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467
이 술집의 한쪽 구석에는 백의의 청년이 홀로 앉아 있었다. 그는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며 술병을 기울였다. 그는 머리카락 또한 하얀색이었지만 이 술집에만 해도 백발의 수련자가 네다섯 명은 됐다. 백발 천존이 유명해지면서 그처럼 머리를 하얗게 기른 수련자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다른 수련자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술잔을 내려놓은 한제는 지난 50여 년간 연달아 여러 명의 천존과 겨뤄오면서 수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또한 천존의 신통술을 얻으면서 자신이 점점 강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러다가 3년 전, 산해주에 이른 그는 이 주에서 가장 강하다는 해자 천존과 맞붙었고 패했다. 모든 분신을 소환해 맞선 결과였다.
‘해자 천존은 이미 일흔 개의 신통술을 손짓 하나로 발휘할 수 있었어. 나로서는 혼개를 입지 않고는 대적할 수 없는 상대지. 허나 혼개를 입었다면 별다른 훈련의 효과를 얻지 못했을 거야.’
한제는 또다시 술잔을 채웠다.
‘이제 나는 두 개의 진신을 통해 아홉 개의 신통술을 총 세 번 발휘할 수 있게 됐다. 말하자면 서른여섯 개의 신통술을 한 번의 손짓에 녹여 넣은 공격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는 거지.’
술잔을 입가로 기울이며 한제는 생각을 정리했다.
‘난 그동안 금속과 나무의 본원을 찾기도 했지. 그 두 가지 본원을 손에 넣고 진신으로 응집해 오행 진신을 완벽하게 융합한다면 내 본체는 열여덟 개의 신통술을 한 번의 주먹질에 녹여 넣을 수 있을 거야. 이후 수련을 이어가다 보면 일흔두 개의 신통술을 발휘하는 천존과도 충분히 맞설 수 있겠지! 그럼 그때 다시 해자 천존에게 도전한다.’
새로운 전설
한제의 눈빛이 잠시 전의로 번득였으나 이내 덤덤한 상태로 돌아왔다.
‘적봉 천존은 산해주 가장 밑바닥에 그 주를 떠받치고 있는 산해수(山海樹)가 있고 산해주 전역이 그 혼을 봉인하고 있다고 했지. 그 나무는 너무도 강력해 당시 그것을 봉인한 선조도 부상을 입었다. 지금은 봉인된 지 오랜 세월이 지났으니 혼은 거의 죽고 줄기에만 남아 있겠지만 그 줄기에는 충분한 양의 나무 본원의 힘이 담겨 있다고 했어. 그 힘을 손에 넣는다면 나무의 본원을 응집하고 곧장 진신을 형성할 수 있을지도…’
한제는 술을 들이켜며 기억을 복기했다.
‘해자 천존과 겨룬 이후 줄곧 이 산해주에서 관찰한 바에 따르면 적봉 천존의 말은 거의 다 사실이었어. 그러니 혼개를 착용해서라도 해자 천존의 경계를 뚫고 산해수 안으로 들어가 나무 본원의 힘을 흡수해야 해!’
고민 끝에 결정을 내린 한제는 술값으로 원석 몇 개를 놔둔 뒤 술집에서 나왔다.
수련자들이 세운 이 도시에는 수련자가 매우 많았다. 각종 점포뿐만 아니라 개인의 좌판도 가득 널린 채 각종 보물들을 판매하는 중이었다.
도시를 거닐던 한제는 이내 훌쩍 몸을 날려 사라졌다.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그 도시로부터 한참 떨어진 하늘 위였다.
한데 막 질주하려던 순간, 그는 표정이 급변해 곧장 뒤로 돌았다.
저 앞의 허공에 왜곡이 이는가 싶더니 거대한 인영이 허상으로 나타났다. 키가 1백 척에 달할 듯한 허상은 보라색 도포로 온몸을 가리고 있었고 얼굴에는 금색 가면까지 쓴 상태였다.
