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428
교전을 길게 지연시켜 한제가 모습을 드러내도록 꾀어내는 이 계획은 수많은 수련자의 목숨을 대가로 해야 했다.
사실 녹마주는 마음만 먹으면 금세 두 번째 전투를 끝낼 수 있었다. 지원군이 이틀 전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제를 잡기 위해 그들은 작전을 짰고 지원군은 모든 기운을 숨긴 채 숨어 있었다.
한제가 단해에서 저지른 일에 격노한 녹마주의 세 선조는 ‘반드시 이한제를 죽이라’는 명을 내렸다.
녹마주의 천재 운공의 분신을 죽이고 단해를 선단으로 제련하려는 계획을 망치고 그 선단을 미리 무너뜨려 격렬한 파멸로 녹마주에도 큰 피해를 주었고 단해에 있던 녹마주 수련자의 반 이상을 죽인 것이 바로 한제였기 때문이다.
이 일련의 사건들에 더해 도마종의 유지원을 죽였고 허덕재 역시 죽였을 가능성이 높았기에 한제는 녹마주의 첫 번째 제거 대상이었다.
한편, 장도종이 한제를 추격하는 동안 전장으로부터 1만 리 떨어진 곳에서는 네 갈래의 기운이 솟구쳐 오르며 공겁기 중기 수준의 위력이 발산되고 있었다.
더구나 이 네 갈래 기운이 나타나자 안개로 뒤덮여 있던 극천 초원의 상공이 돌연 기이한 녹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녹색 기운은 한데 응집해 거대한 녹색 전갈이 됐다.
모습을 드러낸 전갈은 우렁찬 쉭, 쉭 소리를 내며 녹색 안개를 뿜어내더니 아래쪽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녹마사자다!”
조씨 노인과 싸우던 여문염이 네 갈래의 기운과 함께 상공에 나타난 녹색 전갈을 보고는 표정이 급변해 외쳤다.
이미 직접 싸워본 적이 있기에 그는 녹마사자의 무시무시함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다만 그 수가 많지 않은 녹마사자가 이곳에 무려 네 명이나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단해 안에서 보았던 녹마사자도 세 명에 불과했건만…’
녹마주에서 네 명의 사자를 보낸 것은 한제 때문이었으나, 여문염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그는 다급하게 물러나기 시작했다.
“속히 지하 궁전으로 돌아가 입구를 봉쇄하라!”
여문염은 잔뜩 긴장한 채 외쳤다. 사실 굳이 외칠 필요도 없었다. 사방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기운과 상공에 나타나 녹색 안개를 발사하는 전갈을 본 순간, 천우주 수련자들은 이미 후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머릿속을 채운 유일한 생각은 최대한 빨리 지하 궁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그곳이 최후의 방어선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곧장 땅속 깊은 곳으로 파고들어 지하 궁전으로 향했다. 이곳에 배치된 천우 칠혈의 진은 여전히 활성화되어 있었기에 녹마주 수련자들은 대지 안으로 발을 들이지는 못했다.
하지만 여문염을 비롯한 공겁기 수준 수련자들은 순식간에 적들에게 둘러싸여 쉽사리 도망치지 못했다.
네 갈래의 녹색 빛은 안개 속을 마구 휘저으며 돌아다녔고 하늘에 나타난 거대한 전갈은 끊임없이 아래로 가라앉으면서 대량의 녹색 안개를 뿜어댔다.
콰쾅! 쾅!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적들에게 둘러싸인 천우주의 공겁기 수련자들은 이를 악물었다.
한편, 한제 또한 먼 곳에서 몰려드는 네 갈래의 강력한 기운을 감지했다. 동시에 상공에 나타난 거대한 초록색 전갈을 본 그는 심신이 진동하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지하 궁전으로 돌아갈 기회는 지금뿐이다! 조금이라도 늦는다면 지하 궁전은 봉쇄될 거야!’
게다가 여섯 명의 공겁기 수준 수련자 앞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아직 성장 중인 분신과 삼명술로 얻은 목숨을 다 바친다 해도 불가능했다.
위기의 순간, 한제는 흡혈마수를 빠르게 몰아 대지로 향했다. 장도종의 봉인 때문에 순간이동을 할 수 없었기에 흡혈마수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장도종과의 거리는 5백 척이 채 되지 않았다. 이는 장도종이 한제를 공격을 하는 데 급급해하지 않은 덕이었다. 그로서는 절망에 빠진 한제가 허둥지둥 도망치는 모습을 보는 것에서 쾌감을 느끼는 듯했다.
그때, 저 멀리서 한 줄기 녹색 빛이 휙 날아들었다. 녹마사자였다.
