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507
그 순간, 한제는 오른손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세 사람은 동시에 몸을 바르르 떨었고 눈보라가 흩어지면서 얼굴이 드러났다.
거의 동시에 한제의 양옆에 있던 여섯 사람의 여섯 손가락이 각각 한제를 향해 뻗어졌다.
순간 한제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는 체내의 봉인이 강력해지면서 자신의 수준을 제한하는 것을 느꼈다.
그때 상공에 있던 세 사람의 검이 일제히 달려들자 한제는 빠드득 이를 갈며 그들에게 왼쪽 주먹을 날렸다.
콰쾅!
검을 들고 있던 세 사람 중 두 명은 피를 토하며 피와 살점으로 터져갔다. 하지만 한 명만은 한제의 정수리에 검을 3촌 정도 박아 넣는 데 성공했다.
극심한 고통이 온몸으로 퍼져 나갔고 정수리에서 흐른 피가 두 눈으로 흘러들면서 한제의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하아!”
한제는 싸늘한 눈으로 짧은 기합과 함께 길거리 끄트머리로 빠르게 달려 나갔다. 눈보라는 전보다 더 거칠게 몰아치고 있었다.
그때였다. 저 앞의 대지에서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지는가 싶더니 땅속에서 세 개의 허상이 튀어나왔다.
칠흑처럼 검은 허상들은 눈보라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 듯 곧장 결인을 그린 두 손으로 몸 곳곳을 두드렸다. 뒤이어 마치 원신처럼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길거리 끄트머리에서는 눈보라에 휩싸인 아홉 개의 인영이 더 나타났다. 이들은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특수한 방식으로 서로 하나로 융합해 한 마리의 빙룡(氷龍)으로 변하더니 포효하며 달려들었다.
“꺄아!”
뒤에서 해자 천존의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왔다. 그녀 역시 아홉 개의 인영에 둘러싸여 있었다. 다행이라면 그녀를 포위한 아홉 인영에게서는 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겨우 이 정도인가!”
피로 물든 한제의 두 눈은 냉정하다 못해 냉혹할 정도였다. 살기를 번득이던 그는 빙룡이 다가오자 걸음을 우뚝 멈추었다.
그 순간 한제의 앞으로 거대한 천우의 허상이 나타났고 하늘을 향해 포효하며 응결됐다. 진짜 천우가 살아 돌아오기라도 한 것 같았다.
“네놈들의 목숨은 내가 거두겠다!”
뒤이어 한제가 고개를 들자 천우는 전방에서 달려드는 빙룡과 충돌했다.
쾅!
빙룡은 비명조차 남기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부서진 빙룡 안에서 튀어나온 아홉 명의 인영은 놀란 얼굴로 피를 한 움큼 토해내더니 황급히 물러났다.
하지만 살육은 이제 시작이었다.
실체에 가까운 허상으로 나타난 천우는 곧장 한제 사방의 인영들에게도 직접적인 충격을 가했다.
거대한 금색 소가 대지 위에 우뚝 서 있었고 그 주위 십여 명의 수련자 중 양옆의 여섯은 여섯 개의 손가락으로 그 소를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격하게 경련하면서 피를 토해내더니 그대로 튕겨나갔고 소를 가리켰던 그들의 손가락은 물론 팔까지 피범벅이 된 살점으로 뭉개졌다.
앞에서 오른손 손바닥의 허상을 응집했던 세 사람 역시 피 안개에 휩싸인 채 재빨리 물러났다.
한제의 정수리에 검을 꽂아 넣었던 자 역시 무너져 내린 검과 함께 피를 토하며 후퇴했다.
금색 소 안에 자리한 한제는 결인을 그린 두 손으로 앞을 가리켰다. 그러자 금색 소의 허상은 돌진하듯 내달려 빙룡에서 튀어나온 아홉 인영과 그대로 충돌했다.
콰쾅!
“크아악!”
아홉 사람의 처연한 비명이 울려 퍼졌지만 금색 소는 멈추지 않고 길 끄트머리까지 그들을 뒤쫓더니 순식간에 폭발해버렸다.
퍼펑!
천우의 폭발로 발휘되는 힘은 본디 온 세상을 뒤흔들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지만 이때 주위에 쌓인 눈이나 건물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를 본 한제의 두 눈동자가 바짝 졸아들었으나, 그는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서며 천우를 피해 달아나던 전방의 세 사람을 뒤쫓았다. 짙은 살기를 품은 채 몸을 날린 그는 한 덩어리 안개가 되어 삽시간에 그 세 사람을 뒤덮었다. 그들의 찢어질 듯한 비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피와 살점과 정기, 심지어는 원신까지도 모두 한제에게 흡수됐다.
