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520
그는 천둥번개의 그물에서 발산된 기이한 한 줄기 기운이 자신의 체내에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이 기운은 몸 안 곳곳을 갈기갈기 찢고 있는 듯했고 밖으로 몰아낼 수도 없었다.
대천존이 된 이래로 잊고 지냈던 위기감이 그를 덮였다. 체내로 파고든 살육의 기운에 선조의 저술은 더욱 날뛰었고 이로 인해 썩어 문드러진 얼굴의 살점이 뭉텅뭉텅 떨어져 나갔다.
“이⋯⋯.”
도일은 입을 벌렸지만 결국 극심한 고통 아래 숨을 꺽꺽 들이마시는 데 그쳤다. 대천존이 아니었다면 벌써 흔적도 없이 소멸됐을 정도로 끔찍한 고통이었다.
“도일, 정말로 맞붙고 싶은가? 정녕 그럴 생각이라면 네가 그 저술 아래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지 지켜봐주마!”
한제는 소매를 휘두르며 냉랭한 얼굴로 말했다.
도일은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 채 한제를 죽일 듯 노려보았지만 끝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오히려 한제에 대해 자신조차 믿을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다.
그때, 구제가 어두운 얼굴로 한제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한제, 내가 또다시 너를 얕잡아보았구나. 허나 우리가 저술의 영향에 시달리고 있다고 해서 네가 선조의 머리를 가져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나 역시 너를 상대하느라 저술에 더욱 노출되고 싶지도 않다.
조용히 선조의 머리만은 넘기고 가거라. 이후 네 안전은 보장해주마. 이곳의 다른 대천존들과 나는 앞으로도 너를 적대시하지 않을 것이며, 네가 대천존이 되는 것을 전력으로 돕겠다고 약속하마. 허나 더 이상 탐욕을 부리려 한다면 이곳이 네 무덤이 될 것이다!”
구제 대천존이 덤덤하게 말했다.
“쌍자 대천존 역시 허약해진 상태라 내 적수가 되지는 못한다! 무봉과 도일이 비록 전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태지만 쌍자 대천존을 막는 정도는 할 수 있지. 게다가 이쪽에는 도망족 출신 국사인 해자도 있다. 이한제, 죽음을 자처하지 마라! 우리 중 누구라도 마음만 먹는다면 대천존의 힘으로 너를 죽일 수 있다.”
한제는 여전히 덤덤한 눈으로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그때, 저 멀리서 지켜보던 쌍자 대천존이 순식간에 한제 뒤에 이르렀다. 얼굴이 창백해진 그녀는 온몸으로 보라색 빛을 번득이는가 싶더니 곧 그 빛에 융화되면서 다시금 두 명의 소녀로 돌아왔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두 소녀는 매우 허약해진 듯 보였다. 융합에는 엄청난 대가가 따르는 모양이었다.
한제는 두 소녀가 자신의 곁에 이른 순간 곧장 오른손을 들어 올리며 선조의 머리를 딛은 발을 세차게 굴렀다. 그러자 선조의 머리는 격렬하게 진동했고 이로 인해 금빛으로 뒤덮인 두 눈이 튀어나왔다.
선조의 머리 안에는 그가 죽기 전에 남긴 저술이 담겨 있었지만 그 저술은 지금 이미 파괴된 채 선황과 구제를 포함한 네 사람에게 분담된 상태였다. 선황의 영혼을 거둔 순간 그 사실을 감지한 한제는 이제 선조의 머리를 파괴해도 저술의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임을 간파한 상태였다.
본래 하나였던 선조의 두 눈알은 곧장 날아가 두 소녀의 손에 하나씩 쥐어졌다.
“이것은 쌍자 대천존께 유용할 것이니 받아주십시오!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한제는 쌍자 대천존에게 공손히 포권을 했다. 그리고 이 모습을 본 구제 대천존이 분노에 찬 소함을 내지르며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도일도 잔상을 그리며 검은 연기에 뒤덮인 몸으로 돌진해왔다.
“무봉, 해자! 너희들도 와라!”
구제는 분노로 눈이 뒤집힐 지경이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대천존인 자신이 다른 이들의 힘을 빌리게 됐다는 사실 자체가 치욕적이었다.
“저자를 살려둬서는 안 돼!”
짙은 살기를 품은 구제 대천존이 날카롭게 외치며 한제의 근처에 이른 그때, 선조의 눈알을 하나씩 손에 쥔 두 소녀의 창백한 얼굴이 단호하게 변했다 이어 두 소녀는 몸을 훌쩍 날려 다시 진정한 쌍자 대천존으로 융합하더니 구제와 도일을 향해 몸을 날렸다.
콰쾅!
요란한 굉음이 울려 퍼지는 사이 멀지 않은 곳에서는 무봉이 머뭇거리고 있었다. 해자 천존 역시 아랫입술을 꼭 깨문 채 갈등 중이었다.
쌍자 대천존이 구제와 도일에 맞선 순간, 한제는 두 갈래의 검은 빛을 소환해 선조의 머리에 달린 두 귀를 잘라냈다.
