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460
한제는 냉혹한 사람이다. 도마종을 완전히 소멸시키기로 작정한 그가 천우주에 원정을 나갔다가 돌아오고 있는 도마종 수련자라고 해서 내버려둘 리가 없었다.
아마도 대가를 아끼지 않고 전송진을 이용할 수 있는, 신분이 높은 자들이 먼저 돌아올 터였다. 한제는 그들뿐만 아니라 또 한 사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도마종의 선조도 오고 있을 터. 천존에 이른 그를 죽여야만 제대로 된 복수라 할 수 있지. 게다가 그자 또한 내게 복수하려고 쫓아올 테니까. 천존이라⋯⋯. 혼개를 착용한 상태에서 맞붙으면 어찌될지 궁금하군.”
한제는 중얼거렸다.
“내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첫째, 동림종 동림지로 가서 본원들을 진신으로 응집시킬 수 있는지 알아보는 것. 둘째, 중주로 가서 연도비가 정말로 나를 기억하고 있는지와 선황의 의도를 확인하는 것. 현라 스승님의 말씀에 따르면 선족 중에는 다섯 명의 대천존이 있다. 선황 연도진 또한 그중 하나지. 그러니 중주에 가는 것도 결코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터.”
생각을 정리한 한제는 조용히 눈을 감고 좌선을 시작했다.
★ ★ ★
녹마주 도마종으로부터 다섯 개 주 너머의 어딘가에 한 줄기 빛이 날아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덤덤한 표정과 달리 두 눈에는 분노의 화염이 이글거리는 붉은 머리카락의 노인이 있었다. 그는 엄청난 대가를 아낌없이 쏟아부으며 연달아 전송진을 관통해 질주했다.
도일 대천존 휘하의, 천존에 이른 도마종 선조였다.
★ ★ ★
“나는 연도비가 피를 주었던 것에 대한 보답으로 그의 기억을 되찾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지. 그 맹세 때문에라도 선족 황성에 가봐야겠군.”
한제의 눈에 결연한 빛이 번득였다.
그는 원한과 은혜 모두 그냥 넘어가지 않는 사람이었다. 당시 광인은 그에게 은혜를 베풀었다. 그렇기에 선족 황성으로 가서 그가 모든 기억을 되찾은 것인지 확인해보기로 한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에게 진 빚은 갚은 셈이 될 테니까.
‘그의 성격이 변했어도 그건 상관없어. 만약 마음이 바뀌어 나를 적대시하고 있다면 이 또한 직접 확인해야겠지!’
생각에 잠겨 있던 한제의 눈빛은 다소 슬퍼 보였다. 다시 만날 광인이 이전처럼 허세 가득한 잘난 척을 해댈지 아닐지도 짐작할 수 없었다.
“네놈에게 이 몸의 대단함을 알려주마!”
“이, 이⋯⋯. 네놈을 찢어 죽여 버리겠다! 찢어 죽여 버릴 것이야!”
“비가 오는구나. 후우, 소홍아. 와서 어깨를 좀 주물러 보거라.”
“형님께 오늘은 피곤하여 수련할 수 없다고 말씀드려라. 나가 놀아야겠다. 나를 찾지는 말라고 해! 실컷 놀고 나면 알아서 돌아올 것이다. 만약 이전처럼 나를 찾아 잡아가려 든다면 그 즉시 연을 끊겠다고 전해!”
귓가에 광인의 목소리가 맴도는 듯했다.
어두운 밤하늘 아래, 폐허가 된 도마종에 가부좌를 튼 한제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주작성에서 엄청난 위기를 마주한 순간 광인이 자신을 안고 보호해줬던 기억이 떠올랐다. 또한 세 번째 화범을 경험한 몽도 속에서 광인과 함께 보낸 세월도 떠올랐다.
“많이 변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는데⋯⋯.”
한제의 눈빛은 점점 깊은 슬픔으로 물들었다. 그에게는 벗이 많지 않았다. 그리고 광인이 그중 하나였다.
그는 광인에게 별로 해준 것도 없이 너무도 많은 것을 받았다.
“선족 황성은 분명 위험할 테니 가기 전에 충분한 준비를 해둬야겠군. 다섯 명의 선족 대천존 중 하나라⋯⋯.”
한제는 대혼문 선조에게서 받은 거북이 등껍질을 소환했다. 그 안에는 지도만이 아니라 대천존들에 대한 정보도 담겨 있었다. 또한 한제는 동부계에 있던 당시 현라로부터 대천존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중주 선황, 선조의 팔극도(八極道)를 전승받은 팔극 대천존. 동주 자양종, 9종 13문 중 최강의 종파에 속한 쌍자 대천존. 남주 도일종의 도일 대천존. 북주 건곤도(乾坤道)의 무봉 대천존. 중주, 선황 외의 또 다른 대천존인 구제 대천존.”
이들이 바로 선족 구역 72개 주 다섯 개의 태양, 대천존들이었다.