가면에서 흘러나온 어마어마한 위압감이 사방을 뒤덮으며 허공에 파문을 일으켰다. 지면에서 올려다본다면 한제가 있는 상공이 마치 호수처럼 일렁이는 것을 볼 수 있을 터였다.
“무봉 대천존 휘하의 적봉 천존이었군!”
한제가 입을 열었다.
“이 도우, 오랜 만이군. 내 제안은 고려해보았나?”
금색 가면을 쓴 상대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당시 한제는 혼개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적봉 천존과 거의 대등하게 맞섰다. 적봉 천존은 그런 한제에게 자신이 모시고 있는 무봉 대천존의 말을 전한 바 있었다. 자신의 휘하로 들어오라는 제안이었다.
한제로서는 도일 대천존 이후 두 번째로 받는 대천존의 제안이었다. 게다가 당시의 한제는 도마종 천존 선조의 입을 통해 무봉 대천존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던 상태였다. 초연한 성격인 그는 천존 수련자들에 대해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 약천존만을 중점적으로 포섭하려 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휘하에 자리한 천존이 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대신 무봉 대천존 휘하의 천존들은 하나같이 우수한 인재들이었다. 예컨대 한제는 적봉 천존이 자신처럼 전력을 다하지 않고 있음을 눈치챘다.
‘당시 무봉 대천존은 적봉 천존을 통해 내게 말을 전했을 뿐 직접 찾아오지는 않았지. 심지어 한 줄기 신식으로 모습을 보인 적도 없어. 나 정도를 직접 찾아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거야. 도일 대천존에 비하면 분명 뒤떨어지는 부분이지. 허나 도일 대천존은 내가 혼개를 착용한 모습을 봤기 때문에 직접 찾아온 것인지도 몰라.’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정중하게 포권을 했다.
“적봉 도우,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고민 중이라네.”
한제의 완곡한 거절에 적봉 천존은 전혀 놀라는 기색 없이 아쉽다는 듯 쓰게 웃으며 말했다.
“이 도우, 나도 천존을 포섭하려 한다면 대천존이 직접 찾아와야 한다고 생각하네. 무봉 대천존께서는 만약 자네가 천존열의 아홉 번째 층을 통과한다면 직접 자네를 찾아가겠다고 말씀하셨네! 그러니 혹 관심이 있다면 천존열 시험장으로 가보게. 아홉 번째 층을 통과하면 다섯 명의 대천존 중 누구라도 자네를 포섭하기 위해 공들일 거야.”
말을 마친 적봉 청존은 포권을 하더니 점차 흐릿해지다가 사라졌다.
한제는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다가 한참 뒤에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천존열 시험장이라⋯⋯. 도일 대천존도 내가 아홉 번째 층을 뛰어넘으면 다시 찾아오겠다고 했었지. 무봉 대천존도 마찬가지고. 아홉 번째 층에 뭔가 현묘한 장치가 있는 것인가?”
한제는 지난 50년 동안 천존열 시험장에 들어가는 여러 가지 방법을 연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곳에 직접 가본 적은 없었다.
“가봐야겠군!”
★ ★ ★
남주 산해주에는 산해라는 내륙해가 있다. 드넓은 이곳 상공에는 이따금 수많은 바닷새가 노닐었고 철썩이는 파도와 함께 습한 바닷바람이 불어오기도 했다. 산해주 전역의 7할 정도를 차지한 이 바다는 3할에 불과한 육지를 감싸고 있었다.
산해 북쪽의 해안. 어느 산맥의 산봉우리에 선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해수면을 바라보았다.
이곳은 해저의 산해수로부터 가장 가까운 곳이었지만 한제는 당장 산해로 향하는 산봉우리에 새로 마련한 동굴 안에 나타났다.
이 동굴에서 머문 지도 벌써 3년이 다 되어갔다. 대량의 금제가 그를 어느 정도 보호해주었다.
