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441
공겁기 중기 수준 수련자의 자폭이라면 녹마주 전역을 뒤흔들고도 남을 것이고 두 명이 동시에 자폭한다면 공겁기 후기 수련자라도 곧장 물러나야만 할 정도였다.
한제의 심신으로 어마어마한 위기감이 밀려들었다. 두 녹마사자의 자폭 자체가 아니라 그들이 자폭을 하려는 이유 때문에 발생한 위기감이었다.
제대로 맞붙기도 전에 자폭을 하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게다가 두 사람 뒤로는 강력한 검기를 다루고 있는 운공도 있었다. 세 사람의 실력이라면 사실 자폭을 택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공겁기 중기 수준의 두 녹마사자를 희생시킨 것을 보니 녹마주는 이를 갈고 있었던 모양이다. 절대 한제를 놓치지 않겠다는 결심을 읽어낼 수 있었다.
콰르릉! 콰쾅!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지는 사이 한제가 허공을 움켜쥐어 인간 형태의 토갑(土鉀)을 소환해 휘두르자 황토색 빛이 그의 온몸을 감쌌다. 뒤이어 한제는 자신이 낼 수 있는 모든 위력을 발산했다. 심지어 도고의 힘도 숨기지 않았다.
도고의 기운을 발산하자 한제의 뒤로 하늘을 떠받칠 수 있을 것처럼 거대한 인영 하나가 나타났다. 수만 리 밖에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인영에서는 한 줄기 도고의 파동이 뿜어져 나왔다.
“크아아아!”
도고의 허상은 하늘을 우러러보며 포효를 내질렀고 한제를 감싼 채 두 녹마사자의 자폭으로 발산된 파멸적인 힘에 저항했다.
첫 번째 녹마사자의 자폭으로 생성된 위력은 쾅 소리와 함께 도고의 허상을 강타했다. 이에 도고의 허상은 격렬하게 경련하며 무너져 내릴 조짐을 보였다. 그 순간 두 번째 녹마사자 자폭의 충격이 곧장 따라붙었다.
콰르릉!
우렁찬 소리가 울려 퍼졌고 도고의 힘과 공겁기 초기 수준의 위력이 융합하여 형성한 도고의 허상은 그대로 붕괴했다. 그리고 그 순간 인영의 아직 다 사라지지 않은 파멸적인 힘의 일부가 토갑에 떨어졌다.
맹세
도고의 육신과 귀일종의 갑옷으로 버텨냈음에도 불구하고 한제는 원신이 진동했고 수만 척이나 밀려난 후에 왈칵 피를 토했다. 그가 입은 두 겹의 갑옷 중 바깥을 두른 토갑의 가슴팍에는 주먹만 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저들은 나를 이곳에 붙잡아두고 시간을 끌기 위한 미끼에 불과하다!’
한제는 재빨리 축지성촌을 시도했지만 주위는 이미 봉인되어 있었다. 혼개를 입고 있는데도 산맥을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
그때, 강력한 기세의 검기가 빠른 속도로 달려들었다. 온 세상을 베어버릴 듯 어마어마한 위력의 검기였다.
한제는 고개를 번쩍 쳐들고는 그 검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이런 극단적인 검영에 맞서기에는 신통술은 너무도 복잡했다. 차라리 맨주먹으로 맞서는 편이 나았다.
쾅!
충돌음과 함께 검영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지만 한제의 주먹 역시 바들바들 떨려왔다. 팔 전체가 저릿했고 토갑의 팔 부분에 균열이 일어났다.
한제는 팔을 타고 체내로 스며든 검기가 발휘하는 파멸적인 위력을 억누른 채 산맥 정상에 선 청의의 사내를 향해 몸을 날렸다. 냉랭한 표정으로 한제를 응시하고 있는 청의의 청년은 다름 아닌 운공이었다.
한제가 달려든 순간, 운공은 오른손을 들어 올려 두 번째 검영을 소환했다. 검영은 곧장 한제를 향해 다가왔다.
전보다 3할 정도 더 강력해진 검영은 순식간에 내리쳤고 피할 틈이 없던 한제는 낮은 기합을 내지르며 또다시 주먹을 휘둘렀다.
콰쾅!
거대한 소리와 함께 두 번째 검영 역시 무너져 내렸고 한제의 오른팔을 뒤덮은 토갑은 그대로 폭발했다.
허나 끝이 아니었다. 그 순간 운공이 세 번째, 네 번째 검영을 연이어 쏘아 보낸 것이다.
두 갈래의 검영이 요란한 소리를 울리며 달려드는 사이 한제는 운공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리고 상대와의 거리가 1천 척 이내로 접어든 순간, 한제의 싸늘한 얼굴 위로 한 줄기 살기가 어렸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다소 창백한 얼굴의 운공은 한제를 죽일 듯 노려보며 혀끝을 깨물어 피를 내뱉었다. 금빛을 번득이는 붉은 피는 아홉 갈래의 검영이 되어 한제에게로 쏘아져 나갔다. 뒤이어 그는 오른손으로 허공을 콱 움켜쥐었다. 그러자 오래된, 동시에 황족의 기운을 풍기는 검 하나가 그의 손에 나타났다.
