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45
귀식(歸息) 상태의 원영
한제가 폐관 수련을 한 지난 한 달여 동안 운비는 밖으로 나갈 때마다 이런 과정을 반복했다. 한제는 석실 안에서 냉소하며 상대가 동굴을 떠난 뒤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뒤쫓았다.
단로를 들고 나갔으니만큼 뭔가 결심한 일이 있을 터였다. 또한 한제는 그 단로에 대해 호기심이 일기도 했다. 이전에 그 동굴에 처음으로 도착했을 때 신식으로 곳곳을 살폈지만 어떤 이상도 발견하지 못했었다.
그 단로에는 신식을 숨기는 어떤 장치가 되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녀가 그 단로를 저물대에 넣지 않고 품에 안아 들은 이유도 짐작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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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마해 안에 달빛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두꺼운 안개를 뚫고 들어오느라 어슴푸레해진 달빛과 별빛 비슷한 것뿐이었다. 하지만 수련자들에게는 실낱같은 빛만 있어도 앞이 훤했다.
운비는 동굴을 나선 뒤 곧장 빠른 속도로 기린성을 에워싼 산맥의 성문 쪽으로 질주하다가 성문을 지나치던 순간 우뚝 멈추었다.
곧이어 성문 안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검은 옷을 입은 채 두루마기를 뒤집어쓴 그는 마치 검은 옷으로 온몸이 감싸인 듯했다.
검은 옷의 남자는 운비를 힐긋 본 뒤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려 성 밖으로 나섰다. 운비는 잠시 망설였지만 곧 이를 악물고 그를 바짝 뒤따랐다.
두 사람은 순조롭게 성문을 빠져나갔다. 그들을 막는 기린성의 호위병은 없었다.
한제는 그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운비에게 붙어 있는 두 번째 마혼을 통해 그 모든 상황을 파악한 뒤 속으로 다시 냉소했다.
그리고 마치 유령처럼 그들의 뒤를 느릿하게 쫓았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의 수준은 결단기 중기에 불과하니 원한다면 한제는 단번에 그를 끝장낼 수도 있었다. 다만 한제는 오늘따라 유달리 의심스러웠던 운비가 대체 어떤 사람을 찾아가는 건지 궁금했다.
두 사람은 성문을 빠져나간 뒤 곧장 동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기린성으로부터 3천 리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검은 안개로 뒤덮인 산봉우리에 이르러 움직임을 멈추었다.
“스승님, 데려왔습니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은 한쪽 무릎을 꿇고 가슴 앞에 두 손으로 결인을 했다. 마치 연꽃 같은 모양의 결인이었다. 극진한 공손함을 드러내는 태도였다.
“넌 돌아가거라!”
검은 안개에 뒤덮인 산봉우리 안에서 어떤 목소리 하나가 느릿하게 흘러나왔다. 목소리는 마치 천둥처럼 괄괄하게 울러 퍼졌고 그 기세에 검은 안개들이 흩어졌다. 그러자 산봉우리 꼭대기에 작은 정자가 드러났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한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한제는 그곳으로부터 1천 리 정도 떨어진 곳의 낭떠러지에 서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떠난 뒤 그가 미간을 두드리자 허이국 마혼이 나타났다.
마혼은 나타나자마자 이미 한제가 무슨 명령을 내릴지 알고 있었던 듯 히히 하고 웃더니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의 뒤를 따랐다.
한편 검은 안개 속에 서 있던 운비는 불안했다. 사실 오늘 밤의 이 모든 일은 그녀가 주동적으로 벌인 것은 아니었다.
한제가 폐관 수련을 하던 동안 몰래 자신에게 걸려 있는 금제를 풀어줄 수련자를 찾다가 번번히 실패한 그녀는 운명에 굴복할 생각이었다.
한데 뜻밖에도 어제 기린성의 어느 결단기 중기 수준의 호위병이 그녀를 찾아와 금제를 풀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곳을 일러주었다. 하지만 금제를 풀기 위해서는 대가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녀는 결단기 중기 수련자를 부려 자신에게 그런 말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수준도 결코 낮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정말로 금제를 풀어줄 수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녀가 보기에 한제의 수준은 불가사의한 정도였다.
그녀가 머뭇거리고 있으려니 오전에 예의 그 수련자가 다시 찾아와서는 옥패 하나를 건넸다. 옥패 안에는 그 금제가 발동되기 전후의 증상에 대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고 운비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그 순간 운비는 마음을 굳혔다. 그녀는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을 찾아가 보기로 마음먹고 지금 이곳에 오게 된 것이다.
이때, 운비는 고개를 들어 산꼭대기의 작은 정자를 바라보았다. 그 작은 정자 안에 앉아 있는 인영이 보였다. 그러나 안개에 휩싸여 있어 명확하게 그 생김새를 살필 수는 없었다.
“정말 제 금제를 풀어주실 수 있습니까?”