지금 그의 수준은 대천존조차 자신의 휘하에 두고 싶을 정도로 강력해져 있었다.
게다가 그 또한 대천존 중 하나를 배후에 둔다면 선족 구역 황성에 간다 해도 위기에 처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대천존끼리도 합당한 이유와 구실 없이 다른 대천존 휘하의 천존을 죽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천존은 그만큼 희귀한 존재였다.
실제로 각 대천존 휘하의 천존은 그 수가 백 명이 채 되지 않았다. 선족 전체를 통틀어도 1천 명이 채 안 되는 셈이다. 게다가 그중에서도 약천존은 특히 드물어 선족 전체에 48명뿐이었다.
한데 48명의 약천존 대천존 휘하에 있는 이는 3할에 불과했고 대부분은 선강 대륙 곳곳에 틀어박힌 채 폐관수련을 하기에 바빴다.
선족 대천존
약천존은 대천존으로부터도 존중을 받는다. 그들이 따르기를 원치 않는다면 대천존으로서도 강요할 수는 없다. 약천존은 나운해가 그러했듯 대천존에게 도전을 해오기도 할 정도였다.
또한 어느 약천존이 자신을 따르기로 마음먹었다면 대천존은 반드시 그에 대한 조사를 한 후 자신의 심복으로 삼았고 후하게 대접했다. 약천존은 대천존이 환생하는 동안 자신을 지켜줄 가장 강력한 수호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른 대천존의 손에 자기 휘하의 약천존이 죽임을 당한다면 그 약천존 수련자를 휘하에 두었던 대천존으로는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더욱이 이런 일이 벌어진 후로는 자칫하면 다른 약천존이 더 이상 휘하에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고 이로 인해 환생하는 동안 보호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니 휘하의 약천존이 죽도록 내버려 둘 대천존은 없다.
“스승님이 계시는 고족 구역이었다면 이럴 걱정은 할 필요도 없었겠지.”
한제는 자신이 현라의 유일한 제자라는 사실을 선족 구역에서는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혹여나 그 사실이 알려진다면 그는 선족 대천존들의 공격을 받게 될 것이다. 선족으로서는 고족에 한제와 같은 강자가 탄생하는 것을 절대로 두고 보려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스승님 일에 대해서는 광인도 모르고 있어. 오직 귀일종에서만 알고 있을 뿐이지. 허나 스승님께서는 동부계 안에 있던 귀일종 제자들을 살려두셨다. 귀일종에서 이 사실을 다른 이들에게 알리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겠지. 구체적인 이유는 모르겠지만 난 스승님을 믿는다. 대천존도 나와 스승님의 관계를 알지 못하는 이상 내가 고족의 혈맥과 선인의 혈맥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에는 신경 쓰지 않을 거야!”
선강 대륙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낸 한제는 선강 대륙에서도 선족과 고족 간에도 서로를 사랑한 이들이 있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는 융합된 혈맥을 가진 아이가 탄생했을 테고 그중 일부는 선족 수련자이면서 고족의 육신도 갖고 있을 터였다. 고조 사당의 인정을 받지는 못했더라도 말이다.
“그러니 내가 고족의 육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평범한 수련자들에게는 어떠할지 몰라도 대천존 입장에서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 게야.”
게다가 한제는 굳이 숨길 필요가 없는 일도 세상에는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동부계 출신이라는 것도 다른 이들에게는 몰라도 대천존에게까지 숨길 필요는 없다.
그들은 아마도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오히려 이 점이 대천존들에게는 더 좋은 일인지도 모른다. 이를 통해 한제의 내력을 확신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동부계 출신 수련자가 그곳을 빠져나왔다는 사실이야 분명 충격적이겠지만 한제의 높고 강력한 수준 앞에서 그 정도는 전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한제의 선택이었다.
“대천존의 주의를 끌기 위해서는 천존을 죽여 내 수준을 보여주고 선족 구역 끝까지 내 이름이 퍼져 나가게 하는 수밖에 없다. 그 정도 명성을 갖게 된다면 분명 대천존은 나를 끌어들이기 위해 찾아올 거야.”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결심을 굳혔다.
“다섯 명의 대천존 중 선황은 일단 배제하자. 나머지 넷 중 도일과 무봉, 구제 대천존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동주 자양종의 쌍자 대천존과는 동부계에서 일면식이 있지.”
한제의 머릿속에는 동부계에서 탐랑을 마주쳤을 당시 보았던, 아가와 하영이라는 귀여운 두 여자아이가 떠올랐다.
한제는 조용히 두 눈을 감은 채 도마종의 천존 선조가 오기를 기다렸다. 몸 상태가 최상인 현재 자신이 천존과의 싸움에서 어느 정도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현재 그의 수준을 파악하기에는 금존은 부족했다. 적합한 상대는 천존뿐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한제는 두 번째 신맥을 형성하기로 했으나 도마종 종주의 원신을 이용하지는 않았다. 대신 도마종에서 취한 세 번째 단계 수련자들의 원신 중 다섯 번째 이하의 현겁에 이른 원신들을 이용했다.
