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483
뜻밖의 대답에 한제는 어이가 없었다. 몽도를 몇 차례 발휘해본 결과 한 번 꿈에 빠질 때마다 제법 오랜 시간을 보낸 뒤에야 다시 눈을 떴기 때문이다.
머릿속에서는 몽도를 통해 보았던 광경과 흐릿한 인영이 떠올랐다. 상대의 생김새는커녕 심지어 윤곽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기억하는 것이라고는 그저 한 사람이 나타났다는 것뿐이었다. 허나 골똘히 생각할수록 그마저도 흐릿해져갔다. 자신이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다.
순간, 한제는 심신을 바르르 떨었다.
‘만약 내가 꿈에서 보았던 것이 사실이라면 그는 대체 누굴까?’
방금 전의 그 극심한 고통과 정신을 차린 뒤 느껴졌던 허약함을 떠올렸다. 처음 겪는 일이었다. 마치 그 순간 죽음을 맞이했던 것 같은 느낌. 심지어 삼명술로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진정한 죽음을⋯⋯.
한참 뒤에야 안색이 돌아온 한제는 제자리에 앉아 동림종을 바라보았다.
‘언젠가는 이곳에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되겠지!’
눈을 번득이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동림지로 들어서더니 가부좌를 틀었다. 얕은 물은 허리께에도 이르지 못했지만 서늘함만은 체내로 스며들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신 한제는 동림종의 비밀에 대한 생각을 접고 마음을 가라앉힌 뒤 온몸의 수준을 가동시키며 스스로를 연못과 융합시켰다.
예전에도 경험한 적 있는 느낌이었지만 진짜 동림지와 융합한 순간 한제는 기이한 상태로 빠져들었다. 이는 스스로 창조한 신통술인 잔야를 발휘할 때의 상태와 비슷했다. 지금은 연못의 물에 담긴 기이한 힘을 빌려 억지로 그러한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이 차이였다.
한제는 혼란스러워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기도 찰나의 순간에 불과한 시간이 흐른 것 같기도 했다.
두 눈에 담긴 혼란의 빛은 잠시 후 가라앉았다. 연못의 물은 3할 정도 더 줄어든 상태였다.
“주인님, 이번에는 셋을 셀 동안 눈을 감고 계셨습니다.”
묻기도 전에 곁에 있던 유금표가 설명하자 한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패인가?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어.’
한제는 미간을 찌푸렸다.
‘동림종 선조는 동림지와 대성주에 봉인된 천외 수련자의 혼이 연관되어 있다고 했어. 이곳에는 천외 수련자의 특수 본원을 깨우칠 수 있는 것이지. 허나 난 그의 본원이 무엇인지도 보지 못했다. 첫 번째 시도는 실패야. 동림지에 들어갈 기회는 단 두 번뿐이라고 했지. 어째서 세 번째 시도에서는 폭발해 죽고 마는 걸까? 그 이유를 알아낸다면 더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을지도…’
생각에 잠겨 있던 한제는 다시 두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방금 전 기이한 상태로 진입하게 된 한제는 이번에도 혼란에 빠졌다. 눈앞의 모든 것이 흐릿해지고 이성도 흔들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 그는 한 줄기 기이한 힘이 외부로부터 자신의 체내로 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다만 그것을 붙들 방법은 없어 보였다.
★ ★ ★
얼마나 지났을까. 한제는 혼란 속에서도 왼쪽 눈으로 한 줄기 빛을 보았다. 너무도 미약해 자세히 봐야만 보일 정도였지만 그 빛은 순식간에 한제의 심신을 모조리 흡수해버렸다. 그러나 이 빛은 오직 왼쪽 눈으로만 볼 수 있었고 오른쪽 눈의 시야는 여전히 흐릿했다.
이 기이한 변화에 한제는 심신이 진동하는 것을 느끼면서도 여전히 왼쪽 눈을 통해 보이는 빛에 집중했다. 허나 빛은 아주 멀리 있었고 그 정체를 미처 파악하기도 전에 다시 깨어나고 말았다.
유금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님, 이번에는 다섯⋯⋯.”
한제는 먼 곳을 내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머릿속에는 방금 전 왼쪽 눈을 통해 보았던 빛만이 계속해서 맴돌았다.
‘왼쪽 눈으로는 볼 수 있는데 오른쪽 눈으로는 보이지 않았어. 동림지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한 곳이군.’
고개를 숙인 한제는 연못의 물이 이제 3할도 채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연못의 물을 다 써버리기 전에 그 빛이 다시 나타날까? 게다가 난 이미 두 번의 기회를 다 써버렸는데…’
한제는 고민에 잠겨 있다가 오른손을 휘둘러 금존 수준의 해룡을 소환했다. 녀석의 크기는 원래보다 한참 줄어든 상태였다.
해룡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악의가 가득한 눈빛으로 유금표를 바라보며 낮게 포효했다. 표정은 언제나처럼 고고했다.
