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433
번개처럼 몸을 날려 사라진 그가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 저 앞에서는 녹색 기운을 풍기는 전갈 한 마리가 거칠게 달려들고 있었다.
전갈은 가까이로 다가오기도 전에 꼬리부터 휘둘렀다. 한제는 그 꼬리에 별다른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며 두 손을 들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시천!”
동시에 그는 공겁기 초기 수준의 위력을 도고의 힘과 융합해, 이제 도고의 신통술이라고는 할 수 없는 법술을 발휘했다.
콰르릉!
한제가 허공을 찢자 우렁찬 소리와 함께 대지에 일어난 한 줄기 균열이 전갈을 향해 쭉 뻗어가더니 순식간에 전갈이 휘두른 꼬리와 닿았다. 그 순간, 전갈이 바르르 경련하더니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거대한 균열은 전방을 휩쓸면서 녹색 전갈의 몸통을 관통해 지표면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격하게 흔들리는 지면 위로 균열이 나타난 순간, 한 줄기 녹색 기운이 급속도로 흩어졌고 그와 동시에 울려 퍼진 날카로운 비명도 금세 사라졌다.
동시에 지면에 가부좌를 틀고 있던 네 명의 녹마사자 중 한 명이 창백한 얼굴로 피를 왈칵 토해냈다.
시천술을 발휘해 마갈 한 마리를 처리한 한제는 험악한 표정으로 몸을 홱 틀었다. 다른 세 방향에서 세 갈래의 녹색 기운이 급속도로 달려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이 수준으로 칠채창을 소환하면 어떤 위력을 발휘할지 궁금하군!”
자신에게 몰려드는 세 마리 전갈을 바라보던 한제의 눈빛이 전의로 번득였다. 이어서 그가 앞으로 한 걸음 내딛자 땅속 깊은 곳이 요란하게 진동했다.
한제는 오른손을 높이 쳐들었다가 휘둘렀다. 그러자 일곱 색채의 빛은 나타나 응집하더니 칠채창이 됐다. 이때 칠채창에서는 온 세상을 파멸시킬 법한 기운이 발산됐는데 이 기운은 불안정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한데 일곱 색채의 빛이 순간 변화하더니 하나로 응집해 검은색으로 변했다. 당연히 지금까지 칠채창을 이룬 빛 중 검은색은 없었다.
검은색으로 변한 칠채창은 거친 기운을 풍겼고 이는 일정 수준에 이른 뒤에만 나타나는 칠채의 첫 번째 변화였다.
한제는 흑창(黑槍)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창은 바르르 진동하면서 눈부신 검은 빛을 발하다가 다시 한번 변화해 이번에는 하얀색이 됐다.
칠채의 두 번째 변화였다.
한제는 살기 어린 눈을 번득이며, 두 번의 변화를 맞은 칠채창을 힘껏 내던졌다.
콰쾅!
창은 우렁찬 소리와 함께 세 전갈 중 한 마리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한데 날아가던 백창(白槍)은 또 한 번 변하기 시작해 어느새 회색으로 변했다.
칠채의 세 번째 변화로 전성기 때의 칠채선존이 발휘하던 가장 강력한 신통술이기도 했다.
회색 기운에 휩싸인 칠채창은 눈 깜짝할 사이 전갈 중 한 마리 근처에 이르렀고 거친 모습의 전갈은 날카롭게 소리를 내지르며 대량의 녹색 기운을 발산해 칠채창과 충돌했다.
콰쾅!
거대한 소리가 땅속 깊은 곳에 울려 퍼지면서 대지를 계속해서 뒤흔들었다. 충돌로 인해 일어난 폭풍이 지면을 향해 솟구쳐 오르면서 극천 초원에는 반경 수천 리에 달하는 거대한 구덩이가 생겨났다. 그러고도 모자라 폭풍은 진흙과 풀을 사방으로 휘날리며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아쉽게도 혼개는 내 수준을 높이는 데 그칠 뿐이군. 내가 진정한 공겁기 초기에 이르렀다면 아홉 개의 본원을 완성하고 응집해낸 아홉 진신으로 총 아홉 개의 칠채창을 소환할 수 있었을 터. 그랬다면 세 마리 마갈 정도는 단숨에 처리할 수 있었겠지.”
한제가 중얼거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가 착용하고 있는 혼개는 분명 강력했지만 그의 것은 아니었다.
“남은 두 마리에게는 다른 신통술을 시험해봐야겠군. 그 신통술들의 궁극적인 위력을 보고 앞으로 더 수련해나갈 것인지를 결정해야겠어.”
마음을 정한 한제가 몸을 홱 돌리자 두 방향에서 달려들던 두 마리의 마갈은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지면으로 돌아가려는 모양이었다.