몇 시진 이 지나고 하늘 끄트머리가 희끄무레하게 밝아올 무렵. 아홉 개의 원신을 흡수한 한제의 체내에서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두 번째 신맥이 응집됐다.
한제는 두 눈을 번쩍 떴다.
“세 번째 신맥도 나타날 조짐을 보이는군!”
한제는 소매를 휘둘러 수십 개의 원신 중 다섯 번째 이상 현겁에 이른 수련자의 원신 일곱 개를 흡수했다. 허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했기에 곧이어 공겁기 초기 수준 수련자의 원신도 하나 삼켰다. 그러자 체내에서는 또 한 번 요란한 소리와 함께 세 번째 신맥이 나타났다.
그 순간, 한제는 체내에 세 개의 신맥 회오리를 회전시킴으로써 단숨에 수많은 신통술을 발휘할 수 있게 됐다.
심지어 도고 육신의 속도 역시 확연히 달라졌는데 이는 속신결을 익힌 이전의 수련자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부분이었다. 그는 신통술 발휘 속도만 높였을 뿐 육신의 속도까지 높이지는 못했다.
이는 그자의 첫 번째 신맥이 공열기 수준 수련자의 원신으로 이루어진 데 반해 한제의 첫 번째 신맥은 공현기 수준 수련자의 원신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수십 개의 원신 중 절반 이상을 삼킨 한제는 나머지 원신을 거두어 넣었다. 이 원신들은 다른 데에 쓸 예정이었다.
“도마종 종주의 원신으로 속신결에 몇 개의 신맥을 더할 수 있을지 궁금하군.”
한제는 눈을 감고 도마종 종주의 원신으로 신맥을 응집하기 시작했다.
밝아진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살을 맞으며, 한제는 신맥을 응집하는 데 집중했다.
그때, 맹토주와 녹마주 경계에서 한 줄기 빛이 놀라운 기세로 날아들었다.
그 빛이 주와 주의 경계를 뛰어넘어 녹마주에 들어선 순간, 맹토주 수련자들은 형용하기 힘든 두려움을 느꼈다. 감히 그 앞을 막아설 엄두조차 낼 수 없을 정도였다.
천존에게 주와 주의 경계 따위는 신경 쓸 필요도 없는 선에 불과했다.
수혼술은 매우 포악한 신통술이다. 하지만 금존 수준의 원신은 모든 방어력을 잃었다 해도 본질적으로 셀 수 없이 오랜 세월의 수행을 거쳐 응집된 만큼, 어지간해서는 수혼술을 걸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억지로 수혼술을 발휘해도 그 원신에 남은 몇 단락의 기억만 파악할 수 있을 뿐이었다. 금존을 월등히 뛰어넘는 자만이 금존의 원신을 대상으로 완벽한 수혼술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한제는 금존과 싸워 이길 수는 있지만 이는 도고 육신의 힘과 그 수준의 위력을 융합한 결과일 뿐, 실제 그의 수준은 공겁기 초기에 불과했다.
한제는 도마종 종주의 원신을 상대로 수혼술을 시도해보았지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몇 가지 기억을 얻는 데 그쳤다. 천우주와 녹마주 사이에서 벌어진 교전에 대한 비밀은 없었다. 천존 선조에 대한 생각을 찾아낸 것이 그나마 수확이었다.
‘도마종의 천존 선조는 도일 대천존 휘하에 있군.’
태양이 머리 위로 걸린 한낮, 작열하는 햇볕이 대지를 내리쬈다.
한제가 돌연 두 눈을 번쩍 떴다. 그의 체내에는 단숨에 네 번째, 다섯 번째 신맥이 나타났다. 금존의 원신이 두 개의 신맥을 선사한 것이다.
가볍게 팔을 휘두르자 잔영이 살짝 나타났다. 한제는 신통술 발휘 속도는 물론 육신의 힘 역시 무서울 정도로 성장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속신결의 관건이자 그의 시선을 사로잡은 매력이었다.
“얼마나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을지 확인해봐야겠군!”
한제는 고개를 들더니 몸을 훌쩍 날렸다. 기이하게도 그는 여전히 제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있었지만 전방 30척 앞에 왜곡이 일더니 그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 자리에 선 두 번째 한제는 미소를 지으며 걸어 나갔다. 그때, 1백 척 앞 폐허에서 왜곡된 햇빛으로부터 세 번째 한제가 나타나더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곧 사방의 햇빛이 끊임없이 왜곡됨에 따라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그렇게 98번째 인영까지 나타났다. 그들은 각자 가부좌를 틀고 있거나 날아다녔고 걷는가 하면 신통술을 발휘했다. 심지어 주먹을 휘두르기도 하는 등, 반경 1만 척 안에서 각기 다른 행동을 취했다.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아흔여덟 번째 인영은 첫 번째 인영 옆에 가부좌를 틀었다. 두 사람은 똑같아 보였지만 표정만은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