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449
천둥번개의 본원을 보조 수단이 아닌 주체로 삼아 두 개의 특수 본원을 흡수하듯 융합시키려는 것이었다.
한제는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린 뒤 연거푸 몇 번이나 원신의 정혈을 뱉어내 천둥번개 본원의 진신을 뒤덮었다. 그의 의지가 담긴 피를 흡수한 천둥번개 본원의 진신은 곧장 온몸으로 천둥번개를 발산하며 두 갈래 번개가 되어 살육의 본원과 금제의 본원을 향해 달려들었다. 번개의 형태를 빌려 살육과 금제에 녹아들려는 것이다.
‘성공한다면 천둥번개 본원의 진신은 성장하여 세 개의 본원을 갖게 될 터. 심지어 천둥번개 역시 그로 인해 변화를 맞게 될지도 몰라.’
한제는 이로 인해 무슨 일이 발생할지, 천둥번개가 어떤 식으로 변할지 전혀 모르고 있었으나 지금으로서는 이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또다시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천둥번개 본원의 진신이 강력한 위엄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살육과 금제의 본원을 융합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콰르릉 소리와 함께 천둥번개 본원의 진신에는 한제마저 놀라게 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천둥번개는 세상 모든 힘들 중 최강이자 궁극의 힘이다. 하늘의 위력으로서 세상 위에 머물다가 마치 하늘의 분노를 품은 것처럼 강림하여 세상을 진동시킨다.
한제의 천둥번개 본원에는 태고 뇌룡 반 마리가 담겨 있었다. 천둥번개를 이용할 권리를 타고난, 천둥번개의 화신인 이 태고 뇌룡을 뿌리로 삼아 본원을 만들어낸 한제는 이후 섬뇌족 불멸의 천둥번개를 흡수함으로써 본원을 크게 성장시켰다.
결코 녹록치 않은 길이었다. 허나 한제는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가며 뇌와의 혼과 극의 경계를 천둥번개 본원에 응집시켜 그 본원을 거의 완성시켰다.
이후 선강 대륙에 이른 그는 1백여 년간 마갈 사당에서 마도종 종주의 천둥번개 본원을 흡수했을 뿐만 아니라 두 개의 뇌제 구슬까지 삼켰다.
이러한 여러 요소를 통해 그의 체내 천둥번개 본원은 대대적인 변화를 겪었고 진신으로 응집됐다.
이 진신은 스스로 의지를 가진 존재이지만 그 의지의 대부분은 한제에게 속해 있었다.
사실 한제는 의도치 않은 행동이 천둥번개 본원의 진신에 이런 변화를 야기할 거라고는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한편 특수 본원의 일종인 살육 본원의 위력은 본디 눈에 보이지 않았다. 이 본원은 무궁무진한 살육을 통해 형성되긴 하지만 이 살육이 맹목적이어서는 소용이 없었다. 모종의 신념을 가지고 행해진 살육이어야만 했다.
살육 본원에는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짙은 살기가 어려 있는데 이 살기는 보통의 본원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이 강력했다. 청수가 살육 본원 한 줄기만으로 더 수준 높은 상대와 접전을 펼쳤다는 것만으로도 그 위력을 짐작할 수 있다.
사실 한제는 살육 본원을 자주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기세를 드높이는 정도로만 사용해왔다. 허나 천둥번개 본원의 진신에 녹아든 살육 본원은 큰 변화를 일으켰다. 천둥번개와 살육의 융합으로 살육의 천둥번개가 형성된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매우 드물게 나타난 이 천둥번개는 세상 모든 것을 압도하고 파괴할 법한 위력이었다. 게다가 살육의 천둥번개는 사명을 띠고 있게 마련으로 등장할 때부터 사라질 때까지 그 사명을 완수하려 했다.