그는 싸늘한 얼굴로 장도종과 함께 한제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녹마주 입장에서 한제는 반드시 죽여야만 하는 대상이었고 녹마사자는 매우 냉혹하고 잔인한 사냥꾼이었다. 상대가 축기기 수준에 불과한 애송이라 해도 전력을 다해 공격을 쏟고 전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것이 그들이었다.
대지까지 3천 척도 채 되지 않는 곳에 도달한 한제의 눈에 저 멀리 안개 속에서 염란이 피를 토하며 가냘픈 몸을 바르르 떠는 것이 보였다.
허동덕 역시 대지로 추락하듯 다급하게 도망치는 염란의 뒤를 따랐다. 그 뒤로도 천우주의 공겁기 수련자들이 분분히 중상을 입은 채 추락했다. 오른팔이 터져나간 여문염도 피를 토하며 대지로 돌진했는데 그의 바로 뒤를 녹마사자 한 명이 바짝 쫓고 있었다.
‘여문염이 대지에 진입하면 곧장 지하 궁전을 봉쇄할 것이 분명해. 그러니 저자보다 먼저 도착해야 한다. 더 빨리, 더 빨리!’
한제는 점점 초조해졌다.
한데 대지까지 1천 척도 채 남지 않았을 때, 장도종이 손을 뻗어왔다.
“이제 끝이다!”
장도종은 거칠게 외치며 한제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이전에 한제를 두렵게 했던 녹색 빛이 순식간에 달려들었다.
몸을 홱 튼 한제는 녹색 빛이 가까이 다가오자 단호한 눈빛으로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허공에 남색 우산이 하나 나타났다.
한제는 깊은 아쉬움을 감추며 짧게 외쳤다.
“폭발!”
콰르릉! 쾅! 퍼펑!
연이은 요란한 소리와 함께 녹색 빛과 충돌한 법보가 폭발했고 거대한 충격을 형성했다. 이 충격은 한제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큭!”
한제는 온몸에서 울리는 펑, 펑 소리를 들으며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동시에 그는 아래로 떨어져 내리면서 흡혈마수를 거두었는데 어느새 지면으로부터 5백 척 안에 이른 상태였다.
허나 지금 한제에게는 그 짧은 거리마저 너무도 멀게 느껴졌다. 맹렬히 추격해오는 장씨 노인과 냉혹한 얼굴의 녹마사자가 불과 1천 척 밖에 있었기 때문이다. 두 명의 공겁기 중기 수준 수련자를 마주한 상태에서 5백 척의 거리를 뛰어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때, 저 멀리 여문염이 지면에 착지한 뒤 곧장 사라졌다. 그는 한제를 보고도 망설임 없이 지하 궁전을 봉쇄하기 시작했다. 이미 대지에 스며들어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은 상황임에도 잠시도 기다려주지 않은 것이다.
콰르릉!
대지에서는 지하 궁전이 봉쇄될 때 발생하는 파동이 일었다.
이를 본 한제의 두 눈이 광기로 붉게 물들었고 그 순간 장도종과 녹마사자가 달려들었다. 이에 한제는 곧장 3천만 도혼이 든 호리병을 꺼내 내던졌다.
“폭발!”
호리병이 너무도 아까웠지만 지금은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었다.
3천만 도혼이 쉭 소리를 내며 튀어나왔고 호리병은 그대로 포발하면서 극천 초원 전역에 굉음을 울렸다.
콰쾅! 콰르릉!
3천만 도혼의 붕괴로 일어난 위력은 공겁기 중기 수련자를 위협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강력했다. 이에 장도종은 경악하더니 그 자리에 우뚝 멈춰 곧장 물러났고 녹마사자 역시 미간을 팩 찌푸린 채 속도를 늦췄다.
그리고 이 기회를 틈타 5백 척의 거리를 뛰어넘은 한제는 지하 궁전이 완전히 봉쇄되기 직전에 그 안으로 스며들었다.
혼개(魂鎧)
대지 안으로 진입한 순간 한제는 그동안 참아왔던 피를 왈칵 토해냈고 곧장 한 줄기 연기처럼 땅속 깊은 곳으로 파고들었다.
등 뒤로 지하 궁전이 완전히 봉쇄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만약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들어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여섯 명의 공겁기 중기 강자들에게 모진 고문을 당한 후 목숨을 잃었을 터였다.
‘다행히 목숨을 건지긴 했으나 대가가 너무 컸다. 특히 3천만 도혼의 호리병을 잃은 것은… 정말이지 마음이 아프군. 공겁기 중기 수련자라도 중상을 입은 상태라면 죽일 수도 있는 법보였건만… 허나 됐다. 제아무리 뛰어난 법보라 해도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없으니까.’