한제의 강력함은 네 녹마사자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지금의 한제는 공겁기 중기 수련자를 죽이기에 충분한, 공겁기 후기에 가까운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과연 선강 대륙. 동부계였다면 천우의 혼개를 착용하는 것만으로도 그 누구도 내게 대적하지 못했을 텐데⋯⋯.’
한제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런 곳이라면 분명 모완을 되살릴 방법도 있을 터!’
결연한 눈빛으로 두 마리 전갈이 빠르게 물러나는 것을 보던 한제는 입꼬리를 슬쩍 올려 냉소한 뒤 곧장 녀석들을 뒤쫓았다.
전갈들은 빠르게 도망쳤지만 한제가 더 빨랐다. 단숨에 전갈들과의 거리를 좁힌 한제는 오른손을 들어 올리며 두 눈을 기이하게 번득였다.
“역령인!”
한제는 짧게 외치며 들어 올린 오른손으로 전방을 가리켰다. 그러자 극천 초원 상공의 구름과 바람의 기색이 변했다.
하늘에 떠 있던 구름은 흩어져 사라지고 빛 역시 완전히 물러가면서 손바닥의 허상이 나타났다. 이 손바닥은 극천 초원 전역을 뒤덮을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다. 그 두께만 해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손바닥 허상은 대지를 압박하며 내려왔다.
한데 기이하게도 손바닥은 내려오는 동안 껍질이 층층이 벗겨졌다. 극천 초원을 뒤덮은 봉인이 더 이상 손바닥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상쇄되며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 같았다.
이내 봉인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을 때, 거대한 손바닥은 전혀 달라진 상태로 여섯 개의 손가락이 달려 있었다. 새로 생겨난 손가락은 새빨간데다가 손톱도 매우 길어,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전체적으로 새카만 손바닥과 다른 손가락들 사이에서 눈에 확 띄었다.
여섯 번째 손가락은 마지(魔指)로 이제 손바닥은 마치 도(道)와 마(魔)가 융합된 존재처럼 보였다.
잔야의 변화
극천 초원 위에 남아 있던 1천여 명의 녹마주 수련자들은 충격과 두려움이 어린 표정으로 절망에 사로잡힌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공겁기 초기 수준의 두 여자 수련자 역시 덜덜 떨면서 곧장 각자의 가장 강력한 방어용 신통술을 발휘했고 방어용 법보까지 꺼내 사용했다.
장도종 역시 멍한 얼굴로 거대한 손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마대수인(道磨大手印)! 저건 도마대수인 아닌가! 게다가 여섯 번째 손가락까지 달려 있어! 다른 이들에게는 전수되지 않는 우리 도마종의 최고 신통술… 오직 역대 종주들만 익히는 술법이건만 대체 이한제 저자가 어떻게 저 신통술을 사용한단 말인가!”
조씨 노인 역시 큰 충격에 빠진 채 소매를 휘둘러 온몸을 흐릿하게 만든 뒤 두 손으로 빠르게 결인을 그려 끊임없이 방어용 신통술을 발휘했다.
꽈르릉!
하늘에 나타난 손바닥이 대지에 떨어지면서 극천 초원의 대지를 무너뜨렸고 1천여 명의 녹마주 수련자들은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았다. 심지어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허나 1천 명이 넘는 이들을 단박에 죽인 어마어마한 위력에 한제 자신도 흠칫 놀라고 말았다.
하지만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각종 신통술과 법보로 방어하던 두 명의 공겁기 초기 여자 수련자들 또한 거대한 손바닥이 내리 떨어진 순간 피를 왈칵 토하며 나가떨어졌다. 그들은 심각한 중상을 입은 육신은 순식간에 터져나갔고 원신만 남게 됐다.
장도종과 조씨 노인 역시 창백한 얼굴로 피를 토했다.
저 아래 지면에 가부좌를 튼 네 명의 녹마사자 역시 경련하면서 피를 토했지만 그들의 위에 떠 있는 녹색 거울 덕분에 중상은 피할 수 있었다.
허나 땅속에서 도망치고 있던 두 마리의 마갈에게는 그런 행운이 따르지 않았다. 손바닥이 대지에 떨어지면서 형성된 무시무시한 힘에 녀석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터져나갔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역령인이구나!”
한제는 두 눈을 번득이며 몸을 훌쩍 날려 눈 깜짝할 사이 지면 근처에 이르렀고 그의 기세에 극천 초원의 대지는 전보다 더 격렬하게 진동했다.
그가 막 지면을 뚫고 나가려던 그때, 녹마사자들이 외쳤다.
“절대 저자가 나오게 둬서는 안 돼!”
녹마사자로서 서로 마음이 통하는 그들은 모두 두려움을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은 기합을 내지르며 두 손으로 대지를 꾹 눌렀고 동시에 머리를 바닥에 세차게 찧었다. 마치 절을 하는 듯한 동작이었다.