운비가 아랫입술을 깨문 채 조심스레 물었다.
“올라와라!”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사방의 검은 안개가 요동을 치더니 한 마리의 검고 긴 용으로 변해 포효했다. 그 용의 머리는 산꼭대기의 정자에 꼬리는 운비의 발치에 놓여 길을 이루었다.
운비는 불안한 마음을 억누른 채 안개로 이루어진 용의 길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산꼭대기의 작은 정자에 이른 순간, 그녀는 정자 안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보게 됐다. 당당한 용모에 흘러넘치는 듯한 기개를 풍기고 있는 그 중년 남자는 운비를 바라보며 두 눈을 번득였다.
‘역시 상고 시대의 금제였군!’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난 네 금제를 풀어줄 수 있다. 허나 이 금제를 걸어놓은 자가 누구인지는 밝혀야 할 것이다.”
운비는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것을 밝힐 수는 없습니다. 대신 금제를 풀어 주시는 데에 대한 대가로 단로 하나를 드리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중년의 남자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말하지 않는다면 금제를 풀어줄 수 없다. 그리고 단언컨대, 그 금제를 풀 수 있는 사람은 수마해를 통틀어도 얼마 없을 것이다. 잘 생각해 보아라.”
운비는 그늘진 얼굴로 한참동안 고민하다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좋습니다. 허면 먼저 금제부터 풀어주십시오. 금제를 푸는 데 성공한다면 모든 것을 고하겠습니다.”
“하 하 하”
중년의 남자는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손을 휘둘렀다. 순간 그의 손에 보라색 돌이 하나 나타났다. 이 돌은 원형이었으며 매끄러워 보였다.
그는 그 돌을 꺼낸 뒤 곧장 몇 갈래의 영력을 쏘아냈다. 순간 그 돌에서 일곱 빛깔의 빛이 반짝이더니 뒤이어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색 빛 한 줄기가 운비의 미간으로 향했다.
운비의 온몸이 경련을 일으켰다. 그녀는 그 붉은 빛줄기가 체내로 들어와 수많은 가닥으로 나누어지더니 체내를 휘젓고 돌아다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중년 남자의 표정은 진중했다. 그는 운비를 자세히 관찰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운비의 미간에서 천천히 옅은 부호가 하나 나타났다. 그 부호에서는 오래된 기운이 충만하게 느껴졌다. 중년 남자는 그 부호가 나타난 순간 광기 어린 희색을 띄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분명한 상고 시대의 금제이다. 정말 이런 금제를 걸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그는 눈을 번득이며 손가락 끝을 물어 피를 내더니 그것을 보라색 돌에 묻혔다. 순간 그 돌에서 빛이 번쩍였고 이번에는 검은 빛기둥과 하얀 빛기둥이 하나씩 나타나 운비의 미간에 나타난 부호를 향해 날아들었다.
한데 바로 그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운비의 머리카락에서 그림자가 하나 타나난 것이다. 마수의 모습을 한 그 그림자는 돌연 운비의 미간을 덮고 입을 크게 벌려 그 빛기둥들을 단숨에 먹어치웠다.
이어 그림자는 작은 마수의 모습을 갖추더니 운비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미친 듯이 떨리던 운비의 두 눈에 핏발이 섰고 그녀의 신식은 육체를 떠나 그 작은 마수에게 흡수됐다.
눈 깜짝할 사이에 운비의 신식이 사라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와 동시에 작은 마수의 몸집이 부풀어 오르더니 순식간에 운비의 시체를 감싸 안았고 그녀가 가지고 있던 저물대와 단로 그리고 옅은 금빛을 반짝이는 금단까지 모두 꺼낸 뒤 먼 곳으로 날아갔다.
마혼을 본 중년 남자의 표정이 굳었다. 대체 무슨 마수인지 분간조차 가지 않았다. 살아 있는 사람의 신식을 흡수하는 기이한 능력도 충격적이었다.
그는 그 마수가 줄곧 이곳에 머물며 숨어 있었던 것으로 추측했다. 어쩌면 주인의 명령에 따라 움직일지도 모른다.
정신을 차린 그는 도망치는 마수를 보며 서늘한 눈을 번득이더니 두 손을 휘둘렀다. 순간 사방의 검은 안개가 용으로 변하며 그 마수를 포위했다. 이어 저물대를 두드려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작은 북을 꺼내 두드렸다.
둥! 두둥, 둥.
북소리와 함께 사방의 검은 안개가 요동치며 검은 갑옷을 입은 병사들로 변했다. 그들은 각각의 법보를 들고 작은 마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안개로 이루어진 용은 앞에서, 병사들은 뒤에서 두 번째 마혼을 포위했다. 각각의 법보에서 쏘아진 빛들이 비처럼 쏟아졌다.
