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476
실제로는 7일에 불과했지만 그의 머릿속에서는 유구한 세월이 흐른 상태였다. 그리고 그 오랜 세월 동안 융합해온 두 개의 선극검 조각은 완벽하게 합쳐져 있었다. 덕분에 선극검 조각은 이제 길이 1척 정도의 금색 단검이 되었다.
8일째 되는 날, 한제는 두 눈을 번쩍 떴다. 전보다 몇 배로 늘어나 실체를 갖춘 듯 위압감을 품은 금빛이 소나무 안을 가득 채웠다.
두 눈에서 발산되던 금빛은 곧 줄어들기 시작해 몇 시진 후에는 전부 눈 안으로 응집됐다. 이제 밖으로 새어나가는 빛은커녕 한제의 눈동자에서도 그 기색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 눈동자에는 서늘함과 위엄이 어려 있어 마주하는 사람은 겁을 집어먹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이것이 바로 선조의 선극검을 통해 얻어낸 위압감이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신 한제는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가 잠시 후에 다시 떴다. 이제는 눈동자 속의 서늘함과 위엄마저도 감춰진 상태였다.
‘선극검은 세상 모든 금속 중 으뜸이다. 두 번째 선극검 조각 덕분에 체내 오행 중 마지막 본원인 금속의 본원을 얻게 될 줄이야.’
뜻하지 않은 일이긴 했으나 지난 7일 동안 제련한 끝에 그는 자연스레 몇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하나의 조각만으로 산해수의 영혼을 몇 년에 걸쳐 흡수하고 제련한 것과 비슷한 결과를 얻게 되다니⋯⋯.’
금 대선(大仙)
한제는 아흔여덟 개의 잔상을 소환해 전부 녹여 넣은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그러자 주먹 안에서는 쩌적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으나 파괴적인 느낌은 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주먹에서는 각각 다른 신통술을 품은 아홉 갈래의 검은 회오리가 피어올랐다.
피어올랐던 아홉 개의 회오리가 주먹 주위를 맴돌면서 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열 번째 회오리가 나타났다.
“열 개에서 끝이 아닐 텐데?”
한제가 오른손을 폈다가 다시 움켜쥐자 먹먹한 콰쾅 소리와 함께 열한 번째 회오리도 모습을 드러냈다. 산해에 가기 전에는 아홉 개의 신통술을 한 번의 손짓에 녹여 넣을 수 있었으나 이제 열한 개로 늘어난 것이다.
이는 한제가 오행 진신과 천둥번개 진신, 본체와 허상의 본원의 위력을 모두 발휘한다면 총 마흔네 개의 신통술을 발휘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허상의 본원은 아직 진신으로 응집되지는 않았지만 실체의 본원보다 훨씬 신비로웠다. 그리고 한제는 그런 허상의 본원 세 개를 하나로 융합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지난 50여 년간 다른 천존들과 싸워오면서 얻은 경험과 진신의 특성에 기대 스스로 깨달은 그만의 전투 방식이었다.
‘더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중얼거리던 한제는 왼손으로 오른손을 덮었다.
“하앗!”
한제의 입에서 낮은 기합이 터져 나온 순간, 열한 개의 회오리에 휩싸여 있던 오른손에서는 열두 번째, 열세 번째 회오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제는 숨을 약간 거칠게 몰아쉬었다.
‘열세 개의 신통술. 이게 한계로군. 진신과 본원의 위력을 더하면 혼개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총 쉰두 개를 발휘할 수 있는 셈이지. 지금의 전력으로 다시 천존열에 들어간다면 다섯 번째 궁전을 통과할 수 있겠군.’
한제는 자신감에 가득 차 미소를 지었다.
허나 당장 천존열 시험장을 찾아갈 생각은 없었다. 아직 때가 아니었다. 다시 그곳을 찾을 때는 모든 사람을 충격에 몰아넣을 생각이었다.