방금 전의 상황은 선강 대륙에 온 이래 가장 큰 위험이었다. 조금이라도 신중함을 잃는다면 흔적도 남기지 못한 채 소멸되어 버릴 수 있는 곳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허나 장도종, 네놈만큼은 용서 못 한다. 내 똑똑히 기억해두겠다!’
한제는 은원이 분명한 사람이었다. 자신을 죽이려 하고 중상을 입힌 것만이 아니라 소중한 법보를 잃게 만든 장도종은 한제에게 반드시 복수해야 할 대상이었다.
또한 여문염의 행동 역시 똑똑히 기억해 두었다. 만약 그가 지하 궁전을 봉쇄하기 전에 잠깐이라도 한제를 기다려줬다면 3천만 도혼이 든 호리병을 파괴할 필요까지는 없었을 것이다.
“여문염!”
두 눈을 벌겋게 뜬 한제는 짙은 살기를 속으로 갈무리했다. 선강 대륙에 온 이래 누구에게도 어디에도 소속감을 느낀 적 없는 그였다. 여태까지 그가 봐왔던 이들은 전부 낯선 이들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한제가 이곳의 사람들을 미워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동굴로 향했다. 지하 궁전 근처를 지날 때, 머리 위에서는 콰르릉 하는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대지 위에서 녹마주 수련자들이 공격을 쏟아부어 봉쇄진을 파괴하려는 모양이었다. 이곳의 봉쇄진은 매우 강력했지만 공겁기 수련자 여섯 명이 사력을 다한다면 언젠가는 파괴되고 말 것이다.
살아 돌아온 천우주 수련자는 1천 명이 약간 넘었다. 모두 만신창이가 됐으나 좌선을 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고개를 들어 위쪽을 바라보았다.
쉴 새 없이 들려오는 먹먹한 소리에 절망과 두려움을 느끼는 듯했다.
궁전에 있는 공겁기 수련자들도 모두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요란한 소리는 갈수록 격렬해졌고 머지않아 궁전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흙먼지가 떨어져 내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봉쇄진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천우주 수련자들은 점점 무거운 압박에 시달려야 했다. 이런 압박이 계속된다면 마음이 약한 이들은 정신을 놓게 될지도 모른다.
“끝이야. 저쪽에는 공겁기 수련자가 여섯이나 있어. 이 진은 우리를 보호해주지 못해. 진이 파괴되면 우리는 전부 죽고 말 거야!”
“왜 지원군이 오지 않는 거지? 우리 힘만으로 이곳을 지키라는 건가?”
“이제 지킬 필요도 없어. 어차피 곧 파괴될 터! 당장 도망쳐야 해!”
곳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일어났다.
한제는 자신의 동굴로 돌아가 가부좌를 튼 채 바깥의 상황을 살폈다. 동굴에는 아직 문이 새로 달리지 않은 터라 집중할 필요도 없이 웅성거림이 그대로 들렸다.
허나 한제는 이곳이 파괴되든 말든 관심이 없었다. 그의 고민은 봉쇄진이 파괴될 경우 어떻게 도망쳐 장도종에게 복수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장도종은 세상을 봉인할 수 있는 자다. 축지성촌을 발휘할 수도 없어.’
이를 통해 한제는 녹마주에서 자신을 주시하고 있음을 눈치챘다. 저들은 단해에서의 일이 자신의 소행이라는 것도 알아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네 명의 녹마사자가 나타난 것도 나 때문일지도 모르지. 천우의 세 번째 혈을 파괴하는 것만이 목적이 아닐 수도 있어. 그렇다면 분명 치밀한 계획을 세웠을 터. 앞으로의 위기 속에서 목숨을 부지하고 반격을 하려면 속도가 생명이다.”
한제는 남은 시간을 활용해 조금이라도 더 강해질 방법을 찾는 데 온 정신을 집중했다.
“이런 기분은 오랜만이군. 허나 2천여 년의 세월 동안 나를 성장시킨 것은 바로 이런 끝없는 위기였지.”
그때, 천우주 수련자들 중 수백 명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지하 궁전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선배님들, 녹마주 놈들이 곧 들이닥칠 겁니다! 이제 어쩌면 좋습니까?”
“지원군은 없습니까? 우리는 이대로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겁니까?”
“무슨 말씀이라도 좀 해보십시오!”
“만약 답을 주시지 못한다면 저희로서는 이대로 앉아서 죽을 수는 없습니다. 차라리 녹마주에 투항하고⋯⋯.”
마지막 말을 내뱉은 이는 한 중년 사내였다. 그는 두려움과 절망, 분노가 뒤섞인 표정으로 외치다가 돌연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동시에 어디론가 끌려가며 두 손으로 자신의 목을 꽉 조르면서 몸부림쳤다. 허나 아무리 발버둥치고 저항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