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499
“이한제! 우리와 함께 가지 않겠다면 난 널 때릴 거야. 아빠한테 널 때려달라고 할 거야! 고애, 말해봐. 우리 아빠가 얼마나 대단한지. 선조도 고조도 아빠가 손가락으로 사(死) 자를 쓰는 즉시 죽어버린다니까!”
그 말에 한제는 흠칫 놀라고 말았다.
‘가짜, 가짜⋯⋯.’
고애는 몸을 바르르 떨면서 속으로 중얼거리고는 얼른 신식을 통해 한제에게 말을 전했다.
“저 두 꼬마⋯⋯ 그러니까 쌍자 대천존이 말하는 ‘아빠’란 환생 이후 자신들의 일반인 아버지를 말하는 겁니다. 환생을 한 다음 기억 일부를 잃은 두 소녀는 어렸을 때부터 제게 그런 것들에 대해 물어봤었는데 저는 혹시나 두 소녀가 슬픔에 빠질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날조해낸 이야기를 들려주었지요. 그러니 부디 저 이야기에 별 신경을 쓰지는 마십시오.”
“고애, 지금 무슨 얘기를 한 거야? 나한테도 해줘.”
곁에 있던 아가가 흥미진진하다는 듯 고애가 신식으로 전하는 이야기를 들으려 했다. 하지만 고애는 그런 소녀의 행동을 일찍부터 경계하고 있었기에 재빨리 이야기를 끝낸 상태였다.
“흥, 고애 너도 내 말을 듣지 않겠다는 거야? 우리 아빠도 엄청 세. 우리 아빠한테도 널 때리라고 할 거야!”
아가가 앞쪽으로 달려들어 고애의 머리를 한 번 때렸다.
쓰게 웃으며 두 소녀를 바라보던 한제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한데 그는 다른 대천존들보다 이 두 소녀에게 더 강한 친밀감을 느꼈다.
이내 한제의 눈빛이 곁에 있는 탐랑에게 닿았다.
‘그러고 보니 한 가지를 잊고 있었군. 스승님, 현라 대천존의 수준으로도 누군가를 데리고 동부계 밖으로 나갈 수는 없었어. 그저 그들을 환생시킬 수 있을 뿐이었지. 나를 동부계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서도 제법 큰 대가를 들이셨어야 했어. 한데 수준이 높지도 않은 탐랑을 쌍자 대천존은 어떻게 동부계 밖으로 끌고 왔을까? 아무런 대가도 들이지 않은 채로!’
한제는 의아한 눈으로 두 소녀를 훑어보았다.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하영이라는 소녀가 특히나 더 귀여웠다.
‘환생하는 동안 불의의 사고를 겪게 됐음에도 그런 신통술을 발휘할 수 있었다는 건, 그런 사고를 겪지 않았을 당시에는 더 엄청났다는 뜻이겠지? 그렇다면 쌍자 대천존은 아마 선족 중 가장 강한 대천존이었을 거야. 동림 대천존과 비교했을 때 누가 더 강했을까? 게다가 쌍자 대천존의 자양종에 동부계와 이어진 통로가 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봐, 이한제! 얼른 대답해! 진짜 아빠한테 이른다!”
하영이 잔뜩 화가 난 듯 한제를 노려보며 말했다.
한제는 이제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의 고애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쌍자 대천존을 따르도록 하지!”
한제의 답에 하영은 손뼉을 치면서 전보다 더 의기양양해졌다.
“좀 빨리 대답했으면 얼마나 좋아! 그래도 아빠한테 이르지는 않을게.”
곁에 있던 아가 역시 펄쩍 뛸 듯 기뻐했다. 뒤이어 그녀는 하영과 함께 두려움에 덜덜 떨고 있는 탐랑에게 다가갔다.
“랑아, 오늘 너는 말을 참 안 들었지만 그래도 빨간 꽃을 좀 줄게! 하영, 랑이한테 빨간 꽃을 몇 개나 줄까?”
