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53
이 죽간들에는 대부분 금제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한제는 죽간들을 전부 한 번 씩 살펴보았지만 그 안에서도 극의 경계에 관한 부분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한제는 마음이 축 가라앉는 것을 느끼면서도 계속해서 죽간들을 훑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의 눈빛이 어느 죽간으로 향했다. 굉장히 오래된 것 같아 보이는 그 죽간은 약간 부서져 있었다.
죽간을 집어 들고 살피던 한제의 몸이 순간 경련을 일으켰다. 곧장 그 옆의 돌로 된 탁자로 향한 한제는 죽간을 올려놓고 천천히 펼쳤다.
대부분의 내용은 금제에 관한 것이었지만 마지막 한 조각의 죽간에는 이런 글이 새겨져 있었다.
신선계에는 극의 경계라고 하는 신비의 힘을 생산할 수 있는 영력의 변이가 있다. 나는 이 극의 경계에 대해 오랜 시간 동안 연구를 했고 그것을 후대에 남기려 한다.
극의 경계라 불리는 신비의 힘은 사실 내가 보기에 또 다른 형태의 천벌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같은 등급의 수련자들을 일망타진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런 힘을 가진 것은 오직 천벌 밖에 없지 않은가.
나와 같은 수많은 연구자들은 극의 경계의 종점이 원영기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여러 역사서를 훑어본 나는 아주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했다.
우선 역사서에는 누가 극의 경계를 가지고 있었는지 기록되어 있지는 않다. 난 그 안에서 일종의 실마리를 찾았고 이를 통해 극의 경계를 가졌던 것으로 추정되는 여러 수련자들을 찾았다.
이 수련자들 중에는 결단기에서 멈춘 사람도 원영기에서 멈춘 사람도 그리고 화신기에서 멈춘 사람도 있었다. 말하자면 각자의 우연을 무시하는 법칙은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사실 극의 경계에 대한 나의 연구는 한 사람으로 인해 돌파구를 찾았다. 그 사람의 이름과 내력에 대해서 밝힐 수는 없지만 내가 처음으로 본 극의 경계의 소유자다.
그는 원영기 수준의 수련자다. 그는 원영기를 돌파해 화신기에 이르고 싶어 했고 이에 나를 찾아와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결국 나는 실패하고 말았다⋯⋯
한제는 그 책에 온 정신을 집중하며 한 자 한 자 읽어 내려갔다. 한참 후에서야 고개를 든 그의 눈은 아득했다.
이 죽간에 기록된 것을 토대로 한제는 자신이 가진 극의 경계의 종점이 결단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지 않고서야 원영을 맺을 그 순간에 극의 경계를 통제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터였다.
그렇다면 그의 수준은 결단기에서 멈춰 결코 그 위로 올라갈 가능성은 없다는 뜻이었다. 한제는 도저히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원영기에 이르지 못한다면 지난 4백 년 동안 끓어오르고 있던 그의 원한과 복수는 어떻게 할 것이며 사도환은 어떻게 다시 깨울 것인가. 이 모든 것이 이대로 끝나는 것인가. 그렇게 된다면 등화원이 여전히 살아 있어도 자신이 그에게 복수를 할 기회는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몰래 숨어 살아야만 했고 죽을 때까지 조나라로는 돌아갈 수가 없었다.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등화원이 알아차린다면 절대로 그를 그냥 놔두지 않을 것이다.
그때까지의 목표와 꿈들이 한순간에 흩어져버리고 말았다.
한제의 주먹에 힘이 실렸고 그의 두 눈은 분노로 이글거렸다.
극의 경계를 포기하고 심지어 극의 경계가 이뤄준 모든 수준을 포기해야만 원영기에 이를 수 있다.
너무나 어려운 선택이었다. 죽간에 글을 새긴 그 사람이 극의 경계 소유자를 위해 고안한 방법은 바로 여태까지의 공적을 해산시키는 산공(散功)이었다.