금빛 피를 튀기며 분리된 두 개의 귀는 금빛을 그리며 무봉에게로 날아갔다.
“무봉 대천존, 이건 자네에게 주는 선물이네. 가지고 당장 떠나게!”
날아든 선조의 귀를 허공에서 잡아챈 무봉은 말없이 그것을 거두어 넣더니 뒤로 물러났다. 그로서는 굳이 이 싸움에 관여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최대한 빨리 폐관수련으로 선조의 저술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대천존의 태양
무봉은 한제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내 휙 돌아서더니 눈 깜짝할 사이 사라졌다.
구제는 이 광경에 빠드득 이를 갈더니 온몸으로 하얀 빛을 발산했다. 이 빛은 그의 뒤로 거대한 하얀 태양을 형성했다. 동시에 한 마리 하얀 늑대가 포효하며 그의 몸을 뚫고 나와 쌍자 대천존에게 달려들었다.
“도일, 해자! 머리를 뺏어!”
저술의 영향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가장 큰 위력인 태양의 힘을 발휘한 구제는 힘겹게 쌍자 대천존에 대항했다.
도일 또한 쌍자 대천존을 지나치더니 뒤쪽에 태양을 소환했다. 하지만 대천존 중 가장 수준이 낮은 데다가 선조의 저술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그의 뒤로 나타난 태양은 언제라도 흩어져 사라질 것처럼 어둑했다. 그리고 그것이 발산할 수 있는 힘도 얼마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이 정도면 다른 약천존을 죽이기에는 충분할지 몰라도 살육이 강림한 흑발의 한제를 짧은 시간에 처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런 상황인 만큼 해자의 도움이 필요했다. 만약 도망족의 신통술로 돕는다면 승산이 컸다.
한제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도일을 바라보며 선조의 머리통과 함께 몸을 뒤로 물렸다. 동시에 그는 저 멀리서 갈등하고 있는 해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해자 천존이라 불러야 할지 해자 국사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군. 굳이 이 싸움에 참여한다 해도 도망족에 도움이 될 것은 하나도 없다. 허나 네가 이 싸움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너희 도망족이 봉인에서 벗어나고자 나를 이용한 것에 대해 없던 일로 해주지!”
한제의 말에 해자 천존은 말없이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조용히 눈을 감고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구제는 한층 더 어두운 안색으로 이를 갈았지만 해자에게 화를 내거나 설득하려 하기 보다는 그저 쌍자 대천존에게 매서운 공격을 퍼부었다.
그 무렵 한제 근처에 이른 도일은 붉게 달아오른 두 눈 가득 살기를 번득였다. 그는 한제를 죽이고 상대의 피로 자신이 느낀 치욕을 씻어내고 싶었다.
그때까지 덤덤했던 한제는 도일이 다가온 순간 검은 두 눈에서 전의를 뿜어냈다. 아주 오랫동안 발휘한 적 없던 이 기운은 동부계에 있었을 당시 깨달았던 전쟁의 법칙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도일!”
한제는 하늘을 향해 낮게 외쳤다. 들어 올린 그의 오른손에는 금색 파편 하나가 나타나 있었다. 구제가 함정을 설치해두었던 긴 거리에서 그에게 주었던 선극검 조각이었다.
당시 구제는 한제가 도망족의 계획에 포함되어 있으리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때 알고 있었더라면 이 파편을 한제에게 주는 일은 없었을 터였다.
파편을 체내에 녹여 넣은 순간, 한제의 두 눈에서 기이한 빛이 드러났다. 이어서 한 걸음 앞으로 나온 그는 오른손으로 가슴을 내리쳤다.
“나와라, 오행진신, 3대 허상의 본원, 금제, 태초!”
그 손짓에 한제 체내에서는 살육과 묵멸, 그리고 천둥번개의 본원을 제외한 모든 본원이 튀어나왔다. 이제 천둥번개와 살육, 묵멸의 본원만 남게 된 흑발의 한제는 완전한 살육멸세의 화신이 되어 도일에게 달려들었다.
허공에서 두 사람 사이의 전투가 시작됐다.
대천존의 수준을 발휘한 도일은 태양의 힘을 빌려 만물을 하나로 만들고 융합한 뒤 발휘하는 신통술마다 신념의 힘도 담겼다. 그 공격들이 떨어질 때마다 한제는 계속해서 무너져 내렸지만 끝내 소멸하지는 않았다.
‘젠장할, 저 이한제 녀석, 머리가 검게 변하면 처리하기가 정말 어렵군!’
도일의 공격들은 흑발의 한제가 발휘한 신통술 아래 전부 튕겨나갔고 이로 인해 도일의 체내를 휘젓고 있는 저술의 영향은 더욱 강해졌다.
콰쾅!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검은 머리 한제의 육체는 다시 수많은 검은색 기운으로 붕괴했다. 그러나 이 기운들은 생명을 가진 것처럼 도일을 향해 달려들었고 그 가운데서 이내 손가락이 하나 쑥 빠져나와 도일을 가리켰다.