‘그때는 모든 대천존의 눈길을 사로잡겠다. 이제 동주의 동림종 동림지에 가봐야겠군. 동부계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지 확인해보자고!’
자리에서 일어난 한제의 두 눈이 밝게 번득였다.
‘그다음에 천존열 시험장을 찾아가 몇 번째 궁전까지 관통할 수 있을지 보는 거야. 그리고 대천존 중 하나를 택해 중주 황성으로 떠나면 돼. 그곳에서의 일을 끝낸 후에는 선족 구역을 떠나 스승님을 찾아간다!’
그는 몸을 훌쩍 날려 소나무 안에서 사라져 동주로 향했다.
‘나는 점점 강해지고 있다. 완아, 내가 대천존이 되는 날, 내 손으로 너를 되살리겠다. 조금만 더 기다려 줘. 조금만 더…’
한제의 두 눈은 더없이 부드러워졌다. 추억과 함께 부드러운 빛에 담긴 것은 남녀의 애정이 아니라 수천 년을 이어온, 후회 없는 집착이었다.
★ ★ ★
동주 북쪽에는 대성(大聖)이라는 이름의 주가 있다. 매우 외진 곳에 있는 이 주는 심지어 천우주보다 훨씬 더 황량했지만 이는 수련자들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수많은 일반인이 살고 있는 이곳은 토질이 훌륭해 농작물이 잘 자랐기 때문에 이들의 삶은 상당히 풍족한 편이었다.
또한 이곳에서는 오랜 세월 선인에 관한 많은 소문이 돌았기에 일반인들도 그들을 숭배했고 공손하게 굴었다. 물론 선인이 되고 싶어 하기도 했다.
허나 이 주의 종파 제자들은 외출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어쩌면 이는 이 주의 최고 종파인 동림종 때문인지도 몰랐다. 대부분의 선인은 매우 신비로웠고 그래서 일반인들은 더욱 그들을 우러러보고 숭상했다.
동림종은 그 특유의 신비로움 때문에 동주 9종 13문에서는 낮게 평가됐다. 동림종 제자 중 외부 활동을 하는 이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대성주 상공. 구름이 가득한 이곳에서 맑고 파란 하늘을 보기는 쉽지 않았다. 하늘에 구름이 잔뜩 떠 있는 것은 이곳에서 일상이었기에 일반인들은 맑은 하늘이 보이면 오히려 신기해했다.
이 대성주 안의 어느 일반인 도시 밖에는 1백 명에 달하는 이들이 공손하게 서 있었다. 이들을 이끄는 것은 화려한 복장의 노인 서너 명이었는데 병들어 허약한 상태임에도 정신력만은 강인해 보였다. 이들은 하인들의 부축을 받으며 거의 두 시진 째 이곳에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짜증스러워 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상황 자체가 영광이라는 듯, 기대에 가득찬 얼굴이었다.
그러나 기다림의 시간은 점점 길어져 어느새 또 한 시진이 지나면서 정오에 이르렀다. 따가운 햇살 때문에 바람이 불어와도 무척 더웠다.
몇몇 사람은 더 이상 견디지 못했고 뙤약볕 아래 몇 시진을 서 있으려니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무리의 앞쪽에 서 있던, 상점 주인 같은 한 중년 사내가 하인을 시켜 가져오게 한 얼음을 이마에 얹고도 볼멘소리를 했다.
“대선께서는 혹시 이곳에 오시는 것을 잊으신 것 아닙니까? 닭이 울기 시작한 무렵부터 기다렸으니 벌써 세 시진이 다 되어 가는데…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한다는 겁니까?”
“닥쳐라! 대선께서 오시지 않는다 해도 이는 우리가 응당 해야 할 일이다! 기다리기 싫다면 가거라! 누구도 네게 기다리라 한 적 없다!”
중년 사내의 투정에 앞에 서 있던 병약해 보이는 노인이 고개를 홱 돌리며 일갈했다. 이에 중년 사내는 얼른 아첨하듯 웃어 보였다.