“다섯 개. 어때?”
“여섯 개 주자. 여섯 개가 더 세기 쉽잖아. 너 세 개, 나 세 개.”
고애는 탐랑을 괴롭히는 두 소녀의 모습과 울려 퍼지는 비명을 무시한 채 멍하니 한제를 바라보았다. 한제가 쌍자 대천존을 택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눈치였다. 앞서 도일과 무봉, 그리고 구제가 얼마나 대단한 조건들을 제시했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선배님…”
고애는 마치 꿈을 꾸는 듯한 느낌에 넋을 놓고 입을 열었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 난 쌍자 대천존 곁에 오래 머물러 있을 수는 없어. 어쩌면 단 몇 년밖에 안 될지도 몰라. 중주에 가야 하거든. 그 후로는 홀로 폐관수련을 할 거야. 그러니 떠날 때 나를 붙잡아서는 안 돼. 또한, 중주에서 어느 대천존인가가 나를 공격하려 한다면 나를 도와줘야 해. 이 조건에 동의한다면 쌍자 대천존을 따르도록 하지.”
한제는 저 멀리서 탐랑의 머리를 때리며 깔깔대는 두 소녀를 바라보다가 고애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군요.”
다소 무거워진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침묵하던 고애는 한참 뒤에야 다시 고개를 들더니 결연한 눈빛으로 답했다.
“좋습니다. 쌍자 대천존을 대신해 제가 약속드리지요! 허나 외부에서 폐관수련을 하시더라도 그리고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고애는 말을 다 맺지 않았지만 한제는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고 있었다.
“걱정 마라. 선족의 다른 대천존을 따르는 일은 없을 거야. 선족 중에서는 오직 쌍자 대천존만을 따를 것을 약속하지!”
한제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제야 마음이 놓은 듯 고애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감정을 쓸어내렸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최선의 협의였다. 그저 허울뿐이더라도 그가 쌍자 대천존을 택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더욱이 약천존 중 최강자 대천존 아래 최강자라는 한제가 평생을 쌍자 대천존 휘하에 머물러 있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선배님, 그럼 일단 자양종으로 가시죠. 선배님께서는 언제든 원하실 때 떠나실 수 있으십니다. 게다가 쌍자 대천존께서 불의의 사고를 당하시기 전 폐관수련을 했던 곳을 포함해 자양종 내 어디라도 마음껏 돌아다니실 수도 있고요. 원하신다면 그곳에서 폐관수련을 하셔도 좋습니다!”
고애가 공손하게 포권을 하며 말했다.
“그래, 가지.”
한제는 고개를 돌려 저 멀리 동림종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홀로 오랜 세월을 보내온 노인을 향해 작별 인사라도 하는 것처럼…
★ ★ ★
어느덧 1년이 지났다.
낙엽이 지고 눈발이 날리는 사이 1년 전부터 선족 구역 내에서는 어느 수련자가 천존열 열일곱 번째 궁전을 통과해 명도 존을 제치고 약천존 중 최강자로 거듭났다는 소문이 완전히 퍼져 나갔다.
머리카락이 하얀 까닭에 백발 약천존이라 불리기 시작한, 이한제라는 그의 이름 역시 입으로 전해졌다. 이제 선족 구역에서 그 이름을 모르는 수련자가 없을 정도였다.
이 외에도 그가 명도 존을 제압한 이야기부터 해자 천존과의 관계, 선황과의 마찰 등 백발 약천존에 대한 여러 소문이 계속해서 퍼져 나가는 중이었다.
그중 가장 놀라운 소문은 그가 여러 대천존, 심지어는 구제 대천존의 제안까지 거부하고 가장 약해진 쌍자 대천존을 선택했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들로서는 도저히 한제의 그런 선택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지난 1년 동안 한제는 자양종 안에서 두문불출했고 적지 않은 약천존들이 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가르침을 얻기 위해 분분히 자양종으로 몰려들었다.
