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488
천존열에 있는 천존들을 포함한 수많은 이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모두의 시선이 열 번째 궁전으로 향한 가운데 시간이 흘렀다. 사람들은 모두 속으로 시간을 재고 있었다.
그들이 스물까지 셌을 때였다.
“실패인가 보군.”
한 천존이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한데 바로 그때, 곳곳에서 하나둘 탄성이 터져나왔다.
“금빛이다! 금빛이 나타났어!”
“열 번째 궁전의 금빛이야!”
구름과 안개에 가려져 흐릿한 열 번째 궁전에서 밝은 금빛이 뿜어져 나왔고 이를 지켜보던 네 약천존의 눈빛이 변했다.
구름과 안개에 휩싸인 열 번째 궁전에서 수만 년 만에 처음으로 발산된 금빛은 마치 파도처럼 끊임없이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 금빛에서 거대한 인영이 어렴풋이 나타났다. 한제의 것과 다른 그 인영은 금색 도포를 입은 채 묵직한 위압감을 발산했다. 거대한 체구가 마치 하늘을 떠받친 거인 같은 이 인영은 서서히 그 모습이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 온전한 모습을 드러낸 그는 무척 준수한 사내였다. 아주 오래된 존재만이 가질 수 있는 기운과 모든 선족이 엎드려 절을 하게 할 법한 힘도 느껴졌다. 그는 금색 도포를 입었고 머리 위에는 금색 왕관도 씌워져 있어 더욱 강력하고 위엄 있어 보였다.
이 인영이 나타난 순간, 8백여 명의 천존과 네 명의 약천존은 심신이 진동했다.
“선조(仙祖)가 이곳에 남겨두었던 분영(分影)이야! 저 분영은 선조와 분리된 상태라 선조가 죽은 뒤에도 영원히 이곳에 남게 됐다고 했어!”
“열 번째 궁전을 통과하면 선조가 나타나 약천존으로 봉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지만 설마 그게 사실이었을 줄이야!”
“이한제 저자 정말로 등용문을 뛰어넘어 약천존이 됐군!”
“누군가가 약천존에 등극하는 광경을 내 두 눈으로 직접 봤을 뿐만 아니라 선조의 분영까지 보게 되다니! 천존열에 오길 정말 잘했군!”
거대한 금색 인영을 향해 모든 천존은 공손히 절을 올렸다. 그것을 시키지 않았지만 마음속에서 절로 우러난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선조를 뵙습니다!”
모든 천존의 목소리가 천존열 시험장을 가득 채우며 울렸다.
그때, 열 번째 궁전에서 한 줄기 금빛이 튀어나왔다. 바로 한제였다.
두 금색 인영은 1천 척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서로를 마주보았다.
한제는 안색이 약간 창백한 상태였고 거대한 금색 인영을 본 순간 심신이 진동했다. 이전에 두 번을 본 적 있는 선조와 똑같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거대한 인영은 무궁무진한 위압감이 어린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고 있었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기이한 힘이 깃든 눈빛은 한제의 모든 것을 꿰뚫고 모든 비밀을 간파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 눈빛 앞에서는 마치 벌거벗고 서 있는 듯한 느낌, 머릿속에 거대한 손이 들어와 곳곳을 마구 헤집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 느낌은 한제의 기억을 태어난 순간부터 빠른 속도로 뒤졌다.
이곳 천존열 시험장을 만들 당시 선조는 고족이나 천외 수련자들이 정체를 숨기고 숨어들어 약천존의 칭호를 거머쥘 수 있음을 간파하고 대책을 세워두었다. 이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천존까지는 그렇다 쳐도 약천존은 무조건 선강 대륙 선족 구역 출신이어야 했다.
그렇기에 각 천존 수련자들은 약천존에 등극하는 순간 이러한 확인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앞서 마흔여덟 명의 약천존도 모두 겪은 과정이었다.
만약 천외 수련자나 고족 수련자로 밝혀질 경우 대천존이라 해도 도망칠 수 없다. 선조의 분영은 직접 공격을 하지는 않지만 순식간에 선족 구역 전체로 퍼지면서 모든 약천존과 대천존이 직접 나서게 되기 때문이다.
선조 분영의 눈은 어린 시절 한제의 기억을 빠른 속도로 훑어갔다. 한데 그때, 그의 심신에 융합했던 천역주가 회전하며 부드러운 힘으로 한제를 뒤덮었다. 천역주는 기억을 날조해 선조 분영의 눈앞으로 흘려보냈다.
선조의 분영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으나, 잠시 후 한제에게로 향한 그의 눈빛은 천천히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한참 뒤, 이곳의 천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선조의 분영은 왼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두루마리 하나가 나타났다.
두루마리에는 마흔여덟 개의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각 이름에서는 눈부신 빛과 함께 위엄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전설의 약천존 목록이다!”
