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517
두 자루 보라색 검영은 날아드는 중 하나로 합쳐져 한 줄기 검광이 되어 눈 깜짝할 사이 선황 근처에 이르렀다. 선황은 그 순간 오른손을 하늘로 휘둘렀다. 그러자 그를 받치고 있던 선조 머리의 두 눈에서 눈부신 금빛이 뿜어져 나와 하늘을 뒤덮더니 쌍자 대천존이 소환한 보라색 검광을 향해 뻗어나갔다.
콰쾅!
거대한 소리가 울리며 선조의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온 금빛과 접촉한 보라색 검광은 산산조각이 났다. 검광의 파편은 파문을 일으키듯 사방으로 튕겨나갔고 쌍자 대천존은 뒤로 물러나야 했다.
선황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선조 머리의 두 눈으로 금빛을 다시 발산했다. 동시에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자 금색 새가 그의 손에 나타났다.
선황이 손을 휘두르자 금색 새는 날개를 퍼덕이며 쌍자 대천존에게 달려들었다.
뒤로 물러나던 두 소녀는 무거운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다가 곧장 날아올라 보라색 태양과 융합했다. 연기처럼 피어오르며 한데 얽혀 융합한 소녀들은 곧 스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한 명의 아름다운 여인이 됐다.
다섯 대천존
보라색 옷을 입은 여인은 서늘한 눈빛으로 고운 손을 들어올렸다. 순간 온 세상은 보라색으로 물들었다.
“이한제를 내놓으면 더 이상 이 일에 관여하지 않고 떠나마. 허나 그러지 않으면⋯⋯ 자림종(紫臨宗)이 조성에 임할 것이다!”
금궁은 보랏빛으로 뒤덮였다. 보라색 빛은 지하 궁전은 물론 황궁 안팎, 나아가 조성 전역을 빈틈없이 뒤덮었다.
그와 동시에 선강 대륙 조성 상공에 조성의 절반에 이르는 거대한 보라색 운석이 강림했다. 그것으로부터 발산되는 어마어마한 위압감에 조성 대지에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대량의 균열이 일어났고 수많은 수련자들이 겁에 질린 채 다급히 도망쳤다.
선황은 온전한 모습을 드러낸 쌍자 대천존을 굳은 얼굴로 바라보았고 그를 받치고 있는 선조의 머리는 금빛을 대대적으로 발산해 보라색 빛에 맞섰다. 선조의 힘에 속한 금빛 앞에 보라색 빛은 밀려나기 시작했다.
“내가 이것을 통제하기 전이었다면 쌍자 자네의 가장 강력한 신통술인 자림 신술에 위협을 느꼈겠지. 허나 이제 고작 자림 신술로는 나를 막지 못해!”
선황의 얼굴에 다시금 강한 자신감이 드러났다.
한데 그때였다. 돌연 누군가의 노쇠한 목소리가 금궁에 울려 퍼졌다.
“내가 쌍자 대천존과 힘을 합친다 해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그 목소리와 함께 하늘의 구멍 안에서 구제 대천존이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그의 뒤로는 창백한 얼굴의 해자 천존이 따르고 있었다.
구제 대천존의 갑작스러운 등장에도 선황은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여전히 자신감 넘치는 눈빛을 번득이며 구제 대천존을 바라보았다.
“구제! 역시나 자네도 왔군!”
선황이 미소를 지었다.
구제는 무거운 눈으로 선황을 응시했다. 선조의 머리를 보는 그의 눈에는 복잡한 빛이 어려 있었다.
“선조의 머리⋯⋯ 당시 난 선조 휘하에 있었지. 벌써 까마득히 오래 전이로군. 연도진, 난 그간 몇 명의 선황을 보았지만 자네는 그중에서도 재능이 가장 뛰어나고 포부가 큰 자야.
국사의 갈망을 이용해 선조의 머리에 대한 통제권을 얻다니. 시간만 충분하다면 그 힘을 모조리 흡수해 체내에 융합시키고 선족 최강의 대천존이 될 수 있었을 게야. 허나 자네에게는 그럴 기회가 없네!”
구제 대천존은 싸늘한 목소리로 외치며 선황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순간 온전한 모습의 쌍자 대천존 역시 온몸으로 보라색 빛을 발산하며 돌진했다. 금궁 안에서 세 대천존의 전투가 발발한 것이다.
허나 선황은 여전히 자신감이 넘쳤다. 두 대천존이 자신에게 달려들자 그는 선조의 머리를 향해 오른손을 휘둘렀다.
“팔극도! 극화도!”
그 순간, 선황의 온몸에서 금빛이 발산되면서 그를 받치고 있는 선조의 머리에서도 눈부신 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금빛은 하늘을 뒤덮은 보라색 빛을 밀어냈고 선조의 머리가 입을 쩍 벌리더니 선황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팔⋯⋯극도⋯⋯ 선화(仙火)⋯⋯도!”
띄엄띄엄 이어진 목소리가 끝난 순간, 폭이 10척에 달하는 푸른 연기 아홉 갈래가 허공에 나타났다. 이 연기들은 선조의 머리와 선황의 주위를 맴돌면서 아홉 번 회전하더니 쌍자 대천존과 구제 대천존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콰쾅!
