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451
한제를 향해 곧장 내리 떨어지던 번개가 경련을 일으키더니 1천 척 앞에서 우뚝 멈췄다. 그리고 다음 순간, 엄청난 두려움에 떠는 듯 또는 용서받을 수 없는 불충을 저지른 듯 곧장 하늘로 되돌아갔다.
“뇌겁(雷劫)을 내릴 수 있는 존재는 오직 나뿐이다!”
한제는 버럭 외치며 하늘을 향해 손을 뻗더니 힘껏 움켜쥐었다. 그러자 구름은 요란하게 진동했고 그 안의 번개는 견디지 못하고 줄기줄기 빠져나와 한제에게로 끌려왔다.
잠시 후 한제의 손앞에는 수없이 많은 번개가 응집해 거대한 번개공을 이루었다. 그리고 이 공은 한제가 가볍게 손을 휘두르자 굉음과 함께 구름을 향해 돌진하더니 이내 충돌했다.
콰르릉!
우렁찬 충돌음이 울려 퍼졌고 구름은 산산조각이 났다. 하늘을 채운 어둠 역시 눈 깜짝할 사이 사라졌다.
한제는 세 차례의 현겁을 차례대로 순식간에 무너뜨린 것이다.
첫 세 번의 현겁, 즉 외겁은 상대적으로 위력이 약해 대부분 통과할 수 있지만 연달아 통과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하물며 이렇게 간단하게, 그야말로 순식간에 통과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녹마님이 틀림없다!”
“이미 한 차례 통과하셨으니 이번에는 쉽게 처리하고 계신 거야!”
녹마주 수련자들은 이제 확신할 수 있었고 곧 강림할 녹마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한편, 한제는 여점히 덤덤하고 여유롭기까지 한 모습으로 마치 관망하듯 네 번째 현겁의 도래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네 번째 현겁은 뭘까?”
한제는 궁금한 듯 중얼거리며 술병을 살짝 기울였다.
그때, 잠잠했던 하늘에 돌연 수많은 파문이 일어났다. 하늘이 바다라도 된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그 파문 속에서 한 줄기 위압감이 발산되더니 사방을 뒤덮고 대지를 진동시켰다. 동시에 길이가 1만 척에 달하는 거대한 북이 하늘에서 나타나 내려오기 시작했다.
어떤 가죽으로 만들어졌을지 알 수 없는 북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저 서늘한 기운만 사방으로 발산하고 있을 뿐이었다.
한제는 북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재미있군.”
그 순간, 보이지 않는 힘이 때리기라도 한 듯 거대한 북이 먹먹하고도 우렁찬 소리를 냈다.
둥-!
북소리는 셀 수 없이 많은 메아리를 퍼뜨렸다. 마치 수많은 사람이 각자 북을 두드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북소리가 울려 퍼진 순간, 한제의 모든 피와 살, 뼈, 심지어 경맥까지 바르르 진동했다. 한제는 온 세상을 울리는 듯한 이 소리가 북이 아니라 자신의 체내에서 확산되고 있음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체내에서는 근질거리는 느낌이 온몸으로 퍼져 나갔고 한제는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그의 두 눈이 더욱 짙게 번득였다.
그때, 거대한 북의 가장자리에서 대량의 안개가 피어올라 응집하기 시작하더니 한 자루 거대한 검을 형성했다. 안개로 이루어진 검은 허상처럼 흐릿하고 모호했지만. 무시무시한 살기를 발산했다.
검은 날카로운 궤적을 그리며 그대로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 검이 노리고 있는 것은 한제의 육신이나 원신, 혼이 아니라 육신과 원신의 관계였다. 만약 그 둘이 완전히 분리된다면 체내 경맥 역시 영향을 받아 한제의 원신과 육신은 다시는 섞이지 못하게 될 터였다. 즉, 영혼을 품은 원신을 육신에서 몰아내려 하는 것이다.
이는 내겁 중 첫 번째인 참리겁(斬離劫)이었다. 거대한 북은 세 내겁의 관건이었고 북소리는 내겁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인 셈이었다.
기이한 이 겁 앞에 무너진 수련자는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저항에 실패하면 원신이 떠난 순간 육신은 북소리에 무너져 내리게 되고 원신과 그 안에 담긴 혼백 역시 연기처럼 흩어져 사라지게 된다.
안개로 이루어진 검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지만 짙은 살기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검 주위를 에워쌌다. 멀리서 보면 뭉게뭉게 피어오른 검은 연기 같은 형태의 검이 한제를 향해 곧장 달려들었다.
이 겁을 통과한 수련자는 대부분 오랜 세월 준비를 한 상태였으나, 한제는 이를 알지 못했다.