순간 상공에 떠 있던 녹색 거울은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대지로 가라앉았고 그와 동시에 거울은 끝도 없이 늘어나 순식간에 극천 초원 전역을 뒤덮었다.
“녹색 마갈의 혼이여, 도와주십시오!”
녹마사자들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뒤이어 거울이 대지에 떨어지자 극천 초원을 채운 풀들은 바르르 진동하면서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연못이 나타났다.
이 순간, 이곳은 녹마주가 되었다. 환각이든 아니든 극천 초원이 천우주에서 사라진 듯, 녹마주가 극천 초원 위의 거울에 그대로 비친 듯한 모습이었다.
이렇게 나타난 녹마주의 경관이 공간 자체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장도종과 조씨 노인, 그리고 역령인의 위력에 겨우 원신만 남은 공겁기 초기 수준의 두 여인은 곧장 몸을 날려 연못으로 가득한 지면에 착지했다. 뒤이어 그들은 녹마사자들과 더불어 모든 힘을 발휘해 진압에 힘을 보탰다.
“천우주의 천우사자는 우리와 달라. 그들은 궁극적인 힘을 얻을 수 있으나 그 힘은 일시적이지. 그 위력이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되는지는 모르나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터. 저자가 본래 상태로 돌아갈 때까지 버티기만 하면 우리의 승리다!”
녹마사자 중 한 명이 날카롭게 외치자 다른 이들은 희망을 찾은 듯 온 힘을 다해 대지를 짓눌렀다.
콰쾅!
대지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진동했고 그럴 때마다 녹마주 공겁기 수준 수련자들의 얼굴은 점점 하얗게 질려갔다.
한편, 한제는 계속해서 위로 솟구쳐 오르며 녹마주의 투영으로 인한 제압을 뚫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분계고산!”
검은 갑옷을 착용한 그는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수많은 금제를 소환했다. 그러자 녹마주처럼 변한 대지 상공에 거대한 우산이 나타났다.
이 우산은 나타나자마자 어마어마한 불바다를 일으켜 녹마주의 경관을 불사르기 시작했다. 이에 공겁기 초기의 두 여자 수련자는 날카로운 비명을 내질렀고 이를 악물고 구명 법보를 꺼내 저항해냈다.
분계고산은 칠채창이나 역령인과는 달리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상태였다. 위력만큼은 전보다 강력해졌으나, 그마저도 칠채창이나 역령인에 비하면 약간 뒤떨어졌다.
“강력한 술법이지만 사실 광인도 분계고산을 완전히 깨우친 것은 아니었군. 지금 내 수준으로는 이 술법의 진정한 위력을 발휘할 수는 없는 거야. 아니면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강력한 술법이 아닐지도 모르지.”
한제가 중얼거렸다.
“이제 슬슬 내가 직접 창조한 신통술을 발휘해볼까?”
두 눈을 기이하게 번득인 한제는 땅속에서 위쪽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순간 눈앞이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성난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가 시야를 채웠다. 이는 녹마사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거칠게 몰아치는 바닷물이 넓게 퍼져 나갔고 하늘을 뒤덮은 분계고산은 흩어져 사라지면서 어둠이 사방을 덮었다. 이 어둠에서는 극도의 서늘함과 함께 찬바람이 훅 불어 닥쳤다.
어느 순간, 동쪽 하늘에 돌연 불그스름한 금색 선이 생겨났고 그 안에서 태양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안에는 극도로 짙은 규칙의 힘이, 모든 어둠을 찢고 무너뜨리기에 충분한 위력이 깃들어 있었다.
자신이 직접 창조한 술법임에도 아직 완전히 깨우치지 못한 상태였던 한제는 어둠을 찢고 나타난 태양의 모습에 흠칫 놀라고 말았다.
태양은 태초의 힘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 힘 안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한 줄기 기운이 깃들어 있었다. 이 기운은 한제의 것이었다. 이 술법은 그가 직접 창조해낸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제 역시 그 기운이 무엇인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그저 이 기운이 잔야술의 근본이며 태초의 힘의 근원임을 느낄 뿐이었다.
어쩌면 한제 자신의 신념으로 이루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어둠을 찢고 평범한 것을 깨부수겠다는 신념이자 하늘에 저항하고자 하는 의지.
만약 그런 저항심과 의지가 없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이런 신통술을 만들어낼 수 없었다.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사람만이 이런 신통술을 만들어낼 수 있다.
지금 이 태양 속의 기운을 느낀 후에야 한제는 자신이 어떻게 잔야를 창조해냈는지 깨달았다.
이모완에 대한 미련과 집착 때문이다. 그녀를 위해 그는 세상을 가리고 있는 어두운 밤을 찢어내려는 의지를 갖게 됐다. 또한 그녀를 위해 그는 이 어두운 밤이 다시는 그의 눈을 가리지 못하게 하는 저항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잔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