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420
눈 깜짝할 사이 혈인이 된 그는 스스로를 껴안듯 두 팔을 움츠렸고 한제의 신통술들이 덮쳐온 순간 확 펼쳤다.
“혈갑진(血鉀陣)!”
그가 두 팔을 펼친 순간 온몸을 뒤덮었던 붉은색이 순식간에 말라버리면서 갑옷이 되었고 곧장 폭발하면서 붉은 폭풍이 되어 휘몰아쳤다.
하늘에서 내려오던 거대한 손바닥과 뒤에서 달려들던 화염 손바닥은 붉은 폭풍과 닿은 순간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혈살검은 번쩍 하고 붉은 폭풍을 베었고 꼭두각시 이사는 고함을 내지르며 폭풍 속으로 뛰어들었다.
콰쾅!
하늘이 무너지는 듯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제는 이를 악물고는 붉은 폭풍을 향해 달려들었다. 유지원의 구명 신통술이 분명한 폭풍은 여러 신통술을 막아내느라 조금씩 부서지는 중이었고 그 안의 유지원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피를 토하며 후퇴했다.
한데 그가 죽일 듯이 노려보던 적이 돌연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헉!”
흠칫 놀란 유지원은 몸을 홱 돌리며 오른손으로 뒤쪽을 후려쳤다.
그의 뒤에서 나타난 한제 역시 곧장 주먹을 휘둘렀다. 도고의 허상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분명 도고의 주먹이었다.
콰쾅!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유지원은 오른팔이 뭉개진 채로 나가 떨어졌다. 한제 또한 피를 토했으나, 그러면서도 멈추지 않고 상대를 뒤쫓았다.
재빨리 유지원을 따라잡은 한제는 연속해서 열아홉 번 주먹을 휘둘렀다. 창백해진 유지원은 충격에 넋이 나간 상태였다.
한제의 추격은 너무나 맹렬해 반응할 틈도 없었고 주먹이 날아들 때마다 피가 터지고 육신이 뭉개져갔다. 유지원은 지금 이 순간이 일생일대의 위기임을 깨닫고는 또다시 검은색 연꽃을 소환해내며 뒤로 물러났다.
퍼펑!
한제의 주먹이 막 검은 연꽃을 붕괴시킨 순간, 유지원은 왼손을 휘둘러 검은 방울 하나를 소환했다. 이는 그의 가장 강력한 법보였다.
“이 정도로는 나를 죽일 수 없다!”
유지원은 호기롭게 외치더니 이 방울을 흔들었다. 그러자 딸랑, 딸랑 하는 청아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그의 주위로 처연한 여인의 허상을 수도 없이 만들어냈다. 하나같이 벌거벗은 채인 비통한 표정의 여인들에게서는 하늘을 찌를 듯한 원한이 느껴졌다.
못해도 수십만 명에 이르는 여인의 허상은 그 수가 워낙 많아 넓게 퍼지다 못해 중첩되기까지 했다. 또한 이들의 원한은 하나로 연결되어 극천 초원의 모든 수련자가 느낄 수 있을 지경에 이르렀다.
격렬한 교전을 벌이던 공겁기 초기의 수련자 여섯 명도 이 짙은 원한을 느끼고는 신식을 뻗어 살폈다.
녹마주 수련자들은 주위를 감싼 안개 때문에 상황을 또렷하게 볼 수는 없었지만 유지원의 신통술과 법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만큼 대략적인 상황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들의 표정은 대번에 급변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리지 않은 이상 유지원이 저 법보를 쓸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문염 역시 눈을 번득이며 신식을 뻗었다. 허나 그쪽은 보이지 않는 한 층의 막으로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그의 신식으로도 유지원과 싸우는 자가 누구인지는 또렷하게 확인할 수 없었다. 이는 염란과 허동덕도 마찬가지였다.
하늘을 뚫을 듯 짙은 원한이 터져 나온 순간, 한제의 두 눈동자는 바짝 졸아들었다. 하지만 충분히 대비해온 그는 아직도 발휘하지 않은 필살기가 두 개나 남아 있었다.
한제는 곧장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그러자 그의 손가락 끝에 호리병이 나타났다.