이 마혼은 비록 그 위력이 강하지는 않았지만 그 포악함만큼은 상상을 초월했다. 마혼은 주저 없이 운비의 금단을 꿀꺽 삼켰고 순간 몸이 훅 불어났다. 그 불어난 몸으로 한 바퀴 휙 돈 마혼은 한 마리에서 열 마리로 열 마리에서 백 마리로 늘어났다.
“크악! 크아앙!”
백 마리의 마혼은 일제히 날카로운 소리를 내질렀다. 성난 파도와 같은 음파가 미친 듯이 사방을 공격했다. 뒤이어 그들은 맹렬하게 날갯짓을 하며 한데 모여 회오리바람을 이루더니 한쪽으로 내달렸다.
음파가 길을 열었고 회오리바람이 뒤를 따랐다. 가장 먼저 영향을 받은 것은 안개로 이루어진 용들이었다.
용들은 음파의 공격에 하나하나 무너져 내렸다. 돌진하던 병사들도 걸음을 멈추었다. 이미 붕괴되어 버린 용들은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사라졌다.
휘- 휘이익!
중년 남자는 기이한 표정으로 그 회오리바람을 바라보았다. 흥미로워하는 기색이었다. 그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다시 북을 몇 번 두드렸다.
둥, 둥, 둥, 둥!
연이어 울린 네 번의 북소리에 검은 안개가 격렬하게 요동치며 기괴한 형상의 마수들로 변해 사방을 에워쌌다. 악독함이 하늘을 찌를 듯 진동하는 이 마수들은 피에 굶주린 눈을 번득이며 회오리바람을 주시했다.
“네 주인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나 구사평의 눈에 든 마수는 절대 도망치지 못한다. 난 네가 내 말을 알아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잘 따른다면 공격은 않겠다. 허나 숨을 세 번 내쉬는 동안에도 나를 따르지 않는다면 공격을 시작할 것이다.”
두 번째 마혼은 쉭 소리를 냈다. 순간 회오리바람을 이루고 있는 모든 작은 마수들이 신식을 한데 모아 번개를 만들어냈다. 그 번개는 파죽지세로 그 앞을 가로막은 모든 검은 용들을 소멸시키고는 눈 깜짝할 사이에 구사평에게 이르렀다.
구사평은 몸을 뒤로 물림과 동시에 혀끝을 깨물어 피를 뿜어냈다. 그 피에 닿은 번개는 파지직 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서 멈췄다. 동시에 구사평은 저물대에서 검은색 나무토막 하나를 꺼내더니 잔혹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받아라!”
순간 마혼의 공격은 그 검은색 나무토막에 의해 흩어졌다. 하지만 번개가 나무토막에 닿은 그 순간, 두 번째 마혼은 다시 쉭 소리를 냈다. 번개 형태를 이룬 신식의 공격은 1백 갈래로 나뉘어 마치 하천이 바다로 흘러들 듯 빠르게 되돌아왔다.
구사평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방금 그가 조금이라도 늦게 반응했다면 위험했을 것이다. 그의 눈에 짙은 광기가 드리워져 있었다. 입술을 핥은 그가 거친 목소리로 외쳤다.
“신식 공격까지 할 줄 알다니, 신비로운 마수로구나! 주인이 있더라도 이 구사평이 꼭 사로잡아야겠다.”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시리도록 냉랭하고 무정한 목소리가 하늘 끄트머리에서 느릿하게 흘러나왔다.
“그래?”
그 목소리가 흘러나온 순간,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고개를 든 중년 남자는 하늘 끄트머리에서 거대한 회오리바람 하나를 볼 수 있었다. 그 회오리바람은 매우 빠른 속도로 단숨에 검은 안개를 뚫고 돌진해왔다.
구사평
검은 안개 밖을 에워싸고 있던 마수들이 막 저항을 하려던 그때, 갑자기 회오리바람에서 날카로운 음파가 쏘아졌고 폭풍이 한 차례 몰아쳤다. 이에 그 검은 안개로 이루어진 마수들은 분분히 흩어졌다.
그와 동시에 두 번째 마혼은 재빨리 그 회오리바람과 합쳐졌다. 마혼은 상당히 분개하고 있었다. 그가 회오리바람을 조종하여 주위에 있는 검은 안개들 쪽으로 방향을 틀자 검은 안개들은 회오리바람의 기세에 갈래갈래 찢겨나갔다.
하지만 구사평의 시선은 하늘 끄트머리에 꽂혀 있었다. 그곳에서는 검은 옷을 입은 백발의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걸음은 굉장히 느려보였지만 사실 매우 빨라, 눈 몇 번 깜빡하는 사이에 산꼭대기에 이르러 있었다.
구사평의 얼굴에 긴장감이 어렸다. 그는 북을 두드려 사방의 검은 안개를 모아서는 여덟 개의 검은 안개 공을 만들었다. 그 안개 공들은 구사평 주위에 둥실 떠올랐다.
구사평은 눈을 번득이며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