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459
쏴아아!
어마어마한 흡입력이 느껴진 순간, 도마종 종주는 절망에 사로잡혀 비명을 내질렀다.
“선조님, 사자님! 살려주십시오!”
칙령을 내리기 위해 온 황족 사자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하더니 그는 이를 악문 채 한제를 향해 다시 몸을 날렸다.
“이한제, 네가 그를 죽인다면 나는 선황의 칙령을 선포할 수 없다. 이는 선황의 위엄에 대한 모욕이다. 설마 선족을 배반할 셈은 아니겠지?”
난생처음 선황의 칙령을 선포하는 임무를 맡은 그는 첫 임무에 이런 상황을 마주하게 될지 상상도 못한 상태였다. 황족 사자로서 중주에서 수많은 강자를 만나보았지만 한제처럼 방만한 자도 칙령을 무시하는 자도 본 적이 없었다.
“그랬다가는 너 또한 반드시 죽게 된다!”
격분한 황족 사자는 거칠게 외쳤다. 그의 온몸에서 번득이던 금빛이 거대한 금색을 형성하더니 기이한 소리를 내며 한제를 향해 돌진했다.
그 무렵, 도마종 종주의 원신은 한제와 1천 척도 떨어지지 않은 곳까지 끌려온 상태였다. 제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도망칠 수 없었기에 그는 절망에 휩싸인 채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그때 황족 사자의 공격이 한제에게 쏟아지자 그 틈에 도마종 종주는 더욱 격하게 저항하기 시작했다.
쉭!
순식간에 달려든 금색 문양이 한제를 감싸며 그의 몸에 떨어지려 했다. 허나 한제는 싸늘한 얼굴로 몸을 홱 돌렸고 두 눈 가득 짙은 금빛을 뿜어냈다. 선극검의 조각이 담긴 그의 눈에서 발산된 금빛에는 어마어마한 힘이 깃들어 있었다.
“물러나라! 또다시 나를 방해한다면 네 정체와 신분이 무엇이든 너 역시 죽이겠다!”
달려들던 금빛 문양은 한제의 눈빛을 감당할 수 없다는 듯 허공에 우뚝 멈춰 섰다. 마치 보이지 않는 힘이 그 앞을 가로막은 것만 같았다.
그 순간, 황족 사자는 한제의 묵직한 위압감이 담긴 눈빛에 심신이 콰쾅 하고 울렸고 표정이 급변했다. 그 눈빛과 위압감은 오직 선황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비록 한제가 선황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이 순간 황족 사자는 마치 선황을 마주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에 그는 물러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편, 물러나는 황족 사자를 본 도마종 종주는 나락에 빠진 심정으로 채 한제의 강력한 흡입력에 끌려갔다. 그리고 한제와의 거리는 순식간에 3백 척으로 줄어들었다.
한데 막 한제의 입으로 빨려 들어가려던 순간, 도마종 종주의 눈빛이 광기로 뒤덮였다.
“나를 죽여야겠다면 너 역시 함께 끌고갈 것이다! 사자님, 칙령을 읊어주십시오. 이 도마종 종주는 죽기 직전에라도 선황의 뜻을 듣겠습니다!”
그는 자폭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에 황족 사자가 선황의 칙령을 전하게 하려 했다. 자신의 죽음을 대가로 한제의 미래를 엉망으로 만들려는 것이었다.
하늘에 떠 있던 황족 사자는 칙령을 전달받을 사람이 요구해오자 반사적으로 두루마리를 펼쳐 그 안에 담긴 내용을 읊었다.
“녹마주 도마종 종주는 감히 황족의 위엄을 해쳤다. 녹마를 모시는 제사장 가문과 더불어 황족을 모해할 마음을 품었으니 만약 그가 살아 있다면 도마종을 말살하고 그의 목숨 또한 거두어라.
만약 그가 이미 죽었다면 그리고 그를 죽인 자가 이한제라면 이한제는 칙령에 따라 중주로 오라. 난 그대가 도비에게 은혜를 베푼 사실을 잊지 않았다!”
칙령을 읽어나가던 황족 사자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그로서는 칙령의 내용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
도마종 종주가 받은 충격은 말할 것도 없었다. 칙령을 들은 그는 한제와 함께 죽겠다던 마지막 희망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고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결국 어스름한 빛이 되어 한제에게 삼켜지고 말았다.