3천만 개의 도혼이 들어 있는 호리병을 터뜨리면 공겁기 중기를 위협하기에도 충분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터. 허나 한제는 그것을 터뜨리지 않고 그 병에 피를 한 움큼 뱉어냈다.
피는 곧장 호리병에 스며들었고 곧이어 병 안에서 우렁찬 포효와 함께 3천만 도혼이 튀어나와 한제의 뒤에서 회전하며 붉은 길을 깔았다.
“나의 정혈로 대혼문의 역대 선조와 영령을 소환한다! 혼환귀술!”
한제의 목소리는 침착했지만 그 안에서는 기이한 힘이 느껴졌다.
순간 붉은 길의 끄트머리에 거대한 회오리가 하나 생겨났다. 이 회오리는 사방의 안개와 융합해 음산한 기운을 발산했는데 그 안에서 붉은 인영이 걸어 나왔다. 이 인영이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주위로 쿵, 쿵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유지원의 법보로 일어난 짙은 원한은 붉은 길에서 나타난 인영의 기세와 충돌하면서 그대로 무너져 내릴 조짐을 보였다.
이에 화들짝 놀란 유지원은 결인을 그린 두 손으로 하늘을 가리켜 주위를 가득 채운 원한을 응집시켰다. 응집된 원한은 거대한 하나의 인영이 되었다. 처연한 표정의 원혼 수십만 개로 이루어진 여인의 인영이었다.
“크아아아!”
이 인영은 포효하며 입을 쩍 벌려 한제를 집어삼키려 들었다.
그 순간, 회오리에서 나타난 대혼문 9대 선조 나운해의 인영이 오른손을 들어 짙은 살기로 한 자루의 붉은 창을 응집해내더니 곧장 내던졌다. 창은 수많은 원혼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인영에 적중했다.
콰르릉!
거대한 소리와 함께 인영에게 꽂힌 창은 상대를 정화하는 듯한 빛을 발산했다. 이에 거대한 여인의 인영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고 그 인영을 이루고 있던 원혼들은 비명을 내지르며 나가떨어졌다.
이 충격으로 한제는 몸을 바르르 떨면서 피를 토해냈고 뒤로 1천 척을 물러났다. 뒤에 나타났던 붉은 길은 이미 흩어져 사라졌고 그 안에서 나타난 9대 선조 나운해의 인영도 사라졌다.
하지만 원혼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여인의 인영도 무너져 내린 상태였고 유지원은 온몸에서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무너져 내린 여인의 원혼들이 반작용을 일으켜 동시에 그의 몸 안팎을 꿰뚫은 것이다.
“크아아악!”
유지원은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며 후퇴했다.
“신진! 요술, 봉화성산! 마도 생사역동! 신, 요, 마⋯⋯ 도고 무선!”
한제는 멀어져 가는 유지원을 노려보며 주먹을 날렸다.
이한제라는 사람
멀리 나가떨어지던 유지원의 몸은 수천 척 거리에서 휘두른 한제의 주먹에 콰쾅 하고 무너져 내렸다. 부서진 살점은 대지에 흩뿌려지고 그 원신 역시 한제의 강력한 공격에 왜곡되다가 부서졌다. 오직 머리만 남았으나 이 역시 곧장 한제에게로 끌려갔다.
유지원의 머리를 덥석 잡아챈 한제는 곧장 몸을 날려 사라졌다.
그 순간, 전장에는 짧은 적막이 찾아왔다. 죽기 직전 유지원이 내질렀던 비명만이 사방에 울려 퍼지고 있을 뿐이었다.
여문염과 싸우고 있던 녹마주의 공겁기 중기 수련자 장씨 노인은 온몸을 바르르 떨다가 다급하게 뒤로 물러났다.
“유지원!”
장씨 노인은 빠르게 몸을 뒤로 물리며 유지원이 죽음을 맞은 장소로 시선을 돌렸다. 대지에 흩뿌려진 피와 살점을 본 노인의 눈동자가 바짝 졸아들었다. 유지원과 도마종 종주의 관계를 알고 있기에 이 광경을 보자마자 심신이 진동한 것이다.
