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431
“이제 어떤가? 이번에도 수준이 아주 높은 어느 선배가 우연히도 내가 순찰을 돌 때, 우연히도 내가 순찰을 돌던 곳에서, 우연히도 근처를 지나던 이 공겁기 수련자를 죽였고 우연히도 내가 또 그 광경을 목격하고는 시체의 머리를 챙긴 것인가?”
한제의 여유로운 목소리도 여문염의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그는 지금 심신이 요동치고 있었다. 허덕재의 머리를 본 순간에는 온몸이 저릿해졌다. 공겁기 초기 수련자를 두 명이나 연거푸 죽이다니, 절대로 얕잡아 볼 수 없는 성과였다.
특히나 두 번째 머리의 주인인 허덕재는 녹마주에서도 그 명성이 자자한 자였다. 여문염 역시 그 소문을 들어봤고 심지어 첫 번째 전투에서 저 멀리서 허덕재가 신통술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고 감탄하기도 했다.
허나 재빨리 침착함을 되찾은 여문염이 입을 열었다.
“그 선배가 허덕재를 죽이는 모습을 직접 본 적은 없네. 허나 유지원을 죽인 그가 허덕재를 죽이지 못할 이유는 어디 있겠는가! 자네 말대로 엄청난 우연이겠지만 그런 우연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지.”
“하하하! 여 장로가 이 정도로 치졸한 줄은 미처 몰랐군.”
한제는 호탕하게 웃더니 왼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손바닥 위로 귀혼이 하나 나타났다. 처연하게 울부짖는 귀혼은 다름 아닌 허덕재의 것이었다.
“여문염! 자 말해보게. 이게 무엇으로 보이는가!”
한제는 여문염을 매섭게 노려보며 물었다.
한편, 여문염은 허덕재의 귀혼을 본 순간 얼굴이 하얗게 변해 휘청거리며 주춤주춤 물러났고 무슨 말인가를 하려는 듯 입을 벙긋거렸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저 귀혼은 자신의 거짓을 밝히는 명백한 증거였기 때문이다.
“주 도우, 시간 낭비 말고 혼개와의 융합을 재개하게.”
한제는 여문염을 내버려둔 채 주씨 노인을 바라보며 말했고 노인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도우들, 혼개와의 융합을 위한 마지막 단계에서 필요한 것은 자네들의 의지라네. 자네들이 원하는 이가 이 혼개와 융합하게 될 거야!”
여문염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주씨 노인은 직접적으로 융합 대상을 거론하지 않았다.
한편,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던 여문염은 고개를 홱 쳐들어 살기 어린 눈빛으로 한제를 노려보았다.
‘이 도둑놈! 그토록 기다려온 기회를 가로채려 하다니, 죽어 마땅하다!’
혼개와의 융합이 재개되려는 이상 생각에 잠겨 있을 틈이 없었기에 여문염은 곧장 몸을 날렸다.
‘저놈만 죽으면 더 이상 나와 혼개를 두고 다툴 자는 없다. 혼개를 얻어 전장에서 큰 공을 세우면 처벌도 한결 약해질 거야. 고작 저런 놈 하나 죽였다고 선조께서 내 목숨을 거두기까지야 하겠는가!’
여문염은 빠른 속도로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한편, 저 뒤에서는 혼개가 어스름한 빛을 발산했다. 주씨 노인의 안내 아래 1천여 명의 수련자들이 각자의 의지에 따라 혼개의 주인을 선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천우주의 수련자 중 한 백발노인이 밝은 빛이 번득이는 눈으로 하늘을 응시하며 말했다.
“극천 초원의 수련자들이여, 이 장로는 내 생명의 은인이다! 이 장로를 선택하라!”
극천 초원에서 그의 지위가 상당한 듯 많은 수련자가 그의 말을 따랐다.
한편, 염란은 이를 악문 채 여문염에게 달려들었다. 한제를 도와 여문염을 저지하기로 한 것이다.
잠시 망설이던 허동덕 역시 같은 선택을 했다. 이미 한제를 두둔했던 터라 여문염과는 척을 진 것과 마찬가지였다.
여문염은 무척 빨랐다. 그는 수많은 목격자가 있음에도 반드시 한제를 죽이겠다고 결심한 상태였다. 기선을 제압할 기회를 잃은 이상 당장 공격에 나서야 했다.
