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426
이 틈을 놓치지 않고 한제는 귀혼을 사람으로 바꾸는 술법을 발휘했다. 허덕재는 두 번째 정신술에서 막 벗어났지만 그럼에도 백의의 여인이 심신에까지 나타났다. 이에 허덕재의 두 눈이 흔들렸고 그 순간 한제가 소매를 휘둘렀다.
콰르릉!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지면에 녹아들었던 3천만 도혼이 줄기줄기 검은 연기처럼 튀어나와 엄청난 속도로 허덕재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더니 그를 휘감은 채 하늘로 돌진했다. 한제의 남색 우산으로 이루어진 하늘은 보호막 역할과 동시에 강력한 공격도 발휘했다.
3천만 도혼에 휩싸인 채 솟구친 허덕재가 파란 하늘에 가까워진 순간, 한제가 낮게 외쳤다.
“붕괴!”
콰르릉!
요란한 소리와 함께 하늘이 무너져 내리면서 3천만 도혼이 일제히 공격에 나섰다. 검은 눈 역시 붕괴하면서 파멸적인 힘을 발휘해 허덕재를 향해 몰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허덕재의 심신에 나타난 백의 여인의 흐느낌이 그를 한바탕 꿈속으로 끌어들였다.
한제는 결과를 살필 생각조차 하지 않고 곧장 화염 본원의 진신을 소환하더니 손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칠채술!”
그 외침과 함께 하늘에서는 눈부신 일곱 색채의 빛이 나타나 두 자루의 창으로 응집했다. 뒤쪽의 창은 화염에 휩싸인 채 앞선 창과 함께 무너져 내리고 있는 하늘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역령인!”
한제는 잠시의 틈도 두지 않고 거친 목소리로 외치며 오른손으로 하늘을 후려쳤다. 그러자 콰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손바닥의 허상이 나타났다. 그 뒤로는 화염으로 이루어진 또 하나의 손바닥이 같이 나타났는데 둘은 동시에 허덕재를 향해 돌진했다.
“분계고산!”
뒤이어 한제가 두 손을 동시에 쳐들자 수많은 금제가 하늘로 솟구쳐 올라 거대한 우산을 형성했다. 이 우산 뒤로도 또 하나의 우산이 나타나더니 동시에 접히면서 온 세상을 파멸시킬 듯 강력한 화염을 발산했다.
“호풍환우! 살두성병! 산붕지열!”
한제는 두 손으로 쉴 새 없이 결인을 그리며 백범의 선술까지 포함해 자신의 거의 모든 신통술을 마구 쏟아부었다.
“음월유청!”
마지막 외침과 함께 어두운 빛깔의 달이 휘영청 떠올랐다. 그 안으로 또 하나의 어두운 달이 어렴풋이 비쳤다.
콰쾅!
쌍월(雙月)이 떠오른 순간 요란한 소리와 찢어질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흑백의 눈이 무너져 내리는 와중 두 자루의 창이 하늘을 관통했고 뒤이어 역령인이 바짝 따라붙었으며, 마지막으로 음월유청까지 계속해서 허덕재를 향해 달려들었다.
“크아악!”
펑 소리와 함께 허덕재의 오른팔이 그대로 터져 버렸다. 지금 그는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다. 만약 머리 위에 떠 있는 등롱이 아니었다면 진즉 숨을 거두었을 터였다. 허나 이제 등롱의 불은 금방이라도 꺼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허덕재는 공포에 휩싸였다. 평생 이토록 큰 위기에 봉착한 것은 처음이었다.
‘한 번, 단 한 번의 기회만 주어진다면!’
피로 옷과 전신이 붉게 물든 허덕재는 두려움에 질린 표정으로 물러났다. 연달아 두 걸음을 옮긴 그가 세 걸음을 내딛으려는 순간…
“정!”
한제는 피를 토하면서도 세 번째 정신술을 발휘했고 허덕재는 절망에 휩싸인 채 온몸을 바르르 떨었다. 그리고 한제는 모든 힘을 쏟아 몸을 날렸다.
그때, 땅속에서 섬뜩한 포효가 울리더니 한쪽 팔을 잃은 이사가 튀어나오더니 두려울 정도로 짙은 살기를 품은 채 돌진했다.
저 멀리서는 흡혈마수가 나타나 전속력으로 날아왔다.
‘이것이 바로 나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공격이다!’