산공과 동시에 극의 경계도 흩어지는데 그렇게 해야만 극의 경계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그러고 난 뒤 처음부터 다시 수련을 해야 한다.
그 원영기 수준의 수련자는 결국 그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한제는 지금 이 잔혹한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극의 경계를 포기하기 않으면 죽을 때까지 원영기에 이를 수 없다. 매번 원영을 맺으려 할 때마다 극의 경계가 그것을 가로막을 테니까. 하지만 만약 극의 경계를 포기한다면 그가 지난 4백 년 동안 갖은 고생을 한 끝에 올려놓은 수준은 그대로 폭삭 주저앉고 만다.
처음부터 다시 수련을 시작해야 한다. 게다가 지금 그는 곳곳에 위험이 가득한 수마해에 있으니 수준을 회복하기도 전에 다른 사람에 의해 비명횡사할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한참 뒤 한제는 결심한 듯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들고 있던 죽간을 원래의 자리에 돌려놓았다. 그리고 천천히 이 동굴에서 빠져나갔다.
그가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자신의 몸에 걸려 있는 연꽃금제(蓮花禁制)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자신의 계획을 실행할 수 있었다.
★ ★ ★
동굴을 나간 뒤 깊은 숨을 들이마시던 한제의 눈에 서늘한 빛이 번득였다.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토둔술을 이용해 먼 곳으로 질주했다.
며칠 뒤 한제는 땅속 몇 만 척 깊이에 마련된 동굴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은 그는 오른손으로 저물대를 두드려 금번을 꺼냈다. 그것을 제련한 한제는 이 동굴을 수 천 개의 금제로 꽁꽁 감쌌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천천히 두 눈을 감은 한제는 체내의 혼란한 영력을 움직여 천천히 경맥을 따라 흐르게 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영력이 체내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천천히 금단으로 흘러들어가면서 영력의 순환이 회복됐다.
점차 금단도 원래 상태를 되찾아갔으며, 수준 역시 결단기 후기에서 원영기로 넘어가는 경계에 이르렀다. 그와 동시에 한제는 곧장 경맥 내의 영력을 절단시켰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과감히 체내의 영력을 통제하여 연꽃금제(蓮花禁制)를 향해 퍼부었다.
극의 신식이 금단을 공격했을 때 체내의 영력이 폭발적인 충격을 받으면서 연꽃금제(蓮花禁制)도 영향을 받아 이미 불안정해진 상태였다. 이번에는 한제의 고의적인 충돌로 연꽃금제(蓮花禁制)가 크게 휘청거렸다.
사흘 뒤, 줄곧 눈을 감고 있던 한제가 두 눈을 번쩍 뜨고 두 손으로 자신의 가슴팍을 빠르게 몇 번 두드렸다. 손가락이 그의 몸에 닿을 때마다 영력의 파문이 하나씩 그의 손가락 끝에서 나타났다.
손의 움직임이 빨라짐에 따라 한제의 가슴팍에서 몇 개의 빛이 나타났다. 이 빛은 그의 체내에서 피부를 뚫고 밖으로 솟아나왔다. 이 빛들은 점점 늘어나 그의 가슴 앞에서 하나의 연꽃 모양을 이루었다. 마지막으로 한제는 두 손을 앞으로 쭉 밀었다.
그의 몸 밖으로 하나씩 배출되던 빛은 서로 교차되면서 하얀색의 연꽃 모양을 갖추었고 천천히 그의 몸과 분리됐다.
그 빛들이 그의 몸으로부터 1척 정도 떨어졌을 때 연꽃 모양의 빛과 그의 몸 사이에 얇은 실처럼 연결된 꼬리가 드러났다.
한제의 이마에는 구슬땀이 맺혀 있었고 온몸에서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하지만 이 연꽃금제(蓮花禁制)를 떼어내기 위해 이를 악문 그는 다시 한 번 낮게 기합을 넣으며 두 손을 앞으로 밀쳐냈다.