그러고 나서야 흩어진 안개는 나머지 사람들을 빨아들이기 위해 이동했다.
한제의 양옆으로 접근해왔다가 팔을 잃고 후퇴하던 여섯 사람은 검은 안개가 달려드는 모습을 절망감이 어린 눈으로 보았다. 이 안개는 둘로 나뉘어 각각 왼쪽과 오른쪽에 있던 세 사람을 집어 삼켰다.
그와 동시에 안개 속에서는 음도가 나타났다. 이 음도가 하늘을 가르자 한제의 정수리에 검을 박아 넣었던 자 역시 몸을 바르르 떨면서 산산조각이 나 원신과 함께 안개에 빨려들었다.
긴 거리에는 눈보라가 몰아치는 소리와 함께 처연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검은 안개로 변한 한제는 자신을 포위했던 이들을 모조리 처리하자마자 곧장 해자 천존과 대치 중인 아홉 사람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미 무시무시한 광경을 목격한 아홉 사람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그들의 속도로는 한제를 피할 수 없었다. 눈 깜짝할 사이 그들을 따라잡은 한제는 안개로 그들을 감싸 흡수했고 잠시 후 그곳에는 아홉 구의 비쩍 마른 유해만 남게 됐다.
어느덧 고요해진 사방에는 해골만 잔뜩 널려 있었다. 검은 안개는 그제야 응집해 다시 한제의 모습을 드러냈다.
“크윽!”
한제는 창백한 얼굴로 피를 한 움큼 쏟아냈다. 길 위의 눈에 뿌려진 붉은 피가 처연하고도 섬뜩했다.
“가지!”
짧게 말을 마친 한제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걸음을 옮겼다.
해자 천존은 아랫입술을 꼭 깨물며 그런 한제의 뒤를 바짝 따랐다. 방금 전 공격해온 30여 명 중 천존이 아닌 이가 없었던 만큼 그녀의 수준으로는 도움조차 되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저들 중 낯이 익거나 익숙한 자는 없었다는 점이다. 수많은 천존과 친분이 있는 그녀답게 단박에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진정한 천존이 아니라 강제로 그 수준까지 끌어올려진 이들이야. 어차피 오래 살지도 못할 이들이었지!’
앞서 걷고 있는 한제 역시 이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가 신맥을 응집하기 위해 흡수했던 그들의 원신은 그다지 순수하지 않아 어느 정도 더 제련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제련해서 응집해봐야 신맥 하나 만들기도 힘들 정도였다. 게다가 그들의 원신을 통해 한제는 그들에게 남은 수명이 기껏해야 한 시진 정도에 불과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지금 한제의 신맥은 다섯 개였다. 신맥이 하나만 더해져도 전력은 적지 않게 증강할 터였다.
‘이 함정에는 국사의 기운이 담겨 있었다. 나로서는 이전에 나타났던 네모 도안에 담긴 힘을 이해할 수 없어 그저 지연시킬 수 있을 뿐이지. 만약 이 봉인을 파괴하지 못한다면 내 전력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거야!’
그 사이 한제와 해자 천존은 긴 거리의 끄트머리에 가까워졌다.
그는 방금 전 흡수했던 원신들의 기억을 빠른 속도로 훑었지만 이미 누군가가 지워버린 듯 흐릿했다.
‘이곳은 봉인되어 있어. 천우의 혼을 폭발시켜 그 봉인을 파괴하려 했지만 소용없었지. 그러니 구제 대천존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다. 만약 내가 함정을 설치했다면 두 가지 조치를 더 취해놓았을 거야.
이곳의 기운이 밖으로 흘러나가지 않도록 막고 구제 대천존을 찾으러 가지 못하게 하는 것. 물론 이 모든 추측의 전제는 이 함정을 판 사람이 구제 대천존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쨌든 함정을 설치한 사람은 어쩌면 이곳에서 나를 죽일 마지막 일격을 준비하고 있을지 몰라!’
한제는 생각을 정리하며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거리의 끄트머리에 거의 다다랐을 때였다. 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 세 개의 인영이 전방에 나타났다. 허공에 떠 있는 인영들은 세 갈래의 빛을 그리며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이 가까워지기도 전에 한제는 약천존에 가까운 수준의 위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세 사람의 뒤로 검은 옷을 입은 두 사람이 눈보라 속에서 걸어 나왔다. 약천존으로 보이는 그들은 서늘한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다가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눈보라 속에서 나타난 검은 바람이 두 마리의 거대한 검은색 구렁이가 되어 허공에 똬리를 틀었다.
‘혼개 사자!’
한제는 그들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낯선 자들이군. 자양종에서 마흔여덟 약천존의 정보를 살핀 적이 있지만 그중 혼개를 가진 자는 없었어! 그렇다면 저 두 사람도 특수한 수단을 통해 수준을 증폭하고 혼개를 받은 거겠지. 그리고… 조성에서 그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선황뿐!’