오랜 전설에 따르면 하늘은 분노했을 때 천둥번개를 통해 세상을 멸망시킨다고 했다. 천둥번개는 태생적으로 중생을 벌하고 생령을 파멸시키는 데 쓰였으며, 살육의 천둥번개는 오직 세상을 멸망시킬 때만 나타난다는 것이다. 하늘의 분노를 담은 살육의 천둥번개는 본래 나타나서는 안 될, 애초에 일개 수련자가 장악할 수 없는 존재였다.
한데도 이러한 변화가 일어난 것은 한제의 천둥번개 진신이 살육 본원과 융합했기 때문이었다.
한제는 멍하니 눈앞의 천둥번개 본원 진신을 바라보았다. 비록 이 진신 사방의 천둥번개를 눈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신식을 통해 그 무시무시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한 줄기의 힘만으로도 한제는 머리가 저릿할 정도였다. 만약 진신이 저것을 확산시킨다면 그 위력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이리라.
침을 꿀꺽 삼킨 한제는 찬 숨을 들이마셨다.
‘이 천둥번개가 방출되면 나 또한 파멸할 것이다.’
한제는 융합을 당장 멈춰야 한다는 직감이 들었다. 세상에 이런 천둥번개가 존재해서는 안 될 것만 같았다. 적어도 지금 나타나서는 안 될 존재라고 느껴졌다.
천둥번개는 진신의 사방을 맴돌며 파지직 소리를 냈다. 미약한 소리였으나 고요한 사당에서는 유난히 또렷하게 들려왔다.
이에 한제의 눈동자가 바짝 졸아들었다. 천둥번개가 불안정한 조짐을 보였기 때문이다.
동시에 사당에서부터 한 줄기 기운이 확산돼 녹마주 전역을 뒤덮었다. 녹마주 안의 모든 생령은 순간 심신을 바르르 떨었고 모든 것이 파괴되는 듯한 착각마저 느꼈다.
그러나 이 기운은 금세 흩어져 사라졌다. 말 그대로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일이라 심지어 어떤 대천존의 주의도 끌지 않은 상태였다.
“이 천둥번개가 폭발한다면⋯⋯?”
한제는 겁먹은 듯한 모습이었다.
살육의 천둥번개가 불안정한 기색을 보인 순간, 한제의 천둥번개 본원의 진신은 금제 본원과 융합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법칙이자 규칙인 금제 본원은 융합되는 와중에 한 겹의 넓은 그물이 되어 천둥번개 본원의 진신을 뒤덮었다.
천둥번개에는 하늘에서 부여한 규칙과 법칙이 존재했으나, 지금은 그 안에 담긴 한제의 의지와 금제 본원으로 인해 변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한제의 규칙과 법칙을 가진 천둥번개가 생겨났다. 그리고 뜻밖에도 이로 인해 살육의 천둥번개는 중화되기라도 한 것처럼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한제는 문득 자신이 식은땀으로 범벅이 됐음을 깨달았다.
그는 눈앞의 본원 진신을 바라보았고 꿈을 꾸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진신의 모습은 이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으나, 한제가 보기에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우선 지금 저 진신에서는 천둥번개의 흔적을 조금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 안팎을 층층이 감싼 금제 본원은 진신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살육의 천둥번개를 꽁꽁 에워싸고 있었다.
“어쩌면 하나의 주를 파멸시킬 수 있을지도⋯⋯.”
한제는 자신의 본원 진신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진신이 융합하면서 이 순간에도 한제의 수준은 치솟고 있었다. 폭풍을 형성한 채 한제의 몸 밖으로 뿜어져 나온 수준은 급속도로 회전했고 끊임없이 주변의 힘과 체내에 축적된 녹색 마갈의 힘을 흡수했다.
한제의 백발이 마구 휘날렸고 체내에서는 콰쾅 소리가 울렸으며 고민에 잠겨 있던 두 눈은 밝게 번득였다. 그러다가 끊임없이 상승하던 수준이 절정에 이른 순간, 한제의 심신에서 우렁찬 소리가 터져 나왔다.
콰르릉!
