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484
태양이 된 한제의 빛은 동림전까지 환하게 밝혔다. 그러자 대전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던 동림종 선조는 그 빛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나 역시 밤을 물리친 이 힘이 진정한 태양의 것인지 아니면 신통술로 인한 것인지 분간할 수가 없는데⋯⋯ 저자는 진정 깨달은 것인가?’
한제의 몸이 하늘 높이 이른 순간, 온 세상은 완전히 밝아졌다.
약 2각에 걸친 이 과정이 끝났을 무렵, 저 멀리 지평선 위로 진짜 태양이 천천히 떠오르면서 하늘에는 두 개의 태양이 떠 있었다.
떠오르던 태양이 마침내 높은 하늘에 이르자 한제는 눈을 감았다.
‘이것이 바로 태초의 본원인가? 이제 알겠어!’
한제의 몸에서 발산되던 빛은 그가 눈을 감자 흩어져 사라졌다.
한제는 온종일 하늘에 떠 있었다. 그리고 진짜 태양이 저물면서 점차 어둠이 온 세상을 뒤덮자 천천히 하강해 다시 동림지에 가부좌를 틀었다.
“태초의 본원은 일출을 의미해. 그렇다면 또 다른 특수 본원 중에는 일몰을 의미하는 것도 있을 터.”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번 깨달음으로 그의 왼쪽 눈은 빛을 얻었지만 오른쪽 눈은 여전히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왼쪽 눈으로 떠오르는 태양의 빛을 보았다면 오른쪽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분명 해가 떨어진 이후의 어둠일 터.’
한제는 포기하기 않고 또다시 시도해갔다.
모든 것이 고요해진 깊은 밤, 한제는 오른쪽 눈을 통해 혼란 속의 어둠을 보았다. 그 어둠은 왼쪽 눈으로 보았던 빛과 명확한 대비를 이루었다.
이러한 대비 아래 한제는 심신이 둘로 나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나는 떠오르는 태양의 빛을 다른 하나는 태양이 지고 난 이후의 어둠을 의미했다.
“나는 허무 속을 돌아다니며 일몰 이후의 어둠을 관찰한 끝에 태초 다음은 묵멸(黙滅)임을 깨달았다. 묵멸의 본원은 모든 어둠을 의미한다.”
낮은 목소리가 또 한 번 한제의 심신 속에 울려 퍼졌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 한제가 동림지에서 머문 지도 벌써 세 달이 지났다. 이 세 달 동안 한제는 아침에는 태양이 되어 어둠을 물리쳤고 밤에는 묵묵히 어둠이 빛을 집어삼키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백 번을 관찰하고 거듭해서 동림지 내의 기이한 깨달음을 더해가는 동안 한제는 묵멸의 본원을 점차 깊이 이해하게 됐다.
하지만 태초의 힘과 달리 묵멸의 본원을 완벽히 깨닫기에는 세 달은 부족했다. 그 사이 태초의 힘에 대한 깨달음은 점점 깊어졌지만 묵멸의 본원도 여전히 모색해갔다.
★ ★ ★
8년이 흘렀다. 그동안 동림종을 찾아온 자는 없었다. 동림종 선조 역시 아무런 방해도 하지 않았기에 한제는 평온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동안 무슨 수를 썼는지 유금표는 금존 수준의 해룡과 퍽 친해져 있었다. 심지어 해룡은 유금표를 등에 태우고 하늘을 몇 바퀴 돌기도 했다.
그리고 또다시 5년이 흘렀다.
수련자에게 13년은 눈 깜짝할 순간처럼 짧은 시간이었으나, 한제는 그 사이 태초의 본원을 거의 완벽히 깨닫고 손에 넣었다.
13년간 총 4천여 차례의 낮과 밤을 관찰하고 동림지 안에서 깨달음을 얻어가면서도 묵멸의 본원을 완전히 깨닫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 이해는 한 상태였다.
