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490
“좋다!”
무봉 대천존은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는 듯 답했다. 보면 볼수록 한제를 포섭하고 싶은 마음은 커져만 갔다.
이 광경에 사방의 수련자들의 표정이 급변했다. 지금 상황이 당시 명도 존 때와 매우 비슷했기 때문이다.
한데 그때였다. 오래된 전송진으로부터 한 줄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도우, 당시 내가 한 말을 기억하고 있나?”
무봉 대천존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고 뒤이어 전송진에서 도일 대천존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도일 대천존은 한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한제는 그런 도일 대천존을 덤덤한 얼굴로 바라보다가 포권을 했다.
“물론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가 아홉 번째 궁전을 통과하면 다시 찾아와 제게 제안을 하시겠다 하셨지요.”
“급한 일은 아니니 일단 열두 번째 궁전에 도전하라. 이야기는 그 후에 해도 좋다.”
도일 대천존은 빙그레 미소를 짓더니 무봉 대천존을 힐끗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눈빛이 허공에서 충돌했다.
천존들은 이 광경을 보고도 믿기 힘들었다. 명도 존을 제외하면 대천존끼리 누군가를 서로 포섭하겠다고 경쟁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도일, 난 저자를 내내 눈여겨봐왔네. 끼어들지 말게!”
무봉 대천존이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며 입을 열었다.
“무봉, 우리는 약천존 수련자에게 어떤 강요를 할 수는 없어. 모든 것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일이지. 중요한 건 저자의 의사 아닌가. 게다가 저자가 열두 번째 궁전까지 통과하면 자네나 나는 말할 것도 없고 어쩌면 구제나 선황이 올지도 모르지. 당시 그가 명도 존에게 무엇을 약속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명도 존을 포섭한 것은 선황 아닌가.”
도일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신식으로 자신의 뜻을 전했다.
두 사람이 신식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한제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열두 번째 궁전으로 발을 들였다.
도일과 무봉도 대화를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사방의 천존들과 약천존들도 마찬가지였다.
한편, 자양종의 중년 수련자는 거울을 들여다보며 씁쓸한 얼굴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 어떻게 열한 번째 궁전까지 통과한 거지? 게다가 열두 번째 궁전까지 통과한다면 나는 무엇을 가지고 그를 포섭해야 한단 말인가! 도일 대천존과 무봉 대천존도 쉬운 상대는 아닌데 하물며 구제 대천존과 선황까지 나선다면…? 안타깝구나, 자양종 쌍자 대천존의 지난 환생에 문제만 없었더라면 구제나 선황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중년 수련자는 씁쓸하게 한숨을 내쉬었고 거울을 통해 보이는 상대를 포섭할 생각을 접기로 했다. 한데 바로 그때, 석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붉은 옷을 입은 소녀가 냅다 달려 들어왔다.
“고애, 왜 아직도 그 망가진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는 거야? 얼른 와서 랑이를 길들이는 걸 도와줘! 랑이 저 녀석, 오늘따라 정말 말을 안 듣는다고! 내 오늘 따끔한 교훈을 안겨줘야겠어!”
“저⋯⋯.”
중년 수련자가 당장이라도 울 듯한 얼굴로 막 무슨 말인가 하려던 그때였다.
“어? 저 사람, 낯이 익은데⋯⋯?”
붉은 옷을 입은 소녀는 거울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연히 그러시겠지요. 무봉 대천존과 도일 대천존 아닙니까.”
중년 수련자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가시죠. 그⋯⋯ 랑이를 길들이는 걸 도와드릴 테니까요.”
중년 수련자는 속으로 탐랑이라는 수련자를 불쌍히 여기며 중얼거렸다.
“저 대머리랑 가면 쓴 사람 말고 저 사람 말이야!”
소녀가 오른손을 들어 가리킨 사람은 열두 번째 궁전으로 들어서고 있는 한제였다.
“어, 들어가 버렸네. 분명 낯이 익은데⋯⋯.”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던 소녀의 두 눈이 어느 순간 반짝였다.
“이한제! 생각났다! 랑이를 찾았을 때 저자도 본 적 있어! 나와 하영이 그때 저자를 도와줬었던 것도 같은데⋯⋯. 게다가 그전에도 저자를 본 적이 있었던 것 같단 말야. 네가 우리 편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했던 사람이 저자야? 좋아, 나와 하영이 함께 가주지. 깔깔깔!”
소녀는 눈을 깜빡이며 자지러지게 웃었다.
중년 사내는 그런 소녀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한참 뒤에야 잔뜩 흥분한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 정말로 이전에 저자를 구해준 적이 있습니까?”
“고애, 너도 내 말이 우습게 들리는 거야?”
미간을 잔뜩 찌푸린 소녀는 눈이 휘둥그레진 중년 사내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호통 쳤다.
“아, 아닙니다! 소인이 그럴 리가. 과연 쌍자 대천존이십니다. 미리 이러한 변화를 예측하고 이전에 저자를 구해주셨다니! 그러한 연이 있다면 저자를 포섭할 수 있을 겁니다! 으하하!”
중년 수련자 고애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호탕하게 웃었다. 그러더니 아이를 달래는 듯한 눈빛으로 소녀를 바라보았다.