순간 꼬리처럼 연결된 빛까지 한제의 몸에서 뽑혀 나와서는 저 앞으로 쭉 밀려났다.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저물대를 두드렸다. 순간 그 안에서 솟아나온 작은 마수 한 마리가 연꽃금제(蓮花禁制)로 달려들었다. 그러자 연꽃금제(蓮花禁制)는 바짝 수축했다. 작은 마수에게 감싸인 그것은 결국 빛을 몇 번 번쩍이더니 점차 사라져갔다.
그제야 한제는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그는 오른손을 들어 작은 마수의 이마를 두드렸다. 순간 작은 마수는 울음소리를 내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르게 동굴 밖으로 날아갔다.
동굴을 감싸고 있던 금제들은 그 작은 마수가 날아가는 순간 분분히 길을 터주었다. 심지어 땅속의 진흙도 한제의 통제 아래 길을 내주었다. 마수는 밖으로 빠져나가더니 순식간에 먼 곳까지 날아갔다.
한제는 입가에 냉소를 띠었다. 그는 현무를 타고 다니던 노인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몰랐으나, 좋은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제 연꽃금제(蓮花禁制)도 작은 마수에게 이식해 놓았으니 상대가 자신을 찾으려고 나서도 찾을 수 있는 것은 그 작은 마수뿐이었다.
하지만 한제는 이런 작은 술수로는 그저 약간의 시간만 더 벌 수 있을 뿐이라는 사실 역시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지금 한제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시간이었다.
한제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몸을 앞으로 날렸다. 오른손을 꽉 쥐어 동굴에 걸려 있던 모든 금제를 회수한 그는 빠르게 자리를 떴다.
이 수마해에 계속 머물 수는 없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계속 여기에 머물렀다가는 적지 않은 문제가 계속 발생할 것이다.
한제는 동굴을 떠난 뒤 유성처럼 긴 잔영을 일으키며 최대한의 속도로 지면을 뚫고 올라갔다. 그리고 앞으로 내달렸다.
★ ★ ★
다음 날 이른 아침, 그는 원영을 얻었던 상고 시대 수련자의 동굴을 찾았다. 그 밖에서 한참 동안 자세히 살피던 한제는 그 안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저물대를 두드려 독검을 꺼냈다. 한제가 고개를 끄덕이자 독검은 소용돌이처럼 무너진 동굴 속을 뚫고 들어갔다.
빠르게 하나의 통로가 생겨났다. 다시 돌아온 독검을 챙긴 한제는 고개를 돌려 사방을 훑어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수마해여, 잘 있거라.’
그리고 허리를 숙여 통로로 향했다.
★ ★ ★
전송진이 있는 석실을 찾은 한제는 바로 그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오른손을 휘둘러 입구를 다시 봉쇄했다. 이어서 여러 개의 금제를 만들어 입구를 철저히 막아놓은 뒤에야 그 석실로 들어갔다.
이럴 때를 대비해 지난번에 구사평 몰래 보호용 금제를 걸어둔 덕에 붕괴에도 비교적 무사했다. 다행히 진에는 전혀 영향이 없었다.
석실 안의 돌들을 조심스레 정리한 뒤 진 위에 선 한제는 고개를 숙인 채 한참 동안 진을 연구하다가 저물대에서 짙은 보랏빛의 마름모형 돌을 하나 꺼냈다. 반짝거리며 투명한 돌 안에서 흐릿한 안개가 느리게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돌은 수마해에서도 희귀한 최고급 영석이었다. 이는 전송진을 활성화시키는 데 필수적인 영력 제공 장치였다.
잠시 망설이던 한제는 이내 결심한 듯 주저하지 않고 빠르게 그 영석을 진의 움푹 파인 곳에 넣었다. 그리고 눈을 빛내며 진을 주시했다.
