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425
“결국 내게 들키고 말다니, 너를 죽음으로 내몬 것은 네 불운이다! 크하하하!”
허덕재는 냉소하며 찰나의 순식간에 한제와의 거리를 좁혔고 모든 정신을 상대에게 집중한 채 신식을 사방으로 뻗었다. 하지만 함정이나 덫 따위는 발견할 수 없었다.
한데 막 1만 척 정도 돌진한 순간,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마치 보이지 않는 공간의 균열로 들어선 듯 눈 깜짝할 사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그와 동시에 한제 역시 사라졌다. 바닥에 무성한 잡초 사이, 진흙탕 속에 놓인 공간석 하나만이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그 무렵, 극천 초원 가장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있던 공겁기 초기 여자 수련자의 안색이 급변했다. 허상의 나침반을 바라보는 그녀는 온몸의 솜털이 쭈뼛 섰다. 허덕재를 상징하는 빛이 돌연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 이건⋯⋯?”
창백한 여인의 얼굴에 의아한 빛이 어렸다. 이어서 그녀는 이 소식을 나머지 공겁기 수련자들에게 전달했다.
이때, 장씨 노인과 조씨 노인은 어두운 얼굴로 하늘을 질주하고 있었다. 기껏 추격한 나침반이 미끼였음을 확인한 순간 분노가 치밀었으나 풀 곳이 없어 미칠 지경이었다.
한데 그때 허덕재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은 그들은 표정이 급변한 채 우뚝 멈춰 섰다.
“허덕재는 분명 저 뒤에 있었는데 실종되다니!”
장씨 노인이 외쳤다.
“분명 이한제일 거야. 나침반으로 우리의 시선을 돌려놓고 초원에 숨어 있다가 허덕재를 노린 게지!”
조씨 노인이 살기 어린 눈빛을 번득이며 중얼거렸다.
극천 초원 저 끄트머리에서는 태양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고 심지어 빗줄기는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빽빽한 빗줄기 사이로 안개가 피어올랐다.
검은 안개는 눈 깜짝할 사이 하늘을 뒤덮고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극천 초원 전역을 에워쌌다.
두 공겁기 중기 노인은 몸을 홱 돌려 사방을 둘러보았다. 초원을 뒤덮은 안개에서는 보이지 않는 위압감이 발산되고 있었다.
한편 두 사람과 꽤 멀리 떨어져 있던 공겁기 초기의 여자 수련자 역시 허덕재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그녀 또한 대지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안개를 보았다.
빠른 속도로 하늘을 뒤덮는 검은 안개 안쪽에서는 쉭, 쉭 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그 안개 속에는 지하 궁전에 있던 수천 명의 천우주 수련자가 도사리고 있었다. 이들은 여문염의 지휘에 따라 공격에 나선 상태였다.
안개에 휩싸인 녹마주의 공겁기 수련자들은 재빨리 안개 밖으로 빠져나가려 했지만 그때 여문염의 묵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도우들, 어찌 그리 급히 떠나려 하는가!”
그 목소리에 이어 지하 궁전에 있던 모든 공겁기 수준 수련자가 일제히 튀어나와 공격을 쏟아부었다.
극천 초원 가장자리에서 나침반을 통제하고 있던 여인은 두 눈을 번쩍 뜨더니 곧장 녹마주 수련자 수천 명을 이끌고 전장으로 향했다.
한편, 극천 초원 어딘가의 잡초 사이, 어느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평범한 돌맹이. 그 내부의 수없이 많은 공간 중 어느 한 곳. 이곳에서도 공겁기 수준 수련자들의 전투가 벌어질 참이었다.
이 돌 안으로 끌려 들어온 허덕재는 심신이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상대의 함정에 빠졌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당황한 기색 없이 침착하게 사방을 살폈다.
하늘은 파랗고 태양은 금빛으로 빛났다. 대지는 죽음의 기운으로 충만했고 저 멀리 떨어진 곳에는 화염산이 하나 우뚝 서 있었으며, 그 반대편으로는 천둥번개로 이루어진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푸른 하늘에 드리운 시커먼 구름에서는 검은 눈송이가 떨어져 내렸다. 언제부터 내리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지에는 이미 약간의 눈이 쌓여 있었다.
“이한제, 모습을 드러내라! 대체 무슨 수작이냐!”
안색이 어두워진 허덕재는 사방을 둘러보며 외쳤다. 그의 목소리가 왕왕 울렸다.