이때 북소리는 한제 체내의 피와 살, 뼈와 경맥을 진동시키고 그의 움직임을 제한했지만 심장박동까지 어쩌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 순간, 한제의 심장은 쿵쾅, 쿵쾅 하고 울리며 순식간에 가속화하더니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둥-! 둥-! 콰쾅!
한제의 심장박동이 북소리와 충돌한 순간, 한제는 움직임을 회복했다. 그 순간 안개로 이루어진 검이 살기를 번득이며 달려들었지만 한제는 술병을 놓더니 곧장 음도를 소환했다. 음도가 손바닥을 뚫고 나오며 극심한 고통이 엄습했지만 한제는 여전히 여유로웠다.
세 개의 혼겁
음도는 음산한 지옥에서 온 것처럼 짙은 한기를 발산했다.
“와라! 하하하!”
한제는 호탕하게 웃으며 여전히 자리에 앉은 채 음도를 휘둘렀다.
캉!
참리겁의 검과 음도가 충돌하면서 우렁찬 소리가 울려 퍼졌고 안개로 이루어진 검은 격렬하게 진동하면서 수많은 균열로 뒤덮이더니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그 위에 어려 있던 살기는 물러나기 싫다는 듯 튀어나와 달려들었지만 한제는 냉소하며 훨씬 더 짙고 강한 살기를 발산했다. 그러자 검에서 튀어나온 살기는 지능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다급하게 뒤로 물러나다가 흩어져 사라졌다.
한제가 세 개의 내겁 중 첫 번째인 참리겁을 통과한 순간, 거대한 북이 곧장 울렸다.
둥!
이전보다 훨씬 강력해진 소리에 층층이 일어난 음파가 수천 리 너머까지 울려 퍼졌다. 엄청난 재앙을 알리는 신호 같았다.
한제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더니 좀 전에 내려놓았던 술병을 들어 입가로 기울이면서 하늘을 향해 돌진했다.
“저 북을 파괴해야겠군.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자!”
몸을 훌쩍 날린 한제는 마갈 사당 위, 층층의 파문으로 뒤덮인 거대한 북을 향해 질주했다. 오른손을 뚫고 나온 음도는 모든 것을 얼려버릴 듯 서늘한 한기를 내뿜었다.
둥-!
북소리가 울려 퍼지며 한제의 뼈와 경맥을 진동하게 한 순간, 거대한 북 주위의 파문에서 수많은 허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허상들은 모두 붉은 갑옷을 착용하고 있었다. 붉은 선병(仙兵)처럼 보이는 수천 명의 병사는 짙은 살기를 뿜어내며 한제에게로 달려들었다.
두 번째 내겁인 혈영겁(血影劫)이었다.
붉은 허상들은 모두 공현기 이상의 수준으로 불사불멸의 존재였다. 파괴할 수는 있지만 그 즉시 파문에서 다시 태어나는데 더 큰 문제는 그때마다 전보다 더 강해진다는 것이다. 때문에 시간을 끌수록 힘들어진다.
수많은 허상이 나타난 순간 한제는 허공에 떠오르더니 두 눈 가득 짙은 금색 빛을 뿜어냈다. 그러자 하늘의 위엄 같은 묵직한 위압감이 그의 두 눈으로부터 확산됐다.
금빛과 함께 발산된 묵직한 위압감은 제사장이 선극검 조각을 융합시켜 얻어낸 결과로 마갈의 혼마저 이 눈빛에 제압당한 바 있었다. 그러니 내겁으로 나타난 붉은 인영들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한제의 눈빛에 휩쓸린 붉은 허상들은 하늘의 위엄이 강림한 듯한 느낌에 우뚝 멈추더니 겁에 질린 표정으로 바르르 떨었다. 이어서 이 강력한 위엄은 그들의 몸을 파고들었다.
“꺼져라!”
한제의 서늘한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붉은 허상들의 입장에서는 하늘의 분노처럼 느껴졌다. 지능보다는 본능이 우세했던 그들은 분분히 경련하며 다급히 물러나 하나하나의 파문과 융합해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지금껏 한제처럼 아무런 공격 없이 그저 눈빛과 목소리만으로 혈영겁을 통과한 사람은 없었다.
붉은 허상들이 하나둘 흩어져 사라질 찰나, 한제는 거대한 북을 향해 긴 빛을 그리며 몸을 날렸다. 그러자 북은 바르르 진동하면서 세 번째로 울리려 했다.
허나 그전에 벌써 북 앞에 도착한 한제는 음도를 힘껏 휘둘렀다. 그의 뒤에 서 있던 오행 진신에 중첩된 세 진신 역시 함께 손을 쳐들어 음도를 소환하더니 한제를 따라 칼을 휘둘렀다.
음도와 충돌한 순간, 북에서는 세 번째 북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그 소리는 음도와 충돌하면서 완전히 제압되었다. 그리고 뒤를 이어 한제의 오행 진신이 휘두른 검기들 역시 북에 떨어졌다.