동굴 안에는 보일 듯 말 듯한 남색 안개 한 덩어리가 있었는데 그 안에는 잔뜩 축소된 해룡이 도사리고 있었다.
동굴 안에 가부좌를 튼 한제는 두 눈을 감고 두 손을 양 무릎에 얹은 채 끊임없이 결인을 그렸다. 특수한 그 결인들은 몇 차례의 검증을 거쳐 알아낸 것들이었다.
‘산해수를 취하기 전 일단 천존열에 가서 대체 얼마나 현묘한 곳인지 확인해야겠어!’
한제는 지난 50년 동안 알아온 천존열 시험장 진입 방법에 따라 천천히 신식을 몸 밖으로 발산하기 시작했다. 그의 정수리 위에 응집된 신식은 끊임없이 응집되고 압축되면서 한 줄기 밝은 빛이 됐다. 신식의 빛이었다.
이 빛은 잠시 후 돌연 폭발하듯 엄청난 속도로 튀어 올랐다.
빛은 동굴과 산봉우리를 뚫고 하늘로 곧장 솟구쳤지만 다른 사람으로서는 볼 수도 감지할 수도 없었다. 이 신식의 빛은 특수한 결인으로 응집해 있었기 때문이다. 신식의 파동을 완전히 감추는 결인의 작용을 통해 그가 천존열에 들어서는 것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이 결인은 선조가 만든 것이었다.
한제의 신식은 끊임없이 허공을 가르며 솟구쳐 올라가다가 마치 한 자루 예리한 검처럼 선강 대륙의 하늘을 찔러들었다.
그 신식이 최고 지점에 이른 순간, 한제의 머릿속에서는 돌연 콰쾅 하는 우렁찬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하늘이 거대한 회오리로 변한 것처럼 그의 신식은 강력한 흡입력을 느꼈다.
시야가 이지러졌다가 잠시 후에야 또렷해졌다.
사방을 얼른 둘러본 한제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곳은 폭이 1만 리 정도 되는 대륙이었다. 하늘에 떠 있는 매우 작은 이 대륙 바깥쪽에는 광풍이 휘몰아쳤고 줄기줄기 검은 선이 번득이며 맴돌았다. 각 선에는 무시무시한 힘이 깃들어 있어 닿기만 해도 그대로 소멸되어 버릴 것만 같았다.
이 대륙의 중앙에는 거대한 궁전이 하나 있었다. 매우 오래되어 보이는 궁전은 검은 색이었고 거친 위엄이 느껴졌다.
한제가 주위를 둘러보고 있으려니 줄기줄기 신식이 거대한 궁전 사방에서 달려들어 그를 훑었다. 천존 수련자의 위압감이 어려 있는 신식은 무려 2백여 개에 이르렀다.
“이한제?”
“백발 천존!”
“그자다!”
이 신식 중에는 지난 50년 동안 한제와 맞붙은 바 있는 천존의 신식도 포함되어 있었다.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는 지금 아주 오래된 전송진 위에 있었다. 매우 복잡한 전송진은 신식을 곧장 삼켜버리려 하는 것 같았다.
한참 뒤에야 전송진으로부터 시선을 거두고 그 위에서 벗어난 한제는 자신의 몸을 살피기 시작했다. 현재 그의 몸은 육신이 있을 당시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만약 자신이 신식만으로 이곳에 이른 상태라는 것을 모르는 상황이었다면 육신이 그대로 있다고 착각했을 것이다.
‘선조가 만들어낸 곳이라고 하더니 과연 현묘하군!’
한제는 여러 신식이 날아온 오래된 궁전으로 향했다.
궁전과 가까워질수록 충격은 커졌다. 이 오래된 검정색 궁전은 멀리서 볼 때도 거대해 보였으나 가까이서 보자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특히 가까이 접근하고 나서야 이 궁전 상공에 떠 있는 거대한 궁전들을 볼 수 있었다.
