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462
도마종 천존 선조가 말했다.
“이 마지막 주먹에는 스물일곱 가지의 신통술이 담겨 있다. 너는 몇 종류의 신통술이나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으냐!”
노인은 눈앞의 주먹을 힐긋 보더니 말했다.
이때 한제는 자신의 힘만으로는 저 주먹을 막아낼 수 없음을 직감했다. 도고의 육신이 있다 해도 이번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터였다.
‘과연 약천존 아래 최강의 존재라는 천존답군!’
한제는 조용히 두 눈을 감았다. 그러자 얼굴 위로 천우의 혼 문양이 나타나 급속도로 퍼져 나가 온몸을 뒤덮으며 수준을 증폭시켰다.
천우의 혼에서 발산된 강력한 기운이 체내와 원신, 영혼에 스며들면서 한제의 수준은 공겁기 초기에서 단숨에 공겁기 중기로 치솟았다. 허나 끝이 아니었다. 그의 수준은 다시 공겁기 후기까지 치솟아 금존에 이른 후에야 멈추었다.
이 갑작스러운 변화에 도마종 천존 선조의 눈이 처음으로 휘둥그레졌다.
“혼력(魂力)? 보아하니 천우 혼의 인정을 받은 모양이로군! 그 정도 수준에 이르렀다면 천우 혼의 음성도 들을 수 있을 터!”
그는 선족 구역 72개 주에는 72개의 혼이 진압되어 있음을 알고 있었다. 이 혼들은 봉인되어 있지만 그들을 제압한 힘 중에는 강한 힘도 있고 약한 힘도 있다.
제압된 혼 자체의 힘에도 차이가 있다. 또한 절반 이상은 이미 죽은 혼이었다. 예컨대 녹마주의 혼은 본디 굉장히 강력하나 그것을 제압한 힘 역시 막강했다. 게다가 천우주가 형성되기도 전부터 제압되어 있었던 터라 그 혼의 힘은 한참이나 약해진 상태였다.
반면 천우주는 72개의 주 중 비교적 늦게 생성된 편으로 천우의 혼 또한 봉인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또한 천우의 혼은 72개 주에 봉인된 혼 중 18번째로 강력한 편이기도 했다.
혼의 인정을 받는 것은 생각만큼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살아 있는 혼은 대부분 사자들을 두고 있다. 허나 사자들은 아주 기초적인 인정을 받은 것에 불과해 혼의 힘을 빌리더라도 일시적으로 공겁기 후기 수준에만 이를 수 있을 뿐, 금존이 되지는 못한다.
이는 상식이었다. 지난 오랜 세월 동안 이러한 제한을 깬 사람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허나 혼의 음성과 포효를 들을 수 있을 만큼 인정받고 혼력을 통해 금존에 이르는 기회를 얻은 자는 드물었다.
하지만 금존을 뛰어넘는 수준에 이른 사람은 없었다. 중주 황성 아래에 진압된, 선족 첫 번째 혼의 인정을 받는다면 혹시 모르겠으나 그 외의 다른 혼들의 경우 어느 수련자를 그 이상의 수준에 이르게 한 적은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혼력을 빌려 금존에 이른 몇 안 되는 수련자는 심지어 약천존의 수와 비슷할 정도로 드물었다. 각 주의 혼으로부터 그 정도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같은 세대에 최대 두 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도마종 천존 선조로서는 천존 중 어느 주의 혼으로부터 그 정도로 인정받은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가 보기에는 그런 현상이 나타날 확률은 약천존이 출현할 확률보다도 낮았다. 오히려 새로운 대천존이 나타날 확률에 가까울 터였다.
‘천존에 가까운 수준에 천우의 혼으로부터 인정까지 받았다니, 저자는 대체⋯⋯?’
한제를 바라보는 도마종 천존 선조의 눈에는 아주 오랜 세월 드러난 적이 없던 감정의 파동이 나타났다.
‘혼력을 빌린 상태에서는 대체 어느 정도의 힘을 보여줄지 궁금하군!’
적발의 노인은 눈을 번득이며 세 번째 주먹을 날렸다.
스물일곱 종류의 신통술을 품은 주먹과 한제 사이에 어마어마한 회오리가 형성됐다.
콰르릉!
회오리 가운데의 검은 구멍은 막대한 흡입력으로 도마종의 폐허를 마구 빨아들였다. 심지어 땅과 하늘조차 무너져 내릴 듯 왜곡되면서 회오리 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검은 구멍을 품은 회오리가 날카로운 쉭 소리를 내며 달려들었다.
두 눈을 번쩍 뜬 한제의 온몸에서 흐르는 금존의 수준은 전에 없이 강력해져 있었다. 한제는 그 힘을 똑똑히 느끼며 몸을 훌쩍 날렸다.
그 순간, 그의 옆에 두 번째 한제가 나타났다. 그리고 이어서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총 아흔여덟 명의 한제가 나타났다. 그중 아흔일곱 명은 모두 잔상에 불과했다.
“난 도를 체내에 녹여 넣을 수도 움직임만으로 신통술을 발휘할 수도 없지만 속신결을 이용해 단숨에 아흔여덟 개의 신통술을 발휘할 수는 있다!”