운공은 검을 휘둘러 아홉 개의 검영 뒤로 마지막 검기를 날렸다.
한편, 황족의 기운이 어린 오래된 검을 본 순간 한제는 그것으로부터 대천존 신통술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이는 그 검이 그가 가진 금색 문양과 마찬가지로 어느 대천존의 신통술로 응집되어 형성된 법보라는 뜻이었다.
이때 코앞으로 달려드는 아홉 갈래의 검영에 한제는 눈을 번득였다. 한제로서는 자신을 막아선 운공에게 분노가 치솟았다.
갑옷의 오른팔 부분은 이미 망가졌지만 그에게는 아직 왼팔이 남아 있었다. 이에 그는 아홉 개의 검영을 향해 왼손으로 아홉 번의 주먹을 날렸다.
“네 검과 내 주먹 중 어느 것이 더 강한지 볼까!”
산맥에서 울려 퍼지는 요란한 굉음은 폭풍이 되어 사방을 휩쓸었다. 이 폭풍에 휩쓸린 아홉 갈래의 검영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고 한제의 왼팔을 감싼 갑옷 역시 가루로 부서져 흩어졌다. 하지만 한제는 아랑곳하지 않고 운공과의 거리를 좁혀들었다.
이때 운공이 마지막으로 쏘아 보낸 검기는 2백 척도 채 되지 않는 거리에 이르러 있었다.
한제는 잔야술을 발휘하지 않기로 했다. 이 술법은 혼개로 인해 수준이 증폭된 상태라 해도 두 번 연달아 사용할 수는 없었기에 최적의 순간에 사용해야만 했다.
운공과의 전투는 쉽지 않겠지만 잔야까지 발휘할 필요는 없을 터였다. 게다가 그는 두 녹마사자의 자폭도 지금 운공의 공격도 그저 자신을 이곳에 묶어두는 역할에 불과함을 알고 있었다.
“그런 법보라면 내게도 있다!”
한제는 날카롭게 외치며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어 금색 문양을 소환해 힘껏 내던졌다.
콰쾅!
금색 문양과 금색 장검이 충돌하면서 요란한 소리가 퍼져 나갔다.
운공의 손에 들려 있던 검은 나가떨어져 그대로 붕괴해 흩어졌다. 운공 역시 피를 토하며 뒤로 밀려나다가 쾅 하고 대지에 처박혔다.
한제의 금색 문양에도 한 줄기 깊은 균열이 생겨났고 빛을 잃은 채 어두워졌으나 다행히 부서지지는 않았다. 한제는 얼른 문양을 거두었다.
대천존이 응집해낸 법보끼리 맞붙을 때는 그 법보의 본질이나 신통술이 아니라 그 법보를 만들 때 신념의 힘이 얼마나 들어갔느냐가 중요했다. 운공의 검에도 신념의 힘이 있었으나 한제의 금색 문양에 비하면 한참 부족한 듯했다.
순식간에 산봉우리 꼭대기에 이른 한제는 싸늘한 눈으로 운공을 응시했다. 끊임없이 피를 토하며 한제를 노려보는 운공의 모습은 퍽 불쌍해 보였다.
“내가 졌군.”
운공은 한제가 천우 혼개를 입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그가 대천존이 응집해낸 법보를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패배는 그저 패배였다. 변명 따위는 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너 역시 졌다.”
발버둥 치며 힘겹게 일어선 운공은 복잡한 표정으로 한제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 혼개는 곧 사라질 거야. 예상했겠지만 나와 두 녹마사자의 역할은 단지 너를 이곳에 묶어두는 것뿐이었다.”
운공의 씁쓸한 미소를 보며 한제는 몸을 돌려 산맥 건너편으로 질주했다. 잠시도 지체할 틈이 없었다. 그는 앞으로 나아가면서 뒤로 뻗은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소환된 붉은 빛이 휙 날아가 중상을 입은 운공의 미간을 관통했다.
비명도 저항도 없었다. 운공의 머리를 뚫고 나온 혈살검은 재빨리 한제의 곁으로 돌아왔다.
죽은 운공이 분신인지 본체인지 따질 틈도 없었다. 어렴풋했던 위기감이 점점 짙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당시 처음으로 수도자를 마주했을 때 느꼈던 것과 비슷한 위기감이었다.
끝없이 이어진 산맥 너머로 보이는 것은 사막이었다. 전체의 7할 이상이 끝없는 사막으로 뒤덮인 맹토주에서 가장 흔한 지형이기도 했다.
소문에 의하면 아주 오래 전, 어느 천외의 수련자가 선조(仙祖)와 싸우다가 패했다. 선조는 무시무시한 흙의 본원을 가진 수련자를 이곳에 봉인했고 그 후부터 이곳이 사막으로 변했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곳에 맹토주라는 이름이 붙은 것 역시 그 수련자의 성이 맹씨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곳은 녹마주와 비슷하게 흙의 본원의 기운으로 가득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천외 흉수인 녹색 마갈이 도사리고 있는 녹마주를 채운 것은 대지의 본원의 기운이라는 것 정도였다. 다만 그 본원의 기운은 마기에 억눌려 있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았다.