한제의 수준은 순식간에 공현기 후기에 이르러 있었다.
그는 무언가 결단을 내린 듯 단호한 눈빛을 번득였다.
살육의 천둥번개는 실로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이 천둥번개가 나타난 순간 간담이 서늘해진 이유는 천둥번개 본원 그 자체 때문이기도 했으나 그보다는 이 천둥번개의 등장으로 인해 야기될 여러 변화 때문이었다.
이러한 변화는 그 누구도 대천존조차도 알아차릴 수 없었다. 이 천둥번개는 한제가 창조한 것으로 천둥번개 본원에는 그의 의지와 법칙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한제는 더는 이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자신의 수준이 공현기 후기에 이른 순간 마지막으로 남은 허상 본원 세 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삶과 죽음, 원인과 결과 진실과 거짓!’
세 허상의 본원을 하나로 융합하면 그의 아홉 본원은 세 개로 줄고 수준은 다시 증폭하여 공현기 절정에 이르게 될 터였다.
‘그 후에는… 아홉 번의 현겁이 기다리고 있겠지.’
그리고 아홉 번의 현겁마저 통과한다면 한제는 대존(大尊)이라 칭해지는 공겁기 수련자가 될 수 있다. 그는 여러 특수성으로 인해 공겁기 초기 수준만 돼도 공겁기 절정의 강자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터였다. 어쩌면 대천존 아래 가장 강한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반(半) 대천존이 되는 셈이다.
그 정도의 수준과 실력을 갖춘다면 선강 대륙에서도 누구든 감히 그를 어쩌지는 못할 터였다. 더욱이 그는 장차 선강 대륙의 열 번째 태양이 될 재목이기 때문이다.
현겁을 기다리다
만약 선강 대륙을 하늘에 친다면 천외는 우주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녹마주와 동주, 선족 구역, 그리고 선강 대륙 너머 허공 저 먼 곳에는 대륙이 하나 있다.
선강 대륙의 10분의 1도 안 될 정도로 작은 이곳에서는 생명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한없이 적막했다. 곳곳에는 폐허가 널려 있었다. 오래 전 생명체가 번성했으나 어떤 재앙으로 인해 멸망해 버리기라도 한 것만 같았다.
이 대륙의 정중앙 폐허에는 거대한 조각상이 하나 서 있었다.
거의 허물어지고 절반만 남은, 여인 모습의 조각상 위로 한 중년 사내가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사내는 평범해 보였으나 머리는 놀라울 정도로 길었다. 무려 1천 척에 달할 듯 긴 머리카락은 허물어진 조각상을 따라 아래로 축 늘어져 있었다.
한제가 천둥번개 본원 진신과 살육 본원을 융합하여 살육의 천둥번개를 탄생시킨 순간, 까마득히 오랜 세월을 잠들어 있던 이 중년 사내가 두 눈을 번쩍 떴다.
그러나 두 눈에는 눈동자가 없었다. 그저 고요한 허무뿐이었다.
이내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내다보던 사내의 두 눈이 점차 밝게 번득이기 시작했다.
“1겁 일찍 깨어났군.”
한참이나 어딘가를 내다보던 사내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더니 고개를 숙여 주위의 폐허를 훑어보며 신식을 펼쳤다. 비할 데 없이 강력한 그의 신식은 단숨에 폐허로 뒤덮인 대륙을 완전히 뒤덮었다.
그는 태초와도 같은 옛날, 이곳의 모든 것을 파멸시키고 모든 생명을 죽여 죽음의 기운을 흡수하며 폐관수련에 돌입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의 계산대로라면 5겁을 잠들어 있었어야 했지만 지금 그는 1겁이나 일찍 눈을 뜬 상태였다.
“저쪽에서 전해져온 기운이 내 영혼을 흔들어 깨웠어. 동족의 기운⋯⋯. 설마 동족이 ‘그것’을 탄생시킨 건가?”
사내가 중얼거렸다.
