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461
“98개의 잔영이 한계로군.”
마지막 인영이 가부좌를 튼 채 중얼거리자 첫 번째 인영은 흩어져 사라졌다. 이어서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부터 아흔일곱 번째 인영까지도 자취를 감췄다.
분신으로 볼 수도 있는 98개의 인영은 햇빛에 반사된 것들이었다. 그만큼 한제의 속도가 빠르다는 뜻이었다.
물론 신통술을 이용하면 어려운 일은 아니겠지만 단순히 육신의 속도로만 이런 효과를 내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이제 나는 여섯 개의 신맥을 가지고 있다. 속신결은 아홉 개의 신맥을 형성할 수 있지만 아홉 개가 한계라는 뜻은 아니지. 어쩌면 아홉 개의 신맥을 응집하면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될 수 있어. 알면 알수록 놀라운 술법이로군!”
가부좌를 튼 한제는 눈을 번득였다.
“좋아, 이곳의 일을 마무리하고 스승님을 찾아가 더욱 강해지겠다. 그럼 모완을 살릴 방법을 찾으러 어디로든 갈 수 있을 터. 지금의 수준으로는 위험해! 오행진신에 부족한 두 가지 원소의 힘을 응집해 오행귀일을 완성하면 공겁기 중기에 이르게 될 터! 여기에 천둥번개 본원의 진신을 비롯한 특수 본원들을 더해 하나로 합치면 공겁기 후기 금존이 될 수 있다!”
한제는 내친김에 앞으로의 일을 결정했다.
“마지막으로 허상의 본원을 두 가지 더 깨달아 다섯 종류의 본원을 융합하면 공겁기 절정에 이르러 천존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 내 모든 본원이 진신으로 응집되면 본원들이 합쳐져 형성된 세 개의 진신으로 내 수준은 대천존에 버금갈 터!”
그는 아직 대천존이 되는 방법은 알지 못했다. 현라는 엄청난 기연을 얻어야만 태고신경이 열리고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했다.
“허나 만약 내가 3대 본원 진신을 응집시켜 완벽히 하나로 합친다면 대천존이 될 수 있을지도 몰라!”
한제는 두 눈을 번득이며 중얼거렸다. 이는 모두 추측일 뿐, 시간을 두고 확인해나가야 할 터였다.
“내 분석대로라면 대천존 위로도 무언가 있을 것이다. 3대 본원 진신을 하나로 응집해 유일한 진신(眞神)에 이르게 한다면 대천존조차 다다르지 못한 그 수준에 이를지도 몰라. 어쩌면 네 번째 단계일 수도 있고 선조나 고조와 맞먹는 수준인지도 몰라!”
한제는 계속해서 분석해나갔다. 이 거창한 이야기는 앞으로 그가 이뤄나갈 계획이기도 했다.
“특수 본원과 허상의 본원은 얻기 어려우나 오행 중 금, 목의 본원은 비교적 얻기 쉽지.”
그때, 한제는 한낮의 태양이 점점 기우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저 멀리 하늘 끄트머리에서부터 우렁찬 천둥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한제는 고개를 번쩍 쳐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람이 폭풍처럼 밀려와 그의 백의백발을 펄럭였다.
“왔군!”
한제의 두 눈에 전의가 번득였다.
“72개 주에 거주하는 선족을 충격에 빠뜨리고 대천존의 눈길을 끌기 위한 첫 걸음이다!”
콰쾅! 쾅!
우렁찬 소리가 점점 확산되면서 온 세상을 뒤덮더니 한 줄기 빛이 하늘을 가르며 돌진해왔다. 그 빛 안에 있는 것은 적발(赤髮)의 노인이었다.
진정한 힘
요란한 소리는 순식간에 흩어져 사라졌다. 굉음과 빛이 동시에 무너져 내린 순간, 온 세상에는 죽음과 같은 적막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1천 척 앞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적발 노인의 몸을 두른 보라색 도포의 가장자리는 금색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오른쪽 옷깃에는 태극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붉은 태극은 도를 의미하는 상징이었다.
“도마종을 파괴한 것이 너냐?”
붉은 머리의 노인은 그 자리에 우뚝 서서 한참이나 한제를 응시하다가 불쑥 물었다. 덤덤한 목소리가 메아리치며 울려 퍼졌다.