이제 동림지의 힘이 주입될 때마다 들려왔던 목소리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한제는 동림지 밖으로 나와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가부좌를 틀었다. 수준은 이전과 같았지만 머리카락은 낮밤의 교차를 지켜보는 동안 어째서인지 천천히 자랐다.
한참 뒤 두 눈을 뜬 한제의 왼쪽 눈에는 태양이, 오른쪽 눈에는 어둠이 떠올랐다. 두 눈동자의 대비로 한제는 무척 기이해 보였다.
“태초의 본원은 천둥번개의 진신에 녹여 살육의 본원과 금제의 본원까지 세 가지 본원을 융합시킬 수 있어. 천둥번개의 진신에 깃든 네 번째 본원이 되는 거지. 묵멸의 본원은 아직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했으나 융합은 가능해. 그렇게 된다면 내 수준은 좀 더 높아질지도 모르겠군.”
한제의 표정은 덤덤했다. 사실 그가 동림종에 온 것은 본래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그럴 수만 있다면 천존열에 다시 진입해 선족 황성에 가기 전의 준비를 마무리할 수 있을 터였다.
가부좌를 튼 한제의 모습이 중첩되어 보인다 싶더니 곧 천둥번개의 진신이 휙 나타나 맞은편에 가부좌를 틀었다.
천둥번개 진신의 표정은 냉랭했고 온몸에 전광이 번득였다. 고요한 가운데 전광이 흐르는 소리가 파지직 하고 울려 퍼졌다. 한제는 이 진신을 볼 때마다 파멸적인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천둥번개의 진신 안에는 살육의 천둥번개가 깃들어 있어.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파멸적인 위력이지. 허나 내게는 낯선 위력이야.’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한제는 이내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넌 살육을 품은 데다가 천둥번개는 워낙 파멸적이니 내가 젊은 시절 입었던 검은색 옷을 입고 어둠이 되어라. 그래야 묵멸의 본원을 더욱 잘 깨달을 수 있을 게야.”
그가 손을 휘두른 순간 천둥번개 진신의 옷은 어둠처럼 까맣게 변했다. 동시에 천둥번개 진신의 체내에서 풍기는 파멸적인 기운도 더욱 짙어졌다.
한제가 묵묵히 천둥번개 진신을 보고 있는 동안 그의 왼쪽 눈동자에서는 태양이 흘러나왔다. 허나 아무런 빛도 발산하지 않은 채 천둥번개 진신을 향해 날아들어 눈 깜짝할 사이 그 체내로 녹아들었다.
천둥번개 진신은 몸을 바르르 떨었고 체내로부터 눈부신 빛을 발산했다. 태초의 본원이 융합하면서 파멸적인 기운과 충돌한 것이다.
한제는 그런 천둥번개 진신을 지켜보다가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그러자 그의 오른쪽 눈에서 검은 빛이 흘러나와 오른손에 응집해 검은 태양이 되었다.
한제는 손을 휘둘러 검은 태양 역시 천둥번개의 진신에게 보냈다. 이어서 검은 태양과 천둥번개 진신이 융합하려는 순간, 한제는 본체의 신식을 뻗어 강력한 위압감을 발휘했다. 진신에 녹아든 모든 본원을 억지로라도 융합시키기 위해서였다.
검은 태양에 깃든 본원은 많지 않은 데다가 천둥번개의 진신에는 그와 비슷한 파멸적인 기운이 들어 있었다. 이에 묵멸의 본원은 진신에 녹아들자마자 곧장 살육의 천둥번개에 흡수되었다. 그리고 살육의 천둥번개는 또다시 변화를 맞았다.
살육의 천둥번개는 묵멸의 본원과 융합하자 온 세상을 파멸시킬 듯 강력한 기운을 천둥번개 진신의 체내로부터 뿜어내기 시작했다. 한제의 의지로도 그것을 제압하지는 못할 듯했다.
