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447
한제의 육신은 바닥이 없는 구멍처럼 그 기운들을 모조리 흡수해갔다. 그의 원신은 천역주의 보호 아래 육신 안에 점점 많은 힘이 쌓이는 것을 번득이는 눈으로 바라봤다.
원하기만 한다면 곧장 육신에 쌓인 이 힘을 모두 흡수할 수 있을 터였다. 그렇게 되면 그 힘만으로도 수준이 곧장 증폭할 터였다.
그럼에도 한제는 더 많은 힘이 육신에 쌓이기를 기다렸다.
‘절호의 기회가 오기 전에 원신을 내보였다가는 얻을 수 있는 것이 대폭 줄어들 거야. 백 년이 넘게 기다려놓고 잠깐의 유혹에 흔들려 망칠 수는 없지.’
시간이 흐르면서 한제 체내에는 점점 많은 힘이 쌓여 갔고 종국에는 몸 곳곳을 가득 채웠다. 그럼에도 한제는 또다시 참고 기다렸다.
★ ★ ★
눈 깜짝할 사이 10년이 흘렀다.
그동안 제사장은 녹마로 밖에 가부좌를 튼 채 붉게 달아오른 눈으로 단로를 응시했다. 그는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아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진 상태에서도 녹마가 부활하는 순간을 눈에 담기 위해 버티고 있었다.
그때, 전갈 형태의 건물 밖으로 1백 년이 넘도록 그 누구도 발을 들인 적 없던 안개 속에 세 갈래의 긴 빛이 날아들었으나 노인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세 갈래의 빛은 매우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었다. 그 빛에 있는 세 사람은 한제와 면식이 있는 이들로 다름 아닌 혼개의 주인들이었다. 귀일종 종주의 계획은 어째서인지 1백 년이 지연된 지금에서야 시작되고 있는 것이었다.
절명
지난 10년 동안 원신의 기운을 뿜어낸 두 녹마사자의 원신은 매우 허약해져 이제 더는 견딜 수 없다는 듯 어두워지기까지 한 상태였다.
며칠 뒤, 그중 한 녹마사자의 원신이 마지막 기운을 한 움큼 뿜어낸 뒤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내 빛을 잃은 육신은 옆으로 쓰러지더니 완전히 숨을 거둬버렸다. 이어서 채 1각도 지나지 않아 다른 녹마사자의 원신 역시 점차 흩어졌다.
자신을 오랫동안 호위해온 두 녹마사자의 죽음에도 노인은 눈길조차 죽지 않았다. 노인은 거의 죽음에 이른 상태로 썩은 내를 풀풀 풍기는 상태였다. 만약 강력한 의지가 없었더라면 그 또한 진즉 눈을 감았을 터였다.
그의 두 눈에 담긴 격앙된 감정은 10년 동안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노인은 가부좌를 틀었던 자세를 바꿔 꿇어앉더니 고개를 들었고. 뒤이어 잔뜩 흥분된 감정이 담긴 거친 목소리로 외쳤다.
“가문 대대로 제사장을 맡아온 자로서 녹마님께 청컨대, 깨어나시어 강림해주십시오. 하찮은 종이 이 육신을 녹마님께 바칩니다!”
노인은 말을 마치자마자 기괴한 주문을 중얼중얼 외기 시작했다.
제대로 들리지는 않았지만 그 소리는 점차 사방을 뒤덮고 멀리 퍼져 나갔다. 그러자 전갈 형태의 거대한 건물은 돌연 바르르 진동하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일어난 뿌연 먼지 연기가 일어났고 마치 잠에서 깨어난 듯한 거대한 혼의 기운 한 줄기가 확산됐다.
이에 제사장은 잔뜩 흥분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전갈 형태의 건물은 끊임없이 진동하면서 아홉 갈래의 녹색 기운을 각기 다른 방향으로 뿜어냈다. 이렇게 발산된 기운들은 녹마로의 상공에 응집해 거대한 허상을 형성했고 길이만 수만 척에 달할 것처럼 거대한 녹색 전갈이었다.
