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477
기만
대성주 어딘가의 허공. 파문이 일더니 한제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이 바로 대성주구나! 동림종이 있는 바로 그곳!”
“동림종은 9종 13문 중 언제나 비밀스럽고 신비로운 곳이었어. 그 안에는 과연 천존이 있을까?”
거북이 등껍질이나 옥패에서도 동림종에 관한 정보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종파의 제자들이 좀처럼 밖으로 나오지 않기 때문일 터였다.
“9종 13문에 포함되어 있는 만큼 범상치 않겠지. 허나 그곳에 천존이 있다 해도 문제될 것은 없어.”
한제는 곧장 신식을 사방으로 뻗었다. 뒤이어 지도를 따라 동림종이 있는 곳으로 향하려던 그는 갑자기 흠칫 놀란 듯 우뚝 멈춰 섰다. 수만 리 떨어진 어느 일반인 도시에서 익숙한 파동을 느꼈기 때문이다. 당시 환생을 택한 모든 이들에게 남긴 봉인의 파동이었다. 허나 당시의 봉인을 한꺼번에 부착하느라 누구의 것인지는 구분되지 않았다.
“과연 누굴까?”
한제는 미소를 지었다. 낯선 이곳에서 동향을 만날 수 있다니, 그게 누구라도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한제는 곧장 동림종으로 향하는 대신 몸을 훌쩍 날려 봉인의 파동이 느껴지는 일반인 도시로 향했다.
순식간에 1만 리를 이동한 그의 눈앞에 거대한 도시가 나타났고 그곳에 가까워질수록 봉인의 파동은 강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내 그는 성문 안의 인파 중 한 백발노인을 보게 됐다. 그리고 의기양양한 표정의 그 노인을 본 순간, 한제의 표정은 기이하게 구겨졌다.
만약 봉인의 파동이 없었다 해도 한제는 저 노인을 본 순간 그 정체를 간파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익숙한 얼굴이었던 것이다.
“유금표!”
한제는 이내 껄껄대며 웃었다.
“유금표는 당시 기만책을 스스로 깨달았지. 환생을 거쳐 얻은 새로운 인생에서도 같은 길을 가고 있을 줄이야⋯⋯.”
한제는 의기양양해 하는 유금표와 매우 공손한 태도로 그를 모시는 일반인들을 보는 순간 실소를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일반인들을 속이고 있군. 동부계에서는 수련자들까지 속이고 다녔던 그가 왜 이곳에서는 일반인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고 있는 거지? 보아하니 결단기 수준에 이르러 있는 듯한데 대체 무슨 수작일까?”
상황을 살피던 한제는 곧장 찾아가 유금표의 기억을 일깨우는 대신 잠시 상대가 어떻게 사기를 치는지 지켜보았다.
한편, 유금표는 돌연 심신이 진동하며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동시에 알 수 없는 불길함도 느껴졌다. 영혼으로부터 피어오른 듯 너무나 갑작스러운, 처음 겪는 느낌에 그는 신중하게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한제가 마음만 먹는다면 유금표는 평생 그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이상하군. 왜 갑자기 그런 느낌이 들었지? 꼭 잘못을 저지른 어린아이가 부모 앞에 선 느낌이었어. 하지만 뭐, 착각이겠지.’
유금표는 불길함을 억지로 눌렀다. 다행히 그 느낌은 금세 사라졌다.
도시에 들어온 뒤로 사흘이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갔다. 이 사흘 동안 수많은 유명인들이 자손들을 데리고 유금표를 찾아왔다.
유금표는 그때마다 자애로운 눈빛으로 아이들을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그리고 나흘째 되는 날, 이 도시를 떠난 유금표의 곁을 새로이 따르게 된 아이는 다섯 명이었다.
세 명의 사내아이와 두 명의 여자아이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아이는 열세 살이었고 가장 어린아이는 여덟 살이었다.
수많은 이들의 배웅을 받으며 의자에 올라탄 유금표는 아이들을 데리고 곧장 하늘로 날아올랐다.
한제는 이런 유금표의 행동을 면밀히 지켜보고 있었다.
‘유금표 이 녀석,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재물을 갈취하는 게 아니라 수련자의 기질이 약간 있는 아이들 다섯만 데리고 떠나다니⋯⋯. 더구나 저 아이들은 어느 종파에 들어갈 만한 정도의 자질은 아니야! 유금표, 만약 악의를 품고 있는 거라면 내 절대 용서치 않을 것이다!’
한제는 조용히 유금표를 추격했다.
한편, 의자에 앉아 하늘을 가르며 나아가는 유금표의 얼굴에는 희색이 만연했다. 수시로 다섯 아이를 둘러보는 그의 눈에는 묘한 흥분이 어려 있었다.