그렇게 한제와 만난 사람들은 탄복한 표정으로 공손히 자양종을 빠져나갔고 심지어 몇몇은 아예 그곳에 남기도 했다. 그리고 한제의 이러한 명성 덕분에 자양종은 다시금 수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게 됐다.
한제에 관한 소문은 심지어 고족 구역에도 전달됐다. 선족에 등장한 마흔아홉 번째 약천존이라면 고족에서도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약천존 중 최강자라면 더욱 그러했다.
그리고 폐관수련을 하고 있던 현라는 이 소문에 눈을 번쩍 떴다. 뿌듯함과 기특함이 담긴 눈빛이었다. 자신의 제자가 선족 구역에서 그 정도 수준과 지위에 올랐다는 것이 기특했고 그런 인물을 미리 눈여겨보고 제자로 거둔 자신의 안목에 뿌듯했다.
“곧 오겠군.”
그는 한제에 대한 이야기를 심지어 도고의 황제에게도 하지 않았다.
그 소식이 황궁까지 퍼져 나가 도고 황제의 귀에 흘러들었을 때, 그는 아직 자신의 황후를 고르는 중이었다. 각 지역에서 발탁된 수많은 여인 중 그가 가진 잔혼과 잘 융합되는 인물을 황후로 맞아들일 생각이었다. 허나 아직까지 마땅한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황후를 찾는 데 몰두했다.
사실 그는 한제에 대한 소문을 듣고도 그 주인공이 자신이 그토록 싫어한 사람이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렇기에 그는 그 소문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면서도 특별한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그저 그와 관련한 자료를 수집해 오도록 명했을 뿐이다. 선족의 여섯 번째 대천존이 될 가능성이 아주 큰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고족은 선족과 비교해 대천존이 한 명 부족했다. 만약 세 고족 어디에도 속하지 않지만 매우 강력한 고도 대천존(古道大天尊)의 존재가 아니었다면 진즉 선족의 손에 파괴당했을지도 모른다.
고도 대천존(古道大天尊)은 항상 고족 구역의 고봉(古峰)에서 머물렀다. 수준이 아주 높은 그는 선강 대륙 아홉 개의 태양 중 의심의 여지가 없는 최강자였다. 당시 선족에서 가장 강력했던 동림 대천존조차 고도 대천존(古道 大天尊)의 상대는 되지 못했다. 더욱이 이 고도 대천존(古道大天尊)은 아홉 태양 중 유일하게 대천존을 죽인 경험이 있는 존재였다.
아주 오래 전, 고조가 있었을 당시. 고도가 막 대천존이 됐을 때 구제 대천존은 아직 금존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고조와 선조가 실종되고 선족과 고족 사이에 한 차례 전면전이 발발했다. 당시 선족에는 여덟 명의 대천존이 있는 반면 고족에는 단 넷뿐이었다.
하지만 전쟁이 최고조에 이르고 선족이 고족 구역의 절반을 점령했을 때, 폐관수련을 멈추고 나온 고도 대천존(古道大天尊)은 홀로 선족 구역으로 쳐들어갔다. 그리고 수많은 선족 수련자들을 죽이고 두 명의 대천존을 죽였다. 뿐만 아니라 선족 구역에서 돌아오는 길에 또 한 명의 선족 대천존에게 기습을 받았으나 오히려 목숨을 잃은 것은 상대였다.
이 전쟁 이후 고도 대천존(古道大天尊)의 이름은 선강 대륙을 뒤흔들었고 선족은 어쩔 수 없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까마득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고도 대천존(古道大天尊)은 살아 있었고 그의 존재감은 선족을 압박했다. 선족이 고족보다 대천존이 한 명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고족을 감히 침범하지 못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심지어 동림 대천존의 죽음도 그가 도고(道古) 대천존을 도발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한제에 대한 소문은 도고(道古) 대천존의 비호를 받고 있는 고족 구역에서도 천천히 퍼져 나갔다. 덕분에 한제의 이름은 처음으로 고족 수련자들의 기억에 남게 됐다.