전방 수만 척 앞의 허공에서 파문이 일더니 한제가 나타났다. 백의백발을 바람에 휘날리며 그는 서늘한 눈으로 허덕재를 응시했다.
“신통술을 발휘하는 속도가 퍽 빠르더군. 그렇다면 이곳에서는 둘 중 누가 더 빠를까?”
한제가 눈을 번득였다.
“원인과 결과⋯⋯.”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온 순간, 공간이 돌연 바르르 진동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허공에서는 한 자루의 검이 허상으로 나타났다. 원인과 결과의 본원이 응집되어 만들어진 검이었다.
한제가 신통술을 발휘하자 허덕재 역시 오른손으로 결인을 그려 순식간에 수백만 개의 문양을 소환했다. 이 문양들로 이루어진 붉은 안개는 그 안에서 들려오는 처연한 비명과 함께 수천 개의 유혼이 되어 돌진했다.
동시에 허덕재는 뒤로 몸을 물리며 왼손으로 7백만 개 이상의 결인을 그렸다. 그러자 콰쾅 하는 소리와 함께 한 자루 창이 나타나 곧장 왜곡되면서 거대한 한 마리의 뱀이 되더니 혀를 날름거리며 곧장 튀어나갔다.
뒤이어 세 걸음을 더 물러난 허덕재는 두 손을 동시에 들어 올려 계속해서 신통술을 발휘하려 했다. 허나 이번만큼은 그가 한제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허덕재가 두 번째 신통술을 발휘했을 때, 한제는 거의 동시에 삶과 죽음의 본원으로 이루어진 검을 날려 보냈다. 그러나 허덕재가 세 번째 신통술을 발휘했을 때, 한제의 진실과 거짓의 본원으로 이루어진 검은 이미 나타나 있었다.
이 찰나의 차이는 결코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의미가 컸다.
원인과 결과의 검이 눈 깜짝할 사이 달려들면서 기이한 인과의 힘을 발휘하자 유혼들은 찢어질 듯한 비명과 함께 모두 무너져 내렸다.
동시에 삶과 죽음의 본원으로 이루어진 검은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어 허덕재가 소환한 거대한 뱀을 공격했다. 이 공격을 견뎌내지 못한 뱀은 죽음을 맞이했고 삶과 죽음의 본원으로 이루어진 검 역시 사라졌다.
하지만 뒤를 이어 진실과 거짓의 본원으로 이루어진 검이 달려들었을 때, 허덕재의 세 번째 신통술은 미처 발휘되지 않은 상태였다.
진실과 거짓의 검은 서늘한 빛을 번득이며 허덕재의 가슴팍을 노렸다.
“헛!”
엄청난 속도로 달려드는 검에 놀란 허덕재는 다급히 물러나며 아직 완성되지 않은 신통술을 허겁지겁 떠밀었다.
콰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진실과 거짓의 검은 무너져 내렸지만 그렇다고 허덕재가 위기를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뒤로 나가떨어지면서도 얼른 오른손을 들어 결인을 그리려 했다.
하지만 한제가 가만히 지켜볼 리 없었다. 그로서는 이 기회에 반드시 허덕재를 죽이고 그가 이토록 빠른 속도로 신통술을 발휘할 수 있었던 비밀을 알아내야만 했다.
허덕재가 두 걸음을 막 물러났을 때, 한제가 오른손을 앞으로 뻗었다.
“화염의 본원!”
콰쾅!
저 멀리서 화산이 폭발하면서 찰나의 순간 허덕재의 사방에 허상으로 나타났다. 계속해서 폭발하는 화산 안에는 한제의 화염의 본원 진신까지 있었기 때문에 그 위력은 가히 극강이라 할 만 했다.
등롱
“천둥번개의 본원!”
한제는 틈을 두지 않고 곧장 다음 공격에 나섰다. 허덕재를 에워싼 화산은 다시 움직여 천둥번개로 이루어진 바다에 이르렀다.
콰르릉! 쾅!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천둥번개의 바다는 마치 끓어오르는 듯 수없이 많은 천둥번개를 화산으로 쏘아 보냈다.
“물의 본원!”
한제는 소매를 휘두르며 혀끝을 깨물더니 피를 뿜어냈다. 이곳은 물이 없는 불완전한 공간이었지만 한제의 피에는 물의 본원이 응집되어 있었다.
