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513
“아주 얻기 어려운 존재야. 역대 선황이 대대로 준비해둔 덕분에 억지로나마 완성된 것으로 반조법의 성공 확률을 높여준다. 만약 네가 내 제안에 응한다면 난 명도 존이 가져야 할 수준을 네게 이전시켜줄 수 있어! 네가 그렇게 선족 내 최강자가 되고 대천존을 능가하는 존재가 된다면 연도비 역시 구할 수 있겠지!”
상현도는 흥분한 듯 말이 점점 빨라졌다.
“제안이라는 게 뭐지?”
반면 한제는 여전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원하는 건 단 하나. 우리 종족의 자유다. 2대 선조가 된다면 당시의 우리 종족의 봉인을 풀어달라는 거야!”
상현도의 두 눈에서 기이한 빛이 번득였다.
“그럼 우리는 곧장 선강 대륙을 떠나 고향인 천외로 돌아갈 거다. 너는 선조처럼 막강한 존재가 되어 원하는 것을 누릴 수 있겠지.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면 맹세라도 하겠다. 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온몸을 불태워 없애겠어!”
말을 마치며 상현도는 오른손으로 기이한 결인을 하나 그렸다. 그러자 그의 마지막 말이 글로 나타나 번쩍이며 응집하더니 복잡한 문양을 형성해 허공으로 떠오르며 사라졌다.
“맹세의 낙인이다. 선강 대륙의 선강 법칙에 걸고 맹세했어. 네 수준이라면 이 낙인이 거짓인지 아닌지는 파악할 수 있겠지!”
상현도의 제안에 한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조용한 가운데 제법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그럴수록 상현도의 얼굴에는 초조함이 드러났다.
“이한제, 나는 네게 아무런 악의도 원한도 없다. 그리고 내가 한 말은 모두 진실이지. 난 그저 우리 부족원의 자유를 되찾고 싶을 뿐이야! 평생을 노예처럼 살다 가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심지어 이 굴레는 후손들에게까지 그대로 전해진다.
우리 종족의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그런 운명에 처하게 되는 거지. 까마득히 오랜 세월을 그렇게 살아왔어! 그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으나 우리에게는 그럴 힘이 없지. 그런 우리에게 네가 유일한 희망이다. 우리 종족을 한 번만 도와다오!”
상현도의 말에는 진심이 가득 묻어났고 그 표정에는 오랜 세월 묵혀졌을 깊은 슬픔이 어려 있었다. 급기야 그는 제단 위에 서서 한제를 향해 절을 올리기까지 했다.
허나 그럼에도 한제의 냉담한 표정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무정함이 어린 눈과 검은 머리카락으로 살육과 파괴를 상징하고 있는 그는 이보다 훨씬 큰 슬픔을 마주한다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상대의 말을 덜컥 믿어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한제는 제단 아래 연못 속에서 일그러진 표정으로 앉아 있는 명도 존을 힐끗 보았다. 상대의 체내에서 피어오르는 광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저자는 의식을 잃은 것인가?”
“선황이 그의 의식을 지웠지. 남은 것은 오직 원한과 살기뿐이야!”
상현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한제로서는 그 원한이 별로 깊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명도 존의 수준을 감안하면 그 의지가 얼마나 강할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상현도는 마음을 졸이며 기다렸다. 한제의 냉담한 표정에 끊임없이 한숨을 푹푹 내쉬던 그는 결국 이를 악물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만약 자네가 내 제안에 응한다면 선강 대륙의 모든 동부계에서 나오는 향불의 힘을 네게 주겠다. 그 모든 향불의 힘을 흡수한다면 엄청난 힘을 얻을 수 있을 거야! 수준은 물론이고 신통술과 수명까지도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겠지. 언젠가는 공과 멸의 수준에 다다르게 될지도 몰라! 우주의 정점에 이르는 셈이지!”
말을 마친 상현도는 오른손으로 미간을 움켜쥐었다. 격렬하게 경련하던 그의 미간에서는 주먹만 한 검은 결정이 뽑혀 나왔다. 그 결정에서는 빛이 나지는 않았지만 대신 아주 짙고 강한 향불의 힘이 느껴졌다.