허상의 전갈은 온몸에 상처가 가득했고 기운도 매우 미약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묵직한 위압감을 뿜어냈다. 이 위압감에 온 녹마주는 요동쳤다.
이 허상은 진압되어 있는 녹색 마갈 혼의 일부로 녀석의 진정한 혼은 진압된 곳을 떠날 수 없었다. 즉, 이 허상은 분혼에 불과했다. 일단 분혼으로 육신을 취하면 진압된 자신의 진혼을 흡수할 방법이 생겨날 것이고 이를 통해 완전한 부활이 가능해질 터였다.
거대한 전갈의 허상은 오랫동안 감겨있던 눈을 천천히 떴다. 냉랭하고 무정한, 동시에 어마어마한 위엄이 번득이는 눈이 아래를 훑었다.
“네가 나를 소환했느냐?”
지극히 서늘한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만으로도 온 하늘이 뒤흔들리는 듯했다.
허나 매우 허약해져 있는 상태를 숨기지는 못했다. 묵직한 위엄 아래 드러난 기력은 불어오는 바람 한 줌에 무너져 내릴 것처럼 허약했다.
제사장은 온몸을 바르르 떨더니 전갈의 허상을 향해 연거푸 절을 했다.
“하찮은 종이 녹마님을 뵙습니다! 녹마님, 제가 완벽한 육신을 준비해뒀습니다. 녹마님의 부활을 위해 쓰일 것입니다. 녀석의 체내에는 의식과 원신이 남아 있지 않으니 녹마님의 강림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을 것입니다!”
잔뜩 흥분한 노인의 감격한 목소리는 이전처럼 거칠지 않았다.
그는 녹색 마갈이 매우 허약해져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저 분혼을 절대로 잃거나 다쳐서는 안 됐다. 그가 한제의 육신에 갖가지 시험을 거친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만약 한제의 육신에 아직 원신이 남아 있다면 녹마의 강림에 변고가 생길 수 있을 테니까. 이는 그 오랜 세월의 준비와 수고를 한순간에 무너뜨리고 심지어 가뜩이나 허약해진 녹색 마갈에게 더욱 치명적인 중상을 입히게 될지도 모른다.
노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녹색 기운으로 이루어진 전갈 허상은 그 거대한 몸을 살짝 틀어 아래쪽의 녹마로를 내려다보았다. 그 눈빛은 마치 실체를 갖춘 듯 곧장 그 단로 안의 한제에게로 향해 연속해서 아홉 번이나 훑고 심지어는 그 체내까지 한 번 살폈다. 허나 그럼에도 천역주의 존재를 감지하지는 못했다. 그러니 천역주 안에 숨어 있는 한제의 원신을 발견했을 리도 만무했다.
한참 뒤에야 거대한 녹색 마갈의 혼은 시선을 거두었다.
“녹마님, 저 육신은 이미 완전히 개조된 상태입니다. 녹마님께서 요구하신 사항에 완전히 부합하지요!”
제사장은 꿇어앉은 채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아주 잘했다. 내가 부활하면 상을 내릴 것이다.”
전갈의 혼은 파동을 일으켜 그 몸을 움직이더니 한 줄기 어스름한 빛이 되어 곧장 달려들더니 녹마로를 관통해 그대로 한제에게 돌진했다.
천역주 안에 숨은 한제의 원신은 이 순간까지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가 기다리는 것은 한낱 육신의 행운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대담한 계획이 있었다. 제사장이 그토록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한 것으로 보아 한제는 자신의 육신에 원신이 남아 있다면 상대의 목표가 성공하지 못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바로 이 점에서 엄청난 도박을 해보기로 한 것이다.