“크으!”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피가 뚝뚝 흐르면서 얼굴에 거의 해골만 남은 도일이 몸을 홱 틀면서 주먹을 휘두르자 세상 만물은 즉각 움직임을 멈추었다. 검은 기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의 주먹질에 검은 기운에서 빠져나온 한제의 손가락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고 검은 기운 역시 뒤로 밀려나다가 1백 척 떨어진 곳에서 다시 응집해 한제의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도일 역시 우뚝 멈추었다가 뒤로 세 걸음 정도 물러났다. 그리고 어느새 체내에 깃든, 몰아내기 어려운 살육의 기운과 저술의 영향이 융합하면서 도일은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한제는 냉랭한 눈으로 그런 도일을 살피며 다시 한번 달려들었다.
그때, 그가 내보낸 오행진신은 선극검 조각과 융합해 마지막 요소인 금속의 본원까지 가득 채웠다. 비록 본원 진신을 응집해내지는 못했지만 오행진신을 완성하는 데 일조했다.
그 힘이 가동되면서 오행의 요소가 하나로 합쳐졌을 때, 고개를 든 오행진신은 하늘을 뒤흔들 듯 어마어마한 기운을 뿜어내면서 도일을 응시하며 한 걸음 나섰다. 그 주위로 다섯 색깔의 빛이 떠올라 맴돌았다.
흙을 대표하는 검은색!
금속을 대표하는 노란색!
나무를 대표하는 초록색!
물을 대표하는 파란색!
불을 대표하는 붉은색!
몸을 날린 오행진신은 손을 들어 곧장 오행의 힘을 가동했고 그러자 검은 흙은 드넓은 대지가 됐다. 이렇게 나타난 대지는 허상에 불과했지만 그 안에는 어마어마한 흙의 본원이 깃들어 있었다.
콰쾅!
폭발하는 듯한 소리와 함께 깨어난 대지는 거대한 토인의 형태로 도일의 뒤에 나타나 주먹을 휘둘렀다.
금속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눈부신 빛을 뿜어내면서 셀 수 없이 많은 검을 형성했다. 서늘하게 날이 선 검들 역시 허상이었지만 그 안에는 금속의 본원이 담긴 채 마치 쏟아져 내리는 빗방울처럼 일제히 도일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나무는 높이가 1천 척에 달할 듯한 거목이 되어 하늘에서부터 도일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날카로운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고 세상이라도 깨부술 수 있을 듯 강력해 보였다.
물과 불은 거칠게 몰아치는 불바다를 이루어 도일의 사방을 휘감았다.
그와 동시에 흑발의 한제는 도일을 향해 달려드는 도중에 몸을 터뜨려 셀 수 없이 많은 검은색 천둥번개가 됐다.
이것이 한제가 살육의 진신과 오행진신의 연합으로 발휘할 수 있는 최강의 위력이었다.
콰쾅!
“크아악!”
거대한 소리가 지축을 뒤흔들었고 도일은 비참한 비명을 내질렀다. 옷이 산산조각 나 흩어졌고 뼈만 남은 얼굴 사이사이로 엄청난 양의 피가 흘러내렸으며, 그 뒤로 나타났던 흐릿한 태양 역시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꽝!
태양이 붕괴하면서 일어난 강력한 충격이 위에서 내려오던 거목을 와해시켰고 토인을 산산조각 냈으며, 불바다를 몰아냈다. 또한 예리한 검들을 깨부수었다.
그렇게 뒤로 떠밀린 오행은 다시 응집해 한제의 오행진신이 됐다.
그 사이, 흑발의 한제가 일으킨 수많은 천둥번개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폭발하더니 줄기줄기 검은 기운이 되어 뒤로 나가떨어졌다. 이 기운들 역시 하나로 응집했고 그 안에서 흑발의 한제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아악!”
찢어질 듯한 비명을 내지른 도일의 눈은 두려움으로 물들었다. 그는 저술의 위력이 영혼을 불태우기 시작했음을 느꼈다. 만약 지금 당장 이곳을 떠나 폐관수련에 집중하지 않는다면 자신은 몰락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럴 수는 없지!”
날카롭게 외친 도일은 훌쩍 떠나려 했다. 죽음의 그림자가 덮쳐오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한제와 싸울 엄두는 나지 않았던 것이다.
“금제의 본원, 하늘을 봉인하라!
태초의 본원, 잔야력을 발휘하라!
삶과 죽음, 원인과 결과 진실과 거짓, 하늘을 가리고 땅을 뒤덮어라!”
흑발의 한제와 오행진신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그러자 막 도일이 떠나려는 순간, 이미 파괴되어 허무가 된 하늘에서 하나의 문양이 나타나 반짝였다. 한제의 금제의 본원이 형성한 봉인의 힘이었다. 또한 금제의 본원 뒤로 허상의 태양이 나타나 밝은 빛을 뿜어내며 금제의 본원에 녹아들었다.
뒤이어 3대 허상의 본원이 사방을 에워싸며 안개를 뿜어냈다. 한제의 도를 품은 이 안개는 하늘과 땅뿐만 아니라 주위까지 뒤덮어 도일을 가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