“이게 바로 선강 대륙 모든 동부계에서 제공되는 향불의 중추다. 이것을 가지고 있으면 온 대륙에서 시시각각 향불의 힘을 제공받을 수 있지! 허공에서 탄생한 선조는 우리 종족과 달리 스스로 향불의 힘을 흡수할 수 없었기에 우리는 우리 육신을 통해 그 힘을 제련해야 했어.”
상현도는 손에 든 결정을 내려다보며 회한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에 향불의 힘을 흡수할 수 있는 자는 적지 않지만 그들이 흡수하는 향불의 힘은 순수하지 못하지. 사실 누구든 향불의 힘을 흡수한 자는 우리에게 향불의 힘을 제공하는 씨앗이 될 뿐. 허나 넌 다르다. 너는 향불의 동부계에서 태어났지. 그러니 선조처럼 우리의 제련을 거치지 않아도 네 영혼과 몸이 알아서 향불의 힘을 흡수할 수 있을 거다!”
말을 마친 상현도는 결단을 내린 듯 단호한 눈빛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은 결정을 한제에게 던졌다.
날아든 결정은 한제 앞에 이른 뒤 더는 나아가지 못하고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체내에서 그 결정을 뽑아낸 상현도는 폭삭 늙은 듯 보였다.
“그건 우리 종족의 수명 결정이다. 그걸 잃으면 난 오래 살지 못하지. 우리 종족 아이들이 자유를 되찾고 이곳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부디 우리를 도와다오.”
상현도가 노쇠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제는 말없이 결정을 바라보다가 잠시 후 오른손을 뻗어 그 결정을 거두더니 고개를 들어 상현도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허나 난 선강 대륙의 맹세에 대해서는 잘 몰라. 내가 아는 것은 피의 맹세뿐이지!”
이어서 그는 손끝을 깨물었다. 상처에서 배어 나온 핏방울은 한제의 짙은 기운을 품고 있었다. 그것을 피 안개로 폭발시킨다면 그 기운을 감지한 사람은 그것이 진짜 한제의 기운이라 여기게 될 터였다.
“네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제안을 받아들이지!”
한제의 말이 녹아들자 핏방울은 결정처럼 반짝이더니 상현도에게로 날아갔다.
상현도는 감격한 눈으로 이 핏방울을 바라보다가 연못 속에 가부좌를 튼 명도존을 가리키며 재빨리 외쳤다.
“고맙군! 이제 무엇보다 시간이 중요해! 어서 저 연못으로 들어가라. 난 선황이 정신없는 틈을 타서 신통술을 발휘하겠다. 명도 존이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사이 그가 전승받은 것을 네게 옮겨주지!
아마도 매우 고통스러울 거야. 그래도 혈맥을 바꾸어 체내에 선조의 피가 흐를 수 있게끔 하는 작업이니까 저항해서는 안 돼. 저항하면 모든 것은 수포가 되어버리니까. 이한제…”
상현도는 매우 진중한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다가 또다시 포권을 하며 깊게 절을 했다.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으마. 선강 대륙의 우리 종족 모두를 대표해 감사의 뜻을 전한다.”
한제는 여전히 차가운 표정으로 천천히 연못을 향해 다가갔다. 허나 연못에 발을 들이기 직전, 그는 돌연 고개를 쳐들어 상현도를 보았다. 여전히 감격에 빠져 있는 상현도에게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다. 그의 말대로 결정을 잃은 그에게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다.
“연도비를 먼저 구해야겠어!”
한제의 말에 상현도는 쓰게 웃으며 아홉 개의 사슬에 뒤얽혀 있는 연도비를 힐끗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저 사슬은 선황이 배치한 것이라 나로서는 풀 수가 없어. 저걸 건드리면 그가 단박에 알아차릴 게 분명해. 게다가 내게는 정말로 저 사슬을 풀 능력이 없어. 허나 네가 선조의 힘을 얻기만 한다면 모든 것은 해결되지. 나를 믿어라. 우리 종족 모두의 생명과 미래를 걸고 약속하지.”
상현도는 진심이 우러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저 한제의 믿음을 얻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건 그였다.