“안 돼!”
천존이 오기를 기다리다
도마종 종주를 삼킨 한제는 눈을 감았다. 체내에서 펑, 펑 하는 우렁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상대의 원신을 억눌러 의식을 지운 후 속신결의 신맥에 녹여 넣었다. 시간만 있으면 신맥의 수를 조금씩 늘려갈 수 있을 것이다.
잠시 후, 한제는 감았던 눈을 번쩍 뜨더니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반쯤 와해되고 남은 호수와 섬이 폭풍에 휘말린 듯 폐허로 변해버렸다.
도마종은 완전히 소멸한 것이다.
황족 사자는 난감한 표정으로 잠시 지켜보다가 쓴웃음을 지으며 포권을 했다.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는 말게. 선황의 칙령이 뭔지는 나도 몰랐네.”
덤덤한 표정의 한제는 황족 사자를 힐긋 보았다. 사실 그 자신도 칙령의 내용이 의아한 터였다. 특히 자신이 연도비에게 은혜를 베풀었다는 마지막 구절이 이해하기 힘들었다.
‘광인의 본명이 연도비였지. 선강 대륙에서 처음 저물공간을 열었을 때 그와 은시는 파괴된 공간 속 허공으로 사라졌는데⋯⋯.
그러고 보면 광인은 스스로를 종종 ‘이 몸’ 또는 ‘이 왕’이라 칭했고 현라 대천존은 그자의 형이 선황이라고 했다.
‘설마 선황이 광인을 찾은 건가? 정신을 차리고 깨어난 광인이 선황에게 그간의 일을 알렸다면…?’
한편, 황족 사자는 속으로 후회하며 죽은 도마종 종주를 향해 욕을 퍼부었다.
‘빌어먹을 자식! 죽으려면 곱게 죽을 것이지 나까지 끌어들여? 이럴 줄 알았으면 칙령부터 읊는 건데⋯⋯. 선황께서 공손히 대하려는 저자의 정체는 대체 뭘까? 30년 전 깨어난 연도비 왕에 대한 은혜라면⋯⋯?’
순간 그는 번쩍 떠오른 생각에 눈동자가 바짝 졸아들더니 고개를 휘휘 저었다.
‘세상에는 모르고 넘어가야 하는 일도 있는 법! 이 일은 잊자. 어휴, 그나저나 이번 일로 저자의 눈 밖에 난 건 아닐까?’
불안해진 그는 얼른 공손한 미소를 지으며 한제에게 재차 포권을 했다.
“이 도우, 방금 일은 정말 미안하게 됐네. 상황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한 내가 어리석었어.”
황족 사자는 한제의 안색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그러나 한제는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생각에 잠겨 있었는데 그 모습에 황족 사자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망했다 분명 내가 두 차례나 자신을 공격한 것에 대해 어떻게 처벌할지 생각하고 있을 거야! 만약 선황께 그 일을 고한다면 나는⋯⋯?’
황족 사자는 식은땀이 줄줄 흘렀고 등골이 서늘해졌다.
“저… 도우. 내 중주의 특산물을 가지고 있다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작은 성의로 생각하고 받아주게. 하하!”
아까운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황족 사자는 얼른 옥패 하나를 꺼내 칙령 두루마리와 함께 한제에게 넘겼다.
생각에 잠겨 있던 한제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황족 사자를 한 번 훑어보았다. 그는 두루마리는 살피지도 않고 옥패로 시선을 돌렸다.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그는 심신이 떨려왔다. 보통은 옥패에 어떤 문구나 주술 등을 담는 것과 달리 이 옥패에는 일종의 저물공간 같은 공간이 있었다. 한데 그 공간에는 짙은 선기를 풍기는 원석이 대량으로 담겨 있었다.
옥패를 거둔 한제는 서늘한 눈으로 황족 사자를 바라보았을 뿐 여전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황족 사자는 이를 악물며 조용히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오른손을 휘둘러 옥병을 하나 소환했다.
“아, 내가 깜, 깜빡했군. 이, 이것도 중주의 특산물이라네. 그리 중한 것은 아니니 괘념치 말고 받아주시게!”
말을 마친 그는 한제에게 공손히 옥병을 건넸다.
한제는 말없이 신식으로 옥병을 살폈다.