한데 그가 몸을 날린 순간 한제는 뒤로 세 걸음 물러나면서 곧장 오른손을 쳐들어 휘둘렀다. 이미 이런 상황에 대비하고 있었던 그는 체내에서 첫 번째 신맥이 급속도로 회전했다.
콰쾅!
이어 굉음과 함께 일곱 색채의 빛이 나타나 칠채창을 이루었다. 그 뒤로는 화염 본원의 진신이 응집한 또 다른 칠채창이 떠 있었다.
두 자루의 칠채창은 쉭 하는 소리와 함께 여문염에게로 돌진했다.
동시에 한제는 재차 뒤로 물러나면서 두 손을 동시에 들어 체내의 신맥을 급속도로 회전시켰다. 덕분에 그는 이전의 허덕재가 그러했듯 엄청난 속도로 신통술을 발휘할 수 있었다.
오른손으로 결인을 그리자 나타난 두 개의 역령인이 콰쾅 소리와 함께 여문염을 향해 달려들었다.
뒤이어 왼손으로 그린 결인은 불바다를 일으키며 분계고산이 됐고 두 개의 우산은 강력한 기세의 화염을 뿜어냈다.
가장 먼저 돌진한 칠채창은 여문염이 소매를 휘두르며 공겁기 중기 수준의 위력을 발산함에 따라 폭발음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곧장 달려든 두 개의 역령인이 여문염을 가격했다.
퍼펑!
곧이어 우렁찬 소리가 울려 퍼졌고 여문염이 무슨 반응을 하기도 전에 나타난 두 개의 분계고산이 온 세상을 파멸시킬 듯한 화염을 발산했다.
“헛!”
여문염의 두 눈동자가 바짝 졸아들었다. 이제 그는 한제가 허덕재를 죽였음을 완전히 믿을 수밖에 없었다. 허덕재 외에 누구도 이렇게 빠른 속도로 신통술을 발휘할 수 없었으니, 그의 기억을 뒤져 그 방법을 찾아낸 것이리라.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한제는 체내 신맥에 의지해 뒤로 물러나면서 다시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그러자 지하 궁전에는 드넓은 바다의 허상이 나타났다.
사방은 칠흑처럼 어두웠고 오직 저 멀리 하늘 끄트머리만 태양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처럼 붉은 선을 그리고 있을 뿐이었다.
“잔야!”
한제는 낮게 외치며 두 손을 바깥쪽으로 확 뻗었다. 그러자 그 붉은 선이 끝없이 확장되더니 붉은 태양이 나타났다. 이 태양은 곧장 강력한 힘을 폭발시켜 어두운 밤을 찢어발겼다.
반대편에서는 또 다른 태양이 떠올라 같은 힘을 발산했다.
뒤이어 두 개의 거대한 돌문이 바다 위에 허상으로 나타나 서늘한 기운을 풍겼다. 그러자 세월이 흐르는 듯한 느낌이 여문염의 심신을 뒤덮었다.
찰나에 일어난 일이었다. 지난 2천여 년간 수련해온 신통술들을 이렇게 짧은 시간에 쏟아부은 것은 한제로서도 처음이었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었다. 잔야와 유월을 발휘한 순간, 한제는 소매를 휘둘러 체내의 신맥을 더욱 빠르게 회전시켰다.
“호풍환우! 살두성병! 산붕지열! 음월유청!”
한제의 외침에 두 개의 태양이 떠올랐던 하늘에는 두 개의 어두운 달도 모습을 드러냈다. 달들은 여문염을 감싼 채 음월종 신통술의 위력을 발휘했다.
콰르릉!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주인을 알아본 혼개
“네놈을 용서치 않겠다!”
여문염이 고함을 내지르자 역령인, 분계고산, 잔야, 유월 등 한제가 발휘한 모든 신통술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두 개의 거대한 손바닥은 폭발했고 두 개의 분계고산은 갈기갈기 찢겼으며, 드넓은 바다와 하늘에 뜬 태양까지도 와해됐다. 마지막으로 두 개의 달과 거대한 돌문 역시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허나 이미 한쪽 팔을 잃고 큰 부상을 입었던 여문염 또한 수많은 신통술에 대항하느라 거의 모든 힘을 다 쏟아부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그는 잠시 숨을 돌리고 있는 한제에게 돌진했다.