그는 자신을 깨운 기운이 전해져온 곳에 대해 어렴풋한 기억이 떠올랐다.
“저쪽이라면 수호자 일맥이 있는 곳인데⋯⋯.”
사내는 생각에 잠겨 있다가 몸을 일으켰다. 그의 몸에서는 어스름한 빛이 번득이더니 검은 도포가 되어 얼굴을 가렸다. 놀랄 정도로 긴 머리카락만은 기이하게 도포 밖으로 드러나 있었다.
사내는 우주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긴 머리카락이 뒤로 길게 늘어지며 마구 휘날려 그는 마치 한 마리 검은 용처럼 보였다. 아닌 게 아니라 그가 솟구쳐 오름에 따라 주위로는 검은 용 한 마리의 허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마치 한 마리의 용이 되어 하늘 끄트머리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향하는 곳은 한참 멀리 떨어진 선강 대륙이었다. 이런 속도라면 수백 년은 걸릴 터였다.
★ ★ ★
마갈 사당. 한제는 허상의 본원 세 개를 바라보며 결인을 그린 두 손으로 앞을 가리켰다. 그러자 세 본원은 곧장 하나로 융합하기 시작했다.
이 세 개의 본원은 한제 스스로 깨달음을 통해 얻어낸 것들이다. 또한 첫 번째 화범에서 싹을 틔우고 두 번째 화범에서 응집한 후, 세 번째 화범을 통해 완성된 본원들이기도 했다.
삶과 죽음, 원인과 결과 진실과 거짓의 본원은 서로 대응하고 변화하면서 서서히 융합되어갔다.
한제는 삶과 죽음 속에서 주작성의 대우 가족 3대를 보았다.
원인과 결과 속에서는 류미와 이평, 그리고 아버지로서 지냈던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마지막으로 진실과 거짓 속에서 본 것은 소도영과 60년 동안의 꿈, 그리고 익숙한 장면과 얼굴들이었다.
세 허상의 본원은 한제에게 이미 본원이 아니라 그의 운명이자 저항의 삶이었다.
“난 삶과 죽음의 경지를 통해 일반인의 삶을 벗어났고 원인과 경지를 통해 도를 얻었으며, 진실과 거짓의 경지를 통해 도를 깨달았다. 삶과 죽음에서 혼란을 겪는 와중에 원인과 결과를 낳았고 원인과 결과는 도를 끊임없이 검증해주었으며, 끝내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나는 도의 소재를 찾아냈다. 다음은 원인과 결과였고 다음은 진실과 거짓이었으며, 그다음으로⋯⋯ 도에 입문하게 됐지!”
한제는 융합하는 본원들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이들의 융합은 어렵지 않아. 모두 나로 인해 탄생하고 나로 인해 응집됐으며, 나로 인해 도에 녹아들었으니까.”
중얼거리던 한제는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손짓에 따라 세 개의 본원은 빠르게 회전했다.
한제는 융합하는 본원들을 멍하니 바라보았고 그는 그 안에서 자신의 탄생부터 지금까지의 삶을 볼 수 있었다.
자신이 부모님의 묘 앞에 무릎을 꿇고 통곡하는 모습을 품에 모완을 안은 채 하늘을 향해 분노에 찬 고함을 내지르는 모습을 모완의 눈이 감긴 순간 흘러내린 눈물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과 그로부터 1년이 흘렀을 때 그녀의 눈물이 떨어진 자리에서 피어난 한 송이 꽃을 보았다.
류미가 자신의 아이를 가졌음을 알게 된 후 원한으로 가득 찬 아이를 보고 극심한 마음의 고통에 피를 토해내던 자신의 모습도 보았다.
그런가 하면 석상이 된 자신에게 10년 동안 눈물을 흘리며 피를 발라주던 이천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나의 인생⋯⋯.”
한제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쓸쓸함이 느껴지는 한숨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한제가 자신의 기억으로부터 눈을 떼지 못하고 지켜보는 동안 세 허상의 본원은 완전히 융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