만물을 살육하고 온 세상을 파멸시키며 빛을 어두운 밤으로 뒤덮어 허무로 만들어버리는 힘. 이것이 바로 한제가 무의식중에 천둥번개의 진신 안에 만들어낸 힘이었다.
허나 이 힘은 그 진신에 봉인된 금제의 본원 때문에 밖으로 나올 수는 없었다. 그 힘이 발산된다면 어마어마한 재앙을 불러 일으킬 것이었다.
이전까지 억지로나마 균형을 유지한 채 금제의 본원을 체내에 단단히 봉쇄하고 있던 천둥번개의 진신은 지금 묵멸의 본원이 융합하면서 균형을 잃은 상태였다.
하지만 이는 한제도 예측한 바였다. 금제의 본원이 살육의 파멸적인 위력을 제어하지 못하게 된 순간, 태초의 본원이 곧장 금제의 본원과 융합했다. 새로운 봉인을 형성해 살육과 다시금 균형을 이룬 것이다.
이 끊임없는 봉인과 저항 안에서 천둥번개의 진신은 언제든 타오를 수 있는 불씨가 됐다. 말하자면 횃불을 쥔 일반인과 같은 상태였다. 횃불을 완전히 장악하거나, 거친 횃불에 온몸이 불타버리거나.
파멸과 봉인, 어둠과 빛은 천둥번개의 진신에서 다시금 억지로나마 균형을 이루었다. 허나 금제와 태초의 본원은 살육과 묵멸 본원의 융합에 저항할 만큼 강력하지는 못했다. 그러니 위험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한제로서는 이러한 선택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뜻밖의 충격 (1)
네 개의 특수 본원이 융합과 저항을 통해 하나로 합쳐진 순간, 천둥번개 진신은 두 눈을 번쩍 떴다. 왼쪽 눈은 밝았고 오른쪽 눈은 어두운 그는 한 걸음 다가와 본체와 합쳐졌다.
한제의 수준은 증폭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공겁기 초기에서 끊임없이 치솟았다. 동시에 하늘과 땅의 기색이 변했고 바람과 구름이 몰아치면서 동림종의 하늘이 어두워졌다 밝아지기를 빠르게 반복했다. 체내에서 울리는 먹먹한 콰쾅 소리와 함께 한제의 머리와 옷자락은 마구 휘날렸다. 그러는 사이 한제의 수준은 공겁기 초기에서 중기까지 올라갔다.
한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하늘에 나타났던 모든 변화가 순간 흩어지면서 원상태로 돌아왔다. 사방에서 불어닥치던 바람도 멈춰 만물이 고요와 평화를 되찾았다.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렸다. 멀리서 경외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해룡이 곧장 다가와 그를 머리 위에 태웠다.
유금표 역시 경외심 어린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키더니 다급히 해룡의 등에 올라 공손한 태도로 주인의 뒤쪽에 섰다. 그 또한 13년 전 기억을 되찾고 이후 해룡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수준을 절반 정도 회복한 상태였다.
한제는 고개를 숙여 아래 동림종과 동림지를 바라보았다. 잠시 묵묵히 아래를 내려다보던 그는 이내 포권을 하며 깊이 허리를 숙였다.
“선배님께서는 이미 숨을 거두셨지만 이런 깨달음을 얻게 해주신 그 은혜를 저는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
한제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이른 곳은 동림전이었다. 그 안에 외로움과 슬픔에 잠긴 채 홀로 있을 노인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작게 한숨을 내쉰 한제가 신식으로 명령을 내리자 해룡은 한 줄기 빛이 되어 질주했다.
동림종 안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주 오랜 고독과 슬픔, 집착이 어린 탄식이었다.
고독으로 인해 기억에 기반한 꿈을 형성하고 그 꿈에 취했다.
슬픔으로 인해 이미 죽어버린 종파에서 기억을 되새기며 묵묵히 그곳을 지켰다.
집착으로 인해 아주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슬픔과 광기를 비석에 새겨진 글씨처럼 마음속에 새겨놓았다.