점점 격렬해지던 메아리는 끝에 이르러서는 우렁찬 포효가 되어 한제를 덮쳐왔다.
“그렇다.”
한제는 눈동자가 살짝 졸아든 상황에서도 덤덤한 표정으로 답했다.
“나를 기다린 모양이군. 내게 도전하는 것이냐?”
붉은 머리의 노인이 한층 날카로워진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다.”
한제는 이번에도 침착하게 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기세로군!”
도마종의 천존 선조에게서는 상대를 얕잡아보는 모습도 분노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일체의 감정적인 파동과 흔들림 따위를 잊을 만큼의 수준에 이른 강자인 것이다. 역시 선족 중 손꼽힐 강자다웠다.
“내게 도전할 기회를 주마. 세 번의 주먹을 받아낸다면 도마종을 파괴한 일에 대해서는 죄를 묻지 않겠다!”
적발의 노인은 소매를 휘두르며 제자리에서 슬쩍 주먹을 휘둘렀다.
허나 일견 가벼워 보이는 그 주먹질에 하늘과 땅의 기색이 변하고 폐허가 된 도마종이 왜곡되기 시작했다.
덕분에 이곳은 세상과 분리된 공간이 된 것만 같았다. 게다가 이 왜곡이 일어나는 와중에 세상의 힘이 노인의 주먹으로 모조리 흡수된 듯했다.
“천존에 이르면 신통술을 발휘할 필요도 더 이상 강력한 육신을 추구할 필요도 없다. 도를 체내에 융합해 자신의 몸을 도로 만들어버리면 되니까! 몸이 곧 도가 되면 육신의 힘 따위는 실리지 않은 평범한 주먹질 한 번, 발길질 한 번만으로도 온 세상을 파괴할 수 있다!”
이는 적발의 노인이 도일 대천존으로부터 들었던 말이기도 했다.
한제의 눈동자가 바짝 졸아들었다. 그의 머리는 바람 한 점 없는데도 맹렬히 휘날렸다.
한제는 노인의 주먹에 담긴 무시무시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주먹은 세상과 완전하게 융합되어 있었다.
주먹질이 곧 하늘과 땅의 움직임인 셈이다. 심지어 그 주먹에는 아홉 종류의 신통술도 담겨 있었다. 결인도 신념도 없이 그저 주먹질 한 번에 그 신통술들이 가동된 것이다.
‘자신의 신념과 의지를 체내와 체내의 도에 녹여냈군! 이것이 진정한 천존의 힘과 수준… 한 번의 주먹질로 금존 수련자가 백 번은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사방에서 왜곡이 일어나고 백발이 마구 휘날리던 중, 한제는 뒷걸음질 치기는커녕 앞으로 성큼 나서며 주먹을 마주 휘둘렀다. 심지어 자신의 순수한 힘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기 위해 천우 혼개도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콰르릉! 콰쾅!
적막했던 세상에는 이내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지면이 진동하면서 층층이 무너져 내렸고 셀 수 없이 많은 파편으로 부서져 사방으로 나가떨어졌다. 허나 이 또한 허공에 생겨난 왜곡에 가로막혀 퍼져 나가지는 못하고 위로만 솟구쳤다. 먼지 폭풍이 일어난 듯한 모습이었다.
쿵!
한제는 주먹을 거두면서 한 걸음 물러났다. 그의 발자국에서는 붉은 화염이 피어올랐다.
쿵!
두 번째 발자국은 짙은 녹색 식물로 뒤덮여 있었다.
쿵!
세 번째 발자국은 금빛을 번득였다.
세 걸음을 밀려난 끝에 멈춰 선 한제는 고개를 들어 폭풍 속의 도마종 천존 선조를 바라보았다.
흩어져 사라진 폭풍 안에서 유유자적하게 걸어 나온 천존 선조는 덤덤한 눈으로 한제를 쳐다보았다.
“내 주먹에 그저 세 걸음을 물러나고 체내에 녹아든 세 가지 신통술을 배출해 내다니, 과연 도마종을 파괴한 자답군!”