눈빛이 서늘하게 변한 한제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면서 해자 천존을 한쪽으로 밀었다.
“해자 물러나 있어. 저들은 자네를 다치게 하지는 않을 거야. 그러니 자네가 나설 필요는 없네!”
“이한제…”
해자 천존은 초조한 표정으로 변명을 하려 했지만 한제의 손짓에 수백 척을 밀려난 바람에 그저 다섯 사람과 한제의 대치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유해가 잔뜩 널린 긴 거리 위, 짙은 살기를 품은 여섯 사람이 광기 어린 두 번째 살육을 벌이는 모습을…
다섯 사람은 다섯 갈래의 긴 빛을 그리며 달려들었다.
“죽여주마!”
두 눈이 붉게 물든 한제는 낮은 기합을 내지르며 오른손으로 음도를 소환해 휘둘렀다. 한제도 적들도 별다른 기교나 기술도 없었다. 백의를 입은 전방의 세 사람이 발휘하는 신통술도 두 가지뿐이었다. 하나는 눈보라의 힘을 응집해 눈보라 폭풍을 형성하는 것, 다른 하나는 자폭이었다.
콰쾅!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음도로 눈보라 폭풍을 가른 한제는 백의를 입은 세 사람이 자폭한 순간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아흔아홉 개의 역령인이 소환됐다. 그중 허상의 본원으로 이루어진 것을 제외한 아흔두 개의 역령인은 한데 응집해 세 사람의 자폭으로 인해 일어난 힘에 저항했다.
이토록 어마어마한 충격에도 이곳의 봉인은 멀쩡했다.
한제가 앞으로 튀어나가자 상공에 소환된 검은 구렁이로 둘러싸인 흑의의 두 사람 역시 튀어나와 충돌했다.
콰쾅!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흑의의 두 사람은 피를 왈칵 토해냈다. 그와 동시에 그중 한 사람은 온몸이 그대로 터져버렸고 나머지 한 사람은 어느새 미간에 생겨난 붉은 칼자국과 함께 두 동강이 나버렸다.
그들과 충돌하고도 앞으로 1백 척을 더 나아간 한제는 살짝 휘청거리다가 오른손 손바닥을 뚫고 나온 음도를 땅에 꽂아 겨우 몸을 지탱했다.
“퉤!”
그는 눈 쌓인 땅 위에 피를 뱉어냈다. 뜨거운 피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한데 그 순간, 그의 뒤에서 몰아치던 눈보라 속에서 손 하나가 쑥 빠져나와 한제의 뒷머리를 가리켰다. 뭐라고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기이한 기운을 품은 손짓이었다.
그 손끝이 뒤통수로부터 7촌 정도 떨어진 곳에 이른 순간, 한제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곧장 앞으로 튀어나갔고 거의 동시에 몸을 돌리면서 땅에 꽂아놓았던 음도를 휘둘렀다.
깡!
쇳소리와 함께 음도에 대량의 균열이 일어나더니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무수히 많은 조각으로 부서져 흩어진 조각들이 반짝거렸다.
함정
한제는 음도가 부서진 것에 대해 전혀 놀라지 않았다. 이미 예측한 일이기 때문이다.
한제의 두 눈에서는 눈부신 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이 금빛은 한제가 허무 속에 남겨둔 분신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었다. 이 함정에서 가장 강력한 공격이 나타날 때까지 아껴둔 필살기인 셈이다.
저 손가락의 주인은 네모 봉인을 설치해 한제의 전력을 제한해두고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눈부신 금빛이 나타나자 한제를 묶어두고 있던 봉인은 종잇장처럼 찢겨나갔다. 동시에 한제는 모든 힘을 회복하게 됐다. 또한 부서져 흩어졌던 음도의 조각들은 한제의 눈에서 발산된 금빛을 반사해 반짝이며 사방으로 퍼져 나가면서 하나의 진을 형성했다. 금제의 본원을 완성한 한제는 언제든 원하는 진을 배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제는 왼손을 들어 자신을 가리키고 있는 손가락을 가리켰다.
이 손짓에는 지금 한제가 발휘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 실려 있었다. 허무의 분신의 힘뿐만 아니라 혼개의 위력까지 동원한 것이다. 여기에 오행 진신, 천둥번개의 진신, 그리고 세 허상의 본원까지 전부 다 발휘한 한제의 뒤로는 세 개의 흐릿한 회오리가 형성됐다.
그 모든 힘이 한제의 손가락에 녹아들었다. 부서진 음도의 조각들로 이루어진 진 덕분에 한제는 허무의 분신의 힘을 최대로 끌어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