소녀는 그의 말에 금세 표정을 풀고는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흥! 고애, 이제야 나와 하영이의 대단함을 알겠어? 이전에 떠났던 녀석들은 신경 쓸 거 없고 그렇게 말했는데 듣지 않더니. 나 쌍자 대천존은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아! 갈 테면 가라지! 그동안 내가 나름대로 책략을 세우고 있었다는 걸 그런 머저리들이 어찌 알았겠어?”
소녀는 점점 의기양양해져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예, 예, 그럼요! 쌍자 대천존께서는 최고의 전략가시지요. 이 고애, 정말 탄복했습니다.”
고애는 얼른 웃으며 답하더니 자애로운 눈으로 소녀를 바라보았다.
그는 비록 수준은 부족했지만 지금은 쌍자 대천존 휘하의 유일한 천존이었다. 쌍자 대천존이 환생 중 뜻밖의 사고로 인해 둘로 분리된 후로 그녀를 따르던 이들이 하나둘 떠나가는 와중에도 끝까지 남아 두 소녀를 잘 보살펴온 장본인이기도 했다. 모든 것은 최고의 성세를 누리던 시절 쌍자 대천존으로부터 받은 은혜 때문이다.
★ ★ ★
중주 제산. 구제 대천존은 나른해 보였던 두 눈을 또렷하게 뜨고는 전방의 낙엽을 바라보고 있었다.
“열한 번째 궁전에 이어 곧장 열두 번째 궁전에 도전한다? 저 정도면 미물에서 사람으로 격상시켜 줄 수 있겠군. 제안은 해볼 만하겠어. 허나 직접 가는 건 모양이 좀 빠지는데⋯⋯.”
노인은 이렇게 중얼거리면서도 눈조차 깜빡이지 않고 천존열의 광경에 집중하고 있었다.
“됐다. 그래봐야 열두 번째 궁전이야. 저자가 저 난관을 통과한다 해도 명도 존에는 못 미치지.”
노인은 이내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뜨더니 낙엽을 응시했다.
“과연 통과할 수 있을까?”
★ ★ ★
중주, 황성의 화려한 궁전.
검은 옷을 입은 명도 존은 대전의 허공에 떠 있는 허상의 막을 바라보며 미간을 천천히 구겼다.
“한 호흡에 저자를 죽일 수 있겠나?”
덤덤한 목소리가 대전에 울려 퍼졌다.
명도 존은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물론입니다!”
목소리의 주인은 웃는 듯하더니 곧 침착함을 되찾았다.
“천우 혼개를 갖고 있다 해도 저자는 열두 번째 궁전을 통과할 수 없어. 열두 번째 궁전에서는 천우를 마주하게 될 테니까. 그러니 다른 대천존들이 저자를 두고 싸우게 내버려두겠다. 이 황제는 저자에게 아무런 관심도 흥미도 없으…”
그러나 이 목소리는 끝을 맺기 전에 우뚝 멈춰버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대전의 용상에 파문이 일더니 금색 도포를 입고 왕관을 쓴, 선조와 매우 닮은 중년 사내의 허상이 나타났다.
그는 충격이 어린 얼굴로 대전 안 장막을 통해 천존열 열두 번째 궁전에서 눈부시도록 밝은 금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금빛은 분명 천존열에서 발산되고 있는데도 어째서인지 허공에 펼쳐진 장막을 통해 선황의 대전까지도 뒤덮은 상태였다.
“열두 번째 궁전을 통과했어!”
금색 도포의 중년 사내가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그의 곁에 있던 명도 존은 허상의 장막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그 눈에서는 짙은 살기와 한기가 동시에 느껴졌다.
그는 열두 번째 궁전을 통과한 상대가 분명 당시의 자신처럼 수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대천존 사이의 갈등을 야기할 것임을 직감했다.
동시에 그는 대천존들로부터 엄청난 조건을 약속받아 수준까지 강화할 수 있을 터였다.
게다가 앞으로는 누구든 명도 존을 언급할 때마다 열두 번째 궁전을 통과한 저자까지도 함께 떠올리게 될 것이다. 약천존 중 최강임을 자부해온 그로서는 불쾌한 일이었다.
“겨우 열두 번째 궁전일 뿐입니다. 저 정도 능력을 보인 자는 비록 많지는 않아도 몇몇 있지요. 여전히 한 호흡이면 죽일 수 있는 자입니다!”
명도 존은 서늘해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허나 금색 도포를 입은 중년 사내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없이 허상의 장막을 응시하고 있었다.
★ ★ ★
제산의 노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두 눈을 기이하게 번득이며 망설이는 듯하더니 이내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난 저자를 본 적이 있다. 천우 혼개를 가지고 있었지. 혼개의 힘으로 열두 번째 궁전을 통과했다는 건 명도 존과는 아무래도 큰 차이가 있다는 뜻이야. 혼개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열세 번째 궁전을 통과하지 않는 이상 보통의 약천존과 다를 바 없다는 거지.”
생각에 잠겨 있던 노인이 두 눈을 감았다.
“계륵이로구나. 포섭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저자는 분명 열세 번째 궁전까지 통과하지는 못할 거야. 아마 여기에서 멈추⋯⋯ 아니!”
노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열두 번째 궁전에서 발산된 금빛 속 한제의 온몸이 보이지 않는 수증기로 온통 뒤덮여 있었기 때문이다. 낙엽을 통해 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온몸을 뒤덮은 수증기에서는 묵직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극수도(極水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