거대한 소리가 금궁에 울려 퍼졌다. 그 사이, 천역주에 숨어 있던 한제는 국사가 충격에 빠져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자신의 눈과 선조의 오른쪽 눈을 통해 바깥의 상황을 빠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이 갑작스러운 변화에도 그는 경거망동하지 않고 기다렸다. 이 상황이 눈에 보이는 것처럼 간단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제의 등장으로 어쩌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니 상황을 완전히 파악하기 전까지는 절대 나가지 않을 심산이었다.
그 무렵,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쌍자 대천존은 보라색 빛으로 몸을 감싼 채 몇 걸음 물러났다. 구제 대천존 역시 진중한 표정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이 두 사람은 방금 선황이 아니라 선조와 맞닥뜨린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선조의 신통술이라면 이들이 힘을 합친다 해도 이겨낼 수 없을 터였다.
“완전한 선조의 힘은 아니야. 그 1할에 불과해!”
구제는 눈을 번득이며 외쳤다. 그의 체내에서는 펑, 펑 소리가 울려 퍼졌고 노인이었던 그의 모습은 눈 깜짝할 사이 중년으로 바뀌었다. 준수한 외모의 그에게서는 제왕의 패기가 느껴졌다. 구제는 본래 노인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가 진정한 위력을 발휘할 때만 중년 사내의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구제, 자네의 그런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로군. 허나 그래봐야 내 적수가 되지는 못해!”
선황은 미소를 지으며 선조의 머리 위에 가부좌를 틀더니 두 손을 뻗어 선조 머리의 정수리를 꾹 눌렀다.
“나의 피로 선조의 영혼을 소환한다!”
뒤이어 혀끝을 깨문 그는 피를 한 움큼 뿜어냈다.
그 순간, 선조의 머리가 바르르 진동하더니 강력한 금빛을 선황에게 응집시켰다. 금빛이 빠른 속도로 응집되면서 거대한 금색 허상이 금궁에 나타났다. 황포를 입은 금빛 허상은 다름 아닌 선조의 모습이었다.
머리는 진짜였지만 몸은 허상인 그 인영은 두 눈으로 금빛을 번득이며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손에 거대한 금빛 검이 나타났다.
‘선극검!’
그 순간, 한제는 무언가가 자신을 부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감히 선조의 위엄에 도전하다니. 당시 선조의 검 아래 수많은 천외의 존재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중 자격을 가진 존재들만이 봉인되어 선족 구역의 주가 됐지. 너희가 과연 이 검을 당해낼 수 있을까?”
선황이 날카롭게 외치자 허상은 금빛 검을 높이 들어 올렸다가 구제와 쌍자를 향해 매섭게 내리쳤다.
검이 허공을 갈랐지만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허나 그 순간 하늘과 땅의 기색이 변했다. 금궁이 있는 공간이 둘로 쪼개진 것만 같았다.
표정이 급변한 구제는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며 하얀 태양의 허상을 소환했다. 보라색 태양과 함께 높이 떠올라 서로를 비추던 이 태양에서 하얀 늑대 한 마리가 포효하며 튀어나와 금빛 검을 향해 울부짖었다.
거의 동시에 쌍자 대천존 역시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하늘을 뒤덮는 듯했던 보라색 빛은 보라색 대나무로 응집되어 순식간에 자라나 눈 깜짝할 사이 대나무 숲을 형성했다. 뒤이어 보라색 대나무들은 일제히 만 자루의 검처럼 하늘에서 내리 떨어지던 금빛 검을 향해 돌진했다.
“도일, 무봉! 아직도 움직이지 않고 뭘 기다리는 것인가!”
구제 대천존의 외침과 함께 하얀 늑대가 튀어나온 순간, 선황의 양옆에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모든 것이 순간 움직임을 멈춘 선황의 왼편에서 도일이 나타났다. 그는 매우 무거운 표정으로 오른손을 들어 올려 선황을 가리켰다. 평범해 보이는 손짓이었지만 그가 깨달은 만물화일(萬物化一)의 도가 순간 강력한 힘을 발산했다.
동시에 바람과 구름이 몰아치면서 하늘과 땅을 무너뜨릴 듯 요란한 소리를 울리던 선황의 오른편에서는 무봉 대천존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나타나자마자 선황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당시 천존열 열아홉 번째 층을 통과한 무봉 대천존은 무도(武道)를 추구하고 깨달은 장본인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의 주먹에는 그가 가진 모든 힘과 세상에 대한 깨달음, 그리고 신념이 담겨 있었다.
네 명의 대천존이 동시에 공격을 가한 순간, 선조의 오른쪽 눈 안에서 이 모든 광경을 똑똑히 지켜보던 한제는 영혼이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이곳에 도일과 무봉 대천존까지 나타날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이들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한제는 이 지하 궁전이 사실은 하나의 장기판이었음을 자신과 나머지 대천존들은 그 장기판 위의 말에 불과했음을 깨달았다. 이 장기를 두고 있는 것은 선황이었지만 그 상대가 누구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한편, 그 무렵 금빛 검은 쌍자 구제, 도일, 무봉 네 사람을 휩쓸었다.