한제는 그런 상현도를 말없이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장 연못 안으로 들어섰다. 그가 피처럼 붉은 연못에 오른발을 들인 순간 그 발을 살짝 흔들었다. 아주 가벼운 동작이었지만 이로 인해 외부인으로서는 알아차릴 수 없는 파문이 연못 안에 퍼져 나갔다.
그 파문에는 한제의 오른발에서 발산된 한 줄기 살육의 기운이 어려 있었는데 그 기운은 곧장 명도 존의 체내로 파고들었다.
한편 상현도는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한제가 연못 속에 들어간 순간 그는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더니 자신의 마지막 생기를 끌어모아 신비의 술법을 발휘하려 했다.
한데 그때였다. 돌연 지하 궁전의 공기가 서늘해졌다.
연못 속의 명도 존이 내내 감겨 있던 두 눈을 번쩍 뜬 상태였다. 멍했던 두 눈에는 곧 하늘을 뒤덮을 듯 짙은 광기가 드러났다. 지하 궁전을 휩쓴 한기는 바로 그의 체내에서 발산되고 있었다. 그로 인해 그가 눈을 뜬 순간 연못의 물은 빠른 속도로 얼어붙기 시작했다.
선인의 머리로 만들어진 산
“크아아아!”
고개를 쳐들며 포효를 내지르던 명도 존이 벌떡 일어서자 얼어붙은 연못은 쩌적 소리가 나며 깨져나갔다. 동시에 그의 머리카락은 급속도로 자라나면서 순식간에 그의 키보다 더 길어져 얼어붙은 연못 위에 흩어졌다.
이내 고개를 돌린 그는 살기가 가득한 눈으로 한제를 노려보았다.
한편, 이 갑작스러운 광경에 상현도는 흠칫 놀랐다. 거의 넋이 나간 것 같은 표정이었다.
명도 존이 각성하면서 연못이 얼어붙던 순간, 그 안에 들였던 오른발을 곧장 거두었던 한제는 서늘한 살육의 기운을 드러내며 뒤로 물러나 상현도를 노려보았다.
“역시 날 속였군!”
“그…”
상현도가 막 무슨 말인가를 하려던 때였다. 명도 존이 몸을 훌쩍 날려 한 마리 흉수처럼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나를 납득시키지 못한다면 방금 전의 거래는 없던 일이 될 거다!”
분노한 한제는 달려드는 명도 존을 향해 손을 휘두르며 외쳤다. 이어서 살육과 파괴의 기운이 담긴 검은 구름으로 변한 한제는 곧장 명도 존을 향해 돌진했다.
둘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진 순간, 명도 존은 고함을 내지르며 광기 어린 두 눈을 번득이며 왼손으로 전방을 가리켰다. 그러자 아홉 갈래의 푸른 기운이 허공에서 나타나 그의 다섯 손가락 주위를 아홉 바퀴 맴돌면서 확산되더니 검은 구름으로 변한 한제에게로 날아갔다.
콰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순수하고도 극에 달한 화염 본원의 힘을 뿜어낸 아홉 갈래의 푸른 연기 고리는 이글이글 타오르며 검은 구름을 뒤흔들었다.
제단 위에서 이 광경을 보며 고민하던 상현도는 이 상황이 어쩌면 한제와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추측을 했다. 한제의 등장으로 자극을 받은 명도 존이 예정보다 빨리 각성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상현도는 오른손을 들어 손바닥에 하얀색의 소인(小人)을 소환해 점을 치려 했다. 그때, 저 아래에서 한제와 맞붙던 명도 존의 연기 고리가 검은 구름과 충돌한 충격에 상현도 쪽으로 나가떨어졌다.
한제 역시 연거푸 몇 걸음이나 물러난 후에야 멈춰 섰는데 그는 고개를 번쩍 쳐들어 상현도 쪽으로 밀려나는 명도 존을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이어서 앞으로 한 걸음 나선 순간 그의 검은 도포가 휘날리면서 무수히 많은 검은 기운으로 갈라졌다. 이에 그는 거대한 검은 안개가 되었고 그대로 제단 위로 솟아올라 아홉 개의 사슬에 단단히 얽혀 있는 광인에게로 향했다.