반면 이 1년 동안 사람들에게 잊혀져간 존재가 있었다. 바로 한제에게 최강의 약천존 자리를 빼앗긴 명도 존이었다.
선족 구역, 중주 황성 지하의 거대한 지하 궁전. 명도 존이 검은 연못 안에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끊임없이 부글거리는 연못 안에서는 검은 연기가 흘러나와 사방을 뒤덮었다.
명도 존은 극심한 고통에 떠는 듯 얼굴을 잔뜩 찌푸렸고 몸을 덜덜 떨었다. 그러면서도 연못에서 나오지는 않았다. 그가 이렇게 이를 악물고 연못에서 버틴 것도 어언 1년째였다.
“이한제, 이한제…”
고통이 최고조에 달할 때마다, 그래서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질 때마다 그는 한제의 이름을 되뇌었다. 이에 지하 궁전에는 그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넌 내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 허나 난 그 모든 것을 반드시 되찾아올 것이다! 크아아!”
연못의 검은 물이 다시 부글거리며 끓어올랐다. 그런 연못에서 피어오른 검은 연기가 그의 칠규를 통해 체내로 흘러들더니 혈맥에 응집돼 천천히 변화했다.
선강 대륙 최고의 도시
“반조법(返祖法). 이는 선조의 혈맥에 존재하는 것이지만 여태 그 누구도 수련에 성공하지 못했지. 난 당시 너를 포섭하기 위해 이 선조의 혈맥을 약속했다.”
누군가의 냉랭한 목소리가 지하 궁전에 울려 퍼졌다. 뒤이어 연못 한쪽의 허공에 파문이 일더니 그 안에서 선황이 걸어 나왔다.
“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이곳은 선황 일맥이 대천존이 될 수 있는 관건이기도 하지. 네가 이곳에서 수련한다면 선황의 혈맥을 갖게 될 터. 그 혈맥을 기반으로 반조법을 수련하는 데 성공할 것인지는 네 마음속 원한과 분노가 충분한가에 달려 있지. 만약 네가 끝까지 버텨낸다면 원시적인 상태로 되돌아가는 반조법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반조⋯⋯. 이한제, 난 너를 죽이고 말 것이다!”
연못 안의 명도 존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포효했다. 하지만 그의 두 눈은 이성을 잃어가듯 천천히 흐릿해지고 있었다.
“너를 죽일 것이다! 너를…”
낮게 포효하는 명도 존을 바라보는 선황의 입꼬리에 기이한 미소가 걸렸다. 그는 그렇게 눈을 번득이다가 떠나갔다.
“난 반드시 선조의 광휘를 되찾을 것이다! 성공하기만 하면 현재 가장 뻣뻣하게 굴고 있는 구제를 향해 칼을 빼 들 것이야. 그를 꺾는다면 감히 그 누가 나를 따르지 않겠는가!”
선황은 각오를 다지듯 눈을 빛내더니 다시금 말을 이어갔다.
“도일은 간교하고 교활하다. 자신의 사형을 죽이고 대천존에 오를 자격을 빼앗았지. 마음에 들어. 쓸모가 있는 자야! 반면 선황 일맥을 조금도 공경하지 않는 무봉은 죽어 마땅하다. 그에게서 대천존 자격을 빼앗아 연도비에게 넘기겠다.
난 녀석에게 많은 힘과 수고를 들였으니 이제 그 결과를 수확할 때가 온 거야. 아, 쌍자도 있었군. 허나 그 애들은 아직 영혼이 하나로 합쳐지지도 않은 상태이니 걱정할 필요도 없지!”
선황은 미소를 지으며 지하 궁전 안에서 흩어져 사라졌다. 지하 궁전 안에 남은 것은 명도 존의 낮은 포효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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