세 방향에서 나타난 세 갈래의 살기에 허덕재는 숨이 막혀 왔다.
가장 먼저 다가온 것은 이사였다. 녀석은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왼손을 뻗어 콱 움켜쥐었다. 그러자 공겁기 초기 수준의 위력이 발휘돼 중상을 입은 허덕재의 부상을 더욱 키웠다.
“끄아악!”
허덕재는 움직임을 되찾았음에도 어떤 반응도 보이기 전에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며 온몸이 산산조각 났다. 이사의 일격에 그대로 무너져 내린 것이다.
무너진 육신에서는 원신이 겨우 빠져나와 등롱을 감싼 채 다급하게 뒤로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미리 준비하고 있던 흡혈마수가 거대한 주둥이를 맹렬히 휘둘러 그의 원신을 쭉 빨아들였다.
“크윽!”
순간, 허덕재는 격렬하게 몸을 떨었다. 만약 등롱의 빛이 흡혈마수를 밀어내지 않았더라면 그의 원신은 흡혈마수에게 남김없이 흡수됐을지도 모른다.
등롱의 빛이 흩어진 순간, 이사 역시 그 빛에 휩싸여 검은 기운을 발산했다. 극심한 고통을 느낄 것이 분명한데도 녀석은 비명을 지르지도 뒤로 물러나지도 않고 오히려 더욱 거친 기세로 달려들며 손을 움켜쥐었다.
“크아아아!”
허덕재의 원신은 찢어질 듯 절규했고 한층 약해졌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한제가 달려들었다.
허덕재는 육신을 잃고 원신도 무척 약해진 상태였지만 기이한 등롱이 문제였다. 허덕재를 죽이려면 반드시 그와 등롱의 연계를 끊어야만 했다.
맹렬히 달려든 한제의 오른손이 핏빛으로 번득였고 그와 동시에 나타난 혈살검이 허덕재의 머리를 내리쳤다.
한제는 번득이는 붉은 빛과 함께 도고 일맥의 힘까지 쏟아부었다.
천우주는 선족의 땅에 있으니만큼 한제는 지금껏 도고의 신통술을 사용하는 것을 꺼렸다. 자신의 정체를 들켜서 좋을 게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간석 안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칼을 휘두른 순간, 한제의 뒤로는 갑옷을 입은 도고의 허상이 나타났다. 이 거대한 허상은 오래되고 서늘한 기운을 발산했다.
한제는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어 등롱을 향해 혈살검을 휘둘렀다. 그 순간,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등롱은 엄청난 힘에 휩쓸려 나가떨어졌고 동시에 그 안의 불 역시 꺼져버렸다. 그러자 허덕재의 원신은 모든 힘을 잃고 말았다.
“이, 이럴 수는 없다!”
만신창이가 된 허덕재의 원신은 마지막 포효를 내질렀지만 한제는 싸늘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더니 소매를 휘둘러 상대를 저물공간에 거두었다.
“크윽!”
허덕재의 원신을 거둔 순간, 한제는 온몸을 바르르 떨더니 피를 울컥 토하고는 추락했다.
가까스로 중심을 잡고 지면에 내려앉은 그는 곧장 가부좌를 틀고는 눈을 감은 채 숨을 골랐다.
흡혈마수는 경계심 어린 눈으로 주위를 맴돌았다.
이사는 어디론가 튀어가더니 잠시 후 팔을 하나 들고 돌아왔다. 잔뜩 뭉그러진 허덕재의 팔이었다. 이사는 약간 혼란스런 눈으로 그 팔을 잠시 바라보다가 곧 안개로 스스로의 몸을 감쌌다.
★ ★ ★
눈 깜짝할 사이 사흘이 지나갔다. 그동안 흡혈마수는 쉬지 않고 경계를 섰고 다행히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제는 서서히 눈을 떴다. 두 눈에는 피로가 가득했다. 지난 며칠 사이 공겁기 초기 수련자를 둘이나 죽였으니 피곤한 것도 당연했다.
“앞으로 여덟⋯⋯.”
한제는 중얼거리며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허덕재의 머리가 날아들었다. 홉뜬 두 눈은 빛을 잃었지만 절망과 두려움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한제는 잠시 그 머리를 살피더니 거두어 유지원의 머리 옆에 두었다.
“그 등롱, 매우 기이했는데⋯⋯.”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내다보았다. 뒤이어 소매를 휘두르자 이번에는 어딘가에 처박혀 있던 불 꺼진 등롱이 날아왔다.