“네가 저 녀석을 죽이거나 제압한다면 그때 거래를 이어가도록 하겠다!”
검은 안개에서 한제의 목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상현도의 앞에 떠 있던 한제의 맹세를 담은 피가 곧장 폭발했다. 그로 인해 형성된 피 안개는 제단을 뒤덮고 상현도의 사방을 에워쌌다.
피 안개가 확산되자 그 주위에는 다른 사람으로서는 진짜 한제인지 아니면 단순히 그의 일부에 불과한 것인지 알 수 없는 기운이 짙게 풍겼다.
더욱이 지금 한제는 흑발의 한제로 변한 데다가 안개에 완전히 녹아들어 그 기운이 완전히 거두어진 상태였다.
때문에 의식을 잃은 명도 존은 상현도의 주위를 에워싼 피 안개 속 한제의 기운을 향해 뼈에 사무친 살기를 발산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목표를 바꾼 명도 존은 붉게 달아오른 눈을 번득이며 상현도를 향해 달려들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점술을 행할 수 없게 된 상현도는 자신의 주위를 감싼 피 안개를 바라보았다. 사실 더 이상 점을 칠 필요는 없었다. 이미 답은 얻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상현도는 표정이 날카롭게 변하더니 눈을 번득이면서 손바닥 안의 소인을 곧장 날려 보냈다. 그의 손바닥을 떠난 소인은 순식간에 부풀어 올라 보통 사람과 같은 크기에 이르더니 명도 존을 향해 손짓했다.
사실 한제는 처음부터 상현도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그럼에도 상대의 말을 듣고 있었던 것은 어떻게 하면 광인을 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상현도는 기이한 힘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가 저지한다면 광인을 구하기는 더욱 힘들어질 것이 분명했다.
이에 한제는 상대의 말을 듣는 척하면서 명도 존이 정말로 의식을 잃은 것을 확인했고 맹세의 피를 이용해 상대의 주위에 자신의 기운을 둘러놓을 기회를 노렸다. 이러한 행동이 상현도의 의심을 사지는 않을 터였다. 맹세의 피에는 본래 각자의 기운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매우 초조했던 상현도는 한제가 제안에 응하자 자신의 앞에 상대의 피가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한제에게 명도 존이 전승받은 힘을 전달해주는 데에 정신이 팔리고 말았다. 뒤이어 명도 존이 한제의 존재에 의해 자극을 받으면서 지금과 같은 상황이 펼쳐지게 된 것이다.
선조의 전승이니 상현도 일족의 봉인 해제니 하는 것들에 대해 사실 한제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살육과 파괴로 응집된 존재인 흑발의 한제에게 그런 감정이 존재할 리 없었다. 지금 그에게 존재하는 유일한 감정이라고는 백발의 한제에서 흑발의 한제로 전환되면서 남은, 광인을 구해야 한다는 집착뿐이었다.
검은 안개가 된 그는 상현도와 명도 존이 맞서고 있는 틈을 타 제단 위에 아홉 개의 사슬로 뒤얽힌 광인에게로 향했다.
그 순간, 돌연 광인의 몸에서 눈부신 금빛이 발산됐다. 황궁 안 선조의 조각상에서 발산된 빛과 똑같은 빛이었다.
그 금빛 아래 한제의 심신은 바르르 진동했다. 심지어 그의 살육으로도 어쩔 수 없는 힘 때문이었다. 금빛으로부터 발산된 그 힘과 접촉한 순간, 한제를 감싼 검은 안개가 대대적으로 흩어졌다.
강력한 금빛으로 인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한제의 온몸에서는 검은 연기가 발산됐다.
하지만 그 연기는 나타나자마자 파직, 파직 소리를 내며 흩어져 사라졌고 그와 동시에 영혼으로부터 기인하는 듯한 극심한 고통이 온몸으로 퍼져 나가면서 한제는 더 이상 광인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크윽!”
한제는 곧장 뒤로 물러났지만 강력한 금빛에 그의 머리카락은 급속도로 바뀌기 시작했고 수백 척을 물러났을 무렵 그의 머리카락은 이미 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금빛에 담긴 어마어마한 힘 때문에 살육과 파괴의 화신에서 본래의 한제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쿨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