한편, 조씨 노인 역시 자신과 맞서던 염란과 허동덕, 그리고 또 한 명의 공겁기 수련자가 유지원의 비명에 흠칫 놀란 때를 틈타 몸을 물렸다.
“유지원이 죽었어?”
녹마주 출신의 공겁기 초기 수련자들 역시 곧장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이들의 눈에는 믿을 수 없다는 빛이 어려 있었다.
그들뿐만 아니라 극천 초원에서 유지원의 처절한 비명을 들은 녹마주의 모든 사람이 바르르 떨었다.
“공겁기 수련자가 죽었다!”
“이 목소리는⋯⋯ 분명 유 장로야!”
곳곳에서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다. 그만큼 공겁기 수련자의 죽음은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후퇴하라!”
장씨 노인이 두 눈을 서늘하게 번득이며 신식을 통해 명령을 내렸다. 그 자신도 한 줄기 빛이 되어 자리를 떴다. 녹마주의 수련자들은 그를 따라 눈 깜짝할 사이 극천 초원을 떠나갔다.
여문염은 그들을 추격하는 대신 떠나는 적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죽은 사람의 신분이 범상치 않았던 모양이군. 한데 그자를 죽인 사람이 누구지?”
허동덕은 누가 상대편 공겁기 수련자를 죽였는지 알지 못했지만 내심 놀란 상태라 바짝 긴장했다.
‘그 짧은 시간에 공겁기 수련자를 죽이다니, 대체 누구란 말인가?’
오직 염란만이 어떤 실마리를 파악한 듯 소매 안에 숨겨진 오른손을 덜덜 떨었다.
‘그다!’
여문염은 소매를 휘두르며 명을 내렸다.
“지하 궁전으로 돌아간다. 단단히 경계하라. 저들은 반드시 다시 쳐들어올 것이다!”
뒤이어 입을 다문 그는 생각에 잠긴 채 대지 속으로 녹아들어 사라졌다.
‘대체 누구란 말인가?’
안개 속의 천우주 수련자들은 하나둘 대지 속으로 스며들었다.
★ ★ ★
극천 초원 지하 궁전. 만 명에 달했던 수련자들 중 돌아온 이들은 4할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들은 조용히 각자의 동굴로 돌아가 다음 전투를 준비했다.
한제도 이들 가운데 섞여 지하 궁전으로 돌아왔다. 짧았지만 힘겨웠던 전투로 지친 상태였다. 유지원과 맞붙기 전부터 공격에 따른 상대의 반응을 예측하고 모든 계획을 세워놓은 상태였다. 상대의 선력이 바닥난 틈을 노렸고 짙은 안개의 도움까지도 계산에 넣었다. 이런 갖가지 조건들 덕분에 유지원을 죽일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부상을 피할 수는 없었고 가슴팍에서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최대한 빨리 치료해야 했다.
‘공겁기 수련자를 죽인 것은 처음이로군. 천우칠혈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성공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역시 쉽지 않군.’
그는 자신이 유지원을 죽였다는 사실을 다른 이들이 알아채지 못하리라는 것도 예상했다. 공격을 시작하기 전에 상대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나침반 금제를 주위에 둘러놓은 상태였다. 그 금제가 있는 한 누군가가 그 안으로 신식을 뻗어도 안쪽의 상황을 또렷하게 확인하기란 불가능했다.
한제는 비밀이 아주 많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런 비밀들을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 ★ ★
대전 안. 여문염과 염란을 비롯한 여섯 명의 공겁기 수련자는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들의 곁에는 한제를 무시했던 세 명의 노인도 있었다.
세 노인은 매우 놀란 상태였다. 천우주 수련자들 중 녹마주의 공겁기 수준 강자를 죽인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었다. 대체 녹마주의 공겁기 수련자를 죽인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난 제대로 보지 못했네. 유지원이라는 자가 단약을 먹으려는 듯 뒤로 물러났고 그 후 그쪽에서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지.”
“나도 신식으로 그쪽을 훑어보았으나 그곳은 금제로 휩싸여 있었네. 신식을 뻗어도 흐릿하게 보일 뿐이었어.”
“나 역시 신식을 뻗었으나 확인된 것은 없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