반면 한제의 표정은 무거웠다. 상대의 주먹에 담겨 있던 아홉 종류의 신통술 중 그가 대항해낼 수 있었던 것은 여섯 종류뿐이었다. 세 걸음을 물러난 것은 나머지 세 종류의 신통술을 막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천조의 힘인가! 역시 강하군!’
한제의 두 눈이 번득였다.
‘천존들은 이런 식으로 전투를 하는 것인가?’
한제의 머릿속에는 방금 전 주먹을 날리던 상대의 모습이 뚜렷하게 떠올랐고 두 눈은 갈수록 밝게 번득였다.
그는 지금 한 단계 성장하기 위해 상대로부터 배워가는 중이었다.
“두 번째다!”
노인은 성큼 걸음을 내딛었다. 붉은 머리가 마구 휘날렸고 두 눈은 기이하게 번득였다. 그리고 이내 노인은 허상과 실체를 빠르게 오가기 시작했고 그 상태로 두 번째 주먹을 휘둘렀다.
콰르릉!
폐허가 된 도마종에서 회오리가 일어났다. 동시에 보이지 않는 힘이 하늘과 대지를 찢고 사방을 끝이 보이지 않는 허무로 만들어버렸다.
칠흑 같은 어둠 속. 한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마치 혼자서 다른 세계에 빨려 들어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허공에서 불쑥 주먹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안에 담겨 있던 열여덟 종류의 신통술이 곧장 달려들었다.
열 명의 금존이 동시에 나선다 해도 이 주먹 앞에서는 촌각도 버티지 못할 터였다. 이는 양적인 차이가 아니라 질적인 차이 때문이다. 금존 수련자는 아직 신통술을 발휘해야만 싸울 수 있는 반면 천존은 도를 체내에 녹여 넣고 신통술을 팔다리에 녹여 넣은 존재인 것이다.
‘열여덟 종류의 신통술을 담은 주먹이라니!’
한제는 이를 악물더니 상대의 두 번째 주먹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난 도를 체내에 녹여 넣을 수도 움직임만으로 신통술을 발휘할 수도 없다. 허나 도고의 육신과 수준의 위력을 주먹에 녹여 넣을 수는 있지! 이것은 신통술이 아니라 신념과 의지의 일격이다!’
두 눈을 전의로 불태우던 한제는 주먹을 휘두르며 한 걸음 나섰다.
콰쾅!
두 주먹이 충돌했고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허무는 크게 흔들리더니 눈 깜짝할 사이 갈라지면서 붕괴했다.
녹마주의 하늘과 도마종의 폐허가 널려 있는 대지가 드러났다.
한제는 도마종 천존 선조의 1천 척 앞에 서 있었다.
쿵! 쿵! 쿵!
한제는 피를 토하며 엄청난 힘에 떠밀리듯 연달아 일곱 걸음이나 물러났다. 매 걸음마다 생겨난 발자국은 크기와 형태가 모두 달랐다.
퍼펑!
마지막 일곱 걸음을 물러났을 때, 한제의 체내에서는 폭발하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바들바들 떨리는 오른팔에서도 피가 방울방울 떨어져 내렸다.
‘강력한 주먹이었다. 한 번의 주먹질만으로도 이 공간을 세상에서 분리해냈었지.’
고개를 번쩍 쳐든 한제는 입가에 흐른 피를 훔쳐내며 저 멀리 떨어진 도마종 천존 선조를 바라보았다.
“수준은 높지 않으나 전력은 천존에 이를 정도로 강력하구나. 허나 넌 천존의 도를 알지 못한다. 천존을 마주하는 것도 처음인 듯하군.”
노인은 여유로운 걸음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눈빛은 묵직했다.
“한데도 내 두 번째 주먹까지 막아내다니, 범상치 않은 자로다!”
그렇게 열 걸음 정도 다가온 도마종 천존 선조는 두 눈을 번득이며 마치 세상의 영혼이 된 듯한 기세로 주먹을 들어 올렸다.
“약속대로 이번 주먹까지 막아낸다면 도마종의 일을 없던 것으로 해주마! 전력을 실은 이 주먹이 너를 죽이지 못한다면 정말로 너를 죽일 수 없다는 뜻일 터! 도마종을 파괴한 데에도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테지만 그 이유 역시 묻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