콰쾅!
요란한 굉음이 울려 퍼졌고 도일은 몸을 바르르 떨며 튕겨나갔다. 무봉 역시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채 물러났다. 쌍자와 구제는 도일이나 무봉보다 수준이 조금 더 높았으나, 금빛 선극검 앞에서는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 네 사람의 공격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고족 최강의 대천존을 제외한다면 그 누구도 이들의 협공을 막아낼 수 없었다.
이는 허상의 금빛 선극검도 마찬가지였다. 선조의 힘 중 겨우 1할을 품고 있을 뿐인 이 검은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깨졌고 흩어진 파편이 선조의 허상을 지나쳐 대지에 떨어졌다.
그 순간, 선조의 허상 역시 흩어져 사라져 처음부터 허상이 아니었던 머리만 허공에 남았다. 그 머리 위에 선 선황은 피를 왈칵 토해내더니 고개를 번쩍 쳐들어 도일과 무봉을 노려보았다.
“나만으로는 부족하다고? 그렇다면 도일과 무봉까지 합세한 지금은 어떤가!”
구제가 선황을 응시하며 냉랭하게 외쳤다.
“대체 내게서 뭘 원하는 것이냐!”
선황이 어두운 얼굴로 날카롭게 물었다.
“이한제를 풀어주면 난 곧장 떠날 것이다!”
쌍자 대천존은 차가운 눈으로 선황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자네가 선조의 머리를 다시 봉인하는 것이네. 그 머리는 선족 72개 주에 봉인된 천외 흉수의 영혼을 제압하고 있어. 아무리 선황이라 해도 멋대로 소유하고 통제해서는 안 된단 말일세!”
구제는 선조의 머리를 슥 훑어보며 말했다.
“나도 구제와 생각이 같네! 선황, 우리 다섯이 균형을 이루던 이전의 정세를 유지하는 게 좋을 거야. 그 정세를 바꾸거나 흔들 필요는 없어!”
도일 역시 무거운 표정으로 외쳤다. 그는 선조의 머리에 상당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나 역시 그것을 원하네!”
잠시 후, 무봉도 짧게 답했다.
이들의 대답에 선황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냉랭하고 차가운 웃음이었다. 동시에 그는 두 손을 들어 두 손으로 가슴을 세차게 때리더니 대량의 금빛 피를 토해냈다. 그러자 선조 머리의 두 눈뿐만 아니라 입과 두 귀, 콧구멍에서도 강렬한 금빛이 발산됐다.
바깥쪽으로 확산된 금빛이 파도처럼 퍼져 나가는 모습에 구제를 비롯한 대천존들은 흠칫 놀라며 동시에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이들이 물러나자 선황의 표정은 더욱 사납게 변해갔다. 어차피 더 이상의 타협은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차라리 선조의 머리에 담긴 힘을 폭발시켜 나머지 대천존들이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은 후 그 머리에 담긴 힘을 흡수하기로 했다. 성공하기만 한다면 다른 대천존이 협공한다 해도 두려울 이유가 없을 터였다.
금빛이 폭발하는 가운데 선황은 몸을 굽힌 채 두 손을 선조의 머리에 얹고 그 안의 힘을 맹렬히 빨아들였다.
하지만 금빛은 흡수되지 않았다. 마치 선조의 머리 안쪽에서 한 층의 봉인이 선황과의 융합을 가로막고 있는 것만 같았다.
‘빌어먹을 국사! 도망족의 봉인이로군! 여태까지 도망족에 드리워져 있던 봉인을 선조의 머리에 드리운 거야! 평소라면 선황인 자조차 그 봉인을 풀기 힘들었을지도 모르지. 허나 선조의 머리를 통제할 수 있게 된 지금 내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게다가 도망족을 옥죄고 있던 봉인을 해제하더라도 국사가 죽는다면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도 못할 터!’
선황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허나 상황이 긴박한 탓에 많은 생각을 할 틈은 없었다.
진정한 국사
네 명의 대천존은 전력을 다해 금빛에 저항하고 있었다. 이에 선황은 자신에게 시간이 많지 않음을 깨달았다. 최대한 빨리 선조의 머리를 흡수하지 못한다면 그 상태에서 금빛이 모두 흩어져버리면 네 대천존의 협공에 여태까지 해온 모든 일은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절대 그렇게 둘 수는 없었다. 더욱이 최후의 단계를 눈앞에 둔 지금 실패는 생각도 하기 싫었다.
‘국사도 내 계획을 눈치채지는 못했어. 한데 구제 대천존이야 조성에 있었으니 내 기척을 눈치채고 왔다 쳐도 도일과 무봉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생각보다 훨씬 빨리 도착했다!’
생각에 잠긴 채 이를 악문 선황은 오른손을 들어 전방을 가리켰다. 순간 그의 손가락은 피범벅이 된 살점으로 무너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