다면 수준마저 뛰어넘을 수도 있다. 이는 반산몽을 통해 이미 증명된 바 있었다.
상품 또는 극품 귀범을 가지고 다중환술을 발휘하면 그 위력은 천지가 개벽할 정도였지만 당연히 희귀했고 절품 귀범은 대혼문을 통틀어 단 하나뿐이었다. 대혼문의 보호진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바로 절품 귀범이었다. 심지어 그 진은 완전히 활성화되지도 않은 상태로 극히 일부의 위력만 발휘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사실들을 통해 한제는 여러 추측과 판단을 할 수 있었다.
‘귀범을 만들려면 혼이 있어야 한다. 반드시 수련자의 혼이어야 할 필요도 꼭 수준이 높아야만 좋은 것도 아니지. 허나 반드시 사혼(死魂)이어야 해. 한데 사혼이라는 말은 처음 듣는군.’
옥패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사혼은 사람이나 짐승이 죽은 순간 갖가지 집념이나 불만 혹은 원망으로 형성된 것으로 다른 사람으로서는 그것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다고 했다. 조금이라도 과하면 쓸모없는 원혼이 되고 조금이라도 모자라면 응집되지 않기 때문에 사혼을 얻기란 매우 어려웠다.
이에 대혼문에서는 오래 전부터 사혼을 연구했고 그 덕분에 사혼을 제련해내는 방법을 찾았다. 허나 이런 수법을 통해 제련해낸 사혼은 오랫동안 다듬어지지 않은 까닭에 초품, 기껏해야 중품에 그친다.
이런 사혼들로는 최대 삼, 사중의 환술을 감당할 수 있을 뿐으로 그보다 높은 수준의 환술을 시도하면 결국 압박을 이기지 못해 붕괴해버린다.
여문염
‘사혼은 말하자면 일종의 의지다. 그 의지가 강력해야만 그리고 오랜 세월 다듬어져야만 강력해지고 사중 이상의 환술을 감당할 수 있지. 다중환술의 원리는 바로 이 의지로군.
의지를 양분으로 삼아 층층의 환술을 생성해내 다른 이들을 미혹시키는 거야. 그러니 의지가 강력할수록 환술도 강력해지지!’
그렇게 생각에 잠긴 한제는 천천히 다중환술의 구조를 파악해나갔고 그럴수록 감탄을 금치 못했다. 너무도 교묘하고 현묘한 술법이라 만약 완전한 술법을 보지 않았더라면 절대 파악해내지 못했을 터였다.
‘이 술법을 창조해낸 사람은 분명 엄청난 자였겠군!’
한제는 옥패를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이 술법을 이해하기는 쉬웠다.
어렸을 적, 수련자의 길에 오르기 전의 어린 시절, 마을 어른들로부터 들었던 귀신들린 집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집에 귀신이 들면 그 집안 사람은 도시로 가 누군가를 초빙해와 귀신의 마음을 달래려 했다.
한제의 집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거의 잊고 있었던 기억이지만 다중환술의 원리를 깨우치려다 보니 돌연 떠올랐다.
‘귀신들린 집 이야기는 대부분 헛소리였어. 사람들에게 기이한 상황을 상상하게 해 그 안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하는 거지. 그럼 더더욱 귀신에 들린 것처럼 착각할 수밖에 없어. 점점 불안해지고 시끄러워지고 혼란스러워지지. 이는 심리 불안과 초조함의 증상이기도 해.’
수련자로서 오랜 세월을 살아온 뒤 생각해 보니 사람들을 괴롭힌 귀신은 일종의 원념일 뿐이었다. 때로 그 원념은 사람들의 심신을 어지럽혔고 불안하고 혼란스럽게 했다. 그런 상태에 이르면 환각을 보는 일이 많았고 그 환각을 귀신이라 여기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다중환술의 핵심이자 환술의 근간이었다.
‘다중환술이란 본디 이리 간단한 것이었군. 환술이라기보다는 헛것으로 사람을 속이는 술법에 가까워. 허나 쉬운 것 같아 보여도 이런 방법을 떠올려내고 신통술로 고안해낸 사람은 보통 천재가 아니다! 존경스러울 정도야.’
한제의 눈에 깨달음의 빛이 어렸다.
한제가 떠난 뒤에도 산봉우리 꼭대기에 가부좌를 튼 채 저 멀리 하늘을 바라보던 청우 진인은 한참 뒤에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역시 선황께서 폐관수련을 마치고 나오시자마자 녹마주에서는 참지 못하고 성화구나. 1대 선조의 예측은 매우 정확했어. 다만 미세한 부분에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군. 게다가 그분의 방식은 너무 부드러워 지금의 국면과는 잘 맞지 않아. 녹마주의 목표는 우리 대혼문의 목표이자 귀일종의 목표⋯⋯.”
청우 진인은 씨익 미소를 짓더니 불쑥 입을 열었다.
“여문염!”
순간 후방에 물결과 같은 파문이 일더니 한 중년 사내가 나타났다. 녹색 도포를 입은 그는 평범해 보였지만 공겁기 중기 수준의 기운을 풍겼다.
한 걸음 다가온 그는 청우 진인 뒤에 공손히 서서 포권을 했다.
“제자 여문염, 스승님을 뵙습니다!”
“단해에서 그자를 보았느냐?”
청우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여전히 하늘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는 당시 귀일종의 구양혜, 맹재해, 두 분 사숙과 녹마주의 녹마 사자에 맞섰습니다. 스승님이 분부하신 대로 맹 사숙은 저희 두 사람을 데리고 적에게 상대할 수 없는 척 1대 선조께서 남겨두신 운주(雲舟)로 도망쳐 나왔기 때문에 그자를 본 적은 없습니다.”
“7일 뒤, 그와 함께 천우 세 번째 혈로 가거라!”
말을 마친 청우 진인은 두 눈을 감았다.
“명 받들겠습니다.”
중년 사내의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으나 두 눈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살짝 번득였다. 그는 고개를 끄덕인 뒤 뒤로 물러나더니 파문이 되어 허공으로 흩어져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