‘저 도시에서 적합한 아이를 다섯 명이나 발견하게 될 줄이야! 아주 좋아. 한몫 단단히 챙길 수 있겠어! 하하하!’
그런 유금표의 시선에 다섯 아이는 긴장감과 기대감을 동시에 느꼈다. 이들은 종파에 들어가 선인이 되기를 갈망했다. 이는 아이들의 꿈일 뿐만 아니라 이들의 부모와 친척들의 꿈이기도 했다.
며칠 뒤, 이들은 대성주의 어느 산맥에 도착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유금표는 엄숙한 얼굴로 주위의 시종들을 바라보았다.
“너희들은 이곳에서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라.”
그의 의자를 떠받친 네 명의 사내와 주위의 동자들은 일제히 예 하고 대답했다. 네 사내는 축기기, 동자들은 대부분 연기기 수준이었으며, 그들 대부분은 유금표에게 가르침을 받고 각자 수련하는 중이었다.
유금표는 다섯 아이를 데리고 눈 깜짝할 사이 사라졌다.
한제는 약간 어두워진 얼굴로 유금표의 뒤를 밟았다.
검은 바람이 된 유금표는 어느 구석진 산골짜기에 이르렀다. 크지 않은 산골짜기에는 동굴이 몇 개 있었는데 유금표는 그중 한 곳에서 다섯 아이를 마주한 채 가부좌를 틀었다. 뒤이어 그는 엄숙한 얼굴로 다섯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의 그런 눈빛에 아이들은 얼굴이 창백해졌고 울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훌륭하구나. 사실 내 너희 가족 앞에서 했던 말은 사실이 아니다. 너희에게 수련자로서의 자질은 없어. 그런데도 내가 너희들을 선택한 것은 너희들의 강한 의지 때문이다! 사실 선인이 되는 데 수련자로서의 자질을 갖추지 못한 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굳은 의지야!”
다섯 아이는 긴장한 얼굴로 유금표를 바라보았다.
한제는 조용히 이 광경을 지켜보며 이어질 유금표의 말을 기다렸다.
‘유금표, 수련자들을 속이는 거야 그렇다 쳐도 이 아이들을 속인다면⋯⋯ 난 크게 실망할 것이다!’
한제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는 사기꾼이다!”
이때 유금표가 불쑥 말했다.
그 말에 다섯 아이는 흠칫 놀라더니 멍한 얼굴로 유금표를 바라보았다. 놀라기는 한제도 마찬가지였다.
“난 사기꾼이야. 너희 가족을 속이고 너희들을 이곳으로 데려왔지!”
유금표는 변함없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충격적인 고백에 아이들은 그저 멍하니 유금표를 바라볼 뿐이었다.
“하지만⋯⋯.”
유금표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난 너희들을 대성주 내 종파에 들여보내줄 수 있다. 너희가 선택하기 나름이야. 일단 말해두겠는데 너희 자질로는 그 종파의 시험을 통과할 수 없어. 대성주 내의 종파에서는 너희들을 받아주려 하지 않을 거다. 너희에게는 시간조차 낭비하지 않으려 하겠지. 거짓말이 아냐.”
유금표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곁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한제는 생각에 잠겼다. 유금표의 말이 사실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저 아이들의 자질로는 선족 종파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 방법이 있다. 그 빈약한 자질을 숨기고 너희를 시험할 수련자를 속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너희들의 자질을 뛰어나 보이게 만들 방법이! 허나 그렇게 꾸며낸 자질은 거짓이다.
종파에 들어간 뒤에 훌륭한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면 다른 이들에게 들킬 수도 있어. 그렇다고 죽거나 종파에서 쫓겨나지는 않겠지만 잊혀지게 되겠지. 수련자가 되는 데 중요한 건 자질이 아니라 의지라고 말한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유금표는 다섯 아이를 하나하나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나는 너희를 자질이 뛰어난 아이들로 위장시켜 종파에 들여보내주는 대신 내게 필요한 것들을 좀 얻을 생각이다. 자질이 뛰어나 보일수록 종파에 들어가자마자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을 테고 그 대가로 내가 받을 수 있는 물건의 질도 더 좋아지겠지? 허나 그럴수록 거짓이 밝혀질 가능성도 커진다.”
유금표는 짐짓 심각한 얼굴로 잠시 말을 끊었다.
“내가 너희들을 도울 수 있는 건 종파에 들어갈 때까지다. 그 후부터의 모든 것은 너희들이 알아서 해내야 하지. 그 중간에서 내가 어느 정도의 이익을 취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생각해봐라. 원치 않는다면 관련된 기억을 지우고 너희를 가족들 곁으로 돌려보내주마. 허나 어떻게든 종파에 들어가기를 원한다면 너희 자질을 훌륭, 우수, 평범, 이 셋 중 어느 정도로 위장해줬으면 좋겠는지 선택하면 돼.”