“흥! 대선께서는 분명 오실 것이다. 나와 내 벗들의 오랜 간청에 이를 불쌍히 여기신 대선께서 직접 약속하신 일이야! 이 나이를 먹은 나도 공손히 기다리고 있거늘, 포목점 주인에 불과한 네놈이 감히 투덜거려? 대선을 분노케 했다가는 네 가족 모두 이 도시에서 쫓아낼 것이다!”
자신을 매섭게 노려보는 노인의 눈빛에 중년 사내는 하인으로부터 얼음을 쌌던 손수건을 뺏어 들곤 이마를 닦아냈다.
“선량하신 대선께서는 대성주 안을 돌아다니며 수련을 하시는 데 시간을 아끼지 않으시지. 우리 대성주에 그분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있겠느냐? 소문으로는 임 마을의 초청을 받아 방문하셨을 때 일곱 명이나 되는 어린아이를 선택하셨다더군!
그중 세 명은 다시 돌아왔지만 나머지 넷은 종파에 들어갔다! 선인이 되기만 하면 그 가족까지 탄탄대로를 걷는 법! 내 손자 녀석이 종파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난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곁에 있던 다른 노인이 잔뜩 흥분한 채 중얼거렸다.
“임 마을에 이원외라고 내 친구 녀석 있잖은가. 그때 선인께서 그 집에 머물면서 녀석의 손녀를 마음에 들어 했다는 거야. 다만 벌써 스무 살이 다 된 처녀였지. 그 나이에는 종파에 들어갈 수는 없다던데 이원외가 간곡히 애원했더니 대선께서는 그 손녀 역시 데리고 가셨다더군!”
사방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순간 부럽다며 웅성대기 시작했다.
이들이 더위조차 잊은 듯 흥분해 떠들고 있던 때였다. 돌연 한 줄기 음산한 바람이 저 멀리서부터 휙 불어왔다. 그러자 더위가 순식간에 식는 것을 느끼며 1백 명에 달하는 이들은 화들짝 놀라 일제히 바람이 불어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하늘 끄트머리에 수백 척 정도 되는 붉은색 우산이 나타났다.
거대한 우산 밑에는 금색 도포를 입은 네 명의 사내가 보라색 대나무 의자 하나를 떠받치고 있었다.
네 명의 사내는 옥병을 비롯해 온갖 보석을 하나씩 들고 있는 10여 명의 동자들에게 둘러싸인 상태였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보라색 의자 위에는 백발노인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하얀 도포와 성성한 백발, 갓난아이처럼 부드럽고 매끈한 피부, 밝은 빛이 번득이는 두 눈. 보통 사람과는 명확히 구별되는, 선인의 느낌이 흐르는 노인이었다.
“선인이다!”
“대선이시다!”
“금 대선이다!”
모여 있던 1백여 명의 일반인은 노인을 보자마자 감격했다. 하인의 부축을 받고 있던 노인들은 바닥에 철퍼덕 꿇어앉았고 주위의 다른 사람들도 분분히 무릎을 꿇었다.
“금표 대선께서는 일반인도 선인이 되게 해주신다! 금표 대선께서는 단약을 내려주신다! 금표 대선께서는 너희들의 아이가 선인이 될 수 있게 해주신다!”
대나무 의자를 받쳐 든 네 명의 사내가 허공에 멈춰선 채 입을 모아 낮게 외쳤다. 목소리가 마치 하나처럼 딱딱 맞아떨어지는 것을 보면 수없이 연습을 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들이 외치는 소리가 널리 퍼져 나갔다.
“금표 대선께서는 불후의 선인이시다! 금표 대선께서는 이 세상의 산이시다! 금표 대선께서 이곳에 재림하셨다!”