“저 약천존 목록에 이름이 적힌 사람이라면 누구나 선조의 비호를 받고 우리 선족의 자랑이 되지!”
선조의 분영이 오른손을 들었다. 어느새 그의 손에는 금색 붓 한 필이 들려 있었다. 분영은 그 붓으로 두루마리 위에 이름을 적었다.
마흔아홉 번째, 이한제.
마지막 획을 그은 순간, 선존의 분영은 천천히 흩어지다가 금빛으로 돌아가 천존열 시험장을 완전히 뒤덮었다. 그리고 그 빛이 완전히 사라지자 내내 입을 다물고 있던 천존들이 일제히 하늘을 향해 절을 올렸다.
“마흔아홉 번째 약천존을 뵙습니다!”
그 안에는 죽림도 이전까지 한제를 의심하던 이들도 한제가 결코 열 번째 궁전을 통과하지 못할 거라 단언했던 이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그 틈에 섞여 있던 한 아름다운 여인은 문득 한제와 자신 사이의 거리가 하늘과 땅만큼이나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갑작스러운 생각에 그녀는 알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
한제는 조용히 눈을 감고 있다가 한참 뒤에야 떴다.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지만 방금 전 그는 삶과 죽음 사이에 서 있었던 셈이다.
‘천존열 시험장에 이렇게 무시무시한 관문이 있을 줄이야! 천역주가 제멋대로 나타나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게 해줬다. 심지어는 선조의 분영까지 속이다니, 대체 천역주의 정체는 뭐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때, 세 사람이 휙 날아들어 한제 주위에 이르렀다. 설우, 도륜, 맹쌍 약천존이었다. 오직 자망 약천존만이 덤덤한 표정으로 그저 한제를 훑어보기만 할 뿐이었다.
“축하하네, 이 도우. 드디어 우리 선족에 약천존이 한 명 더 늘어났군! 하하!”
“곧 선족 내 모든 약천존이 이 소식을 알게 될 걸세. 이 도우가 뜻밖의 충격을 안겨줬군. 후에 북주로 올 일이 있다면 함께 술이나 한잔하지.”
“이 도우, 약천존이 됐으니 곧 몇몇 대천존이 포섭하려 들 것이네. 혹 어느 대천존께 의탁할지 이미 정했나? 이 설우는 무봉 대천존 휘하에 있지. 도우와 함께하고 싶군.”
세 사람은 웃음을 머금으며 포권을 헤오자 한제 역시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화답했다.
“어느 대천존을 선택할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네. 게다가 지금 당장 이곳을 떠날 생각도 없고⋯⋯.”
한제는 말을 잇다가 고개를 들어 구름에 휩싸인 열한 번째 궁전을 바라보았다.
그의 그러한 행동에 세 약천존은 흠칫 놀란 모습이었다.
“열한 번째 궁전에 곧바로 도전해볼 생각인가?”
“그렇다네!”
한제는 웃음을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각기 다른 표정으로 한제를 한 번 훑어보던 세 약천존 중 설우 약천존이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우리 세 사람은 아직 열한 번째 궁전을 통과하지 못했지만 들어가 본 적은 있으니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을 것 같군. 열 번째 궁전 이후로는 난도가 급격히 높아진다네. 이전과 달리 실패하면 다칠 수도 있지. 그리 큰 부상은 아니겠지만 말일세. 또한 열한 번째 궁전부터는 짧은 수련으로는 통과할 수가 없기에 약천존들은 8할 이상의 확신이 없는 이상 좀처럼 도전하지 않는다네.”
설우 약천존은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갔다.
“내가 아는 바에 따르면 앞선 마흔여덟 명의 약천존 중 스물여섯 명이 열한 번째 궁전을 통과하지 못했고 열세 명은 열두 번째 궁전에 가로막혀 있다네. 저기 자망 약천존도 열두 번째 궁전을 통과했다는 소문과는 달리 실제로는 아직 통과하지 못한 상태야.”
“그리고 열세 번째 궁전에 멈춰 있는 약천존이 일곱이지. 이렇게 마흔여섯 명을 제외한 두 명이 바로 약천존 중에도 최강이라 꼽히는 이들이라네. 그중 하나인 재미 존은 열네 번째 궁전에 다른 한 명인 명도 존은 열여섯 번째 궁전에 멈춰 있다네.
열한 번째 궁전부터는 하나하나의 난도가 매우 높아, 선조께서 당시 잡아두신 일흔두 마리의 천외 흉수들과 싸워야 하지. 허상일 뿐이지만 그 힘은 결코 약하지 않네. 모두 당시 선조와 싸웠던 흉수들이니까.”
한제는 작은 정보라도 얻겠다는 생각으로 귀를 기울였다.