그는 녹마가 자신의 육신을 취하려는 순간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오히려 자신이 녹색 마갈을 삼키기 위해서였다.
전갈의 혼은 매우 강력해 보이지만 사실 중상을 입고 진압된 데다가 분혼에 불과했다.
녹마는 미친 듯이 달려들었지만 한제의 체내에 곧장 진입하지 않고 그 밖을 맴돌며 신식으로 꼼꼼히 살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안심한 듯 사방에서 한제의 육신을 향해 다시 돌진했다.
곧 녹마의 분혼은 조금씩 한제의 체내로 들어왔지만 곧장 그 육신을 탈취하려 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한제의 체내에 들어온 후 다시 신중하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 사흘이 지났다. 녹마의 분혼은 그제야 조금씩 한제의 체내에서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 정도로 조심스럽게 구는 것을 보니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다면 곧장 도망칠 터였다.
한데 녀석은 한제의 원신을 보지 못했지만 한제는 녀석을 볼 수 있었다. 한제는 자신의 육신에서 천천히 확산되고 있는, 그러나 아직 자신의 육신을 탈취하지는 않고 있는 전갈의 혼을 보았다.
‘신중한 놈이로군. 허나 이는 그만큼 약해졌다는 뜻이기도 할 터.’
한제의 원신은 신경을 곤두세운 채 기다렸다. 만약 지금 공격을 한다면 전갈의 혼은 곧장 떠나갈 것이다. 반면 육신을 탈취하기 시작한 후로는 쉽게 떠나갈 수 없을 터. 그때가 그토록 기다려온 적기일 것이다.
한제는 전갈의 혼을 삼킬 경우 그 결과까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자신에게 매우 큰 행운이 되리라는 것만은 직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그 행운을 위해 자신의 육신을 미끼로 삼을 정도의 인내심이 있었다.
한편, 제사장은 잔뜩 흥분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녹마의 혼이 한제의 육신을 탈취해 부활할 순간을 고대했다. 그 광경을 직접 목격한다면 웃으면서 저승으로 향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7일 뒤, 녹마의 혼은 슬슬 그 거대한 몸으로 한제의 육신을 점점 더 많이 점유해가기 시작했다. 지금은 7할 정도를 점거한 상태로 지금껏 아무 문제가 없자 마갈은 마음을 놓은 듯 본격적으로 탈취에 돌입했다.
한제의 체내로 스며든 혼은 순간 끓어오르듯 확산되면서 그의 머리로 진입했고 원신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자 벅찬 기쁨을 느꼈다.
완벽한 육신을 찾아내고 제련하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을 기다려왔다. 선강 대륙 수련자의 육신은 원신이 없더라도 탈취를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이다. 전갈이 탈취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처럼 천외에서 온 수련자의 육신뿐이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한제의 머릿속에 자신의 혼을 대대적으로 녹여냈다. 전갈의 혼은 천천히 응집되기 시작했다. 그것이 완전히 응집되면 한제의 육신을 완전히 탈취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허나 그 허상이 막 절반 정도 응집된 순간이었다. 돌연 한제의 육신 깊은 곳, 천역주에 숨어 있던 원신이 콰쾅 하고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한제는 천역주 밖으로 나오자마자 머리로 돌진하더니 찰나의 순간 그 근처에 이르러 응집된 전갈의 혼을 삼켜버리기 시작했다. 신통술도 법술도 사용하지 않았다.
“크아아악! 이, 이게 무슨…?”
전갈의 혼은 날카로운 비명을 내질렀다. 이 육신에 원신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만큼 갑작스런 한제의 등장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녀석은 매우 허약해진 상태임에도 그대로 삼켜지지 않고 저항하면서 한제의 육신을 점거해나갔다. 허나 녀석은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고 한제는 1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준비를 해온 상태였다. 이에 한제는 두려움 없이 전갈의 분혼을 삼켜댔다.