천존열(天尊涅)
도와 육신을 융합한 뒤에는 손짓과 발짓에도 신통술을 녹여 넣을 수 있게 된다. 이는 천존에 이른 수련자가 가장 강한 위력을 발휘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도마종 천존 선조는 지금 스물일곱 가지 신통술을 담은 주먹으로 세상 모든 수련자를 다 죽일 수 있을 법한 위력을 발휘했다.
여기에서 핵심은 주먹에 담긴 신통술의 종류가 아니라 그 수였다. 천존 중에는 수십 가지의 신통술을 파악하지 못한 사람도 있으나 그런 경우 한 종류의 신통술을 여러 차례 사용해 위력을 높였다.
한편 한제는 속신결을 통해 순간적으로 아흔일곱 개의 잔상을 일으킴으로써 본신까지 더한 아흔여덟 개의 신통술을 사용할 수 있었다.
허나 만약 그의 힘이 충분히 강하지 않다면 아홉 갈래의 신맥으로 수백 개의 잔상을 그려내 수백 가지 신통술을 발휘한다 해도 천존의 상대가 될 수는 없을 터였다.
그런가 하면 그 몸에 스물일곱 개의 신통술만 융합된 상태의 천존이 속신결을 배워 수백 개의 잔상을 발휘해 수백 가지 신통술을 발휘한다 해도 그 위력은 스물일곱 개의 신통술로 발휘할 수 있는 정도에 그칠 뿐이다. 스물일곱 개가 그의 한계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치 하나의 병처럼 담아낼 수 있는 물의 양이 정해진 것이다.
허나 한제는 달랐다. 그의 실제 전력은 도고의 육신과 혈맥 내 혼혈에 달려 있었다. 그중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혼혈로 혼력을 빌려 금존이 된 그는 지금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됐다.
이는 한제가 도고로서의 수준과 수련자로서의 수준을 융합한 뒤 그보다 더 강력한 상대와 맞서 싸울 수 있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또한 그는 동부계와 선강 대륙 사이의 허무에 있는 강력한 분신 덕분에 더욱 강력해진 상태였다.
몸이 물병이고 그 안에 담긴 물이 수준이라면 강력한 분신으로 인해 한제의 병은 탄력적으로 변했고 끊임없이 확대됐다.
게다가 혼혈은 한제의 몸에 보이지 않는 변화를 일으켜 그를 더욱 강력하게 만들었다.
이는 다른 고족 수련자와 한제의 근본적인 차이이기도 했다. 당시에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던 갖가지 조화가 중첩된 끝에 이토록 놀라운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검은 구멍을 품은 회오리가 닥쳐온 순간, 아흔여덟 명의 한제는 한 가지 신통술만을 발휘했다. 천우의 기억에 담긴 신통술, 천우당(天牛撞)이었다.
천우당은 혼력을 빌려 높아진 수준을 완벽하게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는 신통술이었다.
아흔여덟 명의 한제는 모두 높이 쳐든 두 손으로 소뿔과 같은 모양으로 결인을 그려 머리에 댔다. 그리고는 낮은 기합을 내지르며 돌진했다.
콰르릉!
대지가 진동했고 하늘은 허무처럼 변해버렸다. 오후의 햇살이 흩어져 사라졌고 세상에는 도마종 천존 선조와 거대한 회오리, 그리고 아흔여덟 명의 한제만 남게 됐다.
“크아아아!”
아흔여덟 명의 한제가 돌진하다가 하나둘씩 사라져갔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한 명의 한제가 우렁차게 포효했다. 그러자 뒤로 거대한 천우의 허상이 나타났다. 마치 봉인에서 벗어난 진짜 천우처럼 생생한 허상이었다.
“쿠오오!”
이 허상은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며 울부짖었다.
푸른색을 띤 천우의 허상은 서늘한 기운과 불굴의 의지를 발산하며 두 개의 거대한 검은색 뿔을 앞세워 돌진했다.
콰콰쾅!
스물일곱 개의 신통술을 품은 회오리는 천우와 충돌한 순간 바르르 진동하며 그대로 무너져 내려 산산조각이 났다.
반면 천우는 잠시 멈칫했을 뿐, 이내 거대한 머리를 쳐들며 도마종 천존 선조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었다.
붉은 머리의 노인은 표정이 급변하더니 다급하게 물러났다.
‘아흔여덟 개의 신통술을 융합하다니! 도를 체내에 녹여 넣지는 못했지만 비슷한 효과를 냈다. 만약 저런 자가 도와 육신을 융합한다면 분명 이보다 훨씬 더 막강해질 터. 천존으로서 가장 많이 발휘할 수 있는 신통술의 수는 아흔아홉 개. 그보다 하나가 더 늘어나면 약천존이 되지.’
노인은 두 손을 들어 올려 전방을 수차례 연타했다.
‘약천존에 비견할 정도로 강력한 자로구나! 도와 육체를 융합하지 못했기에 저자가 발휘한 아흔여덟 개의 신통술은 하나로 합쳐지지 않은 상태야. 강력하기는 하나 완벽하지는 않지. 그럼에도 나로서는 당해내기가 쉽지 않다!’