유금표의 말에 아이들은 고민에 빠진 듯했다.
“제안을 하나 하자면 평범을 택했으면 좋겠구나. 나름 오랫동안 준비해온 장사인데 너무 많이, 너무 빨리 들켜버리면 앙심을 품은 종파에게 쫓길 수도 있거든.”
말을 마친 뒤 오른손으로 허리께를 두드린 유금표는 저물대에서 땅콩을 꺼내 껍질을 까서 먹기 시작했다.
한제는 그런 유금표를 보며 쓰게 웃었다. 유금표의 기만책은 전생에서보다 더욱 발전되어 있었던 것이다.
다섯 아이 중 세 명은 겁을 먹은 채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했지만 여자아이 하나는 평범을 사내아이 하나는 고집스럽게도 우수를 택했다.
유금표는 우수를 택한 사내아이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이곳에 데려온 다섯 아이 중 자질이 그나마 가장 뛰어나고 의지도 굳었지만 그리 부유하지 않은 집안 출신의 아이였다. 그저 운이 좋게 유금표의 눈에 들었을 뿐.
이내 고개를 끄덕인 유금표는 세 아이의 기억을 지우고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세 아이는 산맥 밖, 시종들이 기다리고 있던 곳으로 날아갔다.
유금표는 시종들에게 세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가족들에게는 아이들이 종파 입문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다고 이르라 전했다.
한제는 유금표가 두 개의 자홍색 약초를 꺼내는 것을 보았다. 색은 비슷했지만 하나는 짙었고 하나는 옅었다.
두 아이의 미간에 각각 하나씩 얹자 약초에서는 곧 기이한 향이 풍겼다. 범상치 않은 약초인 듯 두 아이의 이마로 녹아들더니 피부 아래로 어렴풋한 그물을 형성해 퍼져 나갔다.
한제는 그 약초로부터 옅은 생기를 느낄 수 있었다. 미약했지만 꽤나 순수해서 부상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다만 치유 효과를 제대로 보려면 적어도 만 개 이상은 있어야 할 듯했다.
생기가 이토록 옅음에도 순수한 이유는 그 안에 차 있는 선기로부터 기인했기 때문이다.
한제로서는 난생처음 보는 약초였다. 선강 대륙에서 제법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경험과 견문을 넓히고 약재에 대한 정보가 실린 옥패들을 보았으나 저 약초와 비슷한 것도 본 기억이 없었다.
어쨌든 저 약초들이 두 아이에게 결코 나쁜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임은 분명했다. 오히려 더 건강하게 해주고 자질에도 변화를 줄 터였다.
사내아이와 융합된 짙은 약초는 피부 아래 그물 모양의 맥을 형성한 뒤 아이의 진정한 자질을 몸속 깊숙이 숨기고 우수한 자질로 꾸며냈다.
한제의 수준으로는 그 속임수의 실마리를 눈치챌 수 있지만 두 번째 단계의 수련자라면 거의 알아차리기 힘들 것이다. 세 번째 단계 수련자라도 자세히 들여다봐야만 이상한 점을 알아차릴 수 있을 터였다. 그물 모양으로 형성된 약초의 맥은 아이와 완전히 융합해 그 안에 담긴 선기로 원래의 자질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제는 이 광경에 약간 충격을 받고는 얼른 여자아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 아이 역시 본래의 자질보다 훨씬 높아져 평범한 자질을 보이고 있었다.
주인님
범상치 않은 자홍색 약초를 보며 놀란 한제는 속으로 혀를 찼다.
‘놀라운 물건이로군. 한데 유금표, 이런 사기가 발각되면 죽음을 면치 못할 텐데⋯⋯?’
한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선강 대륙에는 선인들의 종파가 매우 많고 세 번째 단계 수련자도 적지 않다. 유금표가 대성주를 완전히 떠나기 전에 그의 사기 행각이 발각될지 어떨지는 오직 운에 달린 셈이다.
‘그래도 제법 신중하게 모든 아이에게 강제하지는 않았군. 하긴, 싫다는 아이에게 공연히 강요해봐야 발각될 가능성만 커질 테지.’
한제는 유금표를 힐끗 보고는 쓰게 웃었다. 지금 유금표는 상당히 만족스러워 하고 있었다. 두 아이를 향한 그의 눈에서는 밝은 빛이 번득였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두 아이를 데리고 한 줄기 검은 바람이 되어 곧장 남쪽으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금표의 전방에는 구름에 휩싸인 산봉우리가 나타났다. 산세가 험준해 언제나 구름과 안개에 가려져 있었고 그 안에서는 수시로 흉수들의 포효가 울려 퍼졌다.
‘대성주에서는 여러 종파를 방문했으니 이제 떠날 때가 됐군. 이번 일을 마무리하면 변장하고 속히 다른 곳으로 가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