그때 염란과 허동덕이 달려들어 여문염을 저지하려 들었다.
“꺼져라!”
살기로 두 눈이 벌겋게 물든 여문염은 두 사람이 달려든 순간 소매를 휙 휘두르며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피는 꿈틀거리다가 그와 똑같이 생긴 두 개의 붉은 분신이 되어 각각 염란과 허동덕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여문염 자신은 짙은 살기를 발산하며 한제를 향해 돌진했다.
“죽어라!”
낮게 외치며 하나 남은 팔을 들어 올린 그는 하늘을 향해 뻗은 손을 콱 움켜쥐었다. 그러자 아홉 개의 톱니가 달린 거대한 바퀴가 나타나 그의 손에 쥐어졌다. 여문염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한제에게 바퀴를 던졌다.
쐐액!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날아든 톱니바퀴가 눈 깜짝할 사이 코앞에 이르자 한제의 두 눈동자는 바짝 졸아들었다. 공겁기 중기 수련자의 강력함이야 알고는 있었지만 이 싸움은 피할 수 없었다. 여문염이 혼개를 손에 넣어 그 수준이 증폭한다면 훨씬 위험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한제로서도 절대로 혼개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 때로는 도박도 필요한 법이었다.
한제는 도박을 할 생각이었다. 삼명술로 얻은 세 번의 목숨 중 하나가 바로 그가 내건 판돈이었다. 이기면 엄청난 기회를 얻게 될 것이요, 지면 하나의 목숨을 잃게 된다. 허나 그렇다 해도 나머지 두 개의 목숨을 가지고 빠르게 도망치면 된다.
아홉 개의 톱니가 달린 바퀴가 달려들자 한제는 어마어마한 위기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에 그는 두 손을 쳐들어 전방의 허공을 콱 움켜쥐었다.
“시천!”
동시에 한제는 두 손을 양쪽으로 홱 잡아당겼다. 그러자 한제가 그 반발로 피를 토하며 나가떨어지는 동안 시천술의 위력과 충돌한 톱니바퀴는 펑, 펑 소리와 함께 네 개의 톱니가 사라졌다. 허나 나머지 다섯 개의 톱니는 유지한 채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눈 깜짝할 사이 30척까지 다가온 톱니바퀴는 빠르게 회전하면서 한제의 몸을 썰어버릴 듯한 기세를 발산했다.
“크윽!”
한제는 미간을 중심으로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콰쾅!
이내 톱니바퀴와 충돌한 한제의 온몸에서는 피 안개가 분출됐다.
“크하하하! 죽어라! 죽어!”
여문염은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렸고 그는 한제의 죽음을 확신했다. 심지어 한제의 육신이 반으로 갈라지고 원신마저 비참하게 소멸하는 장면까지 상상하며 그는 광소했다.
한편, 여문염의 분신과 뒤얽힌 염란과 허동덕은 별다른 도움도 되지 못했다. 약간의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 전부였다.
“죽어라! 혼개는 내 것이다!”
여문염은 두 팔로 톱니바퀴를 막아선 한제가 피를 사방으로 튀기며 밀려나는 것을 보고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낮게 외쳤다.
한편, 1천여 명의 수련자는 이 광경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금의 여문염은 매우 낯설었다.
“미쳤다! 저자는 미쳤어!”
“이 장로를 죽인 후에는 필시 우리까지 죽여 목격자를 없애려 할 거야!”
“저런 자가 혼개를 손에 넣어서는 안 돼!”
이들은 미친 여문염에게 큰 두려움을 느꼈고 그를 혼개의 주인으로 선택했던 자들은 후회하기 시작했다.
“죽어라, 죽어! 크하하하!”
그때였다.
“엇!”
여문염은 돌연 광소를 멈추더니, 잠시 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당황했다.
뒤로 밀려나던 한제는 그의 예상과 달리 둘로 나뉘지 않았고 피를 튀기는 그의 몸에서는 돌연 금속이 충돌하는 듯한 소리가 났다. 한제의 강력한 육신이 제 역할을 하는 순간이었다.
이때 그의 머리 위에는 부드러운 빛을 발하는 등롱이 하나 나타나 있었다. 등롱의 빛은 한제의 온몸을 감싼 채 빠르게 회복시켰다.
여문염의 두 눈에 살기가 번득였고 그는 이내 몸을 훌쩍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