네 명의 사내에 뒤이어 그들을 둘러싸고 있던 동자들도 앳된 목소리로 입을 모아 외쳤다. 그들의 목소리 역시 하나처럼 완벽하게 맞아 떨어졌다.
의자에 앉은 노인의 얼굴은 자애로워 보였고 그 너머로 한 줄기의 위엄이 어려 있었다. 그는 무릎을 꿇은 채 자신을 숭배하고 있는 일반인들을 바라보다가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하늘과 땅의 기색이 변하고 바람과 구름이 몰아쳤다. 덕분에 거의 항상 하늘을 뒤덮고 있던 구름이 사라지고 맑은 하늘이 드러났다.
“선인의 권능이다!”
일반인들은 경외심으로 마음이 벅차올랐다.
뒤이어 의자 위의 백발노인은 의기양양한 눈빛으로 만족한 듯 웃었다.
그는 지난 오랜 시간, 일반인은 물론 진정한 선인들까지 속여 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에게는 해야만 하는, 그것도 완벽하게 해내야만 하는 일이 있었다. 이는 자신만의 엄격한 규칙이기도 했다.
노인이 하늘을 향해 왼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파란 하늘에서는 호화로운 궁전이 나타났다. 그것은 허상일 뿐이었지만 햇빛과 파란 하늘 아래 마치 선궁(仙宮)처럼 보였다. 심지어 그 궁 안에서는 몇 마리 두루미가 춤을 추듯 노닐면서 대지를 향해 맑은 바람을 일으켰다.
궁전에 매료된 일반인으로서는 저 먼 곳, 의자 위의 노인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는 사실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하늘에 허상의 궁전을 소환한 것이 그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인 듯했다.
“선인이 되기만 하면 그들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탄탄대로를 걷게 되어 있다!”
의자 위의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두 팔을 휘두르며 외쳤다. 그의 목소리에 대지에 꿇어앉아 절을 올리고 있던 일반인들도 잔뜩 흥분해 외쳤다.
“선인이 되기만 하면 그들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탄탄대로를 걷게 되어 있다!”
하늘에 떠 있던 보라색 대나무 의자는 이내 천천히 대지로 내려왔다.
백발노인이 웃음을 머금은 채 걸어오자 무릎을 꿇고 있던 일반인들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중 가장 앞에 있던 몇몇 노인들은 감격한 눈으로 전방의 노인을 바라보았다.
“금표 대선을 뵙습니다!”
“금표 대선을 뵙습니다!”
“그래, 언제나 관대한 내게 이렇게까지 예를 차릴 필요는 없다. 시간이 넉넉지 않으니 사흘만 머물 것이다. 그 안에 자손들을 데리고 와라. 선인이 될 재목들을 골라 데려갈 것이다.”
백발노인의 목소리는 부드럽고도 따스했다. 목소리에서마저 선인의 느낌이 짙게 풍겨나왔다.
잔뜩 흥분한 일반인들의 모습은 이미 노인에게 익숙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 금표자 예닐곱 살 무렵 마을을 떠나 본격적인 사기의 길에 오른 이래 점점 많은 이들을 속여 왔다. 나는 스승 없이도 천부적인 사기 능력에 통달했고 어느 종파에 들어가지 않고도 스스로 수련을 했지!
나 같은 사람은 온 세상을 통틀어도 매우 드물다. 온갖 노력 끝에 여기 온 데는 이유가 있지. 대성주 사람들은 순진하고 선인이 되기 위해 목을 맨다. 나 같은 사람에게는 보물창고 같은 곳이지. 후후.’
노인은 끊임없이 허리를 조아리는 일반인들을 둘러보며 생각했다.
‘게다가 이곳에는 아직 나와 같은 사기꾼이 발을 들인 적이 없다. 그저 선인이 되기만 하면 그들만이 아니라 가족들까지 탄탄대로를 걷게 된다는 말만 하고 다녀도 충분한 수확을 거둘 수 있겠어!’
노인은 웃음을 머금은 채 일반인들의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도시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