영석이 밝은 빛을 발하더니 그 안에서 유동하던 안개가 순간 피어올랐다. 곧이어 보라색 빛이 홈의 사방으로 느릿하게 발산되면서 진의 선을 따라 흘러나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진은 보라색 선으로 뒤덮였고 우르릉 소리가 느릿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뒤이어 빛의 원 하나가 진의 가장자리에서 떠오르더니 천천히 상승했다. 그리고 뒤를 이어 더 많은 빛의 원들이 진에서 솟아올랐다. 이 빛의 원들이 서로 교차하며 흔들리기 시작했고 그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다.
그러다가 속도가 어느 정도에 이르자 그 안에 있던 한제의 몸이 흐릿해지더니 결국 사라졌다.
한제가 사라지고 나자 그 진 안에 자리한 빛의 원은 천천히 하강하여 다시 진 안으로 돌아갔다.
진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처음상태로 돌아갔다.
공적을 해산시키지 않는 방법
우르릉- 콰광
수마해 중앙 지역에서 수백만 리 떨어진 곳에는 끊임없이 이어진 산맥이 있었다. 그곳의 하늘에서 백 척이 넘는 굵기의 거대한 빛기둥이 나타나더니 아래로 내려왔다. 우르릉, 소리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이 산맥에는 골짜기가 하나 있었다. 그리 크지 않았고 그 바닥에는 매우 오래된 것 같은 전송진이 하나 놓여 있었다.
갑자기 골짜기 안에서 한 치 앞도 보기가 힘들 정도의 흙먼지가 일었다. 천천히 가라앉는 흙먼지 사이에서 검은색 인영이 진 밖으로 걸어 나왔다. 백발에 온몸이 흙먼지로 뒤덮여 상당히 피곤해 보이는 그자는 바로 한제였다.
그는 몇 번 콜록거리더니 오른손으로 결인을 해 영력을 불어넣었다. 순간 사방에서 미친 듯이 바람이 불어와 허공을 떠돌던 흙먼지는 물론 한제의 몸을 가득 뒤덮고 있던 흙먼지도 쓸어갔다.
고개를 들자 밝은 햇빛에 눈이 부셨다.
사방을 살핀 순간 한제는 자신이 이미 수마해에서 빠져나왔음을 알 수 있었다. 사방의 산맥에는 수풀이 우거져 있었다. 여태 한 번도 본 적 없던 날짐승들이 상공에서 배회하기도 했다.
한제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렇게 밝은 햇빛이 얼마만인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수마해 안에서는 해라고는 볼 수 없었고 최근 한 달 동안은 안개가 흩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하늘을 뒤덮은 시커먼 구름은 시커먼 빗물을 뿌려댔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신 한제는 몸을 돌려 바닥에 놓인 전송진을 바라보았다. 그는 비검을 꺼낸 뒤 진을 헤집었고 진을 이루고 있는 재료들을 거두어 자신의 저물대에 챙긴 뒤에야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이제 그 미친 노인네가 그의 뒤를 쫓는다고 해도 전송진을 통해 이곳으로는 올 수 없게 됐다. 게다가 그의 위치를 감지하는 연꽃금제(蓮花禁制)도 사라졌으니 한제는 자신의 안전을 확신할 수 있었다.
몸을 훌쩍 날려 허공으로 날아오른 한제는 이곳의 영기가 굉장히 충만하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위로 올라갈수록 영기는 더욱 짙어졌다.
허공에 뜬 채 두 손을 흔들어 잔영의 원을 하나 만들어낸 한제는 그것을 산골짜기에 찍었다. 위치를 표시해두는 것이었다.
이후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질주했다. 동시에 신식을 펼쳐 사방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이곳이 어디인지 알아내는 일이었다.
그리고 만약 상황이 허락한다면 한제는 원영기에 오르는 데 전력을 다할 생각이었다.