피는 순간 붉은 수증기로 변해 천둥번개의 바다 위에 뜬 화산을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붉은 수증기가 그 위에 뿌려진 순간, 불바다는 콰쾅 하고 무너져 내렸고 천둥번개의 바다 또한 그대로 폭발했다.
세 본원이 융합해 형성된 파멸적인 힘으로 인해 이미 흩어져 사라졌던 세 허상의 본원 역시 다시 검의 허상으로 나타나 돌진했다.
삶과 죽음, 원인과 결과 진실과 거짓, 화염, 물, 천둥번개! 여섯 개의 본원이 하나로 응집되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살육이 시작됐다.
화산이 무너져 내리고 뇌해가 와해됐으며 물의 본원으로 형성된 기운이 튀어나갔다. 거기에 허상의 본원으로 이루어진 세 자루 검의 기운까지 더해지자 허덕재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퍼펑!
“크아악!”
굉음과 함께 허덕재는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진 채 피를 토하며 나가떨어졌다. 그는 온몸이 한 층의 등불로 뒤덮여 있었는데 이는 머리 위에 떠 있는 등롱(燈籠)에서 뿜어져 나온 것이었다. 이 빛이 보호막 역할을 한 덕에 그는 가까스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미 공겁기 수련자를 죽이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겪어본 한제는 그다지 실망하지 않았다. 더구나 허덕재는 유지원보다 훨씬 어려운 상대였다. 그 무시무시한 속도로 발휘되는 신통술을 당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저자가 또다시 신통술을 발휘하기 시작한다면 이곳은 내 무덤이 될 수도 있지. 그렇다면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겠다!’
한제는 허덕재가 오른손을 들어 올려 막 신통술을 발휘하려는 순간 상대를 가리키며 낮게 외쳤다.
“정!”
순간 한제의 체내에서는 거대한 파도가 몰아쳤다. 수준 차이가 적지 않은 상대를 억지로 옭아매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대가였다.
‘큭!’
피를 울컥 토해낸 한제는 이를 악물고는 비명을 속으로 삼켰다.
한편, 그 순간 허덕재는 심신이 진동함과 동시에 보이지 않는 가느다란 실들이 마구 몰려들어 자신을 옭아매는 것을 느꼈다.
일부는 체내로 뚫고 들어왔고 심지어 머리 위의 등롱도 약간 어두워졌다. 등롱과의 연계도 정신술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둘의 수준 차이 때문에 정신술의 위력은 찰나의 순간만 유지될 뿐이었다. 하지만 이미 만반의 준비를 갖춘 한제가 두 번째 공격을 날리기에는 부족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한제가 정신술을 발휘함과 동시에 왼손을 크게 휘두르자 하늘에서 내리던 수많은 검은 눈들이 순간 광풍에 휘말린 것처럼 허덕재에게 쏟아졌다.
대지에 두껍게 내려앉아 있던 눈 역시 이 광풍에 휩쓸려 허덕재에게로 몰려들었다.
이 검은 눈은 한제의 금제로 이루어진 결과로 각각의 눈송이에는 수많은 금제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게 눈보라가 사방을 에워싼 채 금제로 허덕재를 봉쇄하고 있는 셈이었다.
한편, 정신술이 덮쳐든 순간 허덕재는 흠칫 놀라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내 모든 움직임과 생각을 멈춰놓다니, 이게 무슨 신통술이란 말인가! 여태 이런 신통술은 들어본 적도 없거늘!’
금세 그 신통술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나, 그가 뒤로 물러나며 오른손을 들어 올리는 순간…
“정!”
또다시 한제의 낮은 외침이 울려 퍼졌다. 이에 막 움직임을 회복한 허덕재는 온몸을 바르르 떨며 순간적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자신보다 한참이나 수준이 높은 허덕재를 상대로 연거푸 두 번이나 정신술을 발휘한 한제는 피를 왈칵 토했고 얼굴은 한층 창백해졌다.
하늘에서 검은 눈을 내리는 먹구름은 한제의 귀범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귀범이 대혼문 최강의 무기가 된 이유는 수준을 무시하고 상대의 심신을 교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콰쾅!
순간 먹구름은 급속도로 하강하더니 엄청난 속도로 응집해 하얀 옷을 입은 여인이 나타났다. 여인은 등을 돌린 채 흐느끼고 있었는데 이 소리는 듣는 이의 심신을 파고들어 솜털을 쭈뼛 서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