“만약 이 일흔두 개의 천외 흉수 영혼을 꺾고 당시 선조께서 걸었던 길을 따라 걷는다면 열아홉 번째 궁전을 통과했을 때 대천존도 쉽게 건드릴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신력을 갖게 될 걸세! 또한 열한 번째 궁전부터는 각 궁전을 통과할 때마다 막대한 행운을 얻게 되지.
다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라서 행운을 얻지 못한 자도 있긴 해.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말일세. 일찍이 열한 번째 궁전에서 선조의 신통술을 손에 넣은 자도 있다네.”
선조의 신통술이라는 말에 한제는 내심 심신이 떨려왔으나, 전혀 내색하지 않은 채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한데 지금껏 열아홉 번째 궁전을 통과해 태고 성신에 이르러 대천존에 등극한 사람은 두 명밖에 없어. 그 외에는 누구도 열아홉 번째 층을 통과하지 못한 것이지.
현존하는 다섯 명의 선족 대천존 중 도일 대천존과 선황 팔극 대천존도 당시 겨우 천존에 불과했지만 여러 행운을 거머쥔 덕에 지금의 지위에 이르게 됐다네. 한 명은 태고 성신에서 대천존이 됐고 다른 한 명은 이어받은 선조 혈맥을 통해 대천존이 됐지.”
설우 약천존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쌍자 대천존과 구제 대천존은 같은 세대 사람으로 선조 휘하에 있었다더군. 그게 사실일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당시 약천존이었던 무봉 대천존이 열아홉 번째 궁전을 통과한 두 사람 중 한 명이라는 것만은 확실해! 내가 그분을 따르기로 한 것도 그 때문이라네. 그저 행운만으로 대천존에 등극한 사람이라면 진심으로 따를 수는 없으니까!”
한제는 설우 약천존을 바라보며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다면 열아홉 번째 궁전을 통과해 대천존이 된 다른 한 사람은 누구지?”
“동림종의 동림 대천존이었지! 쇠락하기 전까지 선족 최고의 대천존으로 꼽혔던 분일세. 구제 대천존도 그 앞에서는 두려움에 떨었다고 하지. 동림 대천존은 온전히 자신만의 힘으로 대천존에 이른 사람이니까. 무봉 대천존도 열아홉 번째 궁전을 통과해 대천존에 등극했다고는 하지만 당시의 동림 대천존에 비할 바는 못 될 거야.”
설우 약천존은 동림 대천존 이야기가 나오자 존경심이 어린 목소리로 설명했다.
한제는 동림종 안에서 꿈을 통해 외로움과 슬픔을 달래던 한 노인을 떠올렸다. 동림 대천존의 후손⋯⋯.
뜻밖의 충격 (5)
“설명 고맙네!”
한제는 설우를 향해 깍듯이 포권을 하고는 의지가 담긴 눈으로 열한 번째 궁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훌쩍 날려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 층층이 안개와 구름을 뚫고 열한 번째 대전 밖에 이르렀다.
열한 번째 궁전은 이전까지의 궁전들보다 더욱 거대했고 훨씬 더 강한 위압감을 발산했다. 뿐만 아니라 암흑처럼 어두워 음산해 보이기까지 했다.
‘열 번째 궁전을 통과한 것만으로는 부족하지!’
두 눈을 번득이던 한제는 곧장 열한 번째 궁전에 들어섰다.
8백여 천존이 예상치 못한 한제의 행동에 웅성거리는 사이 세 약천존도 열한 번째 궁전에 집중했다.
사실 이들에게 한제의 행동이 곱게 보이지는 않았다. 자신들을 비롯해 약천존 전체의 절반 이상이 실패한 그곳에 이제 막 약천존에 이른 자가 도전하겠다고 하니 기분이 상하기도 했다.
‘패기는 있군. 허나 성공 확률은 1할이 되지 않을 터! 나 역시 열 번째 궁전을 통과하고 곧장 달려들었으나 실패했고 몇 년이 지난 후에야 가까스로 성공했지.
재미 존과 명도 존만이 열 번째 궁전을 통과한 후 곧장 다음 궁전에 도전해 각각 열두 번째와 열세 번째 층에서 멈추었다. 그 두 사람이 지금과 같은 명망을 얻고 최강의 약천존으로 꼽히는 이유지.’
키가 작아 동자처럼 보이는 자망 약천존은 침착한 표정이었으나 속으로는 냉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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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렵, 천존열 밖의 대천존과 약천존들은 모두 마흔아홉 번째 약천존의 탄생을 알게 됐다. 또한 새로 탄생한 약천존이 곧장 다음 단계에 도전하기로 했다는 사실 역시 그들은 알 수 있었다.
도일종의 도일 대천존과 북주 빙산의 무봉 대천존은 모두 결심을 내린 듯한 눈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