한제는 등롱 안에 한 움큼의 원신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등롱 안에서는 다시 불이 밝혀지면서 부드러운 빛을 발했다.
속신결(速神訣)
한제는 금제의 본원이 깃든 눈으로 등롱을 자세히 살폈다. 무척 단순해 보였고 공격 기능은 없었지만 그 방어력만큼은 어마어마한 법보였다. 이 법보가 아니었다면 허덕재는 두 번째 공격도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 안의 불이 꺼지지 않는 한 그것을 밝힌 원신은 불멸이고 심지어 이 불은 원신을 자양하고 조금씩 강화한다. 그러니 이것을 체내로 들여서 제련해 원신을 지키게 한다면 이 부드러운 빛이 육신을 채우고 보이지 않는 한 층의 보호막을 덧씌울 수도 있을 터.”
한제가 숨을 크게 들이마셔 작게 줄어든 등롱을 삼키더니 원신 곁에 자리를 잡게 했다. 곧 등롱에서 발산된 부드러운 불이 그의 온몸을 감쌌다.
따뜻함이 심신으로 퍼져 나가는 것을 느끼며 숨을 깊게 들이마신 한제의 두 눈이 흥분으로 번득였다.
“부상이 크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더욱이 그자가 그토록 빠르게 신통술을 발휘할 수 있었던 비밀을 밝혀내고 그 능력을 손에 넣는다면 내 전력은 배가될 터!”
허덕재의 무시무시한 결인 속도를 떠올리며 또다시 머릿속까지 저릿해진 한제는 고개를 숙인 채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손 위로 심각한 부상을 입은 채 잔뜩 허약해진 허덕재의 원신이 나타났다. 혼수상태에 빠진 듯 두 눈을 꼭 감은 그 원신은 3촌 정도로 줄어든 채 가만히 누워 있었다.
곧이어 한제는 오른손을 꽉 움켜쥠과 동시에 수혼술을 발휘했다. 사실 상대와의 수준 차이가 큰 상황에서 수혼술을 발휘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허덕재가 이렇게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가 아니었다면 절대로 시도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제는 허덕재의 기억을 하나하나 살피기 시작했다. 허나 허덕재는 오랜 세월을 살아온 사람이었기 때문에 기억 또한 많았고 그 안에서 원하는 정보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세 시진이 지나고서야 한제는 감았던 두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두 눈은 광기 어린 기쁨으로 벅차올랐다.
“속신결(速神訣)!”
허덕재는 일찍이 운이 좋게도 천외에서 강림한 어느 운석으로부터 복잡한 결인인 속신결을 발견해 수련했다. 그 결과가 바로 한제를 위기로 내몰았던, 엄청난 속도로 발휘된 신통술이었다.
한제가 움켜쥐었던 손을 펴자 허덕재의 원신은 바르르 떨면서 천천히 흩어져 사라지려 했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한참이 지났는데도 허덕재의 원신은 끝내 무너지거나 흩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위에서는 어스름한 빛이 발산되기 시작했다. 이 기이한 빛에는 죽음을 앞둔 허덕재의 저항과 짙은 원한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한제가 두 눈을 가늘게 뜨자 짙어지기 시작하던 원한은 다시 천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로 줄어들었을 때, 허덕재의 원신이 천천히 두 눈을 떴다.
그 눈과 시선이 마주친 순간, 한제의 머릿속에서는 쾅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에 한제는 화들짝 놀라며 잠시 멍해졌는데 그 틈을 타 허덕재의 원신은 앞으로 튀어나갔다.
이내 정신을 차린 한제는 두 눈을 기이하게 번득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외쳤다.
“귀혼이 생성됐군!”
수준과 무관하게, 죽은 사람이나 흉수로부터 귀혼이 발생할 가능성은 극히 드물었다. 또한 대혼문의 수법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대부분의 귀혼은 품질이 떨어져 높아 봐야 중품의 귀범을 만들 수 있는 정도였다.
예상 밖의 행운에 한제는 심장이 쿵쾅대는 것을 느끼고는 재빨리 허덕재의 귀혼을 향해 몸을 날렸다.
당연히 고작 귀혼 주제에 한제에게서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했고 이내 사로잡히더니 찢어질 듯한 비명을 내질렀다.
한제는 이 귀혼을 곧장 저물공간에 집어넣었다. 앞으로의 행보에 큰 도움이 될 귀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