모두 거북이 등껍질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들이었다.
맹토주를 보자마자 이런 정보들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지금 한제에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혼개의 위력을 빌려 최대한의 속도로 맹토주를 향해 질주할 뿐이었다.
맹토주와의 거리는 이내 1천 리 안으로 좁혀졌다.
한데 그때였다. 돌연 하늘의 기색이 변하는가 싶더니 한제 전방의 일곱 개 지점에서 눈부신 빛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왜곡이 일어났다. 전송진이었다.
그이어 이 일곱 개의 전송진에서는 각각 수십 개의 인영이 나타났다.
수백 명에 달하는 이들은 상당히 높은 수준의 위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이 일곱 개의 전송진을 활성화하기 위해 녹마주에서 들인 대가는 어마어마했다. 특히 수준이 높은 자를 전송할수록, 그리고 여러 명을 전송할수록 대가는 더 커졌다. 그러니 세 번째 단계 수련자를 전송시킬 때의 대가는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때 한제의 눈앞에 나타난 자들 사이에는 강자가 매우 많았다. 녹마주에서 10만 년간 모아온 재산을 다 털어 넣기라도 한 듯했다.
본디 천우주에서 녹마주로 통하는 각 길목에 매복한 채 한제를 기다리고 있던 이들은 다급하게 몰려온 상태였다. 더욱이 이들조차도 일부에 불과해, 훨씬 많은 이들이 속속 몰려드는 중이었다.
이들의 복장은 색만 다를 뿐 흑백의 해와 달이 새겨진 도안은 똑같았다.
한제는 거북이 등껍질의 기록을 통해 저 도안을 알고 있었다. 녹마주의 최고 종파, 도마종의 표식이었다.
맹토주를 1천 리 앞둔 곳에서 맞은 도마종의 기습에 한제는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어렴풋하던 불길함과 위기감은 점점 또렷해지고 있었다.
두 눈동자가 바짝 졸아든 한제가 다시 몸을 훌쩍 날리려는 순간, 돌연 일곱 개의 전송진에서 나타난 수백 명의 수련자가 돌진해왔다. 동시에 이들은 한제를 향해 검은 무언가를 내던졌다.
“극천 초원 수련자의 머리 아홉 개!”
“극천 초원 수련자의 머리 여섯 개!”
“극천 초원 공겁기 수련자의 머리!”
“극천 초원⋯⋯.”
사방에 울려 퍼지며 귀에 떨어진 음산하고 서늘한 목소리들에 한제는 심신이 바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들이 내던지고 있는 것은 표정에 두려움이 그대로 남은 머리들이었다. 극천 초원 천우 세 번째 혈에 주둔하고 있던, 한제와 몇 달간 함께 싸우고 살아남은 천우주 수련자들의 것이었다.
한제는 그들의 이름은 알지 못했지만 그들의 얼굴만큼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도마종 수련자들이 던지고 있는 머리의 수는 극천 초원에서 끝내 살아남은 인원수의 절반에 달했다.
“수련자의 머리를 잘라 가지고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더냐? 이건 우리 도마종에서 너를 위해 준비한 첫 번째 선물이다!”
누군가의 악에 받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도마종이라⋯⋯. 이 이한제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마. 오늘 이곳을 벗어난다면 내 반드시 너희 종파를 세상에서 지우고 말리라!”
한제의 두 눈에서 붉은 빛이 번득였다. 동시에 스스로의 이름을 걸고 맹세를 한 그는 선강 대륙에 이른 이래 처음으로 더없이 강한 살심을 느꼈다.
“잔야!”
한제는 몸을 홱 돌렸다. 그는 이곳을 벗어나기가 매우 어려울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도마종은 자신을 죽이기 위해 모든 대가를 들인 상태였다. 사방에서 내던지고 있는 머리들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이곳에서 빠져나가려면 전력을 다해야 했고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더 많은 도마종 수련자들이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한제의 목소리가 퍼진 순간, 녹마주와 맹토주의 경계는 허상의 바닷물로 가득 채워졌고 사방은 어둠에 휩싸였다. 어두운 하늘에 태양이 조금씩 고개를 들면서 어둠을 찢어내는 강력한 힘을 뿜어냈다.
“헛! 이게 무슨…?”
“끄아악!”
사방에서 달려들던 수백 명의 도마종 수련자는 수준 불문하고 잔야의 위력 아래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하나둘 무너져 내렸다. 무너진 육신에서 튀어나온 원신 역시 멀리 도망치지 못하고 소멸됐다.
번득이는 전송진에서 막 튀어나온 또 다른 수백 명의 수련자 역시 그 모습이 제대로 응집되기도 전에 붕괴하며 죽음을 맞았다.
잔야 신통술이 발휘된 지금, 온 세상의 기색은 전과 완전히 달라진 상태였다.
이내 이곳에는 한제 이외에 살아남은 사람이 없었다. 한제 또한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채 혼개가 곧 사라지리라는 것을 직감하고는 곧장 1천 리 밖의 맹토주를 향해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