순식간에 2각이 흘렀다. 이 무렵, 한제와 전갈의 분혼 사이의 싸움은 절정에 이르러 있었다. 허나 이미 승패는 명백해 보였다.
이 모든 상황은 한제의 체내에서 발생하고 있었기에 제사장은 아무것도 눈치챌 수 없었으나, 곧 녹마의 분혼이 격렬하게 진동하는 것을 보고 흠칫 놀랐다.
“저건⋯⋯?”
허나 뭔가 이상한 것 같기는 해도 그 이유는 전혀 알 수 없었기에 제사장은 이내 의심을 거뒀다.
“녹마님이 육신을 다시 개조하시는 모양이군.”
그렇게 생각한 노인은 미소를 지었다. 녹마가 직접 개조를 하고 있다는 것은 저 육신이 그만큼 가치 있다는 뜻일 테니까.
이 무렵, 한제의 원신과 전갈의 혼은 서로를 향해 수만 번이나 달려든 상태였다. 한제의 공격은 갈수록 격렬해졌다. 1백 년을 넘게 기다려온 순간을 놓칠 마음 따위는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 전갈의 혼은 한제의 광기 어린 모습에 두려움을 느끼고는 급기야 도망치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에게는 한 줄기 분혼조차 수만 년이 걸려야만 겨우 응집해 낼 수 있을 만큼 귀한 것이었다. 심지어 이 분혼이 소멸되면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다.
동시에 그는 제사장 가문을 향한 깊은 분노와 원한을 느꼈다. 이 모든 상황이 제사장의 탓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내 도망치기로 결심한 마갈의 분혼은 다급하게 몸을 물렸다. 하지만 한제가 놓아줄 리 없었다.
가까스로 한제의 머리에서 빠져나온 마갈의 분혼은 이어서 육신을 빠져나가려던 순간 또 한 입 삼켜지고 말았다.
“크아악”
처연한 비명을 내지르며 한제의 정수리를 통해 빠르게 빠져나간 녀석은 전보다 확연히 작아진 몸으로 허겁지겁 달아났다.
“아니, 이럴 수가!”
제사장은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고는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섰다.
전갈의 혼이 빠져나가자 한제의 원신은 곧바로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그가 1백여 년 만에 두 눈을 뜬 순간, 우렁찬 소리와 함께 녹마로는 산산이 조각나 버렸다.
“화염 진신!”
한제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훌쩍 솟구쳐 오르며 낮게 외쳤고 그러자 왼쪽 눈에서 뿜어져 나온 어마어마한 불바다가 그의 뒤에 화염 진신을 응집해냈다.
“천둥번개 진신!”
이어서 오른쪽 눈에서도 천둥소리와 함께 튀어나온 번개가 진신이 되어 한제의 뒤에 나타났다.
“대지 진신!”
한제가 하늘을 우러러보며 크게 외치자 전신의 10만 8천여 개 땀구멍에서 짙은 노란 빛이 발산되더니 응집해 세 번째 진신을 드러냈다.
“물의 진신!”
핏속에 녹아들어 있던 물 본원의 진신을 소환하자 한제의 온몸에는 핏줄이 불룩 돋아났다. 뒤이어 그 안에서 발산된 눈부신 붉은 빛이 허상을 형성했다. 네 번째 본원 진신이었다.
네 진신의 등장에 한제의 기세는 폭발적으로 치솟았다. 그 수준은 이전과 같았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당장이라도 증폭될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네 개의 진신이 나타난 순간, 한제의 두 눈에서 돌연 금빛이 번득였다. 어마어마한 위압감을 품은 이 금빛은 곧장 달아나고 있던 전갈의 혼을 향해 돌진했다.
“캬아악!”
전갈의 혼은 날카로운 비명을 내질렀다. 녀석은 금색 눈빛 속에 당시 선조가 가지고 있던 선극검(仙極劍)의 위력이 담겨 있음을 느끼고는 바들바들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