총 열아홉 채의 궁전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상공에 둥둥 떠 있었다. 마치 거대한 한 마리 용 같기도 했다. 가장 꼭대기의 궁전 몇 채는 하늘 저 위에 있는 탓에 흐릿한 윤곽만 겨우 살필 수 있었다.
‘그간 알아낸 바에 따르면 천존열 시험장은 당시 선조가 가장 강한 법보로 만들어낸 곳이다. 허공에 존재하면서 선족을 지키고 있다고 했지.’
한제는 하늘에 떠 있는 대전들을 바라보았다. 대부분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으나 강력한 위압감만큼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가까이 다가간 한제는 이 대륙 중앙의 첫 번째 궁전 밖에 2백 명의 수련자가 가부좌를 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궁전 사방을 에워싼 이들은 서로 가까이 있고 싶지 않다는 듯 널찍하게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중 적지 않은 이들이 한제를 보고 있었다. 그중 한제와 이미 만난 바 있던 몇몇 수련자는 포권을 하며 미소지었다.
한제는 그들에게 마주 포권을 하고는 궁전 앞에 섰다. 자신이 아주 작은 존재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궁전은 거대했다.
‘천존열 시험장은 역시 기이한 곳이야. 선족 구역 내 어디에 있든 신식을 통해 이곳에 이를 수 있지. 때문에 이곳은 천존 수련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이기도 해. 둘 사이의 거리가 제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이곳에서는 만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천존들끼리 인맥을 쌓기에 좋은 곳이기도 하지.’
한제는 지난 50년 동안 수집한 천존열 시험장에 대한 정보를 떠올렸다.
그때, 돌연 허공에 떠 있는 일곱 번째 궁전에서 눈부신 금빛이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이 금빛은 순간적으로 사방을 뒤덮었고 이에 이곳의 모든 천존들이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부신 금빛을 번득인 일곱 번째 궁전에서 검은 옷을 입은 누군가의 인영이 튀어나왔다. 중년 사내인 그는 긴 머리를 휘날리며 강력한 위압감을 온몸으로 발했고 곧장 몸을 날려 여덟 번째 궁전으로 올라갔다.
“죽림 천존이 일곱 번째 층을 통과했군!”
“적어도 체내에 서른여섯 개의 신통술을 녹여 넣었다는 뜻이지. 죽림 천존이 저 정도였나?”
“1천 년간 구제 대천존을 따라다니면서 제법 수확을 거둔 모양이야.”
“여덟 번째 층도 별거 아니야. 중요한 건 아홉 번째 층이지.”
“허나 아홉 번째 층은 너무도 어려워. 그곳을 통과했다는 건 약천존에 근접했다는 뜻이라고 봐야지.”
“약천존 중 최강자라는 명도존도 열여섯 번째 층을 통과하지는 못했어.”
“누구든 열아홉 번째 층을 통과한다면 대천존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강자라는 뜻이라던데…”
번쩍이는 금빛에 휩싸인 2백여 명의 천존은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었다.
그때, 여덟 번째 궁전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그 안에서 튀어나온 죽림 천존이 한 줄기 빛이 되어 급속히 떨어져 대지에 섰다. 모든 천존의 시선이 그에게로 집중됐다.
죽림 천존은 매우 어두운 안색으로 주위를 둘러보지도 않고 어디론가 걸어갔다. 한제를 지나쳐간 그는 저 멀리 적당한 자리에 가부좌를 채 눈을 감고 좌선을 시작했다.
이후로도 상궁의 궁전들에서 금빛이 번득이거나 누군가가 떨어져 내렸다. 허나 가장 높이 올라간 사람도 죽림 천존과 마찬가지로 여덟 번째 층에 불과했고 더러는 두세 번째 층도 통과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제는 서두르지 않고 가부좌를 튼 채 상황을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