유금표는 찬 숨을 헉 들이마셨으나 무슨 생각을 하는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한제는 유금표를 내버려둔 채 해룡에게 신식으로 명령을 내렸다. 뭔가 이상한 낌새가 보인다면 곧장 자신을 구해달라는 명령이었다. 뒤이어 그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연못과 융합하여 그 기이한 상태에 진입하려는 순간, 돌연 엄청난 배척력이 한제의 체내에서 응집돼 심신에서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광기와 불만이 가득한 포효였다.
“연운결, 이 비열한!”
한제의 심신에서 급속도로 울려 퍼지는 소리는 천둥과 같은 굉음이 되어 온몸을 진동시켰다. 급기야 심신이 다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느낌까지 받았다.
한제는 기이한 상태에 진입할 수도 깨달음을 얻기 위해 집중할 수도 없었다.
바로 그때, 돌연 한 줄기 강력한 힘이 외부로부터 전달되었다. 이 힘은 거대한 갈퀴처럼 한제를 잡아채 동림지 밖으로 빠르게 끌어냈다.
연못 밖으로 나오자 심신에 울리던 목소리는 점차 줄어들다가 사라졌다. 그제야 눈을 떠 연못을 바라보는 한제의 안색은 무척 어두웠다.
‘역시 동림종 선조가 말했듯 세 번째 시도는 불가능한 것인가? 연못 밖으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힘을 들여야 했어.’
한제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연못의 물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방금 그 소리, 연못에 들어갔을 때 내 체내로 전달되었던 기이한 힘이 응집된 뒤에 일어났어. 그 기이한 힘은 그전에 내 체내를 한 바퀴 돌았고⋯⋯. 그렇게 한 번 돌면서 내가 동림지에 몇 번 들어왔는지를 확인하는 건가?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시도 횟수를 파악하는 거지? 그리고 연운결이라는 자는 대체 누굴까? 연씨라면 혹시 연도비의 조상인가?’
한제는 번득이는 눈으로 연못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고민했다. 연못의 물은 천천히 차올라 방금 전 사라진 양을 거의 다 회복한 것 같았다.
“금표, 네가 시도해 봐라.”
유금표가 세 번의 시도를 하더라도 그의 안전을 보장할 자신이 있었던 한제가 불쑥 말했다. 그러자 유금표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더니 연못 안에 가부좌를 틀었다.
넷을 셌을 때, 유금표가 두 눈을 번쩍 떴다.
“한 줄기의 빛을 봤습니다!”
중얼거리던 유금표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섯을 셀 때까지 버티다가 눈을 떴다. 그 순간, 그의 왼쪽 눈에서 한 줄기의 빛이 번쩍 발산되었다가 빠르게 사라졌다.
“빛과의 거리는 매우 가까웠지만 만질 수는 없었습니다.”
유금표는 잠시 고민하다가 또 다시 눈을 감았다. 한제가 지시한 대로 세 번째 시도를 하기 위해서였다.
한제는 그런 유금표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리고 열을 셌을 때, 유금표는 바르르 경련하기 시작했다. 한제는 즉시 손을 뻗어 그를 연못 밖으로 끌어냈다.
유금표는 바들바들 떨면서 눈을 떴는데 왼쪽 눈에서는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한제가 보기에는 마치 태양처럼 느껴질 정도로 강한 빛이었다.
“그 한 줄기 빛과 접촉한 순간, 심신에서 무슨 목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제게 그 빛의 이름을 알려주는 것 같았어요. 그것은 태초의 본원, 만물의 시초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 수준이 부족한 탓에 아주 약간만 깨달을 수 있었을 뿐, 그것을 감당할 수는 없었지요.”
유금표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동림지를 바라보았다.
“주인님, 제 생각에는 제가 세 번째 시도에서 그 빛을 만질 수 있었던 것은 기만책 덕분인 것 같습니다. 저는 그 순간 스스로를 속이면서 이건 첫 번째 시도일 뿐이라고 끊임없이 되뇌었지요. 그렇게 저 연못을 속인 겁니다. 제가 도와드릴까요? 이번 생에서 얻게 된 기만책으로는 남을 도울 수 있게 됐거든요.”
유금표가 환하게 웃으며 제안했으나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자신도 기만책을 알고 있을뿐더러 몽도를 통해 얻은 깨달음도 있으니 굳이 유금표의 도움이 필요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곧바로 한 걸음 내딛어 연못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연못 안의 힘을 전달받은 순간, 연못을 속이고 다시금 그 기이한 상태에 접어들었다. 네 번째 시도였다.
곧 그는 왼쪽 눈으로 한 줄기 빛을 보게 됐다. 그 빛은 점점 가까워졌다.
태초와 묵멸
“나는 온 세상을 주유하며 수많은 아침 해의 변화를 관찰하고 태초의 본원을 깨달았다.”
한제의 심신 안에서 혼잣말을 하는 듯한 묵직한 목소리가 나타나 맴돌았다.
그 목소리가 심신에 울려 퍼짐과 동시에 한제의 왼쪽 눈에서 나타난 빛이 점점 밝아졌다. 거의 온몸을 뒤덮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빛에 뒤덮인 한제는 태초의 본원에 대한 깨달음을 점차 얻어가기 시작했다.