노인이 전방을 한 번 후려칠 때마다 스물일곱 개의 신통술이 발휘돼 천우에 맞섰다. 이에 천우의 허상에 담긴 아흔여덟 가지의 신통술은 하나둘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천우는 아직도 무너지지 않고 남은 십여 개의 신통술을 품은 채 붉은 머리의 노인을 들이받았다.
“크윽!”
노인은 왈칵 피를 토해내며 뒤로 밀려났다. 그리고 바로 그때, 다시 나타난 아흔여덟 명의 한제가 기합을 내지르며 두 번째 천우당을 발휘했다.
“하앗!”
또다시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천우가 매섭게 달려들었다.
‘강력한 위력, 엄청난 속도! 허나 이렇게 연달아 신통술을 발휘하려면 저자가 감당해야 할 부담도 적지 않을 것이다!’
빠르게 뒤로 물러나던 붉은 머리의 노인과 두 번째 천우가 충돌하기 직전, 노인의 보라색 도포에서 대천존의 기운이 발산됐다. 도일 대천존이 하사한 이 도포는 중요한 순간 목숨을 구할 법보이기도 했던 것이다.
도마종 천존 선조의 도포 위로 흐릿한 인영이 하나 떠올랐다. 도일 대천존이 그 도포에 남겨둔 신식이었다.
거대한 천우의 두 뿔과 도마종 천존 선조 사이에 나타난 인영은 맹렬하게 몸을 놀리며 주먹을 휘둘렀다.
이 주먹은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않을 것처럼 평범해 보였다. 하지만 거대한 천우는 그 주먹에 그대로 무너져 내렸고 그 안에 담겨 있던 아흔여덟 개의 신통술 역시 광풍에 휩쓸린 것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큭!”
천우의 허상이 무너져 내리자 그 안에서 1천 척 정도 뒤로 밀려난 한제는 얼굴이 창백해진 상태였으나 눈빛만은 날카로웠다.
“도일 대천존!”
“대천존을 뵙습니다!”
도마종 천존 선조는 얼른 포권을 하며 허상을 향해 절을 올렸다.
처음에는 흐릿했던 허상은 빠른 속도로 또렷해지더니 곧 완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스무 살 남짓 되어 보이는, 평범한 도포를 입은 청년이었다. 검은 머리는 어깨 위로 늘어져 있었고 눈썹은 날카로웠으며 매우 준수했다. 특히나 별 같은 두 눈을 보고 있노라면 헤어나지 못할 듯했다.
하늘과 땅, 바람을 비롯한 만물이 모든 움직임을 멈췄다. 방금 전의 전투로 인해 부옇게 떠올랐다가 가라앉는 중이었던 먼지도 허공에 멎었다. 심지어 세상의 흐름도 완전히 정지한 상태였다.
한제의 두 눈동자가 바짝 졸아들었다. 동시에 그는 심장박동이 천천히 느려지고 있음을 느꼈다. 금방이라도 세상 만물처럼 멈춰버릴 것 같았다.
‘이게 대천존의 힘인가? 도포에 담긴 한 줄기 신식만으로도 만물을 꼼짝 못하게 만들 정도라니!’
한제는 눈앞의 모든 것이 멈춘 게 아니라 도일 대천존의 등장에 감히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넌 나를 따를 자격이 있다. 나를 따른다면 내가 죽지 않는 이상 네가 죽는 일은 없을 것이다!”
검은 머리의 청년이 입을 열었다. 그의 눈에는 무궁무진한 지혜와 빛이 담겨 있었다.
도일 대천존의 목소리에는 기이한 힘이 담겨 있었다. 누구든 그 목소리를 들으면 무궁무진한 두려움과 복종의 욕망을 느끼게 될 터였다. 마치 그 말에 이 세상의 규칙이 담겨 있기라도 한 것처럼.
“내가 죽지 않는 이상 네가 죽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는 한제를 포섭하려는 도일 대천존의 약속이었다. 그 말투와 표정은 한없이 덤덤하고 침착했으나 그 약속은 결코 가볍지 않을 터였다.
한편, 도일 대천존의 허상 뒤에 선 도마종 천존 선조는 표정이 급변했다. 한제를 향한 그의 눈빛은 복잡했다.
1만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도일 대천존을 따랐던 그는 도일 대천존이 이런 약속을 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그가 자신을 포섭하려 했을 때 했던 약속은 ‘내가 죽지 않는 한 10만 년 안에 네가 죽는 일은 없을 것이다!’였다.
10만 년이라는 시간의 제약과 그런 제약이 없다는 것, 그 차이는 매우 컸다.
‘저자의 힘은 내가 충분히 보고 겪었다. 대천존께서 중히 여기시는 것도 당연한 일.’
도마종 천존 선조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한편, 한제는 쉬 대답하지 않았다. 선강 대륙 선족 구역에 이른 뒤 처음으로 만난 대천존이었다. 게다가 한제는 방금 상대의 말에 담긴 약속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