한제는 떠났다.
하지만 대성주를 떠나지 않고 어느 높은 산봉우리 위에 가부좌를 튼 그는 저 멀리 떠오른 태양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천존열 시험장에 가야겠어! 당시에는 네 번째 궁전까지 들어갔는데 이번에는 몇 번째 궁전에까지 갈 수 있을까?’
눈을 감고 좌선하던 한제는 수준이 증폭한 여파를 잠재우느라 세 달을 기다린 후에야 수많은 신통술을 오른손에 응집시켰다.
‘공겁기 초기 때는 수준이 부족해 열세 개의 신통술을 녹여 넣는 것이 한계였다. 공겁기 중기인 지금은 얼마나 늘릴 수 있을까? 여기에 진신과 본원까지 더하면⋯⋯?’
한제의 두 눈이 기대감으로 번득였다.
숨을 깊게 들이마신 그는 눈을 감은 채 신식을 정수리에 응집시켰다가 하늘로 솟구쳐 올렸다.
‘이번에는 반드시 모두에게 충격을 안겨주겠다. 선족 대륙의 모든 천존이 내게 집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약천존 중 하나로 거듭나겠다! 천우 혼개의 힘까지 사용해 선족의 마흔아홉 번째 약천존이 되겠다!’
위로 솟구쳐 올라가던 한제의 신식은 연기처럼 하늘을 뚫고 끊임없이 돌진했다.
이내 머릿속에서 울리는 쾅 소리와 함께 맑아진 눈앞에는 이전에 본 적이 있던 기이한 천존열 시험장이 펼쳐졌다.
한제는 저 멀리 하나하나의 대전과 첫 번째 대전 주위에 가부좌를 튼 수백 명의 천존을 보았다. 그들 역시 오래되고 특수한 전송진에서 질주하듯 나타난 한제를 본 상태였다.
“백발 천존!”
한편 첫 번째 대전 앞에는 검은 옷을 입은 중년 사내도 한 명 있었다. 괴팍하고 혼자 다니기를 좋아해 아무도 없는 곳에 홀로 앉아 있던 그는 한제의 등장을 가장 먼저 알아챈 사람이기도 했다.
당시 일곱 번째 궁전을 통과했지만 여덟 번째 궁전에서 발을 잡힌 죽림이었다.
오래 전 이 기이한 허무 속에 생겨난 천존열 시험장에는 오직 천존에 이른 수련자만이 신식을 하늘로 올려 보냄으로써 이를 수 있었다.
이곳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저 당시 선조가 태고 신경을 참고하여 만들어냈다는 사실만 알려져 있을 뿐이었다. 선족의 후손들 중 더 많은 대천존을 배출해내기 위해서였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천존 수련자는 대부분이 이곳을 수차례 방문해 층층의 궁전을 통과하며 자신의 수준을 확인하고 이름을 날렸다.
천존열은 지금의 다섯 대천존이 가장 눈여겨보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어느 정도 단계를 통과한 천존을 포섭하려는 생각이었다.
천존열의 첫 번째 궁전 앞에 모인 수백 명의 수련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눈 깜짝할 사이 날아든 한제가 모습을 드러냈다.
주위 천존 수련자들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로 집중됐다.
한제는 덤덤한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안면이 있는 수련자가 먼저 인사를 해오면 웃으며 화답했다. 천존 수준에 이른 사람들끼리라면 특별한 원한이 없는 한 좋은 관계를 맺어놓는 것이 서로에게 좋았다.
게다가 한제는 십여 년 전 단숨에 네 번째 궁전에까지 이르렀으니 다른 천존들이 그와 친분을 맺고 싶어 하는 것도 당연했다.
물론 네 번째 궁전 이상을 통과한 천존들은 상대적으로 한제를 그리 높이 사지 않았기에 표정도 비교적 냉담했다.
“저 백발천존은 네 번째 궁전까지 올랐다지? 결코 범상치 않은 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