이는 전승(傳承)이 아니었다. 완전한 태초의 본원이 한제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중 얼마나 볼 수 있는지,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는지는 개인에게 달린 것이다.
어떤 사람은 처음으로 그 빛을 보자마자 약간의 깨달음을 얻고 태초의 본원을 마음속에 새기거나 동림지를 떠날 무렵 마음속 깊은 곳에 태초의 본원의 싹을 틔웠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이전의 한제처럼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그저 지닌 바 본원만 약간 강화하는 데 그칠 뿐이었다.
“아직 부족해.”
한제는 두 눈을 번득이며 다섯 번째로 눈을 감았다.
또다시 기만책을 통해 연못을 속인 한제는 순식간에 눈앞에서 번득이는 무궁무진한 빛을 목격했다.
“태초의 본원은 허무에서 태어났다. 그 옛날, 선인이 존재하기 전, 옛사람들은 태양을 숭배하며 태양의 광열을 얻고자 했다. 그렇게 나타난 태초의 힘은 현묘했다. 그것은 옛사람들이 태양을 숭배한 끝에 얻어낸 첫 번째 힘이자 첫 번째 태양이 나타났을 때 탄생한 힘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기이한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태초의 힘은 점차 변화했으며, 세상의 운행 규칙에는 태초의 규칙이 생겨났다.
태초의 규칙은 태양을 뜨고 지게 했다. 허나 내 관찰에 따르면 태양이 뜨고 지는 것을 깨닫는 것은 마음의 결과다. 마음이 움직이면 대지가 움직이고 하늘이 움직이며, 그래야 움직이지 않는 태양도 가라앉았다가 떠오른다.
난 계속해서 뜨고 지는 태양을 관찰했다. 그리고 태초의 본원의 시초를 깨닫게 되었다. 태초의 본원은 모든 광열의 시작이다.”
그 목소리에 집중하던 한제는 왼쪽 눈으로 본 빛이 자신을 완전히 뒤덮는 것을 느꼈다. 이어서 그는 그 목소리와 빛에서 떠오른 태양의 수억만 번에 걸친 변화를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변화를 거듭하는 태양 속에서 한제는 한 줄기 굳세고 도도하며 올곧은 기개를 느꼈다. 태초의 기운이자 강직하고 굳건한 존재였다.
오랫동안 이런 태양에 집중한 사람이라면 그 성격도 정의로울 터였다. 언제나 꼿꼿하고 당당하지는 못하더라도 스스로 돌아보았을 때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한참 뒤, 한제는 두 눈을 떴다. 왼쪽 눈에서 발산되던 빛은 열을 셀 때까지 번득인 후에야 차차 흩어져 사라졌다.
유금표는 그 빛에 심신이 진동해 감히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금존 수준의 해룡 역시 그 빛을 슬금슬금 피했다.
한제의 왼쪽 눈동자는 그 빛 덕분에 마치 태양 같았다. 허나 그 빛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는 눈동자 역시 본래대로 돌아왔다.
‘태초의 힘… 낯설지가 않다. 잔야는 태초의 힘을 발휘하는 신통술이지. 깨달음을 얻어갈수록 태초의 규칙을 조금씩 파악해나갈 수 있게 됐고 이제 잔야에 신념을 담기까지 했다. 한데 이 태초의 힘으로 본원을 생성할 수 있을 줄은 몰랐군. 본원은 사실 손짓 한 번으로도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만큼 신비롭고 오묘한, 모종의 존재에 대한 이해와 깨달음이야.’
한제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여섯 번째 시도에 나섰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고 한제가 기이한 상태에 침잠된 채 보내는 시간은 점점 길어졌다.
다음 날 동이 터오기 전, 사방이 어둠으로 뒤덮였다.
동림지 안에 가부좌를 틀고 있던 한제가 두 눈을 번쩍 뜬 순간, 그의 왼쪽 눈은 강력한 빛을 발산했다. 해가 뜨려면 아직 2각 정도 더 있어야 했으나, 한제의 왼쪽 눈에서 발산된 강력하고 눈부신 빛은 태양 대신 2각이나 일찍 어둠을 몰아냈다.
“태초의 본원을 깨닫는다는 건 태양의 떠오름을 통제할 수 있다는 뜻이로군! 스스로를 태양으로 삼아 어두운 밤과 밝은 낮을 실제로 뒤바꿀 수 있는 거야! 잔야술은 그저 일종의 신통술에 불과하지만 태초의 본원 덕에 허상을 진실로 바꾸고 진짜 태양을 대신할 수 있게 됐어!”
한제의 왼쪽 눈에서 번득이는 빛은 점점 짙어져 그의 온몸을 뒤덮었다. 멀리서 보면 진짜 태양처럼 보일 정도였다.
한편, 유금표와 해룡은 뒤로 물러나 감히 가까이 다가올 엄두도 내지 못했다. 온몸이 빛에 뒤덮여 태양이 된 한제는 천천히 동림지 위로 떠올라 하늘로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세상을 뒤덮었던 어둠이 녹아내리듯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