멀리서 보면 네 갈래의 검기가 파멸적인 기세를 품고 허상의 북에 떨어진 듯한 광경이었다.
콰쾅! 쾅!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수많은 균열이 일어난 북은 이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콰르릉!
산산조각 난 북의 파편들이 비산하며 광풍을 일으켰다. 세 번째 내겁은 모습을 제대로 드러내기도 전에 한제의 칼에 뿌리째 무너져 내린 것이다.
한데 연달아 여섯 차례의 현겁을 통과한 한제의 표정은 무거웠다. 더 이상 여유를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내겁은 분명 외겁보다 훨씬 강력했다. 그렇기에 그가 강한 위압감이 어린 눈빛과 음도를 발휘한 것이다. 이대로라면 남은 세 개의 현겁은 더욱 강력할 것이 분명했다.
서서히 하강해 다시 전갈의 꼬리에 선 한제는 음도를 천천히 거두고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며 마지막 세 현겁을 기다렸다.
제사장은 한제에게 위압감이 어린 눈빛과 음도 강력한 탄성을 자랑하는 몸만이 아니라 선조의 머리카락으로 이루어진 경맥도 주었다. 이 경맥 덕에 한제는 선인의 힘과 도고의 힘을 어느 정도 융합할 수 있었다. 선조의 머리카락에 담긴 짙은 선기가 선족의 혈맥을 대체한 덕이었다.
비록 두 힘을 완벽하게 융합할 수는 없었지만 어느 정도는 성공했기에 호흡을 가다듬는 한제 체내의 경맥에서는 순수한 선력이 맴돌았다. 그리고 이 선력 덕분에 한제는 동부계에서 얻은, 무적에 가까운 법보를 사용할 수 있는 상태였다. 공겁기 초기의 수련자라도 충분히 위협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법보를…
한제는 말없이 하늘을 올라다보았다.
하늘은 어두워지고 구름은 흩어져 사라졌다. 그리고 그때, 어스름한 빛이 하늘에 나타나더니 기이한 느낌을 풍기며 거대한 문양을 형성했다.
귀신의 얼굴 같은 문양에서는 규칙과 같은 기운이 발산되었다. 마치 세상을 운행하는 힘의 일부라도 되는 것만 같은 기운이었다.
한제는 경계하는 눈으로 문양을 살폈다. 문양이 나타난 순간 어렴풋한 위기감을 느꼈으나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예상할 수 없었다.
“이게 일곱 번째 현겁인가?”
한제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가 차게 코웃음을 치며 그 문양을 흩어버리려 했다. 한데 그 순간, 그의 표정이 급변했다. 체내의 원신이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원래 가득 찬 상태로 체내에 가부좌를 틀고 있던 그의 원신이 허약해지고 줄어들 조짐을 보인 것이다. 그 추세로 볼 때 일곱을 셀 무렵이면 원신은 완전히 흩어져 사라질 것 같았다.
이 갑작스러운 변화에 한제는 심신이 진동하는 것을 느낌과 동시에 처음으로 현겁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다.
지금 상태에서 원신이 흩어지지 않게 하려면 대량의 힘을 흡수해 보충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나! 서둘러야 한다!’
눈을 번득인 한제는 입을 쩍 벌려 사방에서 힘을 빨아들이려 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그럴 수가 없었다.
사실 지금 반경 수천 리는 현겁의 위압감에 뒤덮여 그 누구의 출입도 불가한 상태였다. 세상의 힘 역시 마찬가지였다.
“둘! 굉장하군!”
한제의 원신은 더욱 심하게 쪼그라들었다.
그는 고개를 번쩍 쳐들고는 몸을 훌쩍 날려 어스름한 빛으로 이루어진 하늘의 문양을 향해 달려들면서 주먹을 휘둘렀다. 동시에 그의 뒤에 나타난 도고의 허상 역시 거대한 주먹을 날렸다. 그러나 도고의 주먹은 마치 물을 가르듯 그저 문양을 스쳐갔을 뿐 어떤 타격도 입히지 못했다.
‘셋!’
한제의 원신은 다시 쪼그라들었다. 본래의 거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한제의 표정은 곧장 어두워졌다.
혼겁의 첫 번째이자 일곱 번째 현겁인 이 겁은 십식고신겁(十息枯神劫)이다. 한 사람의 흔적마저 지워버리는 기이하고도 무시무시한 겁으로 이 겁에 원신이 말라붙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수련자는 셀 수도 없을 정도였다.
이 겁의 관건이기도 한 하늘의 문양은 제거할 수도 없었고 수련자가 죽은 후에야 사라졌다.
그 문양을 바라보며 한제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내가 현겁을 너무 우습게 본 모양이군. 내 원신을 말라붙게 만들다니, 재미있어. 원신을 보충할 힘을 흡수할 수도 없다 이거지? 그렇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