옥병에는 상처 치료에 쓰이는 대량의 단약이 담겨 있었다. 대부분은 매우 진귀해 보통의 수련자로서는 손에 넣기 힘들 물건이었다. 황족의 사자이기에 가질 수 있었을 터였다.
그는 선물을 두 개나 바치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계속해서 한제의 안색을 살폈다. 한데 상대는 표정이 약간 누그러지긴 했으나 여전히 서늘한 눈빛으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저, 저런 탐욕스런 놈!’
황족 사자는 분개하며 속으로 중얼거렸으나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어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살짝 손을 떤 그는 또 다른 옥패를 꺼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중주에 집을 한 채 가지고 있다네.”
이번에도 그는 속절없이 한제에게 옥패를 넘겨야 했다.
옥패를 살핀 한제는 피식 미소를 지었고 그제야 황족 사자는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렇게 불안해 할 것 없네. 자네는 임무를 따른 것뿐이니까. 어쨌든 자네 말대로라면 이 선물들은 그리 중한 것들은 아닐 테니 편하게 받겠네.”
“무, 물론일세. 그리 중한 것은… 아, 아니라네.”
황족 사자는 가슴이 턱 막히는 듯한 느낌에 애써 쓴웃음을 지었다.
“녹마주에 오기 전 천우주에도 들렀겠지? 그곳의 상황은 어떠한가?”
한제가 물었다.
“이번에 내려진 칙령은 총 세 개였다네. 천우주의 대혼문과 귀일종에 각각 하나씩 전달됐지. 전쟁은 끝났고 아마 다들 각자의 종파로 돌아가고 있을 걸세.”
황족 사자는 숨기지 않고 사실대로 고했다.
“연도비도 황성에 있는 건가?”
옥패를 거둔 한제는 화제를 바꾸었다.
“왕께서는 깨어나신 후로 줄곧 황성에 계시네. 외출하고 싶어 하시지만 선황께서 윤허하지 않으신다더군.”
이는 소문으로 떠도는 이야기였다.
“그래, 내가 예전에 연도비를 살려주고 도와준 적이 있지.”
한제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황족 사자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칙령의 내용을 읊으면서 이미 알게 된 사실을 한제의 입을 통해 직접 들으니 더욱 확신이 갔다.
“연도비의 성격은 여전한가? 그를 본 지가 꽤 오래된 터라…”
“왕께서는⋯⋯.”
황족 사자는 잠시 망설였으나 이내 말을 이었다.
“내 신분으로는 왕을 뵐 수 없지만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전과는 성격이 약간 달라지셨다는군. 한데 또 가끔은 이전의 성격을 보이시기도 한다던가.”
아무래도 왕에 대한 이야기인지라 황족 사자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지만 한제는 그저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황족 사자는 한제에게 포권을 하며 인사를 건넸다.
“이 도우, 칙령 두루마리는 전송 용도로도 쓸 수도 있다네. 여기서 중주까지는 매우 멀어 전송진을 여덟 번은 사용해야 닿을 수 있지. 난 선황께 보고를 올려야 하니 먼저 가보겠네. 황성에 도착할 때쯤 맞으러 가도록 하지.”
말을 마친 황족 사자는 미소를 지으며 뒤로 물러나다가 빠르게 자리를 떴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지체했다가 혹여나 또 한제의 심기를 거슬러 ‘별로 중하지 않은’ 물건을 넘겨줘야 하는 상황이 생길까봐 두려웠다.
황족 사자가 떠나간 후 홀로 남은 한제의 표정은 다시 어두워졌다.
그는 곧장 폐허가 된 도마종을 떠나지 않고 가부좌를 틀었다.
“연도비⋯⋯ 그의 탐욕과 부정적인 모습은 모두 당시 천도에서 갈라져 나온 천운자에게로 옮겨졌다. 그러니 그전과 성격이 크게 달라졌을 수밖에… 한데 전과 어떻게 달라졌을지는 모르겠군.”
잠시 고민하던 한제는 고개를 들어 어두워지기 시작한 하늘 끄트머리를 올려다보았다.
“한데 그의 형은 왜 그가 깨어난 지 3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나를 부른 것일까? 정말로 내게 사례를 하고 싶었다면 내가 마갈 사당에 끌려온 30년 전에 불렀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아무튼 흥미롭군.”
그는 어두운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한 줄기 검은 바람이 일었다.
“끄아악!”
이어서 비참한